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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 자서自序
1부 밤에 먹는 알약 심야 통신 미치도록 자고 싶노라 탁상시계에게 밤의 군대 서울, 고가도로에서 레퀴엠을 사하라사막에서의 하룻밤 사막의 밤 오래된 돌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불면증 환자들의 넋두리 죽음의 자리 살아 있으니까 우리 모두 은하계에서 울다 떠돌이별과 나 2부 별똥별을 보며 별을 죽이다 이카로스의 노래 화산 폭발하다 밤의 기지 밤을 연구하다 밤을 창조하다 별과 별 사이의 거리보다 부활하는 새들 시간의 그림자를 찾아서 카메라 꿈꾸는 별을 향하여 서울, 자정 이후 야간 항해 꿈꾸는 별들은 괴로워한다 후기 윤승천 - 자서自序 1부 일출日出 일출日出 솔바람 향내_경일문화 창간에 부쳐 동짓달 자정 무렵 가을 꽃 유일 신神 착각 유랑 해빙 비천한 너도 역사다 늦었지만 2부 고수부지의 추억 고수부지의 추억 늦은 오후의 한때 이제는 보이지 않는 아래로 피는 꽃 20세기처럼 너나 내가 아니라도 우물 안 개구리 공손하게 엎드리다 기차가 다시오면 쉬운 시詩 3부내 청춘의 어느 하루 내 청춘의 어느 하루_하일군재래何日君再來 내 청춘의 어느 하루_나는 너를 모른다 내 청춘의 어느 하루-석주(石柱) 내 청춘의 어느 하루-너의 총애 내 청춘의 어느 하루-존엄한 너에게 내 청춘의 어느 하루-받을 수 없더라도 내 청춘의 어느 하루-느닷없이 내 청춘의 어느 하루-잘 가라 1991년이여! 내 청춘의 어느 하루-함부로 말할 수 없는 내 청춘의 어느 하루-흔적조차 없어도 내 청춘의 어느 하루-나의 너는 후기 : 묻고 답하다自問自答 |
LEE, SEUNG-HA,李昇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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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역사도 어느덧 40년
1984년, 중앙일보사는 내게 시인의 관을 씌워주었다. 대학4학년 때였다. 그 신문사에서 내는 문예지『문예중앙』에서 같은 해에 대학 4학년 윤승천에게도 시인의 관을 씌워주었다. 우리는 다음해에 만나 시 동인 ‘세상읽기’를 결성해 동인지를 냈고, 우정의 역사도 어느덧 40년이 되었다. 등단 40년을 기념해 2인 공동시집 『일출(日出)』을 낸다. 2024년 겨울에 李昇夏 부초浮草 혹은 부표浮漂 같은 1 10년쯤 지나면 달라지겠거니 했었다. 넉넉잡아 20년쯤이면 충분하리라 생 각했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무성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비틀거리지 않을 정 도의 잎, 꽃은 피울 수 있겠거니 했었다. 그러나 10년은 고사하고 20년, 30년, 40년이 지나는데도 달라진 것도 변한 것도 없다. 부초 혹은 부표 같은. 언제나 유랑流浪은 끝날까 살아서 끝날 수는 있기나 할까? 2 국가와 민족, 거대담론에게만 목숨을 걸거나 내줄 것인가. 지조와 신념을 지키고 헌신, 충성을 다할 것인가. 당신의 총애를 받는 것이 목숨 내놓는 일이라는것을 이미부터 알고 있었 다. 이 시집은 당신의 총애에도 발아래 무릎을 꿇지 못하고 신호를 보내는데도 하늘을 물어뜯지못한데 대한 회한의 기록이다. 목숨은커녕 나는 비겁하고 우매했다. 그러고도 감히 당신을 흠모하였으니. 2024. 11. 無爲寓居에서 尹 承 天 ---「책머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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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등단한 지 어언 40년 1985년이었을 것이다. 의학전문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던 윤승천 씨가 학교로 찾아왔다. 시 동인을 만들어 같이 활동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작년에 계간 『문예중앙』의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했다면서 생각해둔 다른 멤버의 이름을 댔다. 1983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박세현, 1984년 조선일보ㆍ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된 오태환, 1985년 『학원』신인상으로 등단한 원재길이 동의하여 5명의 ‘세상읽기’ 동인은 1986년에 제1집을, 1987년에 제2집을 냈다. 그 무렵 열 번은 족히 만났을 것이다.
