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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침대를 오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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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말
작가 노트
이야기를 시작하며
1부 애리조나에 하나뿐인 레즈비언
2부 의대에서
3부 의사
4부 거울을 마주하다
이야기를 마치며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2

퍼트리샤 그레이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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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ia Grayhall

의사, 에세이 작가, 소설가. 2022년 출간한 에세이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로 다수의 독립출판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2023년 배우자와 공동 집필한 『황금빛 노년과 은빛 희망(Golden Years and Silver Lining)』을 선보이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25년 『우리가 머물 곳(A Place for Us)』, 2026년 『프레임드(Framed)』를 연달아 발표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배우자와 함께 태평양 북서부의 어느 섬에 거주한다. 이웃의 반려견들과 시간을 보내다 이따금 나타나는 범고래, 독수리, 수달, 흑곰을 관찰한다.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읽고 쓰고 번역한다. 여성, 성소수자, 동물, 노인, 청소년이 등장하는 책을 좋아한다. 고양이 물루, 올리버와 함께 용감하고 다정하게 살고 싶다. 옮긴 책으로는 『자미』 『암전들』 『페이지보이』 『낭비와 베끼기』 『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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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2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448쪽 | 558g | 130*225*23mm
ISBN13
9791199533226

책 속으로

이성애자인 척하는 건 나한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여전히 내가 애리조나에 하나뿐인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와인이 어떤 맛인지 알고 싶었다.
--- p.71

세상에는 가족과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도 있어. 내 모습을 부정하는 것.
--- p.80

1970년대 의료계는 남성 중심적 위계로 움직였으며, 기득권 진입의 기회 역시 남성들이 단단히 틀어쥐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공고하게 유지된 남성만의 사회에서 일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저항할 방법들은 존재했다. 나는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때까지 줄곧 사회가 기대하는 것들을 하지 않고,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살아왔으니까.
--- p.91

“힘드시죠, 모리슨 씨. 이해합니다. 저도 임신중지 경험이 있어요. 저 또한 그 사실이 괴로웠지만, 만약 원치 않는 아이를 낳았다면 훨씬 더 괴로웠을 거예요. 분명 제 인생이 망가졌을 테니까요. 당신의 몸이지, 남편의 몸이 아니잖아요. 결정은 모리슨 씨가 하시는 겁니다.”
--- p.141

성인이 된 이후의 내 인간관계 중 안정적인 가정생활과 가장 가까운 것은 가장 친한 게이 룸메이트이자 친구, 그리고 동료인 데이비드와의 관계였다.
--- p.168

내가 의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힘들고 내밀한 순간에 옆에 있어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 또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살아남고자 버둥거려야 할 때, 아니면 죽어갈 때.
--- p.217

고된 인턴 생활을 하는 내내 나는 다시금 벽장 속에 숨어야 했다. 레즈비언은 말할 것도 없고, 의학계에서 여성이라는 소수자로 사는 것만으로도 험난한 나날이었다.
--- p.236

한때 나는 배려심 있고 잘 챙겨주는 여자를 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커리어를 치열하게 추구하는 여자, 내 눈에 섹시하고 호감 가는 여자를 원했다. 그 모든 특성을 다 가진 한 여자만 만나는 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 p.266

내가 찾던 단 한 명의 여자를 드디어 찾은 걸까? 목표를 좇아 야망으로 가득한 내 삶에 비어 있던 모든 것을 채워줄 그 사람일까? 내가 오로지 그녀만을 사랑하기로 맹세할 수 있을까?
--- p.336

1년 전 하버드에서 나를 가르친 교수들은 나보다 1년 후배인 남자 동료가 의학계에 자리 잡도록 밀어주었다. 왜 그를 선택했던 걸까. 내 눈에는 시시하고 존재감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 선택에 성차별주의나 동성애혐오가 영향을 줬는지, 아니면 내가 부족해서였는지 알 수는 없었다.
--- p.395

고된 레지던트 생활에서 벗어날 자유가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한 바로 그때, 대선 결과가 전통적 가치를 내세우며 여성과 동성애자의 자유, 그리고 임신중지 선택권을 제한하려는 다수파에 힘을 실어주었다. 창문도 없는 당직실에 누워 있자니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지난 20년간 내가 목격해 온 모든 변화와 희망을 허사로 만들 중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 p.412

20대 시절의 나는 믿을 만한 사람도, 존중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내가 나 자신에게 주어야 마땅할 사랑과 수용, 돌봄을 연인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제는 바뀌어야 했다.

--- p.430

출판사 리뷰

“나는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여자가 되기로 했다.”

