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그러한 질문을 계속하면서 나는 내가 동거를 어떻게 대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내게 동거란 애인과 함께 하고 싶은 완성된 상태다. 결혼을 위한 계단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안도 아니다. 그는 ‘함께 있고 싶으니까 같이 산다’라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언젠가 제도 안으로 들어가기를 바랐다.
---「첫 번째 싸움은 한 집에 두 권 있는 『비행운』으로부터」중에서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합일에서 그치지 않는다.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약속까지 포함한다. 결혼 당사자들이 인생에 중대한 결정(휴직, 퇴직, 이민 등)을 내릴 때에 양가에 허락을 받는 문화는 또 어떠한가. 명절마다 일어나는 수많은 분란에 대해 여기서는 침묵하도록 하자. 그것이 옳다, 그르다 혹은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지금 내 몫이 아니다. 다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결혼은 ‘함께 있겠다’라는 약속보다 더 큰 무엇이라고. 상대와 하는 포옹이라기보다는 사회와 하는 악수에 가깝다고. 나는 아직 제도권 속으로 몸을 던져 사회와 악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다. 그렇다. 같이 살고 싶은데 추석에 그의 집에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전을 부칠 자신은 없었다는 말이다. B급 며느리를 자처하며 전장으로 나가기엔 전투력도 없었다. 내 삶의 결정에 훈수를 두는 이들은 내 가족으로 충분했다. 함께 있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을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이루는 것은 함께 있기였다. 그냥 함께 있기.
---「같이 살고 싶은데 너네 집 가서 전 부치긴 싫어」중에서
한 공간에 함께 있고 싶지만, 혼자 있고 싶은 순간도 많다. 고독해 지고 싶을 때. 시를 쓰고 싶을 때. 다른 이유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데 상대에게 보이기 싫을 때. 머리를 질끈 묶고 렌즈 빼고 팬티 바람으로 있고 싶을 때. 제모하는 모습을 생중계하기 싫을 때. 그날 하루 방탕하고 한심하게 보내고 싶을 때. 이유 없이 그냥 혼자 있고 싶을 때. 버지니아 울프의 말마따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함께 살아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중에서
어쩌면 동거는 용기가 없어서 차마 해외여행을 떠나지는 못하는 이가, 안락한 소파에 앉아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는 기분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4D 영화관에 앉아 안전하게 모험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정의하는 결혼은 본디 그런 것이 아니라며 용감하게 싸우는 게 맞는 방법일까? 누군가는 제도 안으로 성큼 걸어간 후에, 잘못된 제도를 고치겠다며 창을 갈기도 한다. 멋진 일이다. 그러나 영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은 아니다. 주뼛거리며 뒤로 물러난 나는 다르게 갈 수 있는 길은 없나 뒷길을 기웃거린다. 거대한 창 대신 조그만 맥가이버 칼을 들고, 이렇게 가볼까 저렇게 가볼까 궁리하면서. 괜찮은 길을 찾으면 내 봉화를 올리리라. “여기야, 여기로도 갈 수 있어!”라고 소리쳐야겠다. 맥가이버 칼로 대충 잡풀을 잘라 만든 길이, 언젠가 괜찮은 산책로가 될지 모를 일이다.
---「언젠가 괜찮은 산책로」중에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혼인 신고를 했더라면, 매번 뻔하면서 또 매번 감동적인 결혼식을 나도 올렸더라면, 양가 친척 앞에서 반지를 주고받았더라면 달라졌을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오래 쓴 무릎의 연골처럼 닳아 삐거덕거릴 때에도 그 자리에 연민과 정, 증오를 채워 넣으며 함께 살았을까? 달리 헤어질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습관처럼 몸을 붙이며 자다 보면, 어른들 말대로 또 다른 느낌의 사랑이 생겨났을까?
---「내가 다시 동거를 하면 성을 갈지」중에서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계속 결혼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인데, 나이가 먹으면서 결혼에 대해 해명할 일이 생긴다. 왜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는지.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는지. 불법 유턴을 하다 경찰관에게 걸린 운전자처럼 내 결정에 대해 ‘해명’을 요청 받는다. 그럴 바엔 군말 없이 범칙금을 내겠다. 내게 딱지를 떼라. 가끔은 나의 비혼이 자발적이지 않은 것으로, 그러니까 내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남자가 없어서 결혼을 못 하는 것으로 판단한 사람들이 내 앞에서 부러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때도 있다. 편하게 이야기해도 된다. 설사 내가 ‘못 한 것’이라고 해도 부디 마음껏 이야기하시라.
