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진보의 미국도, 보수의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미합중국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는 세련된 손동작으로 허공을 가르며 목소리를 조금 더 키웠다. “흑인의 미국도, 백인의 미국도, 남미의 미국도, 아시아의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 된 미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오바마의 어조와 열변,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해설자들도 넋을 빼앗긴 채 그를 과거의 거인들과 비교하였다. 1956년의 존 F. 케네디, 1984년의 마리오 쿠오모, 1988년의 앤 리처즈… MSNBC의 사회자 크리스 매튜스도 오바마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 두 다리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장담하건대, 지금 이 시간은 분명히 역사적 순간이 될 겁니다.”
--- p.28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달랐다. 다수가 특히 외교정책에서 바이든의 위력을 보았고 심지어 그를 그날 밤 최고의 선수로 꼽기도 했다. 바이든의 답변은 명확했으며 말이 많지도 않았다. CNN 〈래리 킹 라이브〉의 수석 국내 담당기자 존 킹은 “오늘 밤 승자를 뽑아야 한다면… 바이든 의원이다”라고 선언했다. 〈뉴스위크〉의 수석 편집자이자 칼럼니스트 조너선 앨터도 가세했다. “바이든의 활약은 눈부셨고 또 상투적이지도 않았다. 토론에서 이목을 끌고 싶다면 그래야 한다. 어느 정도 의외성은 언제나 필요하다.”
오바마도 놀랐다. 바이든은 진퇴양난의 이라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토론장에서의 기술도 훌륭했다. “토론장 외에는 유세 중에 거의 만나지 못했어요.” 액셀로드의 설명이었다. 청문회장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모습만 본 터라 오바마도 바이든의 토론 능력을 의심했는데, 의외의 모습, 잘 훈련된 바이든을 본 것이다. “토론회에서 바이든이 절제하는 모습을 보고 오바마도 감명 받은 것 같더군요. 바이든은 내내 상급 토론자 중 하나였어요.” 액셀로드는 그렇게 평가했다.
--- p.73
그런데 인종 연설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바마를 바라보는 바이든의 시선이 바뀐 것이다. 성질 급한 초선의원에 불과했건만, 바이든이 갑자기 앞장서서 오바마를 변론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을 불러 “오바마의 연설이야말로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최고의 연설이다”라고 치켜세웠다. 바이든은 진솔함을 매력으로 삼았던 사내다. 당연히 인종 문제에 당당히 맞선 오바마의 용기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오바마에 대해서도 평가가 달라졌다. “그는 미국의 선과 악을 모두 품었다. 그의 연설이 우리 조국의 인종관계를 향해 중요한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한다.”
--- p.90~91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바이든은 부통령으로서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오바마의 수석 고문이 되어, 중요한 회의 모두에 참석하고 싶고 대내외의 중요한 정책 결정 모두에 자신의 견해가 중시되기를 바랐다. 입법 과정에서 조언자 자격으로 참여하기를 원하고, 오바마에게 귓속말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를 바랐으며, 매주 대통령과 오찬을 비롯해 사적인 만남을 갖고 싶어 했다. 바이든의 성격 그대로 정말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오바마가 그런 부통령을 원한다면 바이든은 얼마든지 지명을 수락할 의향이 있었다.
--- p.117
민주당 전당대회가 며칠 앞으로 다가올 즈음 오바마도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변수도 빠짐없이 고려했다. 액셀로드가 후일 매체 인터뷰에서 밝혔듯, “전적으로 오바마의 결정이었다. 그는 매우 신중하고 냉철하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접근했다.” 액셀로드, 플루프, 밸러리 재럿 등 고문단도 오바마가 바이든에게 기울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결정했어요. 바이든입니다.” 오바마가 바이든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오랜 의회 경력, 외교 전문성, 의회를 다루는 기술. 그러나 그 밖에도 오바마가 혹한 매력도 있었다. 바이든의 개인사 그리고 심각한 패배에 맞서는 모습 때문이었다. 버락 역시 삶과 삶 속에서 자신의 위치가 갖는 의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던가. 가족을 향한 바이든의 헌신에도 끌렸다. 1972년 자동차 사고 이후, 갓난아이들 둘과 함께 있겠다며 매일 워싱턴에서 델라웨어까지 출퇴근을 한 사람이다. 그 모습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강력했다.
