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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부처님과 금강경에 대하여
제1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제2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제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제4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제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제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제8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제9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제10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제11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제12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제13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제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제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제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제17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제19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제20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제21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제22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제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제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제25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제27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제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제29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제30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제31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제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금강경 추가 강의 1 금강경 추가 강의 2 백성욱 박사 연보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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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이 속한 반야부는 무엇인고 하니, “네 한마음이다. 네 한마음 밝아야 한다.” 그래서 반야부를 ‘영지보물令知寶物’이라 하는데, ‘자기 몸속에 있는 보배를 알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네 마음이 곧 부처다. 밝으면 부처다. 네 마음이 미迷하면 중생이다.” 이런 것을 얘기했어요.
--- p.17 “오직 네 마음이 밝아야 하겠다. 또 심지어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다 아니다. 그것은 네 마음을 가린 것이다. 오직 모든 것이 실상이 없는 줄 알 때, 네 마음이 밝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곧 밝은 이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아마 이 세상 인류가 창조된 이래 참 듣기 어려운 말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말이 없을 것이고, 현재에도 그런 말은 거의 없습니다. 우레가 치고 비가 오면 모두 하느님의 장난이라고 그랬지 “네 마음의 소산이다”라는 말을 한 이도 없었고, 또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고, 지금 이 시대에도 여러 사람이 그런 거 잘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의 골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 p.18 중국 사람들은, 골치 속이 복잡하고 그 복잡한 것을 비교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을 ‘안다, 깨닫는다’라고 했어요. 