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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한별
국내작가 번역가
출생
1975년 출생
직업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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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한별
국내작가 번역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옮긴 책으로 『도시를 걷는 여자들』, 『하틀랜드』, 『우먼 월드』, 『먹보 여왕』, 『밀크맨』, 『온 컬러』, 『권력과 테러』, 『자라지 않는 아이』, 『위대한 생존』, 『오카방고 숲속의 학교』,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나무소녀』, 『네모난 못』, 『자유 방목 아이들』, 『밴버드의 어리석음』, 『식스펜스 하우스,』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사악한 책, 모비 딕』, 『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아웃런』, 『바다 사이 등대』, 『달빛 마신 소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페이퍼 엘레지』, 『몬스터 콜스』, 『가든 파티』 등이 있다.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과 『미스테리아』 등에 글을 실었다. 『밀크맨』으로 제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한때 번역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학위 과정을 밟는다는 무리한 설계를 하기도 했으나 첫째를 가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그래도 세 살 터울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번역 일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둘 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반일반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을 하려면 아이들을 종일반에 맡겨야 하는데, 엄마들이 와서 반일반 아이들을 데리고 간 다음에 남아 있는 아이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에는 양육자들이 운영을 나눠 맡아야 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때 같이 아이를 키운 사람들이 친구로 남은 것만은 분명한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서 하루에 여덟 시간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일할 수 있다고 해서 꼭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 시간에는 주로 번역을 하고, 가끔 글을 쓰고, 대학원에서 학생 들에게 번역을 가르친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처음 읽을 때는 ‘너’를 향한 집요한 이인칭 서술로 이루어진 소설의 제목이 왜 ‘너’의 이름이 아니라 서술자의 이름일까 궁금했다. 작가의 말을 읽고 마리아나라는 이 인물이 바로 사랑의 정의라는 걸 알았다. 사랑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체이며, 그걸 잔인할 정도로 들여다볼 때 내면에서 끄집어내게 되는 것은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우면서 동시에 무엇보다 농밀하고 숭고한 무엇이란 것을.”
  • “사랑이 수십, 수백 년 동안 이어질 수 있다고 믿기엔 어쩌면 우리는 너무 닳고 지쳤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직 글자로만 이루어진 책을 읽으며 레몬 향기, 짭짤한 바닷물, 뜨거운 햇볕, 바닷바람, 풀 냄새, 까슬한 모래, 푸르타 델리라의 신비한 맛을 마치 직접 경험하듯 생생하고 관능적으로 느끼는 마법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영혼만큼 사랑한 사람을 다시 만나리란 것도, 믿을 수밖에 없다.”

작가 인터뷰

  • [북토크] 우리 비비언 고닉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요?
    2026.08.26.
  • [번역하는 여자들] 홍한별, 모두에게 열린 단어의 세계
    2023.04.24.
  • [책읽아웃] 책을 번역하며 고민하는 것들 (G. 홍한별 번역가)
    2022.07.21.

작가의 동영상

  • 외국 문학 번역은 어떻게 할까? (feat. 홍한별 번역가)[책읽아웃 오은의 옹기종기]
    2022.07.21.

