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시’를 찾아가는 동방 박사가 있다면, ‘시’와 동방 박사의 발걸음 사이 어디쯤 정은기의 시는 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물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는 ‘적막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의 시는 존재한다. 르네 샤르와 프랑시스 퐁주 사이 어디쯤.
드러냄을 통해 감추고 감춤을 통해 드러내는 시인의 발성법은, “그림자, 구름, 기도, 아내, 개” 등 강력하게 반복되는 시어들을 통해 현실을 드러냄과 동시에 감춘다. 그러나 어쩌면 행간의 세계, 감춤의 세계에 잠복하고 있는, 현재 그의 시에 등장조차 하지 않은, ‘도래할 말’ 속에 정은기의 시는 있을 것이다. 시인의 은밀하고 무한한 상상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이미 출발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적이 되기 전까지만 사랑을 한다”(「삔이 그랬다」), 그럴까?
“그러니 우리/새로운 말을 하나씩 배우면서/천천히 헤어지는 것이 어떨까?(「Hello World!!!」), 그럴까? 그럴까? 정말?
그러자! 만약에 ‘시’를 찾아가는 동방 박사가 있다면, ‘시’는 그 어디에도 없고 동방 박사가 ‘시’였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으니! 우리는 적이 되기 전까지만 사랑을 한다. 아니, 적이 되기 전부터 적이 된 이후로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사랑을 한다. 정은기가 그러하듯이, 그의 시가 그러하듯이.
시인이여, 무한을 향해 걷자. 이 세계는 시가 적힌 한 장의 종이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