골치 속을 복잡하게 해 놓고, 그 밑에다 볼 견見을 할 것 같으면, 깨달을 각覺 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떻게 했는고 하니, 골치 속을 탕탕 비워 버렸단 말이야. --- p.35 이것은 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자기 마음속의 망념을 자꾸 부처님을 향한 마음으로 바꿨는지라, 실지로 제 마음속의 망념이 밝은 마음으로 바꾸어졌을 것 같으면 제 마음은 비었을 것입니다. 제 마음이 빈다는 것은 곧 다시 말하자면 지혜가 난다는 것입니다. --- p.69 “이런고로 법을 취하지도 말 것이며, 법 아닌 것[非法]을 가지지 말아라.” 말 들었거든 그대로 실행을 하지, 그것이 무슨 좋은 것이라고 하지도 말라. 왜 그러냐? 마음 닦는 방법도 가지지 말라는데, 마음 닦지 않는 방법을 가졌다간 더 안 되겠죠.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어요. “유불처에 부득주[有佛處不得住]” 하고, 즉 부처 있는 곳에도 머물지 말고, “무불처에 급주과[無佛處急走過]” 하라, 즉 부처 없는 곳에서는 급히 달아나라. 무슨 뜻인고 하니, 부처를 상대하면 자기 마음이 가린다. 어떻게 가려지는고 하니, “누대 월색을 운수거[樓臺月色雲收去]”, 즉 좋은 집에 달이 비쳤는데 [구름이] 그 달빛을 막아 버리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부처님’ 생각을 해도 그래요. 그러니까 내가 부처님을 생각한다면 [부처님과 오히려] 더 멀어지겠지, 뭐. 그럼 부처 없는 데는 어떻게 하나? 그건 아주 탐진치 삼독이 그대로 있어서 컴컴한 마음이니까, 그것은 근본 닦을 형편이 없게 돼요. --- p.96 “수보리야, 이른바 불법이라고 하면 곧 불법이 아니니라.” 내가 시방 얘기해 준 이 법이 여기서 마음 닦는 방법이라고 [집착]하면, 그것은 마음 닦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 말이야. 왜 그러냐? 이 ‘불법佛法’이라고 하는 뜻이 ‘마음 밝히는 방법’이라는 말이겠지, 만약 이것을 가지고 마음이 컴컴하다면 그것은 불법의 뜻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수보리야, 말한바 불법이라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니라” 했던 겁니다. --- p.113 세 번째는 인욕忍辱바라밀. 어리석은 마음을 위해 말씀하신 거예요. 어리석은 마음[癡心]이란, 제 잘난 생각입니다. 제 잘난 생각이면 우주가 정지되니까, 항상 자기가 못난 줄 알고, 자기가 자꾸 배우려고 들면, 지혜가 무한대로 발전이 돼요. 자기가 배우는 마음을 가지려면, 남이 무슨 말을 하든지 탓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것이 욕된 것을 참는 방법[즉 치심을 닦는 인욕바라밀]이다. --- p.121 자기가 배우는 마음을 낼 것 같으면 제가 잘난 생각은 없어질 것입니다. 제가 잘난 생각이 없어지면 남이 욕보인다고 그다지 뭐 고통받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우리가 몸뚱이를 가졌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 p.138 ‘반야’라는 것은 ‘지혜’라는 말이고 ‘바라밀다’라는 것은 ‘고생의 이쪽 언덕에서 고생을 여의는 저 언덕에 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경 이름을 다시 말하자면 ‘마음을 닦아서, 그 마음을 밝게 하여 다시 컴컴해지지 않는 법’입니다. --- p.168 여기 32상이라는 새로운 술어가 나옵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어떤 작용을 내느냐? 자기 몸뚱이가 있는지라 탐심貪心에 의지해서 작용을 내고, 또 자기 몸뚱이 보호한다는 입장에서 성내는 마음[嗔心]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또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 어리석은 마음[癡心] 곧 자기가 안다는 그런 마음, 이 세 가지[三毒心]로서 자기를 나타내게 되니까, 만일에 그것을 바꾸면 모양이 다르겠지요. --- p.174 모든 것이 원인 지어서 결과라면, 남이 복 지어서 잘되는 것을 보고 시기할 것이 없어요. 자기가 하는 것이 좋고, 또 자기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언제라도 무슨 생각이 들거나 무슨 일을 만날 적에 제 마음 들여다보고 해결하면 퍽 좋고, 제 마음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닦아서] 준비되면, 이 세상은 사실 낙樂의 세계이지 고苦의 세계는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 p.200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 베풀면, 그 순간부터 ‘이 사람이 이걸 잘 갚아야 하겠는데…’ ‘잘돼야 하겠는데…’ 하여 그때부터 그 사람에게 그만 물질과 마음이 붙어 가서 자기 자유를 전연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행할 때 어떤 보수를 기다렸거나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한다면, 마치 사람이 컴컴한 데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자기 마음도 컴컴해지고 주위도 컴컴해진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자기 마음이 한군데로 들어가니까 절대로 자유가 있지 않은 것입니다. --- p.210 남을 제도한다는 것보다도 ‘나’와 ‘남’이 그냥 없어지게 되고, 곧 자기 행동이 우주에 그냥 통하게 되는 것, 이것을 대승[흰 소 수레]이라 하고 최상승最上乘이라고 말하게 되었어요. 