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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호랑이 : 내가 만난 백성욱 박사
양장
김영사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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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욱 박사 전집

책소개

목차

《백성욱 선생님 송덕문집》 원고 청탁

1부. 명사들의 이야기

1. 지장암 백성욱 선생님과 나
_정종 전 동국대학교 교수
2. 그 어른 백성욱
_장한기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3. 여래여거如來如去 비범하신 생애
_김삼룡 전 원광대학교 총장
4. 장암 선생을 생각한다 생각한다
_민영규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5.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일
_김도경 전 동덕여자대학교 대학원장
6. 임덕규가 본 백 박사 박사
_임덕규 전 국회의원
7. 대승사大乘寺의 사리탑
_노재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8. 백성욱 총장
_서정주 시인
9. 철인 장관 백성욱 씨의 선풍旋風
_박병배 전 국회의원
10. 시대의 활불活佛
_송재운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11. 하서賀序
_백낙준 연세대학교 제1대 총장
12. 축수헌사祝壽獻詞
_백성욱박사송수기념사업위원회
13. 살아서도 죽어서도 혼까지 다 바치고 싶은 사람
_강경애 작가
14.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는 낫지
_이동현 전 《중앙일보》 기자

2부. 학인들의 수행기

15.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_김동규 법사
16. 그 마음을 바쳐라
_김재웅 법사
17. 무슨 생각이든 부처님께 바쳐라
_김원수 사회복지법인 바른법연구원복지재단 이사장
18. ‘미륵존여래불’ 하느니라
_이광옥 법사
19. 세상에서 더없이 복 많은 사람
_진진묘 보살
20. 백성욱 선생님과 그 가르침
_정천구 백성욱연구원 이사장
21. 돌팔이 수행기
_이선우 백성욱연구원 감사
22. 스승을 찾아서
_김강유 (주)김영사 설립자·회장

백성욱 박사를 한마디로 말하면
찾아보기

저자 소개 3

1915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태어났다.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와 일본 도요 대학교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다. 광주의과대학 예과, 전남대학교, 동국대학교, 원광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한국공자학회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전환기의 철학》 《공자사상의 인간학적 연구》 《논어와 공자》 《철학과 문학의 심포지엄》 《내가 사랑한 나의 삶》 등이 있다. 2016년 타계했다.

등저김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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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1966년 경기도 소사 도량에서 백성욱 박사를 모시고 수도 생활을 시작하여, 7년 6개월 동안 도량에서 상주하며 정진했다. 1973년 경북 포항에서 금강경독송회 법회를 시작한 이래 현재 두 개의 수행 도량을 포함, 미국·영국·독일·국내의 열다섯 개 법당과 지부를 이끌며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1974년부터 27년간 많게는 70여 개 도시를 돌며 《금강경》 50여만 권을 배포했다. 2005년부터 한국의 정신과 문화 알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국내외 금강경독송회 회원들과 함께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책 8종을 영어·프랑스어·독어로 70여만 권을 인쇄
1942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1966년 경기도 소사 도량에서 백성욱 박사를 모시고 수도 생활을 시작하여, 7년 6개월 동안 도량에서 상주하며 정진했다. 1973년 경북 포항에서 금강경독송회 법회를 시작한 이래 현재 두 개의 수행 도량을 포함, 미국·영국·독일·국내의 열다섯 개 법당과 지부를 이끌며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1974년부터 27년간 많게는 70여 개 도시를 돌며 《금강경》 50여만 권을 배포했다. 2005년부터 한국의 정신과 문화 알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국내외 금강경독송회 회원들과 함께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책 8종을 영어·프랑스어·독어로 70여만 권을 인쇄하여 무료로 배포했다. 저서로 《닦는 마음 밝은 마음》 《마음 닦는 법》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그 마음을 바쳐라》 등이 있다.

