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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 _강정
불과 비Fire and Rain _김이듬 눈의 이름, 1644년 파리 무용총서 _박정대 카지노의 별과 달 _이승하 창귀 _전윤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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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라는 인물은 내게 각별한 존재다. 그녀의 소식을 듣지 못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각별하다고 얘기했지만, 그럼에도, 아니 그럴수록 나의 뇌리에 유나의 얼굴이나 전체적인 인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나, 흔한 남녀 간의 애정 따위로 유나와의 유대를 설명하긴 어렵다. 나는 유나가 내 안에도 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먼 곳에서 내가 기억하거나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도 살고 있다 믿는다.
--- p.9 「강정, 유나」 중에서 3월 7일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이렇게 썼던 시인의 기일과 부친의 기일이 일치하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은은 생각한다. 자신이 처음 미워했던 남자와 자신이 처음 좋아했던 남자가 같은 날짜에 죽었다니. --- p.46 「김이듬, 불과 비」 중에서 이 소설은 처음부터 제목이 없었다, 시시때때로 눈을 맞으며 거대한 어둠의 세계를 횡단하는 흰 까마귀의 언어로 쓰인 소설, 쏟아지는 눈의 이름을 물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소설 ‘눈의 이름’ ‘파리의 경천동지’ ‘시가레트 펄프픽션, 44 혹은 27 코케인’ ‘빅토르 최, 어떤 저항의 멜랑콜리’ ‘그러니 눈발이여, 지금 이 거리로 착륙해 오는 차갑고도 뜨거운 불멸의 반가사유여, 그대들은 부디 아름다운 시절에 살기를’, 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 소설 --- pp.88-89 「박정대, 눈의 이름, 1644년 파리 무용총서」 중에서 아내가 사라졌어. 그녀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는 지금 필리핀에 가 있어. 웬 잘사는 놈팡이와 살림을 차렸다는데 부귀영화는커녕 쪽박을 차게 될 거야. 카지노의 딜러인 나(지금은 그보다 한 단계 승진해 있지만)를 팽개치고 카지노계의 황태자인지 2인자인지 모를 졸부인 그를 좇아 필리핀에 가 있어. 필리핀의 암흑세계는 한국보다 훨씬 위험한데 계속 그 위험한 동네에서 살 건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은 보이스피싱 집단의 보스가 아니면 필리핀 도박업체의 한국인 담당 총괄본부장쯤 하고 있을 거야. 내가 아버지 장례를 치렀을 때 집의 유일한 며느리가 장례식장에 없어서 무척 난감했지. 나의 이혼을 친척들은 모르고 있었으니까. --- p.175 「이승하, 카지노의 별과 달」 중에서 청량리에서 첫차를 타고 네 시간쯤 달려 심산읍에 도착했을 때, 햇빛은 아직 역의 통로를 완전히 건너지 못한 채 바닥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오래 방치된 기찻길의 쇳물 냄새가 공기 속에서 응고되어, 탄광 산업화 시절의 말들이 굳어버린 듯했다. 표지판의 페인트가 벗겨진 글자들은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긁어낸 책의 문장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낡은 자음과 모음을 밟지 않으려 애쓰며 승강장을 건널 때마다, 발끝에서 오래된 이름들이 부스러기처럼 톡톡 튀어 올랐다. 그 이름들 사이에, 아버지의 이름도 있었다. 들리는 척하지 않으려 귀를 다물었지만, 마치 귀가 아니라 피부가 읽는 법을 배운 사람처럼 온몸이 저릿했다. --- p.209 「전윤호, 창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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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영혼으로 가득한 소설★
★5명의 시인이 쏘아 올린 문학의 크로스오버★ 해체와 트라우마를 넘어 생존 의지를 모색한 시인들의 소설 잉걸북스에서는 소설가가 시를 쓰고 시인이 소설을 쓰는 크로스오버 개념의 『소설가의 시』, 『시인의 소설』을 동시에 출간했다. 시인들은 소설을 통해 현실의 경계를 해체하고 트라우마를 넘어선 생존 의지를 모색했다. 『시인의 소설』에는 강정, 김이듬, 박정대, 이승하, 전윤호 시인 등 5명이 참여했다. 이번 소설집에는 중편소설과 2편과 단편소설 3편이 수록되었으며, 고립된 환경 속에서 실존적 미궁에 직면하며, 과거의 트라우마와 싸우는 동시에 예술과 윤리적 진정성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핵심 정서와 분위기를 공유한다. 시인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술 방식, 비선형적인 시간 구성, 또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주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잉걸북스 문학선 『시인의 소설 : CROSS 002』는 시인들이 소설을 통해 현실의 경계를 해체하고 트라우마를 넘어선 생존 의지를 모색했다. 이 소설집에 담긴 작품들은 고립된 환경 속에서 실존적 미궁에 직면하며, 과거의 트라우마와 싸우는 동시에 예술과 윤리적 진정성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핵심 정서와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인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술 방식, 비선형적인 시간 구성, 또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주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고립된 실존적 미궁 속에서 예술적 진정성 탐색 강정의 「유나」는 주관적인 인식과 공감각적 경험을 글쓰기 방식으로 사용하며, 쉽게 믿을 수 있는 것들은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전제한다. 화자는 중력과 시공이 뒤틀리고 원근 개념이 변형된 미궁 속에서, 유나라는 존재의 모호성("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나아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과 화자가 인식하는 현실의 비실재성을 탐구한다. 