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아인슈타인 VS 프로이트
우리는 왜 전쟁을 할까?
베스트
국방/군사 top20 1주
가격
13,500
10 12,150
YES포인트?
67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7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편지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5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24
내셔널리즘 26
민족자결(self-determination) 34
다국적기업 36

아인슈타인에게 보내는 편지 - 지그문트 프로이트 43
본능(trieb) 71
동일화 73
문명 7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81
러셀-아인슈타인 선언(Russell-Einstein Manifesto) 102
맨해튼 계획 109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17
히스테리 133
나치당의 의회 진출 136
리비도와 타나토스 138

아인슈타인의 말, 말, 말- 전쟁과 평화, 국가와 가족에 대하여 143

저자 소개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관심작가 알림신청
 

Albert Einstein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과 어머니 파울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뮌헨에 전기공장을 세우고 일을 시작하자 그곳으로 이주해 학업을 시작했으나 19세기 독일의 엄격하고 현학적인 교육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성적 부진으로 김나지움을 졸업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 부진으로 가족들이 밀라노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서 독학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수학 성적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과 어머니 파울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뮌헨에 전기공장을 세우고 일을 시작하자 그곳으로 이주해 학업을 시작했으나 19세기 독일의 엄격하고 현학적인 교육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성적 부진으로 김나지움을 졸업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 부진으로 가족들이 밀라노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서 독학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수학 성적에 주목한 학장의 배려로 아라우에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고등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후 마침내 연방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1900년 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스위스 시민이 되었고, 2개월간 수학 가정교사로 일하다 베른에 있는 특허사무소 심사관으로 채용되었다. 5년간 특허사무소에 일하던 아인슈타인은 1905년 독일의 『물리학연보Annalen der Physik』에 5개의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분자 차원의 새로운 결정」이라는 논문으로 연방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다른 논문들에서는 유명한 광전효과, 브라운운동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제시했다. 특히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모든 좌표계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고 모든 자연 법칙이 똑같다면, 시간과 물체의 운동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이론을 제기하면서 그때까지 인간이 가지고 있던 우주관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또한 그는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를 확립했는데, 이에 따르면 ‘물질이 갖는 에너지는 그 물질의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과 같다’고 한다. 이것이 유명한 공식 E=mc2이다.

특수상대성이론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14년 독일 프로이센과학아카데미에 자리를 얻어 그곳에서 연구하면서 때때로 베를린대학교에서도 강의를 하였다. 그리고 1916년 마침내 『물리학연보』에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를 발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뉴턴이 말한 힘이 아니라 ‘시공연속체 속에 있는 존재에 의해 생긴 굽어진 장(場)’이다. 그의 이론으로 시공간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바뀌었으며, 그때까지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우주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19년 런던 왕립학회가 프린시페 섬에서 행한 과학탐사에서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예측한 계산값을 증명하는 일식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21년, 아인슈타인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1905년에 발표한 ‘광전효과’에 대한 공로 때문이었다. 이 이론을 설명하는 광양자 가설은 훗날 양자역학을 낳는 시금석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양자역학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고 거리를 두며 말년에는 주로 통일장이론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시민권을 포기하고 독일을 떠난 그는 이후 20여 년 동안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거의 변화 없는 생활을 유지했다. 1939년,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핵무기 연구에 관한 유명한 서한에 서명함으로써 ‘맨해튼 계획’ 수립에 영향을 끼쳤지만,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충격을 받아 핵무기 폐기를 위한 운동에 동참했으며, 비무장 세계정부 수립을 위한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한편 1940년, 아인슈타인은 마침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을 유럽인으로 생각했다. 1952년 이스라엘의 2대 대통령을 제안받기도 했던 그는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1955년 대동맥류 파열로 프린스턴 병원에 입원한 뒤 그해 4월 18일 그곳에서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다른 상품

지그문트 프로이트

관심작가 알림신청
 

Sigmund Freud, Sigmund Schlomo Freud,지기시문트 술로모 프로이트

1896년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소개함으로 정신분석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인간 정신의 탐구자이다. 그는 현대 사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가져온 위대한 사상가로서 무의식 세계를 개척하여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있다. 185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난 프로이트는 신경 해부학, 신경 생리학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쌓으면서 그의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1873년 빈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던 그의 삶은 188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이트는 그곳에서 히스테리 환자들을
1896년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소개함으로 정신분석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인간 정신의 탐구자이다. 그는 현대 사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가져온 위대한 사상가로서 무의식 세계를 개척하여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있다.