등저김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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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元洙

2018년부터 현재까지 BTN 불교TV에서 〈김원수 법사의 내 안의 선지식, 금강경〉이 절찬리에 매주 방영 중이다. 저자의 해설은 단순한 경전의 해석이 아니라, 생활에서 평생 실천한 체험이 녹아있으며 누구나 실생활에서 바로 따라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저자는 금강경 가르침을 사회생활뿐 아니라 과학적인 난제에도 접목하여 뛰어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오로지 밝은 스승 백성욱 박사님을 모시고 전일 출가(1967~1971년)하여 금강경을 수행한 공덕이라고 한다. 이에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알려 생활불교로 불교의 중흥을 도모하고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기를 발원하
2018년부터 현재까지 BTN 불교TV에서 〈김원수 법사의 내 안의 선지식, 금강경〉이 절찬리에 매주 방영 중이다. 저자의 해설은 단순한 경전의 해석이 아니라, 생활에서 평생 실천한 체험이 녹아있으며 누구나 실생활에서 바로 따라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저자는 금강경 가르침을 사회생활뿐 아니라 과학적인 난제에도 접목하여 뛰어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오로지 밝은 스승 백성욱 박사님을 모시고 전일 출가(1967~1971년)하여 금강경을 수행한 공덕이라고 한다. 이에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알려 생활불교로 불교의 중흥을 도모하고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기를 발원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학력과 경력
서울대학교 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학군장교로 제대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 취득, 홍익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로서 정년 퇴임하였다.

* 불교 신행과 수행 지도
· 금강경 수행 프로그램 : 매주 일요 정기법회, 매일 자시子時 주경야선 가행정진, 매주 2박3일 주말 출가 등 실질적이고 알차게 운영 중이다.
· 전 재산을 희사하여 세 개의 비영리 법인을 설립, 진정한 무소유인이 되었다.
· 무료 급식을 2004년부터 현재까지 시행 중이다(연인원 40만 명 이상).
· 저서 : 『우리는 늘 바라는 대로 이루고 있다』와 영한판 『THE CREATORS』 외 다수

김원수의 다른 상품

정종 전 동국대학교 교수
1915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태어났다.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와 일본 도요 대학교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다. 광주의과대학 예과, 전남대학교, 동국대학교, 원광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한국공자학회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전환기의 철학》 《공자사상의 인간학적 연구》 《논어와 공자》 《철학과 문학의 심포지엄》 《내가 사랑한 나의 삶》 등이 있다. 2016년 타계했다.

장한기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1931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극학회장,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세계연극사》 《연극학입문》 《민속극과 동양연극》 《한국연극사》 등이 있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김삼룡 전 원광대학교 총장
1925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중국문화 대학교에서 명예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원광대학교 제 5~6 대 총장, 한국원불교학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미륵신앙의 연구》 《창조를 위한 여백》 《동방의 등불 한국》 《생불님의 함박웃음》 등이 있고, 공저로 《원불교》 《미륵불》 등이 있다. 국민훈장 동백장·무궁화장을 수훈했다. 2014년 타계했다.

민영규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915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문과와 일본 다이쇼 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 동 대학교 국학연구원장, 문교부와 국방부의 고적보존위원회 위원,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월인석보영인해제月印釋譜影印解題]가 수록된 《한국의 명저》 등이 있으며, 영인본인 《팔세아?소아론?삼역총해?동문유해》의 해제를 저술하기도 했다. 2005년 타계했다.

김도경 전 동덕여자대학교 대학원장
1930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59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67년 건국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를 수료했다. 1985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 경영학과 교수, 동 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임덕규 전 국회의원
1936년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동 대학교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75년 외교 전문 잡지인 《디플로머시Diplomacy》를 창간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6년 제29회 서울언론인클럽 언론상 국제 교류 언론인상을 수상했다. 2018년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노재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1929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문리대 부교수, 서강대학교 이과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했다.

서정주 시인
1915년에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등단 이후 64년에 걸친 시작詩作 생활을 통해서 950여 편의 시, 15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동국대학교 문리대학 교수, 현대시인협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0년 타계했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박병배 전 국회의원
1917년 충청남도 대전군(현 대전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경성제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시 경찰국장, 국방부 정무차관, 제4, 5, 7, 8, 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2001년 별세했다.

송재운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1939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한 철학박사다. 인천대학교,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교수, 한국국민윤리학회장, 한국공자학회장, 한국동양철학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다. 저서로 《양명철학의 연구》 《국민윤리》 《덕성함양의 전통적 방법론》 등이 있고, 논문으로 [왕양명 철학에서 앎과 실천의 문제] [삼봉 정도전과 함허당의 유불대론] [종말론의 유가철학적 이해] [양명학과 불교] [한국적 다종교 상황과 유교] [화엄의 심성설] 등이 있다.

