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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종이무덤 공공도서관 서울에서 20년 무덤족 무덤 아이 문명사 삽질 고독사 구름표범 귀로 근황 내 마음의 섭입대 독후감 마지막 고개 너 아직 거기 있니 발굴 버즘나무 보석 상가 새장 한밤에 쓰는 시 허물 2부 그라피티 마지막 잔 바람 봄비 불쌍한 시집 평온한 밤 갈 때 강릉에는 바다가 없었네 거진 겨울 눈 우리는 겨울을 견딜 것이다 그 여름의 비비추 까닭 덜컥 돌아온 편지 물치항 반달 지경 2 지경 3부 굴뚝 다다호텔 다래끼 도피안사 뜨거운 성자 마젤란 카페 반가운 투병 밤샘 비오리 새로운 자리 새해 시인에게 신발 실연사 심인 쓸쓸함에 대하여 지하 주차장 춘분 코스모스 4부 김시습 빨리 감기 상자 싸락눈 약사천 얇은 밤 여름에게 온수지 우크라이나를 위하여 웃음소리 위험한 말 유령들의 도시 윤달 이 별의 속도 입춘 정말 좋아하는 노래 즐거운 실연 해설 실패한 연애의 형식-시는 영원하다 -우대식(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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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땅 사고
건물 올릴 때 벽돌 지고 벽을 칠했지 더 좋은 묘지를 만든답시고 법을 어기고 더 큰 묘지 올리라면 바위 캐내다 때로 순장도 당했지 밤마다 욱신거리는 몸으로 시를 쓴다 언젠가는 도굴당할 이 거대한 무덤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내 무덤 태워도 태워지지 않고 훔쳐도 훔쳐지지 않는 천 년 무덤을 위해 ---「종이무덤」중에서 무덤과 무덤이 만나 아이를 낳았지 관을 보며 자라는 아이 벽이 전부고 어둠이 친구지만 네가 무덤을 떠난다 해도 어차피 세상은 더 큰 무덤 너는 무덤의 아이 땅 위로 나가면 당분간 집 생각은 잊어버리렴 네 무덤을 만날 때까지 춤이라도 추고 있으렴 우리에게 햇볕은 너무 짧단다 ---「무덤 아이」중에서 우편물은 거부합니다 초인종 눌러 봤자 철문에는 사천왕이 눈을 부라립니다 요즘 폐관이 유행이라지요 모두들 동안거 중입니다 한 소식 얻은 자들이 늘어나겠네요 이 나라는 수행자들의 천국 곳곳에 토굴 파고 암자 짓습니다 지금 혀를 차는 당신도 결국은 홀로 용맹정진하다 끝나지요 부디 윤회의 굴레에 들지 않기를 오늘도 이 도시의 한구석에서 토굴 하나 발굴되었답니다 경배합시다 당신이 마스크 쓴 부처입니다 ---「고독사」중에서 머리맡에 흐르는 울음소리 잘못하지 않았는데 죽으라 하고 억울해 싸우다 따돌림당하는 참 단순한 놀이들 저물녘 모두 불려 갈 때 아무도 호명하지 않은 아이 너 아직 거기 있니 금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나방처럼 밤 골목을 바라보는 너 아직 거기 있니 ---「너 아직 거기 있니」중에서 헤어지자 문자 왔을 때 해 지는 중이어서 이유는 묻지 않았지 곧 어두워질 텐데 지난 낮이 무슨 소용 있겠나 냉장고 열어 보면 불빛 속 고개 돌리는 포장지에 싸인 시체들 소주 한 병 꺼내 따지도 못하고 저무는 바다 바라본다 해돋이 명소라는데 돌아갈 길 없는 늙은 갈매기처럼 쫑쫑쫑 방파제를 걷는 그림자 이제 별도 없는 밤이다 ---「물치항」중에서 밤은 깊고 바다로 가는 길은 멉니다 불 꺼진 집들이 더 많은 마을 반달 하나 떠 있는데 나를 기다리는 집은 파도 속에 있습니다 오늘도 밥 한 술 뜨자고 많이 걸었습니다 헌 채권 사러 다니는 남자처럼 낡은 가방에 후줄근한 바지가 자꾸 밟히는 날들 외투를 벗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은 등대가 반짝입니다 누구의 방파제도 되지 못한 사내 앞에서 아비 없는 아이들이 불꽃놀이 하는 밤입니다 태풍이 오려는지 갈매기 낮게 나는데 밤은 깊고 바다로 가는 길은 멉니다 ---「반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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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춘천에 있었고 겨울엔 강릉에 있었다.
