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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리마스터판)
eBook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리마스터판)

[ EPUB ]
하성란 | 창비 | 2021년 02월 0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9 리뷰 12건 | 판매지수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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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09일
이용안내 ?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파일/용량 EPUB(DRM) | 51.06MB ?
ISBN13 9788936493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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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별 모양의 얼룩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파리
밤의 밀렵
오, 아버지
기쁘다 구주 오셨네
와이셔츠
저 푸른 초원 위에
고요한 밤
새끼손가락
개망초

해설 | 한기욱
작가의 말
추천사
새로 쓴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 소개 (1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책 속에서│

뒤에서 남편이 다람쥐를 쫓을 때처럼 가볍게 클랙슨을 울려댔다. 하지만 여자는 숲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발을 떼어놓았다. 누가 뭐라든 여자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였다고 믿고 싶었다. 일년이 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건 아이의 좁은 보폭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이가 그 걸음으로 돌아오려면 아직도 수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누가 뭐라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별 모양의 얼룩」 40면)

제이슨이 숨을 몰아쉬면서 잠시 방심한 사이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상체를 일으키면서 면도칼을 휘둘렀다. 제이슨이 턱을 움켜쥐면서 물러났다. 무작정 일어나 현관 밖으로 뛰었다. 두 다리가 썰어놓은 낙지처럼 제각각 다르게 움직였다.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칼로 운전석에 앉아 있던 챙을 위협했다. 소심한 챙은 쉽게 물러났다. 운전석에 앉아 차 문을 걸어잠갔다. 핸들을 쥐고 힘껏 액셀을 밟았다. 제이슨의 노란 스포츠카가 힘찬 발진음을 내며 울타리 쪽으로 튀어나갔다. 내가 정성껏 가꾼 꽃들이 자동차 바퀴에 짓밟히는 것이 속상했다.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68∼69면)

은옥의 발치 아래로 아파트들의 옥상 쇠난간이 겹겹이 펼쳐져 있었다. 남편은 짬을 내지 못해 바다나 산으로 나가지 못하는 은옥에게 불만이 많았다. 발가락에서 대롱대던 슬리퍼를 벗어 던지고 시멘트 바닥에 맨발을 댔다. 시멘트 바닥은 깔깔했고 미지근했다. 옥상의 난간들이 겹파도처럼 천천히 밀려와 은옥의 발을 적셨다. 어디선가 쏴아, 하는 파도 소리가 났다. 물미역 비린내가 났다. 소금기 있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마구 엉클어뜨렸다.
은옥은 어느새 은빛 모래가 펼쳐진 바닷가의 망루에 올라앉아 있었다. 은옥은 오른손을 들어 양 눈썹에 바싹 들이대었다. 먼 바다가 불쑥 다가오는 듯했다. 은옥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돌리면서 혹시 바다에 빠진 조난자는 없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와이셔츠」 234∼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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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작가의 말│

다른 작가들은 어땠는지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동안 나는 책으로 묶인 내 소설들에 대해 절교를 선언하고 돌아서는 사람처럼 매정하리만치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체념이 반, 당장 써야 할 소설들에 대한 조급함이 반이었다. 십구년 만에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에 실린 소설들을 찬찬히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시간의 힘이다. 그 시간을 관통해온 나는 오래전 내 소설이 낡았다고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 소설들에 대해 내가 쓴 것 같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 안도감을 느낀다. 서른살 초반의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안간힘을 다해 글로 옮겼을 것이다. 순전히 독자의 입장이 되니 착오는 물론 아쉬움들이 속속 눈에 띈다. 지금은 쓰기 꺼려지는 단어와 상황들로 그 시절을 돌이켜볼 수도 있었다. 변화에 안도했고 여전히 야만의 상태로 머물러 요지부동인 것들에 절망스러웠다.
단편 「개망초」는 소설집 맨 끝에 실려 있다. 1998년 무크지 형식의 단행본에 첫 발표를 했으니 소설집에서 가장 오래된 소설이다. 강을 떠내려가는 소녀의 독백을 따라 읽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신문에서 오린 그 기사는 낡아 있었다. 소녀에게서는 신원을 확인할 만한 그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등신대 모양으로 펼쳐놓은 재킷과 티셔츠, 그리고 반바지와 운동화. 결국 경찰은 소녀가 입고 있던 옷가지들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신문에서 그 사진을 오려 노트에 붙여놓고 소녀의 신원이 밝혀졌다는 후속 기사를 기다리며 틈틈이 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기다리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어느날 문득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마음, 죽은 소녀와 그 소녀로 향한 마음, 그 마음만큼은 내 것이었다. 그로부터 이십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모든 것을 낡게 하고 부서뜨리지만, 애욕도 집착도 무르게 하지만, 무엇보다 되돌릴 수 없다는 진실로 매순간 절망하게 하지만, 그때 그 마음만큼은, 모든 것이 낡고 공허한 목소리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름을 부르듯 소녀에게로 향했던 그 마음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혹시라도 오래전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다시 이 책을 펼쳐보게 될까. 만약 그렇다면 그동안 잘 지내셨냐는 안부를 전한다.

2021년 2월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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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하성란의 소설이 가끔 환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과 희망이 얼마나 허양하고 위험한 토대 위에 얹혀 있는지를 재빠르게 알아채는 그 직관 때문이다. 덤덤한 일상사로 시작된 이야기가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비극의 구렁텅이로 몰락한다. 꼼꼼한 묘사보다 적확한 표현에 의지하여 빠르게 달려가는 문장이 일상에서 시작하여 비극에 닿는 길을 한달음에 돌파한다. 그 거리는 매우 짧아 읽는 사람은 나쁜 꿈을 꾸는 것만 같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삶의 도처에 잠복해 있는 그 위험한 지뢰의 어느 하나라도 건드리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필연적 운명이다. 하성란은 늙은 하사관처럼 삶의 이 지뢰밭을 투시할 줄 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작가란 사고가 자유로워서 세대차 같은 건 없다고 단언하곤 하지만, 언젠가 신문에서 총에 관한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한 하성란의 글을 읽으며 그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도 권총을 갖고 싶어한 적은 있지만 쇼핑몰에 들어서듯 “진짜 아름다운 총들을 보고 싶다면 이곳으로 가보기 바란다”라고 말할 생각은 못했으니까. 큰 눈을 선량하게 깜박이며 기발한 말을 곧잘 하여 선배들에게 사랑받는 하성란인데 소설 속에선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사람마다 간직하고 있을 상처와 같은 ‘별 모양의 얼룩’을 유태인 가슴에 달린 별이 연상될 만큼 능숙하게 그려내고 있다. 죄 없이도 파괴되는 우리 인생, 그 희생자이며 또한 공모자인 인간을 성가신 불청객 ‘파리’로 그려내는 저 솜씨라니. ─강석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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