백낙준 연세대학교 제1대 총장
1895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미국 파크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예일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7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했고, 1957년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에 취임했다. 참의원 의장, 문교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1985년 별세했다.

백성욱박사송수기념사업위원회
백성욱박사송수기념사업위원회에서 1959년 《불교학 논문집 : 백성욱 박사 송수기념》을 펴냈다. 김영수, 김잉석, 김병규, 권상로, 고병익, 안계현, 우정상, 조명기, 황수영 등이 상고한 총 마흔네 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강경애 작가
195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2년 《시와 비평》으로 문단에 나왔다.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가톨릭문인회, 한국여성문학인회에서 활동했다. 저서로 《바람은, 바람을 일으킨다》 《그래 우리가 진정 사랑한다면》 《삭제하시겠습니까?》 《긴 악수를 나누다》 《내가 나를 부를 때마다》 등이 있다. 에세이포레문학상, 한국시원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동현 전 《중앙일보》 기자

김동규 법사
193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불교를 접하면서 출가를 결심할 정도로 큰 발심을 일으켰다. 1965년 백성욱 박사를 만나 3년여 동안 백성목장에서 수행했다. 1968년 이후 《금강경》을 간행해 배포해오고 있다. 저서로 백성욱 박사의 강의와 수행기를 엮은 《금강경 이야기》가 있다. 사단법인 금강경독송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금강경》의 생활화?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김재웅 법사
1942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1966년 경기도 소사 도량에서 백성욱 박사를 모시고 수도 생활을 시작하여, 7년 6개월 동안 도량에서 상주하며 정진했다. 1973년 경북 포항에서 금강경독송회 법회를 시작한 이래 현재 두 개의 수행 도량을 포함, 미국·영국·독일·국내의 열다섯 개 법당과 지부를 이끌며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1974년부터 27년간 많게는 70여 개 도시를 돌며 《금강경》 50여만 권을 배포했다. 2005년부터 한국의 정신과 문화 알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국내외 금강경독송회 회원들과 함께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책 8종을 영어·프랑스어·독어로 70여만 권을 인쇄하여 무료로 배포했다. 저서로 《닦는 마음 밝은 마음》 《마음 닦는 법》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그 마음을 바쳐라》 등이 있다.

김원수 사회복지법인 바른법연구원복지재단 이사장
1943년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1971년까지 경기도 소사에서 백성욱 박사를 모시고 공부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금속공학과 명예 교수다. 저서로 《우리는 늘 바라는 대로 이루고 있다》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크리스챤과 함께 읽는 금강경》 등이 있다.

이광옥 법사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서울문리사범대학(현 명지대학교)을 졸업했다. 이후 한국은행에서 일했다. 1967년부터 10여 년간 경기도 소사에서 백성욱 박사를 모시며 수행했다. 현재 백성욱 박사의 가르침에 따라 후학들을 지도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다.

진진묘 보살
본명 이순경. 진진묘眞眞妙는 법명이다. 1920년 서울 계동에서 태어났다. 2021년 현재 101세다. 역사학자 이병도 박사의 장녀이며, 자유인이자 예술가였던 화가 장욱진의 아내다. 장욱진의 마지막 화실이었던 용인시 마북동에 거주하며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을 설립?후원하고 있다. 1954년 혜화동에 동양서림을 열고 30년 가까이 운영하며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출판문화공로상을 받았다.

정천구 백성욱연구원 이사장
1942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법무행정학과 석좌교수, 영산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했다. 1972년 백성욱 박사를 찾아뵙고 사사했다. 저서로 《금강경 독송의 이론과 실제》 《소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등이 있다. 현재 사단법인 백성욱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선우 백성욱연구원 감사
1947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도선道宣이다. 만 19세에 백성욱 선생님을 뵙고 소사에서 첫 1백 일 수행한 뒤, 두 차례 1백 일 수행을 더 했고, 간헐적으로 소사에서 수행 생활을 했다. 국가공무원직을 정년 퇴임한 뒤 사단법인 금강경독송회 이사로 활동했고, 현재 백성욱연구원 감사직을 맡고 있다.

