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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 번역가처럼 읽기
1 ‘번역’의 역사 2 재정렬과 낯섦 3 지각과 제공성 4 기준선과 별자리 5 단어를 번역하기 6 힘을 번역하기 7 충실하게 번역하기 8 코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 기계 번역의 시대, 모어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실현하는 번역의 힘 |
Damion Sear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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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불가능하다는 짜증 나는 주장은 사실 번역이 가능하고 늘 이루어진다는 빤한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성공적 번역이 있을 수 없다면 오역도 있을 수 없다. 무엇을 하지 못하고 실패했는지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 고양이가 야옹거린다면 그건 내가 방금 한 말의 오역이 아니라 아무 상관이 없는 소리일 뿐이다. 번역이 정말로 불가능하다면 고양이 울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오역의 존재는 제대로 된 번역이 존재함을 입증한다.
--- 「지각과 제공성」 중에서 번역가는 단순히 거기에 있는 것을 ‘인식’하는 게 아니고 그것을 그것이 아닌 것으로 ‘바꾸는’ 것도 아니다. 암실에서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덜 개입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원본 텍스트의 세계에서 돌아다니는 일이다. 번역가로서 나는 원본의 제공성을 받아들여 그 안에서 거닐며 특정한 방식으로 응답하도록 끊임없이 유도를 받는다. 우리는 책을 읽지만, 우리가 특정 관점에서 읽는 것이며 그 안에서 특정 방식으로 거니는 것이다. 번역은 원문과 같으면서 또 같지 않다. 번역은 번역자가 원문을 지나간 궤적이다. --- 「지각과 제공성」 중에서 단어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이 단어로 의미를 나타낼 뿐이다. 누군가가 ‘좋은 아침’(Good morning)이라고 말할 때 ‘good’은 반드시 ‘좋다’는 뜻은 아니고(이를테면 재앙이 일어난 이튿날 지치고 체념한 상태로 이 말을 내뱉을 때), ‘morn-ing’도 언제나 아침이 아닐 수 있다(늦잠을 잔 배우자에게 과하게 명랑한 톤으로 말할 때). 의미는 사전이 실제 맥락 속에 있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발화 장르를 활용할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또 그 장르를 ‘변조’할 수도 있다(비꼬듯이, 열렬하게, 마지못해, 놀라울정도로 진지하게……). 어떤 장르(플러팅 · 소설)가 다른 장르(군사 명령 · 업무 서한)보다 변조가 더 잘 되고 안 되고의 차이는 있지만 언제나 개인이 장르를 개성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완벽히 중립적인 발화란 있을 수 없다.” --- 「기준선과 별자리」 중에서 번역을 일종의 읽기로 보아 이르게 되는 뜻밖의 종착점은, 우리가 번역하는 것은 텍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번역가는 ‘자신이 읽은’ 텍스트를 번역하는 것이며,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읽기 경험을 한다(다른 독자의 경험과 다르고 시대에 따라서도 다르다). 충실성이라는 이상은 어떤 고정성을 전제(하늘에 별자리가 고정되어 있다고 보듯이)하는 데 반해, 읽기로서의 번역은 번역가를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개인이자 저마다 취향과 삶의 이력과 상대적으로 크고 작은 권력을 지닌 존재로 보고 번역을 이 특정한 삶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행위로 보게 한다. 번역을 가장 잘하는 방법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영화에서 배우가 외투를 어떻게 몸에 걸쳐야 하는지를 정의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충실하게 번역하기」 중에서 번역은 읽기와 연결된 일종의 쓰기이다. 다른 텍스트, 원본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챗지피티는 줍고 고르고 흉내 내고 베끼고 짜깁기할 수 있고 그런 선 안에서 ‘쓸’ 수 있지만, 읽을 수는 없다. 그래서 챗지피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언급하고 가짜 글이나 실제로 없는 문구를 인용하곤 한다. 텍스트를 공급받고 그것을 가지고 작업할 뿐 실제로 세계와 접촉하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서, 챗지피티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성과 사고 같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활동’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인간의 고유한 활동이란 사실 ‘읽기’임을 번역을 통해 알 수 있다. 읽기는 개별적 인간이 우리가 공유하는 현실에 재하는 무언가에 관여하는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과정이다. --- 「코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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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을 대표하는 번역의 대가가 전하는,
결코 AI가 대체할 수 없는 번역·언어의 본질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로 번역은 이제 너무나도 손쉬운 일로 여겨지지요. 언어의 장벽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 감각 속에서, 더 이상 인간 번역가가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섣부른 전망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계는 번역이라는 수고스럽고 고된 작업에서 인간을 해방하고 있는 걸까요? 무슨 뜻인지 대략 알 수 있고 적당히 자연스럽게 읽히기만 한다면 충분한 걸까요? 애초에 ‘번역’이라는 행위는 정확히 무엇이고, 언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까요? 숱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들을 영어로 옮겨 온, 당대 최고의 문학 번역가로 평가받는 이 책의 저자 데이미언 설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공지능이 내 직업에 실존적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전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요. 한쪽에서는 AI가 번역이라는 문제를 다 해결할 거라고 기세등등하고 또 한쪽에서는 애초에 ‘완전한 번역’이란 불가능하다고 냉소하는 사이에서, 저자는 번역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번역가가 실제로 ‘번역’이라는 행위를 수행할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세심하게 따져본 것이지요. 원문과 얼마나 똑같은지만을 따지는 기존의 소모적인 번역 논쟁의 틈에서, 저자는 왜 번역이 인간 고유의 언어 경험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창조적 행위인지 끈질기게 찾아 나갑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와 접촉하고 소통합니다. 언어는 “자아와 세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 그 자체이지요. 그런 면에서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겨 내는 번역은, 인간의 언어 경험이 가장 세심하게 드러나는 행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관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언어라는 경험 속에서, 낯선 언어를 최대한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맥락에서 표현해 내는 일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번역은 멀리 떨어진 원본을 최대한 비슷하게 모방한 텍스트를 만드는 일을 넘어, 끝없이 생동하는 언어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실현하는 일이 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번역 사상의 역사를 되짚고 구체적 번역 예시를 제시하며, ‘번역’의 본질과 의미로 에두르지 않고 직진합니다. “번역이란 궁극적으로 사랑의 행위다” 새로운 독자를 향한 지극히 인간적인 실천 저자가 보기에 번역 행위의 핵심은 바로 ‘읽기’입니다. 