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한마디
[2020 뉴베리 아너상을 수상한 무서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는 오락 위주이지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깨고 뉴베리 아너상을 수상한 작품. 노란 악취가 숲을 덮으며 홀로 남게 되는 ‘미아’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이를 극복하며 생존해나가는 ‘율리’라는 두 마리 아기 여우들이 각각 겪어내는 모험이 교차 편집되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 어린이MD 김수연
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 전달자가 나타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체 스토리의 큰 흐름 또한 주인공의 시련과 고난 극복, 그리고 성장을 그리고 있으며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익숙한 소재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대 신화의 방식,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 서사시와 비슷한 방식, 어쩌면 매우 진부한 소재이지만 작가의 치밀한 장치들로 ‘전형’이 주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진부하고 정해진 결말이 보이는 이 책에서 작가는 전형적인 흐름에서 전형적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며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가령 책 앞부분에 나타난 모성애만 하더라도 전형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그려낸다. ‘모성애=희생’이라는 틀 안에서 움직였다면 재미가 없었겠지만, 노란 연기를 마신 자식들의 이야기를 듣는 미아의 엄마는 다른 방식으로 모성애를 표현한다. 자연의 거대한 법칙, 자신이 거스를 수 없는 법칙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은 자식, 미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성애. 바보 같은 희생이 아니라 운명 앞에서 현실을 보며 복합적인 판단이 들어간 모성애가 그려진다. 이 장면을 읽는 독자 또한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미아 엄마의 슬픔, 순응, 냉정함 등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며 더 큰 슬픔과 공감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외에도 책에서는 다양한 주제를 풀어놓는다. 장애에 대한 차별, 동물 학대와 자연파괴. 어쩌면 우리가 마주치고 있으면서도 우리를 무겁게 만드는 문제다. 하지만 작가는 영리하게도 이 문제를 깊게 다루기보다는 미아와 율리, 여우들의 시선에서 스쳐간다. 만약 이 문제에 더 힘을 주어 다루었다면 이야기 흐름이 무너지거나 이 문제들을 더 깊게 생각하는 독자의 사고를 방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수준의 언급과 서술로 더 깊게 고민할 수 있는 여백을 독자들에게 주었고, 여러 문제를 관통하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갈 수 있었다.
여기에 작가는 주인공이 동물이라는 우화 방식을 작가는 십분 활용했다.
p.82 “당신이 이런 한심한 것을 낳았으니 스스로 처리해야 해.”
p.293 “저놈은 태어날 때부터 병신이었다.”
p.294 “왜? 사팔뜨기에 뒤뚱뒤뚱 걸으면서, 귀는 뒤틀리고 혀가 늘어진 병신 새끼들을 낳으라고?”
발톱마왕, 율리의 아버지가 한쪽 다리가 불편한 율리를 보고 내뱉은 말이다. 만약 우화가 아닌 사람이 주인공인 소설에서 저런 대사가 나왔다면 상당히 불편하면서 폭력적인 말이 된다. 물론 편견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쓸 수는 있지만 아동문학에서 쓰기엔 상당히 불편하다. 하지만 우화라는 큰 장르에서 여우가 다른 여우에게 한 대사이다. 그렇다면 조금 달라진다. ‘장애’에 대한 차별은 고스란히 전달되지만, 이 폭력적인 장면이 조금 완충되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즉, 선명하지만 덜 아프게 독자들, 특히 어린 독자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우화가 가져오는 부작용을 치밀한 분석으로 차단했다. 많은 우화에서 동물을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일방적인 해석으로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가지는 특정 동물에 대한 편견, 가령 여우는 약았고 늑대는 음흉하며 양은 순진하다와 같은 것들로 동물의 편협한 시선을 씌우거나 큰 장점(우애, 협동, 희생)을 동물에게 잔뜩 입힌 후 이상화하는 잘못이 흔하다. 물론 우화 자체가 실제와는 상관 없이 허구적 상상으로 교훈을 주기 위해 인간의 특성을 동물에게 입힌 것이지만 정도를 넘어가 자연에 대한 일방적인 경외감을 표현하는 문제점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작가는 이 부작용을 여우에 대한 치밀한 분석으로 적절한 선에서 끊어냈다. 여우를 마냥 이상화하지도 않으며 모성애와 생존을 위한 잔인함을 나란히 배치하여 유치한 느낌을 지웠다. 또 여우의 전형을 그리기보다 앞부분에서 나온 노란 연기(광견병, 여우는 개과), 오소리와 싸울 때 모습 등 여우의 실제 특성을 입혀 몰입감을 더 실어주었다. 그래서 인간의 방식이지만 여우의 시선으로 여우가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어 우화의 독특한 맛을 살렸다.