김강유 (주)김영사 설립자·회장
1947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를 수료했다. 1970년 가을, 학생 신분으로 백성욱 박사를 찾아뵙고 사사했다. 1976년 도서출판 김영사를 설립했다. 엮은 책으로 《행복한 공부》 《행복한 마음》이 있다. 현재 ㈜김영사 회장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23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736쪽 | 1078g | 152*215*40mm
ISBN13
9788934979869

책 속으로

나의 정신세계가 인간 백성욱을 축으로 전개된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나는 지금 젊은 날로 되돌아가 금강인의 다정한 음성을 듣는다. 그이의 육성이 고막을 때린다. ‘옴’ 소리까지는 내 귀가 둔탁해서 들리는 것 같지 않지만, 몇 가지 비극의 고비를 뛰어넘은 나에게 들려주신 《금강경》 전문의 낭송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그 경건한 모습이 지금 이 순간에도 혼탁한 눈앞에서나마 불광佛光처럼 빛난다.
--- p.87

선생님께서는 오로지 중은 아닐지라도 불도에 깊이 오래 정진한 분이셨다. 참 스님이며 모든 것에 구애받지 않은 큰 스님이셨다. 그는 박학다식하며 앎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분이셨다. (…) 맹호와 같은 혁혁한 용안에 사자후 같은 노성과 왕성한 정력의 소유자였던 선생님도, 내면 세계는 매우 인자하고 인정 많은 한 할아버지의 심성을 언제나 간직하고 계셨다. 그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한순간도 구도를 놓치지 않고 《금강경》을 암송하신 큰 스님이었고, 오후 3시 이후에는 진짓상을 대한 적 없는 큰 도인이셨다.
--- pp.112-113

하루는 백 총장님께서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라고 하셨다. 내가 “자기가 마음먹은 일들이 뜻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보통으로 산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대답하니 총장님께서 “그래, 그것도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란 사람 대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 p.156

백성욱 박사는 얼굴에 백호가 있지만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면서도 그와 조화를 잘 이루어 전형적인 부처님상을 닮은 미남이다. 키나 체구는 크지도 작지도 않고 알맞았다. 나는 팔순이 지나도록 평생을 살면서 백 박사처럼 품위 있고 멋지며 위엄있게 잘나고 매력적인 남자를 국내외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 p.244

“《금강경》을 아침저녁으로 읽고 일어나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치고… 아침에 《금강경》을 읽으면 저녁까지의 모든 재앙이 소멸되고, 저녁에 《금강경》을 읽으면 그다음 날 아침까지의 모든 재앙이 소멸되는 것이다. 우선 공부하는 데 재앙이 없어야 해. 그러려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부처님께 자꾸 바쳐서 복을 지어야 해. 어떤 재산이냐? 바로 네 생각과 궁리가 네 재산이지. 그 재산을 부처님께 내놓으라는데 손해 볼 것 하나도 없지. 바치는 연습도 한동안 해야 할 거고….” 법문을 마치신 듯, 다무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p.316

“진수성찬을 먹어도 남에게 얻어먹은 마음이면 거지 마음이요. 보리 감자 농사라도 지어 남을 먹이는 마음이면 부자 마음이니라. 보수 없는 봉사로 제 몸뚱이를 부려서 부처님을 시봉한다면 그 복덕은 무량할 것이다.” 누더기 옷에서 풍기는 선생님의 법문이다.
--- p.355

소사에서 공부할 때 심한 노동으로 육신을 학대하니 백 선생님께서 “넌 네 몸뚱이를 좀 모셔라” 하신 적이 있다.육신이 건강치 못하면 마음이 따라 약해져서 공부하기 힘들다. 편하고 즐거운 것을 찾는 몸뚱이 착着은 닦아야 하지만, 몸뚱이가 약해지고 병들 정도로 지나치게 학대해서도 안 될 것이다. 공부하는 이는 심신이 함께 건강할 수 있도록 자신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셨다.
--- pp.402-403

