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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임서하문집서(林西河文集序)·····3 서(序)·9 서하집중간서(西河集重刊序)····16 서하선생집서(西河先生集序)····21 제1권 고율시 1. 낭중(郎中) 이유의의 찻집에서 낮잠을 자다 2수·········29 2. 붓·먹을 보내 준 이에게 감사의 뜻을 표함···········30 3. 천원에 있는 유광식 집의 유자나무를 두고············32 4. 칠석(七夕) 3수··········35 5. 반송가(盤松歌)·········37 6. 찾아온 이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43 7. 8월 15일 밤에··········44 8. 앞의 운(韻)을 이용해 연지에게 주다45 9. 꿈속의 일이 기억나서·······46 10. 미수에게 주다·········48 11. 익원 상인에게 부치다······49 12. 친구에게 부치다········51 13. 산인 익원(益源)에게 부치다···52 14. 조역락이 성남에 은거하려 할 적에 운을 나누어 귀(歸) 자를 얻음·········57 15. 상서(尙書) 이윤수가 임금이 내린 약에 감사하며 잔치를 베풀다··········59 16. 담지에게 글을 보내어 먹을 빌림·60 17. 함자진이 사는 곳을 찾아서····62 18. 누(樓) 위에서 술을 마시며····64 19. 장난삼아 시를 지어 줌 2수····65 20. 미수의 아우인 승려 찬지(纘之)에게 주다 2수··········66 21. 한양에서 현량(賢良) 오세재가 찾아오자, 시를 지어 감사의 뜻을 표함·······68 22. 꿈을 읊다···········70 23. 어부71 24. 함녕후가 손수 사계화를 족암(足菴)에 심었으므로 천(闡) 공을 대신해 시를 지어 감사의 뜻을 표함····72 25. 정 시랑의 서시(?詩)에 차운함··75 26. 은자(隱者)에게 주다·······86 27. 오강도를 두고·········87 28. 사원 외벽(外壁)에 쓰다·····88 29. 낭중(郎中) 이유의의 집에 모이다·88 30. 미수를 그리면서 4수·······90 31. 감악으로 돌아가 글을 읽으면서 박동준에게 부치다·······94 32. 겨울날 길 가운데서 3수·····98 33. 최문윤이 단주에 살 곳을 정하려 하다·············100 34. 황보약수에게 주다·······102 35. 김군수에게 주다········104 36. 송풍정의 운(韻)에 차운하다 3수·105 37. 조역락에게 육계(肉戒)를 깨어 버리라고 글을 보내다·············108 38. 법주사에 놀면서 존고 상인에게 주다·············114 39. 이담지의 집 벽에 쓰다·····116 40. 옛사람의 필적(筆跡)을 보고서··119 41. 8월 15일 밤에 운자(韻字)를 찾다가 기(起) 자 운(韻)을 얻다···········120 42. 밤에 조역락의 집에서 묵다가 빗속에서 지음··········122 43. 양국준의 집 울타리에 핀 붉은 목단을 보고··········123 44. 황보(皇甫) 형제에게 주다····125 45. 길 가다가 폭우를 만남·····129 46. 느낌이 있어서·········130 47. 담지·왕가훈 집에 있는 춘경산수도(春景山水圖)를 보고···········131 48. 연지에게 주다·········133 49. 운을 따라 시를 지어 황보약수에게 주다.···········134 50. 갑오년 여름에 강남(江南)으로 피신하니 유랑의 탄식이 있어 장단가를 짓고서 <장검행(杖劒行)>이라 했다······· ·135 제2권 고율시 51. 차운해 이각천 스님에게 줌···145 52. 상국 이지명이 준 장구 2수를 차운함·············147 53. 회포를 쓰다··········175 54. 북원의 계림선생에게 부침····176 55. 김온규가 쓴 관음원(觀音院) 시의 운자를 빌려서·······177 56. 월사에게 주다·········178 57. 연화원 벽에 씀·········181 58. 역락이 근래 시를 짓지 못한 것을 희롱함···········185 59. 장단을 지나면서········185 60. 장단호 위에 초당이 완성되자 시를 지어 이사(?師)에게 보임···········186 61. 정 학사를 추도하며·······188 62. 9월 5일 벗과 함께 용흥사 해운방에서 놀 때 확사(確師)가 시를 요구하므로 운자를 나누다가 각(閣) 자(字)를 얻었음··189 63. 황보약수에게 주다·······192 64. 이미수가 언제나 언어를 조심했으므로 시를 지어 희롱함············193 65. 다향(茶餉)을 겸 상인에게 부침·197 66. 겸 상인(謙上人) 방장(方丈)에게 희롱해 씀··········198 67. 민원발의 방문을 받고 기뻐함··200 68. 6월 15일 밤비가 개므로 달을 보고 감회가 생겨 6수·······201 69. 김선을 유별하며········209 70. 약수에게 희롱하며 줌······211 71. 다시 앞 운을 사용해 계림(鷄林) 박인석 선생에게 부침·············212 72. 담지에게 주다 절구 2수·····213 73. 급제한 황보항을 축하함 2수···215 74. 자복사의 유제를 차운함·····223 75. 9일에 홀로 앉아 제공(諸公)의 모임을 듣고 시를 지어 부침···········224 76. 종형 정옥(庭玉)이 상주(尙州)에 왔다는 말을 듣고 시를 지어 희롱함·······225 77. 