---「아, 나 빼고 다 결혼했네」중에서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을 닮게 된다. 누군가와 같이 살아도, 그 사람이 자꾸 묻는다. 어떤 말에 대답하기 전에 ‘말하자면’이라고 덧붙이는 습관이 묻고, ‘이를테면’이라고 예를 드는 말버릇이 묻는다. 그 사람이 일요일마다 늦잠을 자면, 곁에서 같이 게으름을 피운다. 차를 좋아하는 그 사람이 집에 온갖 차 종류를 들여놓으면, 녹차나 홍차밖에 몰랐던 나도 세 번째 우린 녹차 맛을 겨우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의 개그에 웃는 타이밍이 닮는다. 그러다 보면 웃는 모습도 비슷해진다. 그러니 곁에 누군가를 둔다는 건, 언젠가 내 모습이 그 사람과 비슷해져도 괜찮다고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살면 그 사람이 묻어요」중에서
어머니의 다정한 태도를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녀가 궁금하지 않아서 물어보지 않은 것은 아닐 터. 아마도 첫 만남에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게 실례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나는 정말 괜찮았는데. 다 물어보셔도 되었는데. 업무차 몇 번 만난 회사 대표조차 내가 나온 대학을 묻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옆집 아저씨조차 내 직업을 묻는데. 샤부샤부 집 사장님조차 내가 몇 살이냐고 묻는데. 아들 여자친구에게 그런 걸 묻는 것조차 망설이시는 것 같아 내가 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후에 들으니, 꼬치꼬치 캐묻지 말라는 아들의 조언을 들으신 것 같았다. 아니면 역시 나의 우주를 폭파시킬 것 같은 머리 스타일 때문이었을까.
---「애인 어머니와 함께 한 1박 2일」중에서
우리의 연애가 남들의 사랑놀이와 마찬가지라는 것, 지구에서 몇십억 커플이 동시에 하고 있는 연애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것과 확인하는 건 다르다. 그런 건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가 없다. 그건 뭐랄까.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의 전설과 비슷하다. “요정은 없어”라고 어떤 어린이가 말하는 순간 진짜 요정이 한 명씩 죽어 나간다. 그가 실제로 요정이 있다고 믿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입 밖으로 그것을 ‘꺼내는 순간’, 그 순간 요정이 죽는다. 사랑도 실체가 없는 환상이기는 요정과 진배없는지라, 사랑의 흔해빠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정말 그 사랑은 흔해빠지고야 만다. 나는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니까」중에서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동거가 아니라 결혼을 했더라면, 결혼식을 하지 않았더라도 신고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 관계가 몇 마디의 말로 정리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이었다면, 단단히 엉킬 실타래를 가위로 끊지 않고 손으로 하나하나 풀어내야만 한다고 정해져 있었다면, 그 실타래를 풀기 위해 주저앉은 시간 동안 우리 관계는 다시 좋아지지 않았을까. 그러다 또 시간이 지나고, 실타래가 다시 엉키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 일들을 반복하며 살지 않았을까. 관계를 포기하게 되는 딜브레이킹의 한계점이 낮아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 관계를 끊어내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서 헤어지지 않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붙이고 온갖 제도로 서로를 칭칭 감는 건지도 모르겠다. 등나무처럼. 지금은 우리가 부족하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우리가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가끔은 몇십 년이 걸리기도 하니까. 그 시간까지 우리가 우리를 견디기 위해 서약을 하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국수를 대접하고, 「어느 멋진 날에」나 「좋겠다」 같은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게 아닐까.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니까」중에서
어쩌면 엄마, 아빠는 차라리 아무도 안 만났을 때가 더 나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의 딸 가진 부모들은 딸이 결혼하기 직전까지 순결(?)을 지키며 누군가의 튼실한 복근도 보지 않고 조신하게 살다가, 사회가 정한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느닷없이 건실한 청년을 데려와 버진 로드를 걷길 원하지 않던가.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딸이 좋은 남자 고르는 눈은 또 얼마나 가졌는지는 모를 일이나, 우리의 기대가 그렇게 합리적이기만 했다면 세계 평화는 진즉에 이뤄졌을지 모른다.
---「엄마, 아빠에게 동거한다고 말하는 날이 오면」중에서
다만 나의 애인이 그렇게 말할 때면, 그 말이 그의 ‘특정’ 부분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실은 ‘본질’이 아닐까 두려울 때가 있었다. 집안일을 ‘돕는다’라고 생각하는 남자는 나와 함께 살면서 사실은 집안일이 ‘여자의 일’인데 자신이 억울하게도 짐을 대신 진다고 생각할 수 있었고, 그런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무언가로 표출되기 마련이었다. 여자의 동거는 문란하고, 남자의 동거는 쿨하다고 생각하는 애인에게는 ‘우리의 동거’가 나에게만 죄가 된다고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건 그가 언젠가 궁지에 몰렸을 때 ‘우리의 동거’를 무기로 사용하려고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 무기가 나에게 효력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그것을 무기로 사용하려고 한다는 그 생각 자체에서 이미 큰 타격을 입을 터였다. 흑인을 혐오하는 남자와 흑인 여자가 연애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이 OECD 국가에서 압도적으로 여성 임금이 낮다는 것(임금 차별 1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애인에게는 그보다 낮은 나의 연봉을 해명할 도리가 없었다. 그에게 그것은 그냥 나의 무능력이었으니까.
---「여기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중에서
애인은 기차 시간이 다 되었다며 먼저 나간다. 말은 안 했지만 사실 부모님을 만나는 건 내일이다. 짧은 연휴지만 그중에 첫 날은 늘 혼자 있는 날로 지정한 지 5년도 넘었다.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좋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없다면 관계는 늘 버거워진다. 창밖으로 애인이 종종걸음을 걷는 게 보인다. 보일지 모르겠지만 손을 흔들어 본다. 이제부터 하루는 혼자 있는 시간이다. 가끔 혼자 있고, 주로 함께 있고, 때때로 다 같이 있다.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Ver1.」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