“무슨 생각이든지 다 ‘미륵존여래불’ 해서 바쳐라” 하신 백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실행하며, 수많은 인생사를 바치고 해결하며 살고 있다. “네 생각은 다 거짓말이니 무슨 생각이든 그 생각에 대고 ‘미륵존여래불’ 해라. 가지면 재앙이고, 바치면 복이 된다”라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이 방편을 나는 온전히 믿고 실행하면서 어려운 고비들을 헤쳐나왔다. 그리고 “바치면 무엇이든 다 된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살아 있는 마지막 날까지 실현하는 것이 속가 제자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 pp.546-555

선생님께서 계시던 소사 도량은 평화롭고 밝은 기운이 가득했다. 동구 밖 동리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그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법당 주위로 아까시나무 꽃과 복숭아꽃 향내가 은은하게 퍼지는 봄이면 선생님께서 종종 흰옷에 밀짚모자를 쓰시고 마당에 나오시어 풀을 고르셨는데,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 pp.597-598

돌이켜보면 사법邪法과 외도外道가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에, 정법이 있는 줄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운 좋게 눈 밝은 스승을 만나, 부처님께 마음 바치는 법을 배우고 《금강경》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천추千秋의 요행이었다. 불법을 만나지 못하고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하니 아찔하고 아슬아슬할 뿐이다. 부처님 말씀을 ‘자기 생각으로’가 아니라 ‘부처님 말씀대로’ 전할 수 있는 사람, 그분이 밝은 선지식 아닐까 생각한다.

--- p.723

출판사 리뷰

시인,교육자,학자,정치인,종교인,문화계 인사 등
스물둘 명사와 학인들이 백성욱 박사의 진면목을 밝힌다!
백성욱 박사와의 일화, 소사에서의 생활, 열반에 들기까지 생생한 이야기가 담긴 회고록


독립운동가, 한국인 최초 독일 철학박사, 금강산에서 10년 정진한 수행자,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선 정치인, 초대 내무부장관, 동국대학교 총장, 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 사장, 그리고 말년에는 소사에서 목장을 운영하며 후학을 지도한 근현대 한국 불교의 선지식. 백성욱 박사의 숨결은 지금도 학계, 불교계, 정치계, 문화계 곳곳에 스며 있다.

《금강산 호랑이 : 내가 만난 백성욱 박사》는 백 박사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스물둘 명사와 학인의 일화를 담았다. 1993년 2월 만들어진 ‘백성욱 선생님 송덕문집 간행위원회’에서 백 박사와 인연 있던 명사와 학인들에게 청탁해 보관한 글, 2019년 1월 《백성욱 박사 전집》 출간을 기획한 이래로 백 박사의 가르침 아래 정진했던 학인들에게 받은 글,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고된 글, 총 스물두 편을 모아 엮었다. 특히 이 책에는 백성목장에서 몸과 마음을 닦은 학인들의 수행기가 담겼는데, 이를 통해 백 박사의 진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어 각별한 의미가 있다.

여러 명사와 학인들이 밝혔듯, 백 박사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통찰로 미혹 속에 빠진 이들을 일깨웠다. 정종 교수는 “나의 정신세계가 인간 백성욱을 축으로 전개된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87쪽)라고 말했는데, 그러한 연유는 박병배 전 국회의원이 말했듯이 그는 “예리한 판단력과 탈속한 화술”(225쪽)을 가졌고, 백낙준 연세대학교 제1대 총장이 말했듯 “입산수도, 개권출사, 퇴관흥학에 선변선천”(273쪽)하면서 얻은 선구안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겠다.

서정주 시인은 백 박사를 “이 나라의 사내들 가운데 가장 매력 있는 한 사람”(208쪽)이라고 평했고, 김재웅 법사는 “시공을 초월해 아시는 분”(406쪽)이라고 했다. 노재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는 “내 평생에 백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182쪽)이라고 회고했는데, 이러한 극찬이 추상이 아닌 실체임을 이 책은 입증하고 있다. 백 박사가 일군 도량에서 농사를 짓고 젖소를 키우고 불철주야 수행하면서, 그의 삶과 철학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학인들의 이야기는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소사에서 백 박사를 모시고 공부한 김원수는 그와 함께한 수행 생활을 이렇게 회고했다.