병실 침대와 연인의 침대를 오갔던 ‘그 시절의 나’
젊은 사랑의 치기와 모순까지 드러내는 진실한 에세이


노골적인 성차별과 동성애혐오가 만연했던 미국의 1960~1970년대,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저자의 성공적인 경력은 이 회고록을 어느 노년기 레즈비언 의사의 수기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저자가 자신의 20대 시절을 돌아보며 드러내고자 한 것은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뤘다는 결과보다 사랑에 번번이 실패했던 과정에 가깝다. 영어판 제목인 ‘Making the Rounds’는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들의 침대를 돌아다니며 진찰하는 ‘회진’을 의미하지만, 이 책에서는 연인들의 침대를 오간다는 중의적 의미도 갖는다. 의사는 회진을 통해 환자들의 상태를 진단하지만, 저자는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 자신의 모순된 욕망을 마주하고, 마침내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깨닫는다.

저자는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애정을 강요하기도 하고, 매력적인 여성을 새로 만날 때마다 번번이 연인을 배신하기도 한다. 사회적 분위기와 상대에게 느끼는 호감에 따라 추구하는 연애 방식도 독점적인 관계와 다자연애를 넘나든다. 저자는 “내 페미니즘은 내 욕망과 일치하지 않았다”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연인이었던 세실리아가 대학원에 돌아가는 대신 곁에 머물며 자신을 ‘내조하는 아내’가 되길 바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이기적이고 모순으로 가득한 저자를 끝내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연출할 마음이 조금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만남과 이별에서 독자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서툴렀던 지난 사랑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기록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그녀가 아니라 미처 살피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해서 깨닫는다. 사랑이 중독적인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내 삶은 아름답고 낯선 다른 몸으로 태어난다.”
- 전승민(문학평론가, 『퀴어 (포)에티카』 저자)

40여 년 전의 불안감이 여전히 생생한 이유
가만히 있어도 지켜지는 권리와 자유는 없다


회고록의 배경이 되는 1960~70년대 미국은 ‘스톤월 항쟁’(1969)으로 촉발된 동성애자 인권운동, 교육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한 「타이틀 나인」 제정(1972), 여성의 임신중지 선택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1973) 등 여러 진보적 변화가 일어난 시대였다. 1973년에는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동성애는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단호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저자의 삶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남성들을 만나보다 ‘불법’ 임신중지 수술을 받아야 했던 1960년대 애리조나 시절에서, 게이 친구 데이비드와 함께 살며 사실혼 부부로 오해받던 1970년대 초반 솔트레이크시티 시절을 거쳐, 비교적 자유롭게 여러 연인을 만났던 1970년대 중후반의 보스턴 시절까지 크게 변화했다.

저자는 1980년 11월, 레지던트로서 마지막 당직 근무를 서며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접했던 순간을 “지난 20년간 내가 목격해 온 모든 변화와 희망을 허사로 만들 중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라고 회고한다. 책에 레이건 시대에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가 얼마나 위축되었는지, 저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가 레이건의 당선을 바라보며 느꼈던 불안감은, 수십 년이 흘러 트럼프 시대의 한가운데에 있는 2026년 현재에도 낯설지 않은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노년의 레즈비언 의사가 자신이 젊은 시절 경험한 기쁨과 슬픔을 기록한 이 책은 그렇게 ‘그때 그 시절’에 머물지 않고 생생한 지금-여기의 이야기가 된다.

“처음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애리조나에 하나뿐인 레즈비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날 이후로, LGBTQ+를 대하는 세상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진화해 온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얻어낸 것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잊지 않았으니까. 다름에 대한 혐오와 편협함의 문화를 그대로 둔다면 우리는 언제든 권리와 자유를 빼앗기고 과거의 어두운 시절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 본문 441쪽

추천평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는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것은 정신질환으로 취급받”던 시대의 미국에서 살아야 했던 퍼트리샤 그레이홀의 청년기 회고록이다. 스스로가 애리조나의 유일한 레즈비언인 줄 알았던 청소년기부터 정신없는 대학병원의 레지던트 시절까지 놀라울 정도로 내밀하고 솔직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저자는 제목 그대로 침대와 침대를 오가는데, 이는 때에 따라 생활비를 아끼고자 게이 친구 데이비드와 공유하는 침대이기도, 느슨한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싱글 맘 캐스의 침대이기도, 죽음을 받아들였으나 가족의 의사로 병원 치료를 받는 종양학과 환자 조던 씨의 침대이기도 하다.

