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말은 언제나 대단하다. 우리는 사랑을 마치 절대적 이상이나 구원의 힘으로 간주하며 그것에 꿈과 욕망을 기입한다. 그러나 사랑의 한 형식으로서 연애는 트라우마의 기록이다. 그것이 지나간 이후에도 현재의 삶에 계속해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애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은 관계 그 자체라기보다 그 안에서 예측불허로 얽혀드는 각자의 너무나 다른 사랑이다. 그러므로 모든 연애가 사랑 그 자체인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랑이 연애의 형식을 빌리는 것 또한 아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영혼을 나누어 주거나 함께 공유하기를 욕망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얼마간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끝내 믿는 이유는 상처 난 자리가 타자가 들어설 빈 공간이 되며, 공동의 육신이 오직 그곳에서만 자라나기 때문이다. 신경과 힘줄, 근육과 뼈가 새로이 발생하는 그 감각은 전적으로 낯선 고통이다. 그래서 때로 어떤 사랑은 그것의 진실함과 무관하게 서로를 착취하는 전쟁이고, 그 끝은 도저히 끝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하다. 말하자면 사랑은 고통이 우리에게 내미는 마약이다. 알면서도 인간은 기꺼이 그것을 집어 든다. 독성에 취해 스스로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거나 그 아픔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비난하며 살아간다. 적어도 사랑에 관해서라면 모든 인간은 중독자다.
저자는 자신이 만났던 여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사랑과 욕망을 분별해 나가는 강렬하고도 험난한 여정을 기록했다. 한 여성을 ‘인간’으로 이해하는 일을 두고 그녀가 인간으로서 품은 꿈과 욕망, 경험한 고통과 좌절의 궤적을 그 어떤 편견도 없이 함께 걸어보는 일이라 말할 수 있다면, 퍼트리샤 그레이홀이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에 남긴 사랑의 흔적, 연애의 기록은 매우 탁월한 견본이 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녀의 기록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그녀가 아니라 미처 살피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해서 깨닫는다. 사랑이 중독적인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내 삶은 아름답고 낯선 다른 몸으로 태어난다.
미국의 성혁명기를 경험한 70대 레즈비언이 평생에 걸친 자신의 사랑 ‘중독’을 고백한 이 책은 정체성이 삶을 주조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무한히 생동하는 삶의 비뚤어진 기울기가 우리의 정체성을 지탱한다고 말한다. ‘여성’이 단일한 기호가 아니라면, ‘레즈비언’과 ‘남성’ 또는 ‘이성애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완벽하게 불일치하는 감각의 조각들인 우리가 ‘삶’과 ‘인간’이라는 두 가지 단어 앞에 나란히 설 수 있다면, 당신에게 이 책은 공동의 진실을 담은 비밀스러운 서신으로 펼쳐질 것이다. 내가 발견한 비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은 진창과도 같은 이 생을 감당해 내는 역능이자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나를 향해 건네는 선택이다.
만약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당신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힘들게 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몸이 그녀의 선택에 공명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