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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글
윤상원의 일대기 1부 초등학교 시절(1960-1962) 일기 해제 1. 자연 학교 제2부 중등학교 시절(1963-1965) 일기 해제 2. 부활 제3부 고등학교 시절(1966-1968) 일기 해제 3. 십자가 제4부 대학교 시절(1977-1979) 일기 해제 4. 빛고을 공동체 부록 열흘의 자취 (1980.5.18.~5.27) |
본명: 황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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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글 중에서
『윤상원 일기』는 『전태일 일기』와 함께 우리 시대가 남긴 소중한 유산임에 분명하다. 두 일기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국보급 유물이다. 임곡의 천동 마을에는 해파제(海波齊)라는 편액을 걸어놓은 윤상원 기념관이 있다. 어느 봄날이었을까? 해파제를 방문한 그 날, 나는 윤상원의 일기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공간, 유리 상자 안에 윤상원의 일기가 안치되어 있었다. 나는 몹시 놀랐다. 바로 연락하여 일기 원본을 끄집어내었고, 바로 복사본을 만들었으며, 일기 원본을 〈한국학 호남 진흥원〉 수장고에 보관하였다. 일기 원본을 일일이 타자로 쳐서 한글 파일로 전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린 소년의 일기였기 때문에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엉망인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흘려 쓴 일기여서 난해한 곳이 많았다. 나는 윤상원의 일기를 가능한 원문 그대로 옮기고자 하였다. “나는 어째서 개가 사랑하게 여긴다.” 하지만 띄어쓰기는 바로 잡았다. 맞춤법이 맞지않은 경우는 괄호로 정정하여 놓았다. “몽년화(목련화)” 문맥을 파악하기 힘든 경우 보조 풀이를 넣었다. “수판을 쓰면 (계산을) 빨리하고 쉽다는 것을 알았다.” 일기에는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등장한다. 지금은 사라진 전라도의 토착어인 지라 나는 일기의 사투리를 소중하게 다루었다. 지스랑(처마), 가마치(가물치), 독(돌), 그짓말(거짓말), 모새(모래), 억크러버렸다(엎질러 버렸다), 몽울(망울), 가위(개배, 주머니), 땡깡(생떼, 억지), 삼삼하건만(생생하건만), 건덕지(건더기), 도시(아무리 해도), 누더지(누더기). 『윤상원 일기』의 원본은 방대하다. 1960년에서 시작하여 1968년까지 9년 동안 쓴 일기가 아홉 권이고, 다시 1977년에서 1979년까지 3년 동안 쓴 일기가 한 권이다. 도합 열 권의 일기장이었다. 200자 원고로 3,000매가 넘는, 책 세 권에 달하는 분량이다. 이 원본의 글을 2,000매로 줄이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사료적 가치가 떨어지는 일기, 예컨대 날씨에 관한 일기나 반복되는 월례고사 이야기를 삭제하였다. 언젠가 『윤상원 일기』를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등장할 것이다. 나는 연구자를 위해 원본 일기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축약본 일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윤상원 일기』를 연구하는 국어학자는 일기의 원문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땐 〈한국학호남진흥원〉의 수장고에 찾아가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