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과 사회》의 전반적인 주제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질병은 여러 사회에서 오랜 연구 과정을 거쳐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감염병이란 감염병 관련 전문가들이 다루는 난해한 하위 분야가 아니라 역사의 변화와 발전이라는 ‘큰 그림’에 해당하는 주요 분야다. 다시 말해, 사회 발전을 이해하는 데는 감염병이 경제 위기, 전쟁, 혁명, 인구 변화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개념을 감염병이 남녀 개개인의 생명뿐 아니라, 종교와 예술, 현대 의학과 공중보건의 등장, 지성의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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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에 주목하는 아마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감염병의 역사가 종식되었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스와 에볼라, 지카 등의 신종 감염병 출현은 여전히 감염병에 걸리기 쉬운 상황임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지금도 에이즈의 줄기찬 공격에 시달리고 있으며, 뎅기열, 말라리아, 결핵처럼 근절될 수 있다고 여겼던 과거의 질병들도 커다란 위협으로 다시 다가왔다. 산업화를 이룬 서구 사회도 여전히 위험에 노출된 상태고, 기후 변화에 따라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렇게 세균이 가하는 위협은 실재한다. 얼마나 심각할까? 막아낼 방법은 있나? 취약성을 악화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런 도전에 얼마나 맞설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런 문제들을 처리하는 국제 사회의 능력이 아마 우리 사회의 생존, 어쩌면 인류의 생존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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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코흐의 과학적 폭탄선언 이후 결핵의 개념을 사회적으로 새롭게 구축하려 했던 또 다른 이유는 유럽 열강 간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국제 정세였다. 때는 바야흐로 사회적 다윈주의의 시기로, ‘아프리카 쟁탈전’에 제국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었고, 민족주의적 경제 경쟁이 불붙었고, 프랑스와 통일된 독일 제국 간의 반목이 깊어졌고, 프랑스가 알자스와 로렌 지방을 독일에 할양했고, 영·독 군비 경쟁이 심화되었고, 러시아, 프랑스, 영국의 삼국 연합이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삼국 동맹과 맞붙으며 두 개의 반대 진영이 서로 대치하면서 불안정성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 그 결과, 각국은 국가의 취약성과 준비 태세의 필요성, 영국식 표현으로 ‘국가의 효율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폐 질환은 출산율 감소, 생산성 저하, 군사력 약화, 귀중한 자원의 전용으로 이어지며 국가에 거대한 부채를 떠넘겼다. 따라서 결핵 환자들은 자신은 물론, 공동체뿐만 아니라 경제 및 인구 성장도 위험에 빠뜨렸다. 그들은 제국을 약화시켰고, 심지어 국가의 생존마저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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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당시 말라리아 퇴치운동가들은 퀴닌 캡슐은 독이며, 국가가 빈곤층에게 묵은 원한을 갚는 식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고 꾸민 사악한 음모의 일환이라는 국민적 의혹에 직면했다. 사르데냐인들은 건강도 몹시 나빴고 열병도 너무 자주 발병하던 터라 환자들은 말라리아를 특별히 중요하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고, 따라서 정부가 배포하는 정제약 복용을 꺼렸다. 예전에 페스트가 발병했을 때처럼 시골 지역에는 독살범과 극악무도한 음모에 대한 소문이 판을 쳤다. 이처럼 첫 말라리아 퇴치운동의 초기 최대 난제 중 하나는 운동의 혜택이 가장 시급하게 돌아가야 할 사람들의 고집스러운 저항이었다. 농부, 농장 인부, 광부, 목양자들은 새롭게 문을 연 진료소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은 집에 틀어박혀서 찾아오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물리쳤다. 그들에게 제공된 의심스러운 약을 받더라도 되팔거나 담배와 교환하려고 쟁여놓았다. 침입자들이 떠나고 나면 캡슐을 뱉어버리거나 그 불쾌한 알약을 돼지에게 먹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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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의외로 생각되는 부분은 아마 이 감염증의 지리적 특색일 것이다. 감염병이라는 것이 빈곤의 단층선을 사회를 관통하는 통로로 악용하는 경우가 허다한 만큼 코로나19도 당연히 시칠리아나 사르데냐 같은 거대 섬들과 함께 남부 이탈리아를 덮쳤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지역들이 이탈리아 역사에서 ‘남부 문제’로 알려진 그 유명한 지역 문제의 표상이니 말이다. 다시 말해, 이탈리아 남부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볼 때 줄곧 상대적으로 경제적·사회적 불이익을 당해온 곳이다. 남부의 이런 박탈 현상은 보다 높은 빈곤율과 실업률, 저조한 교육적 성과, 부실한 보건 인프라, 짧은 수명 같은 기준 지표를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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