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이 연속으로 정권을 내던지다니…….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오랫동안 일본의 정당정치를 이끌어온 민정당에게 국민들은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 국민들이 등을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나베의 사임으로 민정당은 창당 이후 처음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다이잔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내를 둘러보았을 때, 지금 다나베 정권을 이어받기에 어울리는 정치가는 무토 다이잔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건 신이 내게 주신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관저의 같은 층에 있는 관방장관의 집무실로 향하면서 다이잔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다나베는 끝났다. 다음 총리 자리에 앉을 사람은 나다! 이 다이잔이다! --- p.12
“이 녀석, 무슨 짓을 한 거야?” “다짜고짜 때리면 어떡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네 짓이냐?” “내가 무슨 재주로 이렇게 해요? 지금 제정신으로 묻는 거예요?” 쇼는 지금까지 계속 아버지를 싫어했다. 정치를 한답시고 가족을 돌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온 남자. 쇼를 볼 때마다 머리 나쁜 녀석이라고 욕설을 퍼붓고, 그렇지 않을 때는 포기와 비웃음이 뒤섞인 눈길로 바라보는 아버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칭찬해준 적이 없고 아버지답게 격려해준 적도 없다. 이런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다. 나는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는다. --- p.83
“쇼,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넌 정말로 월급쟁이가 되고 싶냐?” 쇼도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월급쟁이가 되고 싶어요.” “내 지역구는 어떻게 되지?” “그딴 거 내가 알게 뭐예요? 아버지의 지역구가 있으면 자식이 정치인이 되어야 하나요? 그렇게 하니까 2세 정치니 세습 정치니, 그딴 소리를 듣는 거잖아요? 전통 무용이나 무형문화재를 물려받는 것도 아니고, 부모의 뒤를 이어서 정치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아버지의 한계예요.” 그건 지난 며칠간 정치에 몸을 담은 쇼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한자도 못 읽는 녀석이 거만하게 말하긴.” --- p.253
“내 말 잘 들어.” 시로야마는 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담배 냄새 나는 숨을 토해냈다.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부처님 앞에서 설법하는 거지만…… 옳다든지 옳지 않다든지, 정치는 그런 것과 관계가 없어. 중요한 건 눈앞의 표라고, 표! 정치인에게 표를 얻지 못하 는 정치는 잘못된 정치야! ……다이잔, 자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 당장 가리야를 경질하게.” 옆에서 듣고 있던 가리야의 목구멍에서 틈새바람 같은 가느다란 비명이 새어나왔다. 시로야마는 내뱉듯이 말했다. “이대로는 이 상황을 무마할 수 없어. 다이잔,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게!”
철부지 바보 아들과 몸이 바뀌어버린 일본의 총리, 무토 다이잔 나라의 미래는 한자 하나 제대로 못 읽는 총리의 손에
전임 총리 둘이 연이어 그만두는 초유의 사태, 민정당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세 번째 총리가 된 무토 다이잔.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민심을 회복하고 중의원을 해산해 총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일이다. 국민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순조롭게 내각을 이끌어가던 다이잔이지만 어느 날 돌연 대학생 아들 쇼와 의식이 바뀌는 사건이 발생한다. 배후도 목적도 알 수 없는 전대미문의 테러에 총리의 가족과 측근들은 혼란에 빠지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각료들의 실언과 스캔들에 무토 내각은 휘청거린다. 정치에 관심이라고는 없는 아들 쇼는 국회에서 답변문을 엉터리로 읽어 아버지를 전국적 웃음거리로 만들고, 다혈질 총리 다이잔은 입사 면접에서 면접관에게 호통을 쳐 아들의 취업을 망쳐놓는다. 아버지를 무능한 정치인으로 여기는 아들과 아들을 인생을 낭비하는 멍청이로 부르는 아버지. 서로의 몸에 민폐만 끼치는 부자의 운명은, 그리고 일본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