--- p.125~126
“우리는 돈을 쫓을 겁니다. 이건 원칙의 문제라서 제대로 해야 합니다. 예, 제대로 할 겁니다.”조가 큰소리를 쳤다. 그는 일은 투명하게 처리하고 부정은 뿌리 뽑겠다고 경고했다. “돈이 계획대로 쓰이지 않을 경우… 예를 들어 주지사들이 돈을 받아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불황대비 펀드에 쏟아 붓는다면, 반드시 찾아내 그 사실을 공개할 것입니다.”
경기부흥 프로젝트의 수장, 조 바이든은 자신만만했다. 그의 활동에 오바마도 흡족해했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도 사소한 알력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상대를 믿었기에 서로의 일에 개입하지 않았다.” 리즈 앨런의 말이다. 앨런은 오바마와 바이든 양쪽의 참모진으로 일한 바 있다.
--- p.20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는 병력 증강에 동의했다. 오바마도 상황을 질질 끌고 싶지 않았고 자칫 아프가니스탄이 ‘제2의 베트남’이 될까 불안도 했다. 바이든이 초기의 증원 결정에 별로 영향력을 미치진 못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만큼은 대통령의 생각 속에 자리를 잡았다. 3월 증원을 결정하면서도 무제한적인 대규모 국가 재건에 부정적인 의견을 덧붙인 것도 그래서였다.
후일 오바마와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뉴욕타임스〉와 의 인터뷰에서 바이든의 견해를 지지하며, 정책 결정에도 크게 참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통령을 향한 지지발언은 백악관 내의 갈등 운운하는 매체들의 헛소리를 잠재우고, 조언자이자 파트너로서 바이든을 신뢰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의도가 다분했다.
--- p.274~275
오바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가 부모로서 아들의 질병 때문에 더욱이 돈 때문에 고통을 겪는 모습은 버락도 보기가 힘들었다. 버락은 도울 방법을 모색했다. 카우프만의 회고대로 “오바마가 얼마나 아파하는지 보일 정도였다.” 바이든 가족은 오바마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조에게 버락의 재정지원 제안은 그 진의를 넘어선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교육부장관 안 던컨이 보기에 제안은 진심이었지만 진짜 의미는 그 상징성에 있었다. “돈이 아니라 우애의 문제였다. 고통과 고민, 근심과 공감을 함께하는 문제였으며 무엇보다 애정의 문제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번민의 시기에 대통령의 사랑은 부통령 자신에게 너무도, 너무도 감동적이고 의미 깊었다.” 둘의 애정은 서로의 개성이나 사고방식, 성장배경 등 심각한 차이를 극복했기에 더욱 빛이 났다.
--- p.340
바이든이 오바마에게 타이를 풀고 악수보다 포옹을 먼저하고 창밖을 향해 연설하라고 가르쳤다면, 오바마는 바이든에게 자제의 길을 보여주었다. 사소한 것까지 꼼꼼히 챙기는 습관도 심어주었다. “결국 부통령 집무실도 변하기 시작했죠.” 바이든의 국가안보 부보좌관 줄리 스미스의 말이다. 버락과 조가 가까워질수록 스미스는 그 마법에 놀라고 말았다. “분명 물과 기름인데… 물과 기름도 세월이 흐르니 자연스럽게 섞이더라고요. 그 반대일 수도 있었겠죠. 서로 싸움만 하다가 끝장내는 겁니다.”
버락과 조는 200년 대통령과 부통령의 역사를 다시 쓰면서 고위 공직과 정치의 가시밭길을 헤치고 지속적인 유대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교육부 장관 출신의 안 던컨의 설명에 따르면 “대통령과 부통령이 아니라 그냥 두 남자였다. 두 남자는 깊은 우정의 힘으로 서로가 가장 어려울 때 누군가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힘은 정치와 지위를 초월한다. 더 크고 더 진솔하고 더 근본적이자 더욱 더 인간적인 길이 아닌가.
--- p.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