이 우주라는 것은 모두 원인 지어서 결과가 되기 때문에 서로 이렇게 마주쳤거든요. 자기가 아무리 수도를 해서 이걸 뺀다고 하더라도, 여기 이것 자체는 있어서, 언제라도 자기가 약할 때 이것이 들어와집니다. 그러니까 애당초에 이것을 맞푸는--- p.동시에 해결하는) 일은 무엇이냐 하면, 내 마음을 닦는 동시에 밖의 그 고생스러운 것을 자기가 실지로 침투해서 해결을 해 보고, 해결하면서 제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 p.223 여기서 ‘모신다’는 것은 그이 시중을 들어서 그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까 진심嗔心을 닦는 것이죠. ‘공연히 지낸 것이 없다’는 것은 자기의 그 제 잘난 생각을 없앴다는 말입니다. 공양供養(음식과 예를 바침), 승사承事(받들어 섬김), 무공과無空過(헛되이 지냄이 없음), 이것은 탐?진?치 삼독[의 수행]을 말하는 거예요. --- p.244 석가여래가 이십 년 설법하고 나서 보니까, 그 사람들은 마음이 그냥 부처를 향하면 그냥 부처거든. 이제 고정만 되면 그냥 성리 밝겠단 말입니다. 모두 보니 참 모두 부처란 말입니다, 그냥 석가여래를 향하고 앉았는 것이. 그 수천이 죄 부처거든. 그래서 ‘아하! 한마음 닦아 성불成佛이로구나!’ ‘한마음이 그냥 부처를 증證하면 그냥 밝구나.’ 이렇게 말이 뚝 떨어지니까, 이 사람들 마음이 ‘옳지 내 마음이지’ 이러니까, 모두 캄캄해 버리거든. 저를 향向해 버렸으니까. 그런데 오직 한 사람이 유난히 밝더라 그 말입니다, 그 마음이. 그런데 그 사람은 어째서 그런가 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 마음 닦아 성불하는구나” 그렇게 말하니까 좋아서, 모두 ‘내 마음이지’ 그래서 제 마음 들여다보니, 제 마음이 캄캄하니까 모두 캄캄한 마음인데, 오직 한 사람이 ‘참 고맙습니다. 이런 말은 이건 밝은 이가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앉았다, 그 말입니다. 그 사람을 보니까 그냥 안팎이 없이 그대로였어요. 그 사람이 그냥 밝아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너는 내 뒤를 이어서 부처가 될 것인데 네 이름은 ‘미륵존여래彌勒尊如來’라 하리라” 했다 그랬거든. --- p.258 ‘보살’이란 무엇이냐? 위로 부처님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 모르는 이를 가르쳐 준다. 그러면 모르는 이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 어떤 것이냐? ‘부처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모르는 이를 가르쳐 줄 것 같으면, 제 마음에 ‘밝은 이’를 증證(새김)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이를 자기가 가르쳐 주겠다’ 할 것 같으면, 제 마음에 ‘모르는 이’를 증하니까, 결국은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남을 제도한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저는 모르는 사람이 되게 되니까, 부처님 국토는 장엄할 수가 없어요. --- p.266 “닦는 보살이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무리까? 닦는 보살이 어떻게 (그렇게) 항복을 받으리까[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그럴 적에 “모든 세상 사람을 다 부처 만들겠다고 해라. 그렇게 만들고 나면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 없느니라.” 그 소리는 무엇인고 하니, ‘네 마음속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면 한 중생, 두 생각 일어나면 두 중생, 이런 것을 전부 부처 되게 하겠다고 해라. 그래 그것이 죄 부처 된다면 그럼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 없느니라’ 한 것은 네 마음이 그만큼 비었느니라, 그 말입니다. --- p.283 “그러니까 복덕이 없다. 그러니까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하느니라.” 이런 것도 《금강경》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복덕이 있다. 복덕이 없다. 복덕이 있다.’ 이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이게 마음 닦는 것인 줄 알면 여러분들도 해석이 잘될 것입니다. --- p.293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제 잘난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불법佛法을 하더라도 밝아지지 않는다, 껌껌해진다. 그러니까 너희가 불법이라고 해도 그것이 탐/진/치 삼독을 연습하는 한, 불법이라고 할 수가 없겠다. 탐진치 삼독만 없다면 무엇이든지 다 불법일 것이다. --- p.358 자꾸 부처님께 바치면 참은 궁리가 하나도 없거든. 자, 그 말을 들어 보니 《금강경》이 맞는 것이, “다 부처님 만들겠다고 해라, 다 만들고 나면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 없느니라” 그러거든. 