열정과 패기의 신예시인으로 시단과 평단의 주목을 받으면서 동아일보, 중앙일보등 일간신문에 기사가 나고 조선일보에 시를 발표 할 정도였지만 3집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바로 그 시점에 한 사람은 석사논문 쓰기에, 한 사람은 박사논문 쓰기에 매진하게 되었다. 다른 두 사람은 직장생활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은 결혼해 번역일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특히 오태환 시인은 그 무렵 장시 쓰기에 몰두하느라 동인지에 실을 시는 쓰지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 ‘세상읽기’ 동인 결성을 사실상 주도했던 윤승천 시인은 한동안 의학전문기자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건강신문사를 직접 인수하여 신문발행과 책을 출판하는 일을 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와 멀어지게 된다. 몇 년 뒤에라도 다시 뭉쳐야 했었는데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다보니 간혹 서로 안부만 전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올해로 우리가 등단한 지 어언 40년이 되었다. 윤승천 시인은 그동안 전문언론사 사주로 의학, 건강 관련 전문서적뿐만 아니라 문학, 교양, 스포츠, 취미등 다양한 분야의 책 수천 종을 펴낼 정도로 탄탄하게 사업체를 잘 운영해 오고 있다. 2010년 무렵에는 문학서적을 중심으로 종합출판을 하는 자회사 케이엠(Km)을 설립했다면서 연락을 해왔다. 원고가 있으면 자신의 출판사를 이용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시집 『나무 앞에서의 기도』, 시작법 책 『시, 어떻게 쓸 것인가?』, 평론집 『욕망의 이데아』, 산문집 『피어 있는 꽃』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등 여러권을 펴냈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는 이 시집 한권으로 그해 가톨릭 문학상 대상과 편운 문학상을 동시에 받게 해 주었다. 이 또한 보통 인연이 아니다. 혈기왕성했던 20대 중반에 만났는데 60대 중반이 되었으니 세월이 유수 같다는 옛사람의 말이 맞다. 이번 2인 시집 간행을 계기로 외우 윤승천 시인이 시작에 몰두하기를 바란다. 이번에 정리한 30편의 시는 15세 무렵부터 앓아온 병 아닌 병 불면증이 쓰게 한 것이다. 잠을 영 못 이뤄 애를 먹은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이 승 하 묻고 답하다自問自答 1 내 시에서 가면을 걷어내면 뭐가 남을까. 위선을 벗기면 남는게 있을까 거짓을 들어내도 시가 될까? 가면을 표현인양, 위선을 지식인양, 거짓을 양심인양 은유와 직유, 비유와 상징, 추상, 난해로 포장하고 비틀고 숨기고 한 것은 아닐까. 이쯤에서 걷어낼 수 있을까 그것들을 벗기고 들어낼 수 있을까 내 시에서 내 삶에서 그것들을 들어내면 남는 것이 있을까 이런 내 생각이 제발 어리석기를, 틀리기를, 언제 또 바뀌기를, 시력詩歷 40년, 이 뒤늦은 아둔함에 평생이 유랑流浪이다. 2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창작의 자유를 주장하거나 누리 려는 생각은 이율배반이다. 문학의 자유, 이를테면 표현의 자유란 스스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 워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학(예술)은 생래적으로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래서 춥고 배고 프고 고독하고 외로움의 길이다. 그렇게 생애를 걸거나 목숨을 걸거나 대 결하면서 표현하는 일이다. 나는 그럴 자신도 용기도 없어 지금까지도 어정쩡한 시인이다. 내가 시를 쓰지 않은, 쓰더라도 발표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삶에는 정답이 없고 길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면 고민 할 이유도 없고 만사형통이다. 화낼 일도 분노할 일도 없을것이고 단 한 줄의 시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고 단 한 편의 시에 생애를 걸지 않아도 된다. 무림의 시대는 이제 영영 오지 않을 것인가 윤 승 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