“소사에서의 일과는 아침 일찍 일어나 《금강경》을 읽고 ‘미륵존여래불’ 정진을 한 다음 선생님을 찾아 법문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식사는 하루에 두 번 하였는데 처음엔 공양주供養主 노릇을 하다가 목장 일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젖소 사육에도 본격적으로 참여하였다. 일할 때 올라오는 생각은 부지런히 부처님을 향해 바치는데, 잘 바쳐지지 않는 경우에는 그 생각에 대고 ‘미륵존여래불’을 염송하곤 하였다. 일과가 끝난 저녁에는 대략 정해진 시간에 《금강경》을 읽고 ‘미륵존여래불’ 정진을 했다. 바깥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낙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단조로운 생활, 조용하고 적막한 주위 환경 그리고 처음엔 부드럽게 보였던 도반들이 생각했던 것과 매우 다른 데서 오는 실망감 속에서 나는 까닭조차 알 수 없이 솟아오르는 춥고 무거운 마음을 바치고 또 바쳤다. 나에게는 바칠 것이 참으로 많고 많은 것 같았다.”(425-426쪽)

바다처럼 경계가 없고 각자의 형편에 맞는 말씀과 가르침

백 박사는 세상살이의 괴로움에 대해 늘 쉽고 명쾌한 답을 제시해주었다. 그래서인지 돈을 벌고 싶은 이, 알 수 없는 진통을 겪는 이, 참선해도 계속 번뇌하는 이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 이들이 많았다. 그는 각자의 형편에 알맞은 처방을 내려주면서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무슨 생각이든 바치는 연습을 하십시오.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읽으며 일어나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치십시오.”(395쪽) 어떤 궁리나 생각을 부처님께 바치고 또 바치는 공부를 하면, 분별이 사라지고 깨달음을 얻고 지혜가 생기는 것일까. 1967년부터 10여 년간 백 박사를 모시며 수행한 이광옥 법사는 처음 ‘미륵존여래불’ 하고 바치는 수행법을 알고 나서 “혼란한 인생에 드리운 밝은 빛줄기”(455쪽)와 같았다고 고백했다. 진진묘 보살은 “단순하고도 명쾌한 이 방편을 나는 온전히 믿고 실행하면서 어려운 고비들을 헤쳐나왔다”(547쪽)라고 회상했다.

백 박사의 후학들이 쓴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경은 바로 《금강경》이다. 김동규 법사의 글에 따르면, 백 박사는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읽고 일어나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칠 수 있으면 이것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의 기초가 되는 것”(376쪽)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금강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고, 《금강경》을 읽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백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금강경》을 읽되, 석가여래 당시 부처님 회상會上의 대중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앉아서 부처님 말씀을 직접 듣는 마음으로, 네 입으로 읽고 귀로는 직접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라.”(463쪽) “단 10분이라도, 단 한 시간이라도 순전히 너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봤느냐. 《금강경》을 읽는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다. 그래서 30분, 한 시간을 《금강경》을 읽되, 읽으면서 그걸 듣고 앉았으면 네가 오늘 뭘 생각하고 뭘 했는지 (오만 궁리나 네 생각이) 전부 거기에 묻어 나온다. 그것을 보라고 한 것이니라. 그래서 저녁에 경을 읽으면 하루 종일 산 일이 거기에 다 정리가 되고, 아침에 경을 읽는 것은 새날 새 일을 하기 위한 준비가 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에 재앙이 없으라는 뜻으로 읽는 거다. 자기를 오롯이 보기 위해서, 자기 정리를 위해서 경을 읽느니라. 자기 분별을 다 바치는 일이고, 바쳐지는 일이다.”(464쪽)

이처럼 백 박사의 법문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향하고 있었다. 붙들고 있던 마음을 쉬게 하고 밝게 사는 길을 보여주었다. 정천구 백성욱연구원 이사장은 “백성욱 박사의 법문 세계는 바다와 같았고 그 맛은 정말 일미였다”(609쪽)라고 소회를 밝혔고, 이선우 백성욱연구원 감사는 “생활 속에서나 법문하실 때나 어떤 잣대나 편견에 얽매이지 않으셨다. 그때그때 당시의 상황에 맞게 말씀해주셨다”(619쪽)라고 회고했다. 학생 신분으로 백 박사를 찾아뵙고 사사하면서 그가 열반에 들기까지 함께한 김강유 (주)김영사 회장은 그와 함께한 기억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돌이켜보면 사법邪法과 외도外道가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에, 정법이 있는 줄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운 좋게 눈 밝은 스승을 만나, 부처님께 마음 바치는 법을 배우고 《금강경》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천추千秋의 요행이었다. 불법을 만나지 못하고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하니 아찔하고 아슬아슬할 뿐이다. 부처님 말씀을 ‘자기 생각으로’가 아니라 ‘부처님 말씀대로’ 전할 수 있는 사람, 그분이 밝은 선지식 아닐까 생각한다.”(723쪽)

