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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서번트의 꿈

퍼블릭 서번트의 꿈

: 늘공이 들려주는 공무원 이야기

박성택 | 삼인 | 2020년 10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10.0 리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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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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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38g | 148*210*15mm
ISBN13 9788964361849
ISBN10 896436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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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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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되시면 어떤 자세로 근무하실 겁니까?”
“퍼블릭 서번트public servant, 그러니까 시민의 종이라는 자세로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나는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답변했다. 영어를 집어넣는 것이 그럴싸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시민의 종이라는 생각만으로 공무 수행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 국가는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겼고, 공무원은 국가발전에 앞장서서 국민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그런 시대에 공무원이 국민의 종이라는 생각은 민주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나 해당하는 것이니, 면접관은 멋모르고 잘난 척하는 풋내기 공무원을 점잖게 타이른 것이었다. --- p.18-19, 「시민의 종이 되겠다고요?」 중에서

성화봉송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기 때문에 더 신경 써야 했다. 우리는 큰길가의 담장, 상가 출입문, 불량간판 등 카메라의 앵글에 잡히는 모든 주변 환경을 정비해야 했다.
원칙적으로 건물주나 상가 주인들이 자발적으로 정비함이 바람직하지만, 도시미관에 대한 의식도 설득할 시간도 없었다. 기관마다 관할구역을 책임지고 정비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졌다. 당시 공무원 조직문화는 상명하복의 군대문화와 비슷했다. 하위직 공무원들의 고충을 대변해줄 노동조합도 없었고, 야간근무를 해도 지금처럼 초과근무 수당이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따라야 했다. 구청에서는 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정비실적을 매일 보고 받으며 닦달했다. --- p.21,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중에서

나는 시골에서 큰비를 많이 접하고 살았기에 상대적으로 두려움이 적었다. 물의 흐름과 막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직감적으로 알았다. 어릴 적 시골 냇가에서 물놀이를 많이 했다. 큰비가 오고 나면 저수지에 구경 갔다. 저수지를 채운 황토물이 굉음을 내며 배수로에 떨어졌다. 세찬 물을 차고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떼를 보는 것도 신기했다. […] 나는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거침없이 배수 암거 위에 올라가 긴 장대로 배수구 철망 여기저기를 쑤셔댔다. 조그만 구멍이 생기자 물의 압력으로 구멍이 넓어져 오물과 함께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구멍이 뻥 뚫리자 급속히 물이 빠지면서 배수로가 다시 제 기능을 찾았다. --- p.73-74, 「시골의 추억이 공무원을 돕다」 중에서

나는 진상을 파악한 뒤, 해명하는 편지를 써서 해당 신문사에 팩스로 보냈다. 현장에 나가 사실을 알아보니, 투고자가 충분히 화낼 만했다, 정중히 사과드린다, […] 솔직하게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것이다. 다음날 같은 신문 독자 투고란을 보니, 내가 보낸 해명자료가 그대로 실렸다. […]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 오후에 과장이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신문의 독자 투고란을 본 사람들이 건 전화였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중랑구청과 해당 과장이 멋있다는 칭찬과 격려였다.
관공서는 좀처럼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권위주의적인 정부시설에서는 더 그랬다. 나는 시골에서 자랄 때 아이들끼리 싸우면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을 먼저 단속하고서 다른 아이를 타이르는 것을 보고 자랐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 p.89-90, 「먼저 사과했더니 이런 일이」 중에서

나는 그전까지 사람이 그렇게 밥을 많이 먹을 수 있는 줄 몰랐다. 또 그렇게 큼지막한 눈물방울을, 그렇게 오래도록 계속해서 뚝뚝 떨구는 사람도 못 봤다. […] 그는 금방 잠들었다. 코골이 소리가 엄청나게 컸다. 날이 새자 당직 근무 중인 나를 계면쩍게 쳐다보고는 고개 숙이며 말없이 떠났다.
나는 그가 밥 먹으면서 왜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알 수 없었다. 엄동설한에 노숙하다가 따뜻한 밥에 국물을 먹어서일까? 뿔뿔이 흩어진 처자식들이 마음에 걸려서일까? 아니면 국가 지도자가 잘못해서 망했는데, 말단 공무원이 따뜻하게 해주어 분노와 고마움이 교차했기 때문일까?--- p.93-94, 「울면서 밥 먹는 남자」 중에서