작품 밑줄긋기

은* 2026.09.24.
p.495
마치 감정을 담당하는 머릿속 어떤 부분이 마비되기 라도 한 것처럼 감정에 대한 표현은 억눌려 있다. '감정의 과소'는 '나'-화자가 개성과 선택과 일상을 내리누르는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 생존 전략으로 택한 방법이기도 하다. 소설 첫 부분에서 '나'는 언니가 밀크맨과 불륜을 저지르려 한다고 비난하자 벌컥 화를 내고는 곧 감정을 드러내 약점을 노출했다며 후회한다. 책을 계속 읽어나가다보면 이곳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남자친구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하늘에서 파란색 말고 다른 색을 보는 것, 일상적 폭력과 감시에 항의하는 것, 선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 등도 금지되어 있고 해서는 안될 "상도를 벗어난" 일로 취급됨을 알게 된다.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진심을 말하지 않는 한편 누가 자기 생각을 읽으려 하면 그 사람에게 가장 위쪽 마음 상태만 드러내고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는 의식의 수풀 안에 감춘다."(61면) 따라서 밀크맨과 화자가 불륜관계라는 의심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에도 화자는 대응하거나 반박하지 않고 고집스레 침묵하지만,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며 확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화자가 자기가 말로 하지 않은 것을 글로 기록하는 행위는 근거 없는 왜곡된 언어에 언어적으로 저항하는 행동이다. 이런 충동에서 촉발된 서술이기 때문에, '매끈한 서사'를 추구하다보면 필연적으로 개입하는 편집과 각색에 저항하며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말하려 하게 된다. 이렇게 모든 것을 빈틈없이 모순되는 생각들까지도 가려내지 않고 전부 말하려 하다보니 언어의 과잉 상태에 이른다. 조선 후기에, 글자 수 제약이 있는 평시조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비판, 풍자, 한탄을 쏟아내기 위해서 중장이 주체할 수 없이 길어지는 사설시조 형식이 나타난 것과 비슷한 충동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혹은 『밀크맨』의 서사 기법을 온갖 다양한 삽화가 느슨하게 결합되어 있는 로런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에 비교하거나 중심이 없이 자동기술법으로 진행되는 포스트모던 서사의 한 형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밀크맨』 에서 덧붙여지고 늘어지는 이야기 가운데 나머지와 무관하거나 생급스러운 부분은 하나도 없다. 모든 이야기의 조각이 다 연결되고 적절한 자리에서 중첩된다. 산만하게 이야기를 흩어나간다기보다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기 위해 같은 자리를 다른 말로 계속 건드리며 흔적을 겹쳐나가는 것에 가깝다. 『밀크맨』과 포스트모던 서사의 가장 큰 차이는 서사를 파편화하여 중심을 해체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할 듯한 절박함에 따라 서술한다는 점이다. 이 소설이 이렇듯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하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자가 과거의 일을 회상 하는 지금은, 당시에 자신이 삶에 '무감함'으로 보호막을 치고 접근했기 때문에 감정이 억눌려 있었을 뿐 아니라 인식에 맹점이 있었음을 이해한다. "문이 열리고 내면의 모순이 드러나면 (···)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충돌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옳은 발언을 하기는커녕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말이 되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이랬다저랬다 하고 뭉개버리고 나는 모른다며 미시감 상태로 들어가고 하얗게 지워버리고 걸으면서 책을 읽는 것이다." (167면) 그때에는 객관적·비판적 인식에 접근해가는 대신 선택적 기억 상실을 택하는 방식으로 회피하려고 했다.(...)그렇게 보면 저자가 이야기에 이야기를 쌓으며 만들어내는 숨 막히도록 촘촘한 언어의 그물망은 우리를 억압하고 감정과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의 구조와 닮았다. 따라서 정작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많은 언어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는 의외의 빈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가 고양이 머리를 들고 돌아다니는 해괴한 행동을 한 까닭,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데도 설명할 수가 없었던 그 까닭이 그 가운데 하나다. 경탄할 수밖에 없는 독창적인 서사 전략이다. 억압과 폭력, 희망의 가능성에 대한 어떻게 보면 익숙한 이야기를 진부함이라고는 없이 전달할 수 있었던 놀라운 힘은,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강력한 서사의 목 소리와 결합시켜서 이야기하는 행위 자체를 저항이자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으로 만들어버린 독특한 솜씨에서 나온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화자의 억눌린 사고 구조 안에서 생각하게 되고 억울렀기 때문에 차마 멈추지 못하고 한없이 이어가는 목소리를 따라가며 숨이 답답해진다.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는 물 건너 나라의 과거를 관망한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스스로 살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빛을 다시 내쉬었고 그 순간, 나는 거의 웃었다"(492면)라고 말하는 화자와 함께 숨을 크게 내쉬어도 된다.

작가에게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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