왜 그러냐 하면, 궁리를 자꾸 바치면 결국은 어떻게 돼요? 제 궁리라는 건 컴컴한 거거든. 컴컴한 걸 밝은 곳으로 드러내 내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컴컴한 것이 없어지지요. 컴컴한 것이 없어지니까 자기가 궁리했던 것 또한 사라질 겁니다. --- p.361 《금강경》을 처음 열면 마음을 항복 받는 것, ‘항복기심降伏其心’이 나오는데, 항복기심, 이 넉 자만 1,000일만 전념해서 연습하면, 자기에 대한 불만이라는 것은 어떤 근거가 없기 때문에, 다 알아지고 마는 거예요. 이것을 처음 입문이라고 할 것 같으면, 두 번째 단계는 무엇이냐? “마음을 어떻게 쓰리까?” 마음을 어떻게 쓰는고 하니, “어디든지 주함이 없이 그 마음을 내 봐라.” --- p.363 지금 우리가 이 《금강경》을 놓고 읽는 것은, 3,000년 전 석가여래를 향해서, 우리가 자꾸 아침저녁으로 시간 있는 대로, 자꾸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 연습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 마치 장님을 보고서, 자꾸 해를 향해서 환한 생각을 해 보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금강경》 읽는 사람들은, 첫째 그것을 믿어서 의심치 말 것. 둘째는 자신이 그 석가여래 제자들 틈에 끼어서 석가여래 말씀을 듣되 그 내용을 알려고 노력할 것. 셋째는 안 것을 실행하도록 노력할 것. --- p.366 남의 얘기를 들으면 다 아는 것 같아요. 다 아는 것 같지만, 글로 받아 써 보면 우리가 들어서 아는 것하고는 엄청나게 거리가 멉니다. 또 글로 써 봤다가도 실제로 실행해 보지 않으면 그 내용을 잘 모르는 겁니다. 처음엔 알려고 하고, 알고 나거든 실행을 해 봐야 합니다. 실행해 봐야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었으며, 《금강경》 말씀이 어떻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371 그러나 《금강경》 읽는 거로는 만족스럽지 않아요. 《금강경》을 읽고 또 그 《금강경》을 실행해 보자는 겁니다. 실행해 보면 아주 재밌는 일이 많이 있는 겁니다. 아마 한 1,000일 실행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지혜가 폭발하는 걸 많이 보게 돼요. --- p.380 여기서는 색다른 것이, 실행을 한다는 거예요. 장엄불토莊嚴佛土라는 것도 실행이고, 《금강경》을 펼쳐 보면 모두 실행할 것이에요. --- p.381 그래서 현재 현재가 진실하면, 미래 미래는 완전할 겁니다. 그건 누구든지 부인 못 할 겁니다. 현재 현재에 자꾸 일어나는 생각을 “부처님, 부처님” “미륵존여래불” 해 보라는 겁니다. 모르면 몰라도 부처님이 밝은 뜻이라면 우리가 밝지 않을 수 없고, 만약 우리가 밝는다면 컴컴한 것한테 미혹 당하지는 않을 거예요. --- p.387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왜 자기가 다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 그 생각은, 그게 자기自己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곧 자기를 자꾸 미워하는 것이거든. 이런 것을 ‘미迷한 짓’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자기)를 아무리 좋게 하려고 해도 곧이들리지 않고 안 될 적에는, “모든 세상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하길 발원” 이러면 마음이 선[立]다 그 말이에요. --- p.398 그래서 이거 《금강경》을 실행만 하면, 실행하는 한 번 한 번에 자꾸 이利해요. 그러고 재미있는 것이, 처음에는 도무지 막연해서 알 것 같지 않은데, 자꾸만 하면 느닷없이 알아져요. 이건 내가 경험을 해 본 것이고, 여러분도 경험을 쌓으면 얼마나 편안한지 알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아침저녁 부지런히 《금강경》 읽고 무엇이든지 부처님께 바치자 그 말입니다. --- p.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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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닦아서, 그 마음을 밝게 하여 다시 컴컴해지지 않는 법”
독창적인 시각과 해석이 돋보이는 백성욱 박사의 《금강경》 해설서 불교의 기원과 의미, 부처님의 일생부터 시작하여 한국 불교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을 입체적으로 해설한 백성욱 박사의 독창적인 금강경 강화講話를 한 권에 담았다. “오직 네 마음이 밝아야 하겠다.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다 아니다. 그것은 네 마음을 가린 것이다. 오직 모든 것이 실상이 없는 줄 알 때, 네 마음이 밝을 것이다.” 3,000년 전 부처님이 솔직하고 간단하게 말씀하신 바를, ‘시대의 활불活佛’이라 불렸던 선지식 백성욱 박사가 일반 대중을 위해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 1959년 백성욱 박사의 동국대학교 강의를 바탕으로, 문도들의 사가에서 설한 추가 강의까지 정리하여 함께 실었다. 