옛날에 시골에서 동네 아이들의 출생신고는 부모의 도장을 받아 이장이 작성해서 신고까지 도맡았다. 가난하고 못 배운 농부들은 농사일에 바쁘기도 한 데다 신고서를 작성하기도 쉽지 않았다. 한자를 잘 모르니, 집에서 부르는 이름을 이장이 알아서 한자로 적어줬다. 심지어 형과 동생을 한꺼번에 신고하다가 이장이 헷갈리는 바람에 호적 이름이 바뀌기도 했고, 한자를 잘못 쓴 경우는 허다했다. […] 상황이 이러할진대, 할아버지가 접수했는데 호적에는 아버지가 신고자로 되었다느니, 출생일이 틀리다느니 다투는 게 의미 있는가. --- p.119, 「부질없는 출생신고 공방」 중에서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사달이 났다. 호프집 주인이 그 남자에게 직원들이 했던 뒷담화를 그대로 전해주었던 것이다. […]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예방하고 분란을 해소해야 할 공무원, 그것도 서무주임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나는 남자에게 용서를 비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분의 식당에 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연속 사흘을 찾아다니며 빌고 또 빌었다. […] 돌이켜보면 지금도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쓸어 담을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공직자는 더 말할 나위 없다. --- p.128-129, 「다시 못 주워 담을 말」 중에서

“단장님이 소원을 이루시려면 국가를 상대로 두 번의 소송을 제기해서 이기셔야 합니다. 소송하려면 변호사를 사야 하니 돈이 들어가고, 오래 걸리는데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단장님의 아버지를 찾는 일이 시작되었다. 먼저 숙부와의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은 숙부가 살아 있어 유전자 감식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 돌아가신 아버지를 친부란에 기재하기 위한 소송이 고비였다. 소송에서 변호사는 본인이 한자를 몰라 숙부모가 부모로 기재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최근 6.25 전사자 가족 찾아주기 사업에 신청서류 제출을 시도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단장님 가족의 사연을 잘 알고 있는 고향 동네 사람 전체가 연대보증을 서주었다.
드디어 전주지방법원으로부터 6.25 전쟁 때 전사한 이가 단장님의 친아버지라는 확정판결을 받았다. […] 어린 나이에 객지에서 고아처럼 떠돌며 고단한 삶을 살았다. 육십이 넘어서야 친아버지를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호적 정리가 끝나자, 단장님이 나를 찾아와 눈물을 글썽였다.
“내게는 박 주임이 나라님이여…….”--- p.123-124, 「내게는 박 주임이 나라님이여」 중에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정이 훨씬 넘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고 내일 직접 찾아가라고 시립병원 주소를 적어주었다. 그는 스물네 살 청년이라기보다는, 정서적으로 어린아이였다. 너는 아직 젊으니, 충분히 희망이 있다, 의지만 있다면 술을 끊을 수 있다, 술 끊고, 너의 적성에 맞는 기술을 배워 다시 시작하라며 달랬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런 아이들을 재활시킬 제도나 시설이 떠오르지 않았다. --- p.156, 「알코올 중독자 수용소로 보내주세요」 중에서

