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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5 머리말 16 세상 모든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 21 거룩한 파종 27 성모 승천 32 광주의 어머니들께 37 사람이 좋아, 사람이 대림 시기를 지내는 이유 43 조마조마하신 하느님 49 진짜 아우구스투스 56 하루 세 번 바치는 기도 63 사람이 좋아, 사람이 70 생각의 주인 되기 가슴에 묻은 사랑 79 수수께끼의 주인공, 주님의 종 87 생각의 주인 되기 94 아직 마르지 않은 십자 나무의 피 102 사순 시기의 성경 독법 109 끝난 자리에서 새것이 나온다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129 끝난 자리에서 새것이 나온다 135 부활의 봄 140 진짜 입신 참된 양명 147 들깨, 참깨, 우리 모두 함께! 152 언니 예수님 158 동생들을 보살펴 주시오 165 우리 하나하나가 교회 171 두 번의 불꽃 178 먹어라, 나를 먹어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185 먹어라, 나를 먹어라 191 우리가 하느님의 어린양 198 아버지의 노래, 어머니의 노래 204 주일 미사 유감 209 덕은 덕으로 온다 하느님의 웃음 218 배내옷과 수의 225 덕은 덕으로 온다 233 하늘을 처음 만나는 어린 새처럼 240 사람의 귀함을 보여 주는 일곱 성사 249 초단편 구원사 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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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은 평생 서서 돌보시는 어머니의 표상입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어머니들, 특히 옛날의 어머니들은 거의 다 성모입니다. 서서 돌봄이 어찌나 많은지 앉아서 따뜻한 밥 한 그릇 못 얻어먹었습니다. 더울 때 더위를 혼자 이고, 추울 때 추위를 혼자 이고, 앉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간 것이 우리 어머니들입니다.”(류영모) 대개의 성모상이 서서 계신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작년에도 올해도 서서 돌보시는 어머니의 자세로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체온을 나누자는 것이 천주의 모친 대축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의 또 다른 뜻이겠지요.
--- p,24 남모르는 이유로 마음이 무거우신 분들을 위해 해마다 3월 25일, 예수님 성탄 열 달 앞서 지내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하느님이 여인의 품에 신성한 씨앗 하나를 심으셨습니다. 역사상 인류를 가장 흥분되게 만든 뉴스입니다. 이것은 하와의 이야기이며 마리아의 이야기이며 모든 어머니들의 역사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파종’을 경축하느라 봄은 꽃을 피우고, 새들은 꽃 핀 자리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 p,31 하느님과 사람이 함께 이루는 강생의 신비가 좋아서, 너무나 좋아서 잘 믿기지도 않기에 그러므로 더욱 잊지 말자고 하루 세 번 우리는 삼종 기도를 바칩니다. 지금은 삼종이 울리는 높은 언덕의 성당이 드물어졌습니다. 그래도 삼종 기도는 빼먹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삼종 기도를 알리는 종소리는 오래오래 널리널리 울려 퍼져야 합니다. --- p,68-69 예수님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불리게 된 저 복잡한 사연이야 다 몰라도 좋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아들’, 심지어 ‘하느님’이라는 고백까지 받으신 분께서 우리 곁에 오셨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충분합니다. 사람이 좋아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탄은 하느님의 위대한 선물이 됩니다. 옛날 옛적 “높은 하늘에 거처를 정하고 홀로 하늘의 궁창을 돌아다니”던 하느님의 지혜가 천상천하 “모든 것 가운데에서 찾아낸 안식처”(집회 24,4-7 참조)가 바로 사람들 한가운데였다는 이 엄청난 사연만 가슴에 새겨도 북풍 몰아치는 엄동설한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 p,75-76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뜻이 같은 사람, 동지입니다. 뜻이 같은 사람과는 목숨도 나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같은 뜻으로 같은 일을 하는 동무입니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동지요 동무가 되어 되돌아온 것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산전수전 다 치르며 자기 생각의 주인이 된 그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 p,101 포도는 얼마 못 가서 시들어 버리지만 포도주는 백 년도 가고 천 년도 갑니다. “밀봉과 발효의 신비”(김흥호) 덕분입니다. 썩어 없어질 생명을 썩지 않을 영원한 생명으로 바꿔 주는 발효의 비결은 밀봉에 있습니다. 잠시의 포도가 영원의 포도주로 거듭날 때처럼 사람도 십자가에서 으깨졌다가 무덤에 갇혀서 밀봉되고 발효되어야 합니다. 무덤은 ‘발효의 성전’이었습니다. 누에는 고치 속에서 번데기였다가 나방이 되어 훨훨 날아갑니다. 죽을 때 잘 죽으신 예수님은 이렇게 영원한 임이 되셨습니다. --- p,139 어떻게 하면 사람을 보고서도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걸까요. 구멍 난 옆구리 그 틈새로 미소 짓는 하느님의 얼굴을 어떻게 발견했을까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이 짧은 탄성으로써 상처란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만지는 유일한 장소요, 신성과 인성의 신비로운 일치가 이뤄지는 거룩한 지점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습니다. --- p,144-145 하늘 아래 살지만 하늘을 잊지 않으면 성모님처럼 깨끗하고 예수님처럼 꼿꼿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잊을 때 사람은 구질구질 꼬질꼬질하게 됩니다. 