난해하고 현학적인 경전 해석이 아니라, 내 마음을 밝히고 그 마음을 바르게 쓰는 법, 즉 ‘《금강경》을 실행하는 법’에 온전히 초점을 맞추고,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들과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에게 일상의 실천을 권면한다. 가장 널리 유통되는 구마라집의 봉조역奉詔譯에 백성욱 박사가 현토懸吐를 달고 정리한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저본으로 육성 강의의 현장 느낌을 충실히 살리되, 필요한 부분에는 풍부한 설명을 추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시대의 활불, 백성욱 박사의 동국대 금강경 강화 ‘반야’라는 것은 ‘지혜’라는 말이고 ‘바라밀다’라는 것은 ‘고생의 이쪽 언덕에서 고생을 여의는 저 언덕에 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경 이름을 다시 말하자면 ‘마음을 닦아서, 그 마음을 밝게 하여 다시 컴컴해지지 않는 법’입니다. (168쪽) 1924년, 27세의 나이에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원 철학과에서 불교순전철학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인준받은 한국인 최초 독일 철학박사. 1919년 한용운과 함께 3·1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상해임시정부와 한반도를 오가며 독립신문 제작에도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귀국 후 동국대학교 전신인 불교 전수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교육자, 1929년 금강산에 입산하여 10년을 정진한 수도자, 해방과 함께 민중 계몽운동과 건국운동을 실천한 제4대 내무부장관, 6·25 전쟁 직후 8년에 걸쳐 동국대 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제2대 동국대학교 총장. 그리고 1962년, 65세에 경기도 부천군 소사의 야트막한 산을 개간하여 ‘백성목장白性牧場’을 경영하면서 20년 가까이 《금강경》을 강화하고 인연 있는 후학을 지도했던, ‘시대의 활불’이라 불린 선지식善知識. 백성욱 박사를 일컫는 말은 이처럼 다양하고 특별하다. 조계종 초대 종정에 추대된 방한암 선사가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수행하던 그를 위해 친히 끼니를 나르며 격려했고, 춘원 이광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금강산까지 찾아와서 마음을 터놓았으며, 미당 서정주가 “한반도 5,000년 역사 가운데 여자로서는 선덕여왕이 가장 매력적이고, 남자로서는 백성욱 총장이 가장 매력적인 남자”라고 회고했던 인물. 백성욱 박사가 근현대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이처럼 넓고 다채롭지만, 불교를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까지도 《금강경》을 손에 들고 독송하도록 이끈 그의 영향력은 남달랐다. 1945년 광복 무렵부터 생활 속의 수행법으로써 《금강경》 독송을 강조했던 백 박사는 동국대학교 총장 시절, 학생들을 비롯해 누구라도 와서 들을 수 있는 금강경 강화를 교내에 개설했다. 딱딱하고 어려운 경전 강독이 아니라 이웃집 할아버지의 이야기보따리와도 같았던 그의 강의는 그래서 ‘강화講話(쉽게 풀어서 이야기하는 강의)’라고 불렀고, 그중 1959년 동국대학교 서울 캠퍼스에서 1,200여 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했던 여러 번의 금강경 강화가 이 책의 모태가 되었다. 《금강경》을 읽고 공부하는 또 다른 방법 “오직 네 마음이 밝아야 하겠다. 또 심지어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다 아니다. 그것은 네 마음을 가린 것이다. 오직 모든 것이 실상이 없는 줄 알 때, 네 마음이 밝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곧 밝은 이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아마 이 세상 인류가 창조된 이래 참 듣기 어려운 말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말이 없을 것이고, 현재에도 그런 말은 거의 없습니다. 우레가 치고 비가 오면 모두 하느님의 장난이라고 그랬지 “네 마음의 소산이다”라는 말을 한 이도 없었고, 또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고, 지금 이 시대에도 여러 사람이 그런 거 잘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의 골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18쪽) 1959년 동국대 강의와 개인이 소장 중이던 다양한 추가 강의의 릴 테이프를 녹취한 다음, 여러 명의 학인(제자)이 반복 청취하며 다듬고 보강한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 부처님과 금강경에 대하여: 부처님의 일생과 불교의 큰 흐름을 살피고, 《금강경》이 나오게 된 시대적·지리적·교리적 배경을 밝힌다. (2) 금강경 32분 해설: 1959년 동국대 대중강연 내용으로, 32분 순서에 따라 대의를 짚어가며 《금강경》 원문을 해설한다. (3) 금강경 추가 강의: 학인들에게 별도 강의한 내용으로, 《금강경》 공부를 위한 조언과 경 전반에 걸친 심화 설명을 담았다. 