도량이 큰 수행자의 생애를 통해 배우는 마음과 세상

대학 강당에서, 소사 백성목장 마당에서, 법당에서 백 박사의 삶을 직접 본 이들의 느낌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러하다. “그는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이자 위대한 교육자이자 대인大人이었다.” 백 박사의 생애와 법문을 과거에 묶어두면 본질은 보이지 않고 사실만 드러날 뿐이겠지만, 백 박사의 세계와 뜻을 현재의 눈으로 재해석하며 진리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면, 그가 지금 우리에게 건네는 의미는 가슴 깊이 다가올 것이다.

백 박사는 학계에서 부단히 활동하며 동국대학교의 부흥과 재건에 앞장섰다. 1953년부터 1961년까지 8년간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남산 기슭에 동국대학교를 세웠고 교수들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문화예술의 발전에도 지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김도경 전 동국여자대학교 대학원장은 이렇게 썼다.

“백 총장님은 특히 문화예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맨 처음 대학에 연극학과를 창설했을 때 얼마나 많은 말을 들었는지 모른다. (...) 동국대학교 연극과 졸업생들이 지금껏 이 나라 연극·영화·방송 등 예술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음을 볼 때 격세지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오래 총장으로 계셨다면 예술대학을 창설하여 더욱 예술 분야를 발전시키셨을 것으로 믿는다.”(164-165쪽)

1965년 백 박사를 만나 3년여 동안 백성목장에서 수행한 학인 김동규는 교육에 대한 그의 노력을 이렇게 요약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일제 찌꺼기의 낡은 절과 한국전쟁 시절의 판자 교실을 뜯고,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남산 기슭을 헐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운동장, 석조전, 도서관, 본관 건물을 세워 우선 배움의 터전을 닦았다. 또 국내의 석학이란 석학과 재재다사在在多士들을 있는 대로 모으셨다. 그때의 교세는 하늘을 찌를 듯 충천하였고, 학생들의 사기와 자부심은 그 누구도 이를 당해내지 못하였다. 백 박사님의 왕성한 의욕, 넓은 도량, 날카로운 지모, 사자후를 닮아 우리 동국대학교는 한없이 뻗어나갔다.”(108쪽)

여러 학인들은 지금도 백 박사의 수행법을 따라 마음을 닦고 있다. 붙들고 있던 마음을 바치고 쉬면 문제라 여겨진 것들이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았다고 서술한다. 백 박사는 탐심과 진심과 치심을 닦는 수행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탐심貪心을 버린다는 것은 신체를 가진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알맞은 방법을 깨쳐야 하고, 탐심을 닦기 위해서는 남에게 베푸는 연습을 해야 하며, 보수 없는 일을 하는 데 게으르지 말 것.”(197쪽) “진심嗔心은 반드시 닦아야 하고, 한 번의 성냄이 백 가지 공덕을 태우게 될 것이니 인욕忍辱을 수양할 것.”(197쪽) “진심이란 원래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치심恥心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니, 이 어리석은 마음을 닦기 위해서는 남을 대할 때 그 사람들을 항상 나를 가르쳐주는 부처님으로 보아 공경할 것.”(197-198쪽) “이런 마음을 부지런히 연습하면 세상을 보는 마음이 맑아지고, 세속 만사에 미혹되지 않게 되고 점점 슬기로워져서 자신과 세상을 바로 알게 된다.”(198쪽)

1897년 음력 8월 19일에 태어나 1981년 태어난 날과 같은 날에 입적하신 백성욱 박사. 후학들은 금강경독송회, 청우불교원 금강경독송회, 바른법연구원, 백성욱 박사 교육문화재단, 백성욱연구원, 여시관을 세워 그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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