병아리를 품는 어미닭의 심정으로 지내면 성모 성심이요, 동생 아끼는 언니의 마음으로 “내 살로 빚은 나의 떡이다. 어서 먹어라.” 하면 예수 성심입니다. 성심은 천심이라 언제나 어디서나 하늘처럼 깨끗하고 하늘처럼 맑습니다. --- p,151 사랑을, 참사랑을 가진 사람은 그 누군가하고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법인가 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모시고 살아가는 효자의 기쁨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세상과 나누기로 결심합니다. 그 일을 소명으로 확신하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동지들과 함께 머리 둘 곳조차 없이 떠돌면서 옷깃 스치는 인연들에게 하느님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 p,162 예수님께서는 ‘먹어라, 나를 먹어라.’ 하셨습니다. 살을 베어 주고 피를 쏟아 주려 하셨던 까닭이 무엇일까요. 이천식천以天食天, 하늘로써 하늘을 먹이겠다는 뜻일까요. 나로써, 곧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 6,41)으로써 ‘너희를 먹이려는 것은 너희가 하늘이기 때문이다. 먹히는 나도 하늘이요 먹어야 사는 너희도 하늘이다. 너희가 하늘에 속한 하늘이라는 말을 알아듣겠느냐?’ 하시는 말씀이지 않을까요? --- p,193 성체란 자기를 쪼개고 나누고, 마지막에는 남에게 먹혀서 스스로 없어지는 존재인지라 근본적으로 십자가와 동일한 신비인 것입니다. 그래서 슬금슬금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 떠나고 남은 몇몇에게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아주 의젓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결국 그이도 달아나 버렸습니다. 성체를 올바로 모시는 일은 그만큼 어렵고 위험합니다. 무심히 먹고 마셔서 영적 포만감으로 만족해도 된다면 세상에 그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마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경솔하고 무책임한 짓입니다. --- p,194-195 사람이 하느님을 믿기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사람을 믿으셨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고, 우리가 다가갈 생각을 하기도 전에 먼저 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먹일 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배고프다는 이유만으로 밥을 지어 주시는 분, 그분의 은총이 인간의 모든 것에 앞섭니다. 성체는 선물이지 보상이 아닙니다. --- p,197 도대체 오늘이 어떤 날이기에 성경의 그날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하필 오늘이라고 하는 걸까요? 오늘이란 영원이 오롯이 담긴 하루라서 그렇습니다. 하나의 물방울이 온 하늘을 담고 있듯이 하루 속에는 영원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길게 다 살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을 흘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루, 평범하나 경이로운 말입니다. --- p,245 한때는 꽃자리, 그러다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달리듯 끝낼 것을 끝내야 새것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영원의 한 조각인 시간, 광대무변의 한 지점인 공간,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나누고 있는 너와 나, 인간. 강생의 신비가 벌어진 이 경이로운 틈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 p,247-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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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좋아, 사람이』 김인국 신부가 새로 본 신앙 뒤통수를 때려 잠 깨우는 신앙 서적 신앙생활에 관한 조언과 지침을 주는 책은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다. ‘영성 도서’라고 불리는 책들 대부분이 그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중 상당수의 책들을 들여다보면 안에 담긴 글이 그저 ‘듣기 좋은 당연한 좋은 말씀’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본당 사제가 쓴 신앙 서적’이라고 이 책을 표현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는 책의 내용을 조금도 담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굉장히 흔한 내용이 적혀 있으리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다소 경망스럽지만 차라리 ‘뒤통수를 빡 때리는 신앙 서적’이라고 하는 편이 짧은 말로 이 책을 표현하기에는 더 적절하다. 『사람이 좋아, 사람이』가 어째서 그러한 인상을 주는지, 어째서 신앙인을 깨우는 책인지 본문을 들여다보며 그 이유를 부연하기로 한다. 하느님도 우리 안에, ‘신앙’도 우리 삶 안에 유신론자가 “하느님은 계신다. 어디에? 저 높은 하늘에.” 이렇게 말할 때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은 계신다. 어디에? 이 낮은 데, 우리 안에.”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본문 64-65쪽) 『사람이 좋아, 사람이』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압축적으로 담긴 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하느님께서 ‘저 높은 곳, 저 먼 곳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에’ 계시듯 그분을 따르는 우리의 신앙도 우리 생각 어디엔가 있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실재한다고, 또한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평일 내내 회사에서, 학교에서, 삶의 현장에서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안고, 혹은 표출하며 살다가 주일에 성당에 가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오는 삶의 패턴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생활과 신앙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태도와 생활양식은 결코 바람직한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고 단호히 지적한다. 