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달한 상상력과 시간의 틈을 여는 시선이 함께 사는 풍경이 펼쳐진다. “터덜터덜 벚나무 길을 걸으며 굴비 사러 가는데 느닷없이 낡은 갑옷 입고 나타난 돈키호테”가 녹슨 창을 휘두르는가 하면(「봄날 같은, 돈키호테 같은」) 문득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떠올려 보기도 하는 일이 마치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그려진다(「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그런가 하면 이 시집의 중심 이미지라고도 할 수 있을, 제각각 이름을 지녔을 수많은 새들이 퍼덕이며 시집 곳곳을 날아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이 시집의 첫인상이라면, 그 기저에, 돈키호테가 휘두르는 녹슨 창에 “산산조각 난 햇빛”으로 “난분분한 봄날”이 있고(「봄날 같은, 돈키호테 같은」), “돌아오지 않는 한 빗방울의 이름”을 생각하며 우뚝 선 이가 있고(「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햇빛 쏟아져 눈이 부신데” 날지 못하는 새를 지켜보는 찬찬한 시선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새」). 양가적인 이미지들인 저 돈키호테의 녹슨 창과 낱낱의 빗방울과 가득한 새 떼들은 다름 아니라 시간일 것이다. 돈키호테는 시간의 창을 휘둘러 일상에 균열을 내고, 삶을 가득 덮어 오는 시간 가운데 유독 귀환하지 않은 어느 때가 찰나에 틈입하고, 마냥 내 편일 것 같았던 시간이 어느 날 문득 발뒤꿈치를 가볍게 하지 않는 일이 생의 어디쯤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집에서 가장 오래 마음을 끄는 한 시의 제목처럼 “아마 화요일이었을”지도 모른다(「아마 화요일이었을 거야」). “반짝반짝 냄비를 닦던” 어느 화요일 “잠깐 눈 감은 사이” “여름 언덕으로 사라지”는 사람을 데려가는 시간, 한참이나 남은 일들을 헤아리지만 서두를 필요가 없는 어느 하루. 많이 내다보고 잠깐 뒤돌아보는 그런 하루. 이 모든 의미에서 이 시집은 화요일의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