번역가로서 읽기가 중요한 까닭은, 번역이 결코 텍스트의 의미를 기계적으로 옮기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번역가가 옮기는 것은 단어나 문장의 뜻이 아니라 ‘언어의 사용’ 자체입니다. 텍스트는 늘 특정한 언어의 맥락 안에 놓여 있지요. 각 언어에는 사용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발화 방식이 있고, 각각의 텍스트는 그 자연스러운 기준선을 넘나들며 특유의 표현과 의도를 내보이며 개성을 구축합니다. 또 어떤 이들을 대상으로 쓰였는지에 따라서도 그에 맞춘 언어가 사용되고요, 번역가는 텍스트의 특정한 방향과 특수한 작용을 읽어 내고, 그 언어 사용 자체를 다른 언어로 구현하는 사람입니다.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기계적으로 옮겨 내는 일이 아닌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번역가는 우선 ‘읽는 사람’입니다. 번역하고자 하는 텍스트가 해당 언어의 맥락에서 어떻게 특수하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읽어 내야만, 작가와 텍스트의 의도와 방향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번역가는 문장이 독자에게 다가와 “멱살을 잡고, 얼굴을 들이대고, 말을 걸고 유혹하는 방식”을 옮깁니다. 새로운 언어에서 기존 텍스트의 고유함을 보존한 채 “원문의 저자와 새로운 독자가 서로 최선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지요. 단어 하나를 사전적으로 갈아 끼우는 것이 아닌, 번역가는 소리·사용·연상·움직임까지 염두하며 저자와 독자를 연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에게 번역은 “정성을 들이는 행위,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행위”가 됩니다. 번역가는 항상 ‘자신이 읽은 텍스트’를 옮깁니다. 사실 모든 ‘읽기’가 그렇지요. 세상에는 무언가를 읽는 수백, 수천 가지 방식이 있으며, 또 텍스트를 번역하는 방식 역시 그렇습니다. 모든 번역문은 번역자가 원문을 지나간 고유한 ‘궤적’이지요. 나만의 방식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한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텍스트 고유의 개성을 세심하게 파악해, 생생하고 구체적인 개인으로서 언어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기계는 인간의 언어를 모방해 그럴싸한 표현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생동하는 언어를 고유한 관점에서 ‘읽고 쓸 수는’ 없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끈질기게 탐구한 번역의 본질을 통해 인간 고유의 ‘읽기-쓰기’를 함께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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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미언 설스는 아마도 전 세계에서 ‘번역의 철학’이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도 번역 이론가와 실무자 모두에게 동시에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번역가일 것이다. 이 학식 있으면서도 친근한 책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고 또다시 되돌려 놓는 번역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인용하고 또 다시 펼쳐 보게 될 탁월한 저작이다. - 안톤 허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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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스는 언어에 대한 명상을 제안한다. 번역가들의 언어 실천에 대한 절묘한 예시들을 통해, 읽고 쓰고 해석하는 것의 본질적인 가치를 형상화한다. 이 책은 하나의 승리다. - 미국현대언어학회(MLA) 제임스 러셀 로웰상 수상 선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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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독해’에 바치는 찬가. 일방적으로 단언하지 않으면서도, 설스는 무엇을·어떻게·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써 냈다. 설스는 번역가로서 읽는 것, 혹은 번역가‘처럼’ 읽는 것이 아주 제대로 잘 읽는 방법임을 보여 준다. - 릴리 마이어 (『더 네이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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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스는 놀라울 정도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문학 번역가다. 그가 번역가로서 자신이 내린 선택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줄 때, 그의 글은 눈을 뗄 수 없이 매혹적이다. - 콰메 앤서니 아피아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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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스가 말하는 ‘번역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자유의 철학이다. 번역할 텍스트가 말하는 바를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텍스트가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번역하는 자유 말이다. - 맥스 노먼 (『뉴요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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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미언 설스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화적 주제 중 하나인 번역에 대해, 가장 박학다식하고 독창적이며 또한 도발적인 사상가 중 한 명이다. 이 책은 방대하고, 너그럽고, 매력적이며, 심오하다. 우리가 어떻게 읽는지 그리고 언어와 언어 사이를 드나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눈부신 명상록. - 제니퍼 크로프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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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스는 현재 활동 중인 가장 뛰어난 번역가 중 한 명이다. - 리터러리 헙(Literary H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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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이지만, 그들의 작업은 종종 감사 인사를 받지 못한다. 구글 번역기에 혼란을 느껴 본 요즘 독자들은 ‘번역’이라는 프로젝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번역가의 사명, 즉 기존의 작품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작품을 구축하는 그 놀라운 과업을 명확히 밝혀준다. 개방적이고, 솔직하며, 무엇보다 영리하다. 이 책은 번역 행위가 곧 창조 행위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놀라운 책이다. - 퍼시벌 에버렛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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