여러모로 치밀하면서도 쉬운 단어로 빠른 전개를 보여주었고, 틈틈히 우리가 다시 생각해봄직한 문제를 던져준 소설. 무엇보다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무서움에 대한 기준이란 게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통상적으로 무섭다고 분류하는 이야기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책이든 영화든 대놓고 무서움이나 공포를 내세우는 작품을 거의 선택하지 않는다. 특히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다음에는 약간의 호기심으로 고른 경우는 있지만 그런 유의 이야기를 좋아해서 고른 경우는 없다. 온갖 것들이 궁금하던 어린 시절에는 무서운 이야기 역시 궁금해서 가끔 찾아보곤 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심장이 쫄깃해진다고 표현하는 이야기들이 부담스럽다고 인지한 이후로는 거의 손을 대지 않는 영역이다.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라니까 밑도 끝도 없이 공포심만을 자극하는 내용이 아니리라 믿고 선택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무서운 이야기임을 내세운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리고 약한 여우들이다. 어린 것들에게 벌어지는 무서운 일이라니 그냥 무섭고 안 좋은 일은 그런 일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어른들에게만 벌어지면 안 될까?
이제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어린 여우 일곱 마리가 이야기꾼 앞으로 모여든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늙은 여우는 어린 여우들에게 이야기를 끝까지 듣겠다는 다짐을 받는다. 그러지 않으면 희망은 사라져 버린다며. 그런데 시작부터 분위기가 스산하고 뭔가 좋지 않을 일이 벌어질 듯하다. 늙은 여우가 말한 희망이 속임수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렇게 출발한 이야기는 크게 세 갈래로 뻗어간다. 이야기를 듣는 여우들이 주가 되는 상황 하나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상황 두 가지이다. 세 갈래의 이야기에서의 주인공은 모두 어린 여우들이다. 상황은 긴박하고 벌어지는 일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이야기 속의 상황 두 가지는 책의 중반쯤에서 합쳐지고 끝에서는 이야기를 듣는 상황과 이야기 안의 상황이 어우러지면서 이야기는 커다랗게 하나가 된다.
주인공인 어린 여우들은 형제자매들 중 막내이거나 장애를 안고 있거나 수컷에 비해 결정적 지위를 갖지 못하는 암컷―책을 읽다보면 여우 무리를 이끄는 존재는 수컷이며 수컷이 암컷에게 자신을 강제하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의 처지에 놓여있다. 일종의 소수자인 이들은 모두 이야기 속에서 성장한다. 두려워하며 이야기를 듣던 막내는 끝까지 이야기를 듣고 희망을 놓지 않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이야기 속의 두 여우도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무섭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겨내며 자신들의 삶을 구축한다. 한쪽 발을 쓰지 못하는 수컷 여우는 그런 장애를 가진 상태를 극복하지 않고 그 상태대로 성장하고 암컷 여우는 기지와 용기를 발휘하여 그 수컷 여우를 북돋우고 자신을 키우며 모험을 이어나간다. 지나고 나서 보면 모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이 벌어지는 당시에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절박함이었다. 이들을 겁박하는 것들은 어른이기도 하고 자연 환경이기도 하며 때로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어린 여우들은 영웅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 그들이 겪는 고통은 실제적이지만 이를 극복하는데 있어 어른이 된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장치를 이용하지 않는다. 인식이 바뀌었다고 상황이 무작정 반전되지도 않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무언가의 성장은 낭만만이 아니라 쓰리고 힘든 과정을 동반할 수 있으며 성장의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이 책을 읽는 어린 친구들에게 얘기하려 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책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힘이 되고 희망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볼 때 책의 내용 중에 무서운 이야기가 하나 나오기는 한다. 그 이야기는 베아트릭스 포터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피터 래빗 이야기의 작가로 유명한 포터가 이 작품 속에 길게 등장할 때 뭔가 따뜻한 내용이 가미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껏 알고 있던, 동물을 사랑하는 포터의 이미지와는 아주 다르게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고 처분해버리는 냉혹한 모습의 포터가 그려진다. 상세한 내용을 옮길 수는 없지만―스포일러가 될 테니― 포터를 아는 이들에게는 매우 놀랍고 충격적이라고 할 묘사이다. 실제의 포터에게 그런 모습이 있었다는 근거가 있는 걸까? 이 내용의 실체가 몹시 궁금하다.