밀주(密州)에서 놀며 일어난 일을 씀·············227 78. 영남사를 시제(詩題)로·····231 79. 영남사의 죽루(竹樓)에서····234 80. 학사(學士) 정지원의 유제를 차운함·············235 81. 향교의 학도들이 회음(會飮)에 초대하므로 시를 지어 사례함···········236 82. 지륵사에서 놀며········238 83. 밀주 원에게 희증함·······239 84. 술 갖고 방문한 사람에게 감사하며241 85. 잉어 선물을 사례함·······242 86. 2월 15일 밤 달을 대해·····243 87. 벗의 매화를 차운함·······245 88. 밀주태수에게 보냄·······246 89. 미수(이인로)가 개령에 있는 나를 방문해 아리지주를 마시게 했음·········248 90. 상주 정 서기에게 보냄·····252 91. 법주사에서 놀며 존고 상인에게 줌254 92. 정 서기가 보낸 시의 운(韻)을 따라256 93. 미수(이인로)를 보내며·····258 94. 정 서기의 운을 빌려 장난삼아 짓다 3수············258 95. 담지의 급제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축하함··········260 96. 죽림사에서 쓰다········261 97. 필률 소리를 듣고········262 98. 이 상국 광진 만사·······263 제3권 고율시 99. 글을 대신 써서 김 수재에게 답함·269 100. 시를 지어 장원한 이미수를 축하함·············270 101. 법주사의 당두가 종이와 붓을 보냈으므로 사례함········272 102. 미수(眉?)와 함께 담지(湛之)의 집에 모여서·········277 103. 밤에 담지(湛之)의 집에 모여 운(韻)을 고르다가 폐(閉) 자를 얻음·······278 104. 벗이 준 운(韻)을 차운함····280 105. 제공(諸公)들은 중원의 서기로 임명된 황보약수를 전별했으나 나는 병을 앓고 있어서 가 보지 못했으므로 시를 지어 보냄·············283 106. 홍인연의 급제를 축하함····287 107. 감악산 정각승사(正覺僧舍)에서 놀며 그 벽에 씀·······288 108. 흥엄사 당두(堂頭)를 방문하고 겸해 김 수재에게 편지를 씀 2수·········291 109. 종형에게 부침········293 110. 초서를 구하기 위해 미수(眉?)에게 부침···········294 111. 최 사업을 모시고 오 선생의 별서를 방문함 2수·········297 112. 미수가 화답하므로 다시 앞의 운을 써서 지음 3수·······300 113. 가을날에 담지(湛之)를 방문하고310 114. 산인 연지의 청평산 척심정(滌心亭)이란 시에 화답함·············312 115. 우후가를 읽고 미수와 함께 짓다313 116. 조계벽(曹溪壁)에 씀 절구 2수·315 117. 원(園) 자(字)를 얻어 미수의 집에 드리운 버드나무를 읊다···········317 118. 오 선생의 별서를 방문하고서··318 119. 담지(湛之)를 북조(北朝)에 사신으로 보내면서········320 120. 김열보를 애도하며······322 121. 요혜수좌(了惠首座)가 식량을 베풀어 준 것에 대해 사례함···········324 122. 차운해 담지에게 줌 절구 3수··327 123. 다시 상주에서 놀며 어느 사람에게 부침···········329 124. 모춘에 꾀꼬리 소리를 듣고···332 125. 세 학생의 방문을 받고 기뻐하며333 126. 선달 김온규와 담지(湛之)에게 편지를 보냄··········334 127. 상주(尙州) 기생 일점홍(一點紅)을 희롱함··········337 128. 상국(相國) 김부철의 “제사군산시(題使君山詩)”를 차운함···········338 129. 홍 서기의 잔치 요청을 받고 시로 사례함···········340 130. 홍 서기에게 줌········341 131. 황령사 당두 관체 스님에게 보냄342 132. 오이를 따서 홍 서기에게 보냄 절구 3수···········343 133. 최백환이 보내 준 시에 차운함·346 134. 익령 가는 길에 구점함·····347 135.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을 보내면서351 136. 대서로 황보연에게 답함 2수··352 137. 다시 서울에 도착해······353 138. 옛날에 놀던 일을 생각하며 2수·355 139. 이 상국(李相國)의 봉엄사 죽루(竹樓) 제운(題韻)을 차운함356 140. 상국 최유청의 유제를 차운함 절구 4수············358 141. 병중(病中)에 느낌이 있어서··360 142. 천원 홍 교서에게 받들어 부침·361 143. 담지(湛之)에게 줌······363 144. 앞 운을 차운해 받들어 답함 2수·364 제4권 서간 학사 이지명에게 올리는 편지····369 이담지를 대신해 어사 권돈례에게 보내는 편지··········375 앞과 같이 권돈례에게 답하는 편지··378 박인석에게 답하는 편지······382 이부낭중 이순우에게 서해를 천거하는 편지············384 황보약수에게 보내는 편지·····390 동파의 문장을 논해 미수에게 보내는 편지············394 영사에게 답하는 편지·······395 이 학사에게 올리는 편지······398 형부의 이 시랑에게 올리는 편지···400 왕약주에게 주는 편지·······404 황보약수에게 주는 편지······407 조역락에게 주는 편지·······410 다시 조역락에게 주는 편지·····413 담지에게 주는 편지········415 산인(山人) 오생에게 부치는 