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들의 기록, 그 찬란한 증언
2024년 12월 7일, 우성하PD 겸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섰다. 비상계엄이라는 전례 없는 충격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직후, 시민들은 다시 이 나라의 심장부로 몰려들었다. 그 현장의 한복판에서 그는, 주류 언론의 카메라가 향하지 않는 쪽으로 렌즈를 돌렸다. 유명 정치인의 연설대도, 유력 대선 후보의 퍼포먼스도 아닌, 이름 모를 춤꾼의 발끝과, 길바닥에 주저앉아 시를 읽는 낯선 시인의 입술과, 캔버스 없이 아스팔트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끝을 향해. 발로 뛰고, 눈으로 담고, 가슴으로 기록한 결실이 바로 『어떤, 광장』이다. 이 책은 단순한 현장 기록물이 아니다. 하나의 선언이다. 역사는 유명인의 연설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선언, 광장을 지킨 진짜 주인공은 카메라 앞에 선 스타가 아니라 카메라 뒤에, 혹은 카메라가 닿지 않는 구석에 조용히 서 있던 사람들이라는 선언. 우성하 작가는 바로 그 구석을 향해 걸어갔다. 레거시 미디어가 담지 못하는 현장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나만의 방식으로 광장을 스케치하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그의 고백은, 단순한 작업 방식의 설명이 아니라 한 기록자의 세계관을 압축한 문장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故 백기완 선생의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평생을 민중의 곁에서, 민중의 언어로, 민중의 예술을 설파했던 그 불쌈꾼의 외침. 선생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야 한다.” 2024년 12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한번 위기의 늪 앞에 섰을 때, 광화문 광장으로 달려간 이들 중에는 정치인만 있지 않았다. 춤꾼이 있었고, 가수가 있었고, 시인이 있었고, 화가가 있었다. 그들은 백기완 선생의 말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성하 작가는 바로 그 실천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떤, 광장』이 특별한 것은 작가의 시선이 철저히 ‘아래’를 향하고 있다는 데 있다. 보통의 보도 사진은 무대 위를 찍는다. 마이크를 잡은 자, 조명을 받는 자, 이름이 자막으로 뜨는 자를 찍는다. 우성하의 카메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무대 아래, 조명 밖, 자막도 없이 제 몸으로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향해. 동영상과 스틸 사진을 오가며 기록을 남겼던 그의 방식은, 단 하나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문법을 넘어선다. 그는 흐름을 담으려 했다. 광장이 살아 숨 쉬는 리듬, 시민들이 서로를 향해 내뻗는 손길, 추위 속에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가수의 입김 한 줄기까지.
백기완 선생의 이야기에는 역사적 진실과 예술적 힘이 있다. 파격과 민중의 저항이 있어 매번 감동하게 된다. 이는 선생의 저작을 평한 말이지만, 그대로 우성하 작가의 『어떤, 광장』에도 적용된다. 이 책에 담긴 사진들과 문장들은, 정제된 미학의 언어가 아니라 현장의 체온이 그대로 밴 살아있는 기 록이다. 길바닥에서 고생했던 춤꾼의 땀, 목이 쉬도록 노래한 가수의 눈물, 찬 바닥에 무릎 꿇고 시를 낭독한 시인의 떨리는 목소리. 이것들은 어떤 화려한 공연장에서도 재현될 수 없는 것들이다. 광장이라는 공간이, 극한의 긴장이라는 상황이, 이름 없음이라는 조건이 만들어낸 예술이기 때문이다. 우성하 작가의 첫 책이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된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바치는 ‘헌정곡’이라고 불리는 것은 매우 적확한 표현이다. 찬양곡이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이들에 대한 헌정이다. 이 헌정곡의 수신자가 대통령도, 장군도, 영웅도 아닌 ‘시민들’이라는 사실이 이 책의 핵심을 말해준다. 더 정확히는, 이름 없는 시민들. 카메라 앞에 나서지 않고 광장을 지킨 사람들. 추위에 손을 불어가며 무대를 만들고, 음향 장비를 나르고, 바닥에 쓰레기를 줍고, 서로 모르는 옆 사람에게 핫초코를 건네던 사람들.
백기완 선생은 평생 그런 사람들 곁에 있었다. 기륭전자 옥상의 노동자 곁에서 눈물짓고, 한진중공업 앞 새벽 도로에서 지친 몸으로 앉아 있고,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여든이 넘 은 나이에도 무대 위가 아닌 시민들 사이에 섰던 그.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백기완은 광장과 거리에 서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우성하 작가가 카메라로 담은 이름 없는 예술가들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 광장은 언제나 그런 사람들이 지켜왔다. 한 번도 역사 교과서에 이름이 오른 적 없고, 한 번도 메인 뉴스의 첫 꼭지를 장식한 적 없는 사람들이. 우성하 작가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사진집이나 에세이의 경계를 넘어선다. 그것은 일종의 대항 서사다. 레거시 미디어가 구성하는 광장의 이미지, 영웅적인 연설, 드라마틱한 대결, 유명인의 발언에 맞서, 그 이미지가 삭제하고 지워버린 것들을 복원하는 작업. 길바닥에서 춤을 춘 무용수, 마이크도 없이 노래한 가수, 천 원짜리 캔커피를 손에 쥐고 시를 낭독한 시인. 이들이야말로 광장의 진짜 문법을 만든 이들이다. 우성하는 그 문법을 기록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렌즈는 선택을 강제한다. 무엇을 찍느냐는 곧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의 문제다. 우성 하 작가의 선택은 일관되고 명확하다. 그는 권력 대신 사람을 찍었다. 무대 대신 거리를 찍었다. 스포트라이트 대신 어둠 속의 얼굴을 찍었다. 이 선택 하나하나가 이 책의 철학을 이룬다. 그리고 그 철학은, 백기완 선생이 평생 몸으로 실천한 것과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 이름 없는 자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 『어떤, 광장』은 그래서 단순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성 하라는 기록자의 탄생을 알리는 선언문이면서, 동시에 2024년 겨울 광화문을 채웠던 수십만 명의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충실한 증언이다. 훗날 누군가 그 시절의 광장을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인의 회고록이나 신문의 사설보다 이 책을 먼저 펼쳐야 할 것이다. 춤꾼의 발끝에서, 가수의 입김에서, 화가의 손끝에서 역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이 책은 가장 정직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기완 선생은 또 이런 말을 남겼다. 거리에서 살아서 팔딱팔딱 뛰는 언어로 쓰인 이야기만이 책상 앞에 앉아 글로 배운 깨달음이 아니라, 온몸으로 구르고 깨지며 얻은 민중의 진리를 담을 수 있다고. 우성하의 카메라는 바로 그 팔딱팔딱 뛰는 언어였다. 광화문 광장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넘어질 듯 달리며, 온몸으로 현장을 통과했던 한 기록자의 렌즈. 그 렌즈 속에 담긴 얼굴들이 바로 이 시대의 진실이다. 『어떤, 광장』은 그 진실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