화자는 거미줄에 붙들린 작은 벌레처럼 무력하고 고립된 존재로 그려지며, 이 소설은 자신의 기원을 찾으려는 주제와 연결된다. 박정대 시인의 중편소설 「눈의 이름, 1644년 파리 무용총서」는 시간의 비선형성이 특징이다. 단락마다 마침표가 없고, 문장과 문장은 쉼표가 이어줄 뿐이어서 한 편의 장시를 연상시킨다. 소설 속 시간(1644년, 1984년, 2044년)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다만 존재할 뿐"이라고 선언한다. 폐허가 된 지구와 대질병의 시대라는 종말론적 배경 속에서, 이러한 스타일은 저항, 사랑, 혁명의 불가해성을 이해하려는 부단한 행위를 표현하며 영원히 지속되는 예술적 투쟁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작가들은 현실에 기반한 서사를 통해 사회 시스템의 모순, 윤리적 부담감, 그리고 트라우마에 맞선 개인의 투쟁을 조명하고 있다. 김이듬 시인의 중편소설 「불과 비」의 주인공 은은 현실적인 생존의 어려움과 사회적 압박(시간강사로서의 불안정성, 학계의 추문 등)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절박한 재탄생의 욕구를 반영한다. 그녀는 내면의 동요를 최소화하려는 담담한 시선으로 자신의 처지를 기록하며, 이는 개인의 정직성과 예술적 정체성을 훼손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주제와 연결된다. 이승하의 「카지노의 별과 달」은 카지노 딜러 '나'의 1인칭 고백과 내부 독백을 중심으로, 돈과 도박이라는 인간의 욕망과 윤리적 딜레마를 냉정하게 관찰한다. 특히 화자의 아버지가 "눈앞의 작은 이익을 챙기겠다고 부정을 저지르지 말아라"고 충고하는 장면은, 카지노의 번잡함과 대비되는 청렴과 올바른 삶의 태도라는 핵심 주제를 강조한다. 전윤호의 「창귀」는 트라우마가 언어와 존재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박만호는 어머니의 금기("대답하면 창귀가 된다")라는 트라우마에 직면하며, 글쓰기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의 글쓰기 방식은 언어가 피부 아래에 새겨지는 물리적인 현상으로 묘사되며, 이는 곧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진정한 글쓰기를 회복하려는 주제를 보여준다. 이번 시인의 소설들은 궁극적으로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시와 소설을 쓰는 행위나 예술적 교류를 통해 생존 의지 또는 저항의 의지를 다지는 정서를 공유한다. 글쓰기는 단순한 창작을 넘어선 생존 방식이며, 작가들에게 글쓰기 방식은 내면의 변이, 시간의 해체, 윤리적 성찰, 혹은 언어의 물리적 실체화와 같은 방법론을 통해 핵심 주제를 직접 실험하고 구현하는 도구가 된다. 박정대 시인의 소설 속 예술가들은 시간을 초월하여 코케인(최후의 거점)에 모여들어 노래하고 술을 마시며 고독 속에서의 연대와 희망을 보여준다. 소설가 하성란은 ‘얼마나 많은 문장들이 응축되고 여백으로 남겨졌는지, 시인의 언어가 어떻게 서사의 공간을 재구성하는지, 확인하는 순간순간마다 경이롭다. 시인의 소설은 단지 장르의 이동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세계와의 거리를 다시 조정하는 특별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소설가 김도언은 ‘루카치의 은유에 의하면 소설(길)의 지도는 태초에 시(별)가 가리켰다. 그걸 보기 좋게 증명한 게 바로 이 소설집’이라고 평했으며, 소설가 김이은은 ‘이 책을 읽는다는 건 익숙했던 세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분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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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이 소설을 썼다! 얼마나 많은 문장들이 응축되고 여백으로 남겨졌는지, 시인의 언어가 어떻게 서사의 공간을 재구성하는지, 확인하는 순간순간마다 경이롭다. 시인의 소설은 단지 장르의 이동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세계와의 거리를 다시 조정하는 특별한 순간이다. 그들의 소설을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시 한 편을 읽는 일에 왜 그토록 깊은 집중이 필요했는지를. -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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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소설이라니 어지간히 신선하면서도 (요즘 말로) 힙할 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읽었다. 과연 기대를 충족시키면서 묵직한 영감마저 안겨주는 게 아닌가. 시인들은 대담한 실험성과 정통적인 서술을 환상적으로 교차시키며 매혹적인 서사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지러진 존재의 기원과 그 복원의 가능성을 진중하게 궁구하는 작품(강정, 전윤호), 계엄과 산불이라는 알레고리로 불안의 윤리를 탐구하는 소설(김이듬), 파리를 매개로 시공간의 미적 질서를 분열적으로 재배치하는 작품(박정대), 카지노를 배경으로 욕망의 풍속을 읽어내는 작품(이승하)까지, 끝내 자기 스타일을 지켜내면서 시인들은 특유의 풍요로운 인사이트를 독자들에게 던진다. 루카치의 은유에 의하면 소설(길)의 지도는 태초에 시(별)가 가리켰다. 그걸 보기 좋게 증명한 게 바로 이 소설집이다. - 김도언 (작가, 소설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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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경계는 허물어질 때 느끼는 쾌감이 극대화된다. 누가 한 번 우리에게 물어본 적 없이 결정된 그 경계 앞에 조아리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우리가 정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그 선 앞에서 머뭇거렸던가. 이 다섯 편의 소설은 크로스의 순간을 포착한다. 경계가 스르륵 녹아내릴 때 세계가 한 겹 더 다채로워지는 희열이 펼쳐진다. 다섯 명의 시인들은 그저 한 걸음 내디딜 뿐. 이 책을 읽는다는 건 익숙했던 세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뛰어드는 것과 같다. 새로운 문이 열리고 그 신선한 바람이 뺨을 스칠 때 우리는 마침내 더 크고 넓은 숨을 쉰다. 풍성하다. 그리고 통쾌하다. 그래서 계속 건너고 싶어진다. - 김이은 (작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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