어디에도 너는 없고 폭설만 내렸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시선 서늘한 무덤의 세계에서 기록한 사랑과 회한 걷는사람 시인선 72번째 작품으로 전윤호 시인의 『밤은 깊고 바다로 가는 길은』이 출간되었다. 전윤호 시인은 1991년 《현대문학》을 통해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그만의 서정적인 시세계를 일궈 왔다. 강원도 정선이 태생인 그는 주로 친근한 토속적 풍경을 농도 짙은 색채로 그려내며 “척박한 오지의 풍광과 풍습, 사람과 삶, 언어와 기억을 담아”내는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번 그의 시집은 섬세한 붓으로 그려낸 풍속화의 도록이다. 여러 시편에서 그는 지역성에 담긴 공간과 시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만의 실존적 방식을 여실히 보여 준다. 전윤호 시인은 무덤의 방식으로 세계를 인지한다. 무덤 연작시에서 보이는 여러 행위와 언술은 시인이 현존하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방식이다. 현대인들이 돈을 모아 땅을 사고, “더 좋은 묘지”를 만들 때 시인은 벽돌을 지고 벽을 칠한다. 그들이 무자비한 자본으로 쌓아 올리는 “거대한 무덤” 속에서도 그는 “태워도 태워지지 않고/훔쳐도 훔쳐지지 않는/천 년 무덤”(「종이무덤」)을 “쓸” 뿐이다. “파라오도 천민도/평생 무덤을 만”(「무덤족」)드는 것처럼, 그는 본인의 존재 방식을 무덤의 세계로 펼쳐 보인다. 그가 천착하는 무덤의 실존적 사유는 삶의 너머를 지향하고 있는데, 시인은 일찍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이치를 깨달은 듯하다. 역설의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면서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해설을 쓴 우대식 시인은 이번 시집을 ‘실패한 연애의 형식’이라고 명명한다. 시인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는 것. 시편을 따라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다 보면 그만의 도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은 “오징어 내장이 산처럼 쌓이고/도루묵을 삽으로 퍼서 팔던 시절”(「거진」)에서부터 이제는 “오징어 배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에/누군가 등 돌리고 걸어”(「강릉에는 바다가 없었네」)가는, ‘바다가 없는’ 쓸쓸한 강릉까지 이어진다. 시인이 호명하는 여러 공간과 장소에는 상실된 주체들이 짙은 그리움으로 유유히 흐른다. 이 시집에서 “도원에 대한 탐구가 보이지 않”(해설, 우대식)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편들이 소멸한 도원을 호명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강릉, 거진, 홍련암, 물치항 등의 공간”을 그리는 시인의 물기 어린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여전히 공간과 시간을, 세계와 내면을 자유롭게 오가는 여행자다. 그는 그저 시가 부는 방향으로 걷고, 시가 보이는 수평선을 따라 걷는다. 오직 시만이 자신을 자유로 인도하는 듯이 걷고 걷는다. “가장 간결하고 쉬운 언어”의 방식으로 “가장 멀리, 깊이 들어간다”(추천사, 고영민). 움푹한 발걸음마다 피어나는 시들로 그는 “날개에 힘을 붙여/동천을” 날아오를 것이다. 그만의 “또 다른 우주”(「비오리」)로 나아갈 것이다. 시인의 말 가을엔 춘천에 있었고 겨울엔 강릉에 있었다. 어디에도 너는 없고 폭설만 내렸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는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봄은 정선 시장에서 나고, 서울로 끌려가 여름을 견디면 몇 해 더 살 수 있을까? 밤마다 머리에서 글자들이 시든다. 한 계절 강릉 바다를 열어 준 김학성과 유경근에게 감사하다. 2022년 가을 전윤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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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호 시인은 늘 쓴다. 쓰는 순간만을 통해 그 순간을 찢고 비로소 자신이 백지 위에 도착할 수 있다는 듯 그는 쓴다. 쓰는 행위에서 시가 작동하며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시가 나를 쓴다”(「근황」)고 적는다. 시는 그의 영원한 내부이며 숙주이다. 그에게 있어 시인은 생각하고 쓰는 사람이 아니라 쓰면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시가 시를 쓰고, 당장 쓰지 않으면 영영 쓰지 못할 시를 끊임없이 쓴다. 전윤호 시인의 시는 가장 간결하고 쉬운 언어로 가장 멀리, 깊이 들어간다. 그의 시는 일체 허황된 바가 없고 화려하거나 유려한 과장의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일상의 틈을 파고드는 그의 시는 구체적인 현실과 감정을 시적 대상으로 삼아 자신 앞으로 집요하게 끌어당긴다. 이로써 독자는 시인의 마음을 뒤흔든 그곳의 슬픔과 회한, 서정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쓰는 순간을 통해서만 스스로 시인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그는 또한 끊임없이 떠돈다. 그는 여전히 시를 업고 길 위에 서 있고 시 앞에서 막막하고 고독하며,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맞서고 있다. - 고영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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