책의 약 5분의 1 지점인 80쪽까지 저자가 호감을 가지고 언급하는 여성이 무려 열네 명 등장한다. 다행스럽게도 이 속도는 점점 줄어들어 최종적으로 총 스물두 명의 여성이 등장하지만, 동성애자를 탄압하는 동시에 ‘성 해방’의 시대이기도 했던 1960~1970년대 미국에서 매력적인 레즈비언 여성이 겪은 사랑 이야기는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하는 힘이 있다. 세 여성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책임감 없는 모습도, 그러다 막상 자유로운 여성을 만나니 집착하는 모순적인 모습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저자에게는 요새 보기 힘든 진솔한 매력이 있다.

노년의 이성애자 남성 이야기였다면 분명 “에이, 어르신, 또 이러신다” 정도로 웃어넘겼겠으나, 이 책은 다행히도 그렇지 않다. 섹시한 70대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할머니의 화끈한 청년기 회고록? 일단 나는 환영이다. - 김규진 (작가,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저자)
사랑이라는 말은 언제나 대단하다. 우리는 사랑을 마치 절대적 이상이나 구원의 힘으로 간주하며 그것에 꿈과 욕망을 기입한다. 그러나 사랑의 한 형식으로서 연애는 트라우마의 기록이다. 그것이 지나간 이후에도 현재의 삶에 계속해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애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은 관계 그 자체라기보다 그 안에서 예측불허로 얽혀드는 각자의 너무나 다른 사랑이다. 그러므로 모든 연애가 사랑 그 자체인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랑이 연애의 형식을 빌리는 것 또한 아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영혼을 나누어 주거나 함께 공유하기를 욕망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얼마간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끝내 믿는 이유는 상처 난 자리가 타자가 들어설 빈 공간이 되며, 공동의 육신이 오직 그곳에서만 자라나기 때문이다. 신경과 힘줄, 근육과 뼈가 새로이 발생하는 그 감각은 전적으로 낯선 고통이다. 그래서 때로 어떤 사랑은 그것의 진실함과 무관하게 서로를 착취하는 전쟁이고, 그 끝은 도저히 끝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하다. 말하자면 사랑은 고통이 우리에게 내미는 마약이다. 알면서도 인간은 기꺼이 그것을 집어 든다. 독성에 취해 스스로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거나 그 아픔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비난하며 살아간다. 적어도 사랑에 관해서라면 모든 인간은 중독자다.

저자는 자신이 만났던 여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사랑과 욕망을 분별해 나가는 강렬하고도 험난한 여정을 기록했다. 한 여성을 ‘인간’으로 이해하는 일을 두고 그녀가 인간으로서 품은 꿈과 욕망, 경험한 고통과 좌절의 궤적을 그 어떤 편견도 없이 함께 걸어보는 일이라 말할 수 있다면, 퍼트리샤 그레이홀이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에 남긴 사랑의 흔적, 연애의 기록은 매우 탁월한 견본이 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녀의 기록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그녀가 아니라 미처 살피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해서 깨닫는다. 사랑이 중독적인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내 삶은 아름답고 낯선 다른 몸으로 태어난다.

미국의 성혁명기를 경험한 70대 레즈비언이 평생에 걸친 자신의 사랑 ‘중독’을 고백한 이 책은 정체성이 삶을 주조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무한히 생동하는 삶의 비뚤어진 기울기가 우리의 정체성을 지탱한다고 말한다. ‘여성’이 단일한 기호가 아니라면, ‘레즈비언’과 ‘남성’ 또는 ‘이성애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완벽하게 불일치하는 감각의 조각들인 우리가 ‘삶’과 ‘인간’이라는 두 가지 단어 앞에 나란히 설 수 있다면, 당신에게 이 책은 공동의 진실을 담은 비밀스러운 서신으로 펼쳐질 것이다. 내가 발견한 비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은 진창과도 같은 이 생을 감당해 내는 역능이자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나를 향해 건네는 선택이다.

만약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당신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힘들게 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몸이 그녀의 선택에 공명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 전승민 (문학평론가, 『퀴어 (포)에티카』 저자)
퍼트리샤 그레이홀의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는 보수적인 1960~1970년대 미국을 통과해 온 의사이자 여성, 레즈비언인 한 인간의 삶을 진실하게 담아낸 회고록이다. 이성애자 남성 중심의 의료계에서 저자는 ‘여성’이자 ‘레즈비언’이라는 이중의 소수성을 짊어진 채, 매 순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다.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는 사회적 편견과 한계 속에서도 끝내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개척자’의 용기, 형태소 단위의 감정을 온전히 그려내고자 하는 ‘예술가’의 의지가 촘촘히 스며들어 있다. 책을 펴는 순간, 뛰어난 가독성과 진정성에 이끌려 한달음에 다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때로는 누군가의 찬란한 내일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 박상영 (소설가, 『대도시의 사랑법』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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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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