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랑의 언어는 솔직하고 섬세하다. 그리고 그 언어는 몸을 향해 있다.
이 소설집의 여덟 편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 몸이, 그리고 그 안의 고통이 온전히 자신의 것일 수 있는가.
〈간〉의 토끼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제 속에서 조금씩 이물질이 되어가고, 〈삼백육십오일〉의 수진은 매달 자신의 몸으로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표제작 〈풍장〉은 금기에 도전하는 화두를 품고 침묵과 배신의 구조를 파고들며, 〈임시 정거장〉은 도시가 지워 버린 자리마다 남겨지는 사람들을 통해 같은 질문을 다른 각도에서 던진다. 그런가 하면 〈새 한컴오피스 한글 2014 문서〉와 〈두 번의 장례식, 한 번의 결혼식〉은 설명되지 않는 사랑의 자리를 그린다. 실연이 한 남자의 언어에 스며드는 방식이든, 두 사람 사이에 겹겹이 쌓인 말할 수 없는 것들이든, 사랑은 결국 설명되지 않는 것들의 서사다. 스릴러 형식의 〈방문〉은 장편으로 다시 만나고 싶을 만큼 힘 있는 이야기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고려장〉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AI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가를 묻는다.
여덟 개의 몸, 여덟 개의 풍장. 정여랑은 그 모든 몸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펼쳐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