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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두시
점유의 공화국 ∏ 비판-비평 전후 일본의 오키나와론, 그 곤란과 ‘시작의 앎’ 이하 후유의 「일류동조론(日流同祖論)」 재독 -‘정치(la politique)’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유사성의 함정과 연대의 가능성 -한국에서 오키나와를 묻다 메도루마 슌과 대항으로서의 문학 Ⅹ 현장-비평 동아시아 지중해와 제주 해녀 로드 ∞ 쟁점-서평 구술과 청취: 기록이 남는 순간 -『억척의 기원』 바이러스가 드러낸 다층적 시공간으로서의 중국 사회 모순 -『우한일기』 내장풍경론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금기를 넘어와 분단에 갇힌 -『절박한 삶』 ∽ 연속비평 「폭력-비판을 위하여」의 행간번역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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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을 횡단하는 오키나와 담론과 오키나와 문학, 그 주변성
특집에서 우리는 네 명의 사유를 엿볼 수 있다. 도미야마 이치로는 자신의 글 『시작의 앎』을 연장하며 오키나와에 관한 일본인들의 경계와 무지를 인지하고, 균열의 회복에 집중하는 과정을 읊는다. 특히 모자란 일본의 역사 인식을 문제 삼아 ‘안다’고 하는 삶의 영위에 대해 고뇌한다. 오키나와의 평화는 일본의 것이 아닌 자립된 그들의 몫이며 이것을 발언함으로써 무지를 인정하고 오키나와와 일본 두 관계성에 집중하며 회복을 논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키하마 사나는 이하 후유의 ‘일류동조론’을 재독하여 이하 후유 그가 일본과 오키나와의 관계에 대해 반복적으로 물음을 제기하여 사후에도 많은 독자를 매혹시켜 왔음이 분명함을 이야기한다. 이하 후유는 제국적 평등을 위해 오키나와의 신기지 건설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옳고 그르다를 논하기 전에 중요한 것은 오키나와인과 일본인, 둘 사이에 대한 동등한 몫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그의 사상적 도전을 ‘신화 다시 쓰기’라 표현하는 사키하마 사나로 말미암아 이하의 텍스트야말로 혁명이며 폭력적인 주변부성에 대항하는 비폭력이자 인식적 평화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어서 곽형덕은 한국에서 진행하는 오키나와 문학 연구가 지니는 ‘유사성의 함정’을 논파하고 그에 따른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지배당한 식민지라는 아픈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 오키나와는, 그 역사적 유사성으로 국민국가와 지역이라는 스케일의 한계를 뛰어넘어 버린다. 그러나 엄연히 다른 역학 관계 속에 있으므로 다양한 주변 국가와의 주변성을 확립시켜 여러 관계를 이해하고 고찰하여야 한다고 말해준다. 오키나와에 반복되는 폭력과 저항하는 힘의 존재를 메도루마 슌의 작품을 보며 끌어내고 있는 심정명은 그가 오키나와 신기지 건설에 어떤 식으로 대항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소설가인 메도루마 슌은 작품과 함께 다양한 육체적 행위로 시위를 표현한다. 그의 고독한 저항은 우리에게 ‘시작의 앎’의 의미를 깨달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동아시아 지중해와 제주 해녀 로드 ‘Ⅹ 현장-비평’으로 ‘동아시아 지중해와 제주 해녀 로드’를 실은 구모룡은 제주라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시각에 대해 말한다. 제주를 제주의 관점으로 보면서 자기중심에 갇히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며, 제주 안의 주체이자 타자인 해녀는 여성문화라는 차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법으로서의 제주’라는 관점이 필요한 현 시점에, 타자의 관점이 아니라 제주의 관점에서 제주를 바라보고 해석하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바라보면 해녀 문화의 동아시아적 위상이 보인다. 제주 해녀가 일본열도의 연안에서 남중국해를 경유하여 발해만에 이르고, 한반도의 남해와 동해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간 사실에서 제주라는 로컬과 한국이라는 네이션, 동아시아라는 리전, 세계라는 글로벌로 시야를 확장해 볼 수 있으며, 이렇게 로컬에서 동아시아지역으로 시좌를 넓힐 때 새로운 국면이 열린다고 말한다. 주변부성의 본질에 육박하는 단단한 글쓰기 어긋난 듯 비슷함을 띠는 네 개의 서평들은 한결같이 단단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나름대로 공통적인 지표를 그리며 부유하고 있는 글들은 독자에게 충분한 사유의 기회를 주며 우리 주변의 본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 한다. 문학평론가 강희정은 『억척의 기원』으로 역사적, 사회적 소수자들의 구술과 그에 대한 청취가 그들과의 진솔한 대화로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홍명교 기자는 『우한일기』를 읽고 코로나19 세태가 보여주는 중국 사회의 모순을 짚어준다. 중국이 이루고 있는 로컬적 폐쇄가 얼마나 우매한지, 오늘날 중국 사회가 ‘자유’를 이루고자 하는 행위가 어떤 상실과 딜레마를 상기시키는지 이야기하며 저자의 소시민적 의지를 느끼게 해준다. 안상학의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을 읽고 그의 시를 날카롭게 짚는 김만석 평론가는 어떤 풍경의 생성을 공통된 내장기관의 연결을 통해서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존재와 기억에 따른 ‘내장풍경론’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용된 신체로서 시를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절박한 삶』은 다섯 명의 탈북 여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은 정영선 소설가가 하나원에 근무하던 시절 만난 교육생이다. 『절박한 삶』의 저자는 북한 이주 여성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를 하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독자에게 보여주는데, 정영선 소설가는 이것이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한 고민의 결과라고 말한다. 항상 질문과 충고를 받는 탈북민은 더 이상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아니며, 도리어 그들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되고,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고 날카롭게 짚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