『사람이 좋아, 사람이』에서는 치열하고 빡빡한 현실과 각자 짊어진 세상의 근심을 이해하고 안쓰러워하면서도 “우리가 성당에서 성경을 읽고, 성체를 모시고, 성령의 기운을 얻어 예수 성심으로, 성모 성심으로 살아가자는 것은 일신의 안일과 태평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목자가 되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밝힌다. 더불어 “자고로 변신의 귀재”이며 “선보다 성실한” 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도처에서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있기에 “죄를 보았으면 죄를 미워하고, 선을 보았으면 선을 다짐하자, 적어도 예수처럼 살면 예수처럼 죽고 마는 세상은 아니게 하자.”라는 말로, 신앙인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신앙은 단순히 내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데에 쓰는 도구여야 하기 때문이다. 뒤집어 보기, 마침내 ‘참신앙인’으로 거듭나기 이뿐만 아니라 『사람이 좋아, 사람이』는 우리가 이미 배워 알고 있는 성경이나 교리에 관한 지식 또한 뒤집어서 볼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수난기를 그저 ‘구원을 가져다주신 예수님의 수난 공로’로만 읽지 않고, ‘범죄자들에게 그분을 빼앗긴 이야기’로 읽음으로써 부활은 물론 교회가 탄생한 과정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생생하게 느끼고 그 모든 것은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까지 연결된다. “서러운 추모”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범죄자들이 예수님께 했던 몹쓸 짓을 “충분히 미워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사람이 사람에게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꾸짖고 말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좋아, 사람이』에서는 이렇게 신앙을 새로운 관점으로 정의·정리하며, 결국 성경과 교리서를 머리와 입으로 줄줄 외는 사람이 아니라, 그 내용을 삶과 생활 속에서 곰곰이 되짚어 보고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새롭게 내놓은 ‘신앙론’의 뒤에 해당 내용에 관하여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볼 것을 끊임없이 제안한다. 그러므로 “정말 그렇습니까?”라는 문장 역시 이 책의 핵심을 짚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따라서 그동안 해 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신앙을 고찰하고, 진정으로 그러한지 스스로 생각하고 나면 자연스레 신앙인으로서 내가 무얼 해야 할지가 보인다. 보이기에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고, 이윽고 진짜배기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수려함 속에 감춘 고민의 깊이 성경은 물론 많은 문학 작품들과 동서양을 넘나드는 철학, 사상을 동원하여 풍성하고 깊이 있게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도 『사람이 좋아, 사람이』의 특장 중 하나이다. 저자가 강론 시간, 유쾌하고 따뜻한 말만 하려고 다짐하다가도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 관한 이야기, 듣기에는 불편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것을 “‘더 이상 …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 20,9) 하였던 예언자의 심경에 빗대는 데에서 ‘행동하는 신앙’을 얼마만큼이나 중요히 여기는지 절절히 느낄 수 있다. 또, 베드로가 평범한 어부에서 당당한 교회의 반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허균의 ‘호민론’에 빗대어 전개하는 대목에서는 그 몰입감과 수려함에 감탄을 내뱉게 된다. 읽는 내내 웃는 얼굴로 책장을 넘기게 하는 말솜씨의 안쪽 깊은 곳에는 ‘땅에서의 하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한 사제가 사목 현장에서 30년 동안 거듭했던 고민과 노력이 담겨 있다. 듣기 좋은 말, 흘러가는 구름처럼 저 멀리 있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마음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말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책에서 하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가볍게 넘어가는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꿈틀거리는 신앙을 안고 세상으로 나가자 책을 읽다 보면 여러 차례 나오는 ‘참으로 미안했습니다.’라는 진술이 눈에 띈다. 주로 아파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이들, 혹은 그들을 위해 이미 힘쓰고 있는 이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하며 나온 말이다. 처음 읽을 때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나갔다가,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꾸만 생각이 나 그 부분들을 다시 찾아 읽게 된다. 그 공감이 다름 아닌 이 책에서 강조하는 새로운 개념의 신앙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체득한 것이다. 그렇게 꿈틀꿈틀 약동하는 새 신앙을 저마다 품에 안고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이 책은 제안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