185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난 프로이트는 신경 해부학, 신경 생리학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쌓으면서 그의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1873년 빈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던 그의 삶은 188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이트는 그곳에서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며 심리와 신체 관계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1896년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을 정립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신경증 환자들의 정신을 탐구하면서 그들을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곧 정신분석학은 건강하건 병들었건 관계없이 정신 전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매개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정상적인 성적 발달 단계를 설명하고, 주로 꿈의 해석에 근거를 두어 인간의 일상적인 생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힘들을 발견해 냈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도구를 최초로 찾아낸 사람이다. 1938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던 그는 1923년에 얻은 구강암이 재발하여,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39년 9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82g | 145*210*15mm
ISBN13
9791191191028

출판사 리뷰

인간을 전쟁이라는 멍에로부터 해방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전쟁을 없애려면 국제적인 기관을 세워, 국가 간의 문제에 입법과 사법의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사법기관에 절대적인 권위와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주권의 일부를 포기하고, 일정한 틀을 짜야 한다.
그러한 일이 실현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마음 자체에 문제가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 평화에의 노력에 대항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지배자의 권력욕이다. 이 소수의 권력자는 학교와 매스컴, 그리고 종교적인 조직을 손에 넣고 그 힘을 구사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 곁에는 금전적인 이익을 추구하여, 그 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권력에 바짝 다가가는 그룹이 있다. 이들은 전쟁을 자신들의 편리한 기회로만 본다. 개인적인 이익을 증대시켜, 자신의 힘을 키우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사회적인 배려가 부족하고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강고한 의지를 가진 자들이다. 이들이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생각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밖에 없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인 증오와 더불어 상대를 절멸시키려는 욕구이다.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인간의 마음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고, 증오와 파멸이라는 마음의 병에 걸리지 않게 할 수 있는가. 특히 국가와 국가의 전쟁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프로이트는 먼저, 인간도 본질적으로 동물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 대립, 이것은 기본적으로 폭력에 의해 해결된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폭력이 육체의 힘인 완력에서 무기를 사용하게 되고,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폭력의 지배’에서 ‘법(권리)의 지배’로 진화하게 된다.
국제연맹이라는 인류 최초의 실험을 평가하면서, ‘모든 나라를 통일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이념은 보이지 않는다’고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1917년의 러시아 혁명 후, 구미의 지식인 사이에 ‘공산주의’에 의한 세계평화의 실현을 기대하는 움직임이 있는 가운데, 내셔널리즘이 뿌리 깊게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공산주의에 의한 세계통일도 무리’라고 20세기를 예견하는 듯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또 그는 인간에게는 ‘두 가지 욕망’이 잠재하며, 대립한다고 한다. 하나는 에로스(사랑)이고, 유지하고 통일하려는 욕망이며, 다른 하나는 ‘공격 본능’으로 파괴하고 침해하려는 욕망이라 한다. 그리고 그 대립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관계하며, 촉진하는 것이고, ‘인간에게서 공격적인 성질을 없앨 수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런 다음 프로이트는 전쟁을 억제하는 것으로 문화의 발전을 언급한다. ‘문화의 발전을 촉진하면, 전쟁의 종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런 프로이트의 주장에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공허한 이론가이며, 정책론이 없는 관념론처럼 생각한다. 그렇지만 프로이트는 문화가 만들어내는 것으로, 하나는 지성을 강화하고 그것이 욕망을 제어한다는 것, 또 하나는 지성이 공격 본능을 안으로 향하게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반지성주의’가 판치는 오늘날, 무력하게 보이는 프로이트의 주장이 재고할 가치가 있는 본질론이 아닐까?
‘세계 최고의 천재’라 불린 남자와 인간의 마음의 어둠까지 알고 있던 프로이트가 당시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전 세계에서 공유하는 인류의 문제인 ‘전쟁’과 그것을 일으키는 인간의 욕구라는 것을 매우 알기 쉽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결국은 인간의 문제이다!
우리가 전쟁에 반대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지만, 전쟁은 희망으로 가득한 인간의 생활을 부숴버리기 때문이다. 전쟁은 인간을 처참하게 하고, 바라지도 않는데 타인을 죽이라고 강제하며, 인간의 노동의 성과인 귀중한 물질적인 가치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국제연맹으로부터 의뢰를 받았을 때, 이미 ‘전쟁’과 ‘마음’이라는 것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통 전쟁이라 하면 정치나 국제 관계의 문제라 생각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거침없이 심리학자인 프로이트에게 묻는다. 전쟁이라는 것의 본질을 인간의 숙명이랄까 최대의 오점이라 생각한 아인슈타인은 그것이 또한 인간의 본질적인 것인 인간의 마음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20세기는 ‘전쟁의 세기’, ‘살육의 세기’였다. 무수히 많은 전화(戰禍)가 일어나고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5000만 명의 인간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인간은 전쟁을 없앨 수 있을까? 아니 전쟁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러한 기분이 들게 할 것이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