우림시장 주변을 순찰하는데 옛날 일이 생각났다. 공무원을 막 시작했던 서기보 시절, 재산세 등 각종 세금 고지서를 가정에 배부하기 위해 담당 지역을 부지런히 오갈 때였다. 주변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수고 많다며 박 카스 한 병을 안겨주더니 5만 원을 함께 건넸다. 깜짝 놀라 왜 이러냐고 했더니, 신발이나 한 켤레 사 신으라고 했다. 갓 들어온 공무원이 허접한 운동화를 신고 분주히 오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이 발동했을까? 아니면 공무원이 동네일 보는 게 고마워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나를 마치 큰형님이 막내동생 대하듯 했다는 것이다. 동장이 되어 그 약국에 돌아가보니 사장님은 돌아가셨고, 약국이 있던 곳엔 다른 업소가 들어서 있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 동네 행사에서 동장으로 예우받는 것이 쑥스러웠고, 실무자일 때가 편했다고 느꼈다. 나는 정서적으로 6급 공무원이었다. --- p.204-205, 「동장이 되어 돌아오다」 중에서

퇴직 일주일 앞두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 할머니를 다시 찾아갔다. 복지담당 여직원과 담당 통장을 대동하고, 기부받은 쌀 20킬로그램 한 포대를 가져갔다. 집주인의 허락을 받았는지 출입문 한쪽에 애국지사의 집이라는 명패가 걸려 있었다. 쌀 포대를 어깨에 메고 할머니가 사는 2층으로 올라갔다. 쌀 포대의 무게가 그분들의 삶의 무게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할머니, 저 며칠 있으면 정년퇴직합니다. 건강하세요.”
할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글썽였다. 가슴에 묻어둔 사연이 많은 것 같았다. 더 시간을 할애하여 이야기 좀 듣고 올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 p.224, 「할머니의 말 없는 눈물」 중에서

사무관 승진 교육과정에서 받은 면접시험 교재를 살펴보았다. 교육 강사는 성적과 관계없이 공무원 조직에 들어와서는 안 될 사람을 탈락시키고, 필요한 사람을 합격시키는 게 면접관의 책임과 의무라고 교육했다. 문제는 대상자를 어떻게 골라내느냐다. 공무원이 드러나게 비행을 저지르면 당연히 처벌받고 퇴출된다.
퇴출될 정도는 아니지만, 직원 화합을 해치고 업무 협조가 안 되는 공무원도 있다. 그런 공무원은 부서 직원들 간 팀워크에 큰 지장을 주고 사기를 꺾는다.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한번 임용되면 공무원의 신분이 법적으로 철저히 보장되기 때문에, 부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쳐도 나중엔 어쩔 수 없다. 간혹 언론에서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하는데 이런 면이 있기 때문이다. --- p.225-226, 「공무원을 뽑는 면접관이 되다」 중에서

직원들이 상대하기가 힘들긴 하지만, 행패를 부리더라도 주민센터에 찾아오는 분들은 차라리 낮다. 문제가 어려운데도 주위에 손을 내밀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분들이야말로 정말 심각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다. 이런 분들은 외부와 접촉을 차단하고 은둔하면서 고통을 감내하다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주민센터 사회복지 공무원들과 동네 통장들은 이런 이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연결만 되면 어떻게든 도울 수 있다.
--- p.230, 「감정노동자의 평정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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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동장 박성택’, 그의 31년 공무원 생활은 한결같이 바닥살이였다. 세월 따라 급수 올라간다고 고개 뻣뻣하게 관료주의로 무장한 책상머리 행정가 행세를 하지 않았다. 중랑구 망우동, 서울의 변두리. 거기서 그는 기꺼이 이웃집 아저씨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는 공무원은 아무래도 촌놈이다. 그러니 출세는 애초에 글렀다. 이리 차이고 저리 차여도 그놈의 촌티를 끝내 벗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정작 그의 힘이다.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는 데 주저함이 없고 올바른 일이라면 기죽지 않고 나섰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따뜻한 인정이 혈관에 흐르고 역사를 몸에 새길 줄 아는 겸손하고 친절한 성택 씨. 어딜 내놓아도 깔끔한 공복으로 살아온 그의 회고록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진솔한 마음 풍경을 마주한다. 이 책을 읽으면 날로 삭막해지는 시대에 숨 맑게 쉬어지는 시간을 누릴 것이다.

김민웅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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