편지··417 계사에게 주는 편지········421 홍 교서에게 주는 편지·······423 제5권 서·기·전 추석에 술 마시는 모임을 노래한 서·429 스님 가일 명자 서·········431 미수 이인로를 보내는 서······432 익령으로 부임하는 함순을 보내는 서·435 충주로 부임하는 황보항을 보내는 서·437 중원 광수원 법회에 가는 지겸 스님을 보내는 서··········439 묘광사 16부처님 기········441 소림사 중수기···········447 화안기454 일재기455 족암기467 동행기473 국순전480 공방전492 제6권 계·제문 시랑 김천에게 올리는 계······505 김 소경에게 감사하는 계······512 새로 급제한 최영유를 축하하는 계··517 오 낭중에게 올리는 계·······520 모 관에게 올리는 계········543 학사 이지명에게 올리는 계·····557 안부 학사에게 올리는 계······564 왕 사인을 축하하는 계·······577 상주서기 정소에게 감사하는 계···581 김선주 원을 대신해 진양 임 대판에게 올리는 계··········585 종형에게 답하는 계········592 방문에 사례하는 계········595 장원한 이미수를 축하하는 계····597 안서대판 낭중 진광수에게 올리는 계·600 상시 이지명에게 올리는 계·····607 복원사리 제문···········616 상서 김신윤의 제문········621 녹사 이유량 제문·········626 황보원 제문············628 안사열 제문············630 이 추밀 제문···········632 부록 부 이미수가 쓴 임 선생 제문····639 부 서하 열전(附西河列傳)·····647 후지(後識)············652 고려 서하 임 공 행장(高麗西河林公行狀)············655 발(跋)666 원문(原文)············669 찾아보기·············780 해설·823 참고 문헌·············842 지은이에 대해···········844 옮긴이에 대해···········847 |
林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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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과거 시험을 헛되이 보내나니,
늙어도 몸은 오히려 정정하다네. 과거는 예부터 준재를 뽑는 것. 공경이 누가 비재(非才)를 천거하랴! 큰 고래가 분격하려 하지만 파도는 말랐고, 병든 학이 날려 하지만 날개가 꺾였네. 예부터 강동에는 은거지가 있으니, 가련한 것은 백발 되어 돌아갈 내 신세. 病中有感 年年虛過試?開 臨老猶堪??哉 科第由來收俊士 公卿誰肯薦非才 長鯨欲奮波濤竭 病鶴思飛羽?? 舊有江東隱居地 自憐頭白好歸來 ---「병중(病中)에 느낌이 있어서」중에서 유랑(劉郞)이 이제 백두옹이 되었으니, 지난 10년간이 꿈결 같아라. 애처롭다! 현도관(玄都觀)은 토규연맥(兎葵燕麥)이 춘풍에 흔들릴 뿐. 重到京師 劉郞今是白頭翁 一十年來似夢中 ??玄都仙?裏 兎葵燕麥動春風 ---「다시 서울에 도착해」중에서 시인들은 예부터 시(詩) 때문에 곤궁했다지만, 나의 시는 아직 세련되지 못했는데. 무슨 일로 빈곤이 뼈에까지 사무칠까? 오랫동안 굶주린 것이 두릉옹과 같네. 書懷 詩人自古以詩窮 顧我爲詩亦未工 何事年來窮到骨 長飢却似杜陵翁 ---「회포를 쓰다」중에서 순(醇)의 기국(器局)과 도량이 크고 깊어 출렁대는 만경창파와 같아 맑게 하려 해도 맑아지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아서, 일시에 그 풍미에 빠지면 자못 기운을 사람들에게 더해 주었다. 일찍이 섭 법사에게 나아가 하루 종일 담론이 진행되자, 한 좌석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절도하게 되어 이름이 드날려 호를 국(麴) 처사라 했다. 공경·대부·신선·방사로부터 머슴꾼·목동·오랑캐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그 향기로운 이름을 맛본 사람은 모두 흠모해, 매양 성대한 집회가 있을 때마다 순(醇)이 이르지 않으면, 모두 서글피 말하기를 “국 처사가 없으면 즐겁지 않다” 하니 그 시속(時俗)에 사랑받음이 이와 같았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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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의 학문 세계는 백부 종비(宗庇)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7세에 육갑(六甲)을 외고 경서를 통달했다는 자신의 기록을 보아 재능이 풍부한 신동이었던 듯하다. 이런 재질 덕분에 백부 종비의 총애를 받아서 그의 학문 세계를 전수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어려운 고사(故事)를 많이 써서 자신의 의사를 진정(陳情)하거나 또는 하사(賀謝)하는 글인 “계(啓)”는 임종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규보는 말하고 있다. 고사로 대구(對句)를 구성해 만든 사륙문은 그대로 임춘에게도 전달되어, 『서하집』에 수록된 계(啓)는 임종비의 문장과 같이 기본 구조가 사륙문이다. 이러한 스타일의 문체는 백부 종비의 영향이라 하겠다.