독특한 이야기 구조가 책이 진행되면서 몰입도가 높아지도록 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내용도 위에서 정리한 것처럼 무식한 영웅담으로 진행되지 않아서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대상 독자층이 아주 어린 친구들은 아니라고 본다면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 수준이 조정된 장점도 보인다. 책의 표지와 중간에 들어간 삽화는 읽는 사람이 책에 빠져들도록 이끄는 긍정 요소로 작용한다. 글자 크기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번역 문구에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병신, 사팔뜨기 등이 그런 사례이다. 예를 들어 국어사전을 보면 사팔뜨기는 ‘사팔눈을 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낮잡아 이르는 말이니 다른 표현으로 대체해야 하지 않을까? 어제(8/31)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는 시각장애인분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깜깜이 감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가 있다. 좋은 선례를 참조해서 수정하기를 바란다. 이 부분을 감안해서 편집/구성에 대한 평점을 낮추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라는 이 동화는 2020년 뉴베리 아너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라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뉴베리 아너상이 무언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뉴베리상은 해마다 미국에서 아동문학에 크게 이바지한 작가에게 주는 상으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우는 상이라고 합니다.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라는 제목에서 연상하면 공포물이라고 생각되는 데 뉴베리 아너상을 수상했다니 문학적 가치를 인정 받은 것일텐데요. 공포물이 문학성을 인정 받는 경우는 흔치 않기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동화를 막상 읽어보면 아이들에게는 흥미진진하고 무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나 생존을 위한 모험과 성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더군요. 이야기의 주인공인 미아와 율리는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는 어린 여우들인데요. 둘다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와 가족으로 부터 살해 당할뻔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험을 통해 이겨나가는 내용입니다. 출판사의 리뷰처럼 8편의 이야기가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하나의 성장기를 담은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또 각 이야기들과 전체 내용은 트라우마와 그 극복 과정을 담은 회복탄력성에 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성인인 제가 읽어도 긴박감있고 흥미롭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이야기가 다 끝나자 더 이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는데 아이들이 읽기에는 이만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작품도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포일러 하고 싶은 마음에 입이 아니 손끝이 간질간질해지지만 이 동화를 선택할 아이들의 감동을 파괴하게 될까봐 억지로 참습니다.
한동안 한국의 신춘문예 동화들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굳이 교훈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나 싶게 억지스런 교훈을 낳는 이야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안데르센이나 그림형제의 동화나 민담도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나 관습법 같은 교훈을 심어주고 있었더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인어공주가 물거품으로 사라지던 그 가슴시린 감동의 순간을 주던 순수한 문학성을 띠던 동화가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는 모험을 이야기하는 속에서 성장하고 회복하는 감동과 교훈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안겨주고 있습니다. 억지 교훈 억지 감동이 아니라 이런 고급진 교훈과 감동이라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여름입니다. 누구나 여름하면 호러의 계절이라고 하죠. 올여름 아이들에게 시원한 공포, 긴박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권해주고 싶다면 그러면서도 그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이 한층 감동하고 성장하길 바란다면 단언컨데 올여름엔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만한 책은 없을 것입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