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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코가 석 자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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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코가 석 자입니다만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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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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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년 0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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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1.19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7.4만자, 약 2.5만 단어, A4 약 47쪽?
ISBN13 979117022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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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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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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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는 4년제냐, 2년제냐?”
질문의 의미를 모른 채 4년제라고 대답하자 팀장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 너희 4년제냐? 그럼 말이 좀 통하겠네.”
팀장은 벌떡 일어나 우리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고, 심지어 냉장고에 비치되어 있던 음료수를 꺼내주며 부서의 전체적인 일과 근무 패턴에 대해 웃는 얼굴로 설명했다. 부서의 절반 정도가 4년제 졸업자이고 절반 정도는 2년제 졸업자라는 것을 그의 설명을 듣고 알았다. 우리보다 한 달 먼저 입사한 2년제 졸업자들은 교육 없이 부서에 투입되어 석 달쯤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 석 달간의 답답함을 ‘교육받고 온 4년제 졸업자’들에게 토로하고 있었던 것이다(교육도 안 해주고 현장에 투입한 다음 답답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 p.31~32

회사 생활 내내 수십 명의 팀장을 만났다. 그중에 ‘크렘린’이라는 별명을 가진 팀장과 3년 정도 일했다. 대부분 직장에 이런 상사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비밀스럽고 속을 알 수 없고 의뭉스러운 동료를 만나면 피하면 되지만 팀장의 경우는 방법이 없다.
인사도 잘 받지 않고, 일이 생겨 대면할 때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당시 내 느낌으로는 ‘넌 내 시선을 받을 가치도 없어’ 또는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몰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와라, 가라 정도는 손가락 신호로 끝냈다. 내 인사 발령을 중간 관리자에게 전해 듣고 그 즉시 자리를 이동한 적도 있다. 한마디로 그 팀장은 무례함의 끝판왕이었다. 당시의 나는 거의 신입에 가까운 수준이어서 팀장의 행동에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했고, 주위에 나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 역시 ‘원래 저런 사람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을 뿐이다.
--- p.71~72

이혼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이혼은 내 선택이지만, 딸에게는 아버지를 빼앗는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인내심은 딱 4년이 한계였다.
이혼하자는 말을 하고 서류가 정리될 때까지 또 6개월이 걸렸다. 내가 이혼한 2000년대 초반에는 ‘이혼 숙려 제도’라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법원에 가기만 하면 한 번에 일이 해결됐다. 그런데도 6개월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 p.125

대학교 3학년 등굣길 신촌 한복판에서 버스가 달리는 길에 대자로 누워 있는 남자를 본 이후로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지는 않게 되었다. 도로를 청소하시는 분이 열일을 제치고 그를 깨워 인도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는 질질 끌려가다가도 기어이 대로변 찻길 정확히 그 자리로 되돌아오곤 했다. 신호가 세 번 바뀔 때까지(차로 하나를 차지하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뒤로 차가 엄청 막혀 있었다) 차장 밖으로 그걸 지켜본 이후로 나는 굳게 다짐했다. 상상하고 있는 죽음의 상태 중 술 마시고 객사는 없다는 것이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지금 내가 과음의 기준을 삼는 지점은 하나다. 귀가 후 뭔가를 먹었으면 만취한 것이다.
--- p.184

돌아보면 내 이십 대는 형편없었다. 연애는 줄곧 실패 중이었는데, 만나도 어떻게 그런 이상한 인간들만을 만나는 것인지 기가 막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취업의 문은 통과할 수 있을지 무엇 하나 자신이 없었다. 미래는 추운 아침 마스크 위에 쓴 안경처럼 뿌옇기만 했다. 힘차게 달려가는 타인을 바라보다 주저주저 한 발을 내딛지만, 그곳이 진창인지 단단한 땅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딛기 전에 모르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움직이고 나서도 머뭇거리는 것은 곤란하다. 말하자면 나의 이십 대는 다른 이의 걸음에 조바심내면서 휘청거리고 방향 없이 움직이던 시기였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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