또한 당시 문단을 뒤흔든 풍조는 소동파(蘇東坡)·황정견(黃庭堅) 문체를 배우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파집(東坡集)』 등을 읽지 않고서는 문인 행세를 할 수 없었다. 임춘은 『동파집』을 읽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말하듯 문체는 동파와 같다고 자랑함을 봐도 당시의 동파 존경이 어떠한가를 짐작하겠다. 망년우(忘年友)의 핵심인 이인로도 동파와 정견의 문집을 읽고서 시를 짓는 핵심을 얻었다고 했다. 『서하집』을 일별하면 당장에 느끼는 감정은 우선 고사투성이라는 것이다. 그의 시문 한 구절을 읽기 위해서는 고사를 모르곤 거의 불가능하다. 온통 고사로 얽어 놓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는 탁월한 재예(才藝)로 그 고사를 잘도 주물러 놓았다. 최자는 『보한집』에서 그의 문장을 이렇게 비평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고인(古人)의 문체를 얻었다고 하지만 그의 글을 보면 모두 옛사람들의 말을 빼앗아 썼다. 심지어는 수십 자를 따다가 자기의 말로 삼았으니 이것은 그 문체를 얻은 것이 아니고 그 말을 빼앗은 것이다.” 이러한 준엄한 비평은 그의 문장이 고사를 많이 인용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체가 당시의 흐름이었다. 준엄한 비평을 한 최자의 『보한집』도 고사를 많이 인용하기는 피장파장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비평한 것은 난삽(難澁)한 고사 때문이다. 이렇게 어려운 글을 쓴 이면(裏面)에는 그의 인생역정(人生歷程)이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정중부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발랄한 젊은 날을 보내며 장래가 훤히 보이는 그런 꿈을 꾸다가, 하루아침에 사회 체제가 바뀌면서 암담한 나날을 보낸 그의 비극적 운명은 이러한 고사를 인용해 심금을 달래고 때로는 집권자를 비난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 문단의 조류가 고사를 인용한 문체가 풍미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 과정도 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임춘의 문장에 대한 이인로의 비평은 최자와는 사뭇 다르다. “선생의 문장은 고문을 배웠고 시는 소아(騷雅)의 풍골이 있어서 해동에서 벼슬하지 않은 사람으로 뛰어난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그가 죽은 지 20년,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 시를 읊으면서 마음으로 흠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장차 굴(屈)·송(宋)의 반열(班列)에 두려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상반된 비평은 두 사람이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 문단에는 탁자(琢字: 글자를 조탁함)와 연대(鍊對: 대구를 다듬음)에 몰두하면서 사어(辭語)와 성률(聲律)을 앞세운 이인로와 임춘 계열, 그리고 기골(氣骨)과 의격(意格)을 앞세운 이규보의 계열이 맞서고 있었다. 최자는 단연 이규보 계열을 편든 것 같다. 임춘은 문장에 대한 뚜렷한 견해를 갖고 있었으니 “문장은 기(氣)가 주(主)가 되니 심중에 감동해 말로 표현한 것이므로 아름다운 문구로써 자랑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문장의 묘미를 음미한 후에 묘(妙)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임춘의 작문에서 주요한 것은 기질이나 개성으로, ‘기(氣)’를 강조하고 있다. 즉, 주기사상(主氣思想)을 문장론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임춘의 견해가 이러할진대 최자의 비평은 무색하리라 본다. 최자의 말처럼 남의 글이나 빼앗아 옮겨 적었다면 당시 문단을 뒤흔들 수 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