《백성욱 박사의 금강경 강화》는 그동안 나온 수많은 금강경 해설서와는 다른 몇 가지 차별점을 지닌다. (1) 문자적 해석을 포함하되, 마음을 밝히고 어떻게 그 마음을 쓸 것인지에 대한 참신한 비유와 사례, 설명이 풍부하다. 경전의 문자적 독해보다는 ‘마음 닦는 법의 실행’에 초점을 맞추어 내용을 풀어간다. 《금강경》의 한문과 논법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금강경》의 여러 말씀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이게 마음 닦는 것인 줄 알면 여러분들도 해석이 잘 될 것입니다.”(294쪽) (2) 문화·지리·경제·정치·종교·철학·역사·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 종합 인문 교양서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시야를 불교 경전 바깥으로까지 확장하는 다양한 주제를 두루 담고 있어서, 백성욱 박사의 강의가 왜 일반 대중에게도 인기를 끌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현대에 와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까지 조사·보강하여 내용의 신뢰도를 한층 높였다. (3) 불교 기초 및 전반에 관한 광범위한 내용을 포괄하여, 불교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 붓다·보살·보시·아수라·육바라밀 등 자주 듣는 용어들의 어원뿐만 아니라 4향4과四向四果·오시팔교五時八敎·육사성취·차제설법次第說法 등 한층 깊은 내용도 다루며, 그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이 함께 펼쳐지면서 독자를 불교의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왜 자기가 다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 그 생각은, 그게 자기自己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곧 자기를 자꾸 미워하는 것이거든. 이런 것을 ‘미迷한 짓’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자기)를 아무리 좋게 하려고 해도 곧이들리지 않고 안 될 적에는, “모든 세상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하길 발원” 이러면 마음이 선[立]다 그 말이에요. (398쪽) 《금강경》 읽는 사람들은, 첫째 그것을 믿어서 의심치 말 것. 둘째는 자신이 그 석가여래 제자들 틈에 끼어서 석가여래 말씀을 듣되 그 내용을 알려고 노력할 것. 셋째는 안 것을 실행하도록 노력할 것. 남의 얘기를 들으면 다 아는 것 같아요. 다 아는 것 같지만, 글로 받아 써 보면 우리가 들어서 아는 것하고는 엄청나게 거리가 멉니다. 또 글로 써 봤다가도 실제로 실행해 보지 않으면 그 내용을 잘 모르는 겁니다. 처음엔 알려고 하고, 알고 나거든 실행을 해 봐야 합니다. 실행해 봐야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었으며, 《금강경》 말씀이 어떻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371쪽) 밝은 마음 실행할 수 있어야 곧 반야바라밀 한국인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이면서도, 백성욱은 난해한 불교 이론을 언급하기보다는 오히려 내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언제나 강조한다. 탐·진·치 삼독을 자기 마음 들여다보는 도구이자 마음 밝히는 도구로 쓰면서, 일상의 언어로 이를 설명하는 내용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신선하다. 어리석은 마음[癡心]이란, 제 잘난 생각입니다. 제 잘난 생각이면 우주가 정지되니까, 항상 자기가 못난 줄 알고, 자기가 자꾸 배우려고 들면, 지혜가 무한대로 발전이 돼요. 자기가 배우는 마음을 가지려면, 남이 무슨 말을 하든지 탓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것이 욕된 것을 참는 방법, 즉 치심을 닦는 인욕바라밀입니다. (121쪽) 여기서 ‘모신다’는 것은 그이 시중을 들어서 그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까 진심嗔心(성내는 마음)을 닦는 것이죠. ‘공연히 지낸 것이 없다’는 것은 자기의 그 제 잘난 생각(어리석은 마음)을 없앴다는 말입니다. 공양供養(음식과 예를 바침), 승사承事(받들어 섬김), 무공과無空過(헛되이 지냄이 없음), 이것은 탐?진?치 삼독[의 수행]을 말하는 거예요. (244쪽) 자기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 순간 무엇을 증證(새김)하는지에 따라 ‘밝은 이’가 되기도 하고 ‘캄캄한 이’가 되기도 하며, 결국 ‘생활 속의 수행’이란 자기 마음을 닦는 동시에 일상의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해가는 과정이라는 그의 설명과 다양한 사례들은 기존의 난해한 《금강경》 해석들을 뛰어넘어 듣는 이의 가슴에 단순명쾌한 울림을 남긴다. ‘부처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모르는 이를 가르쳐 줄 것 같으면, 제 마음에 ‘밝은 이’를 증證(새김)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이를 자기가 가르쳐 주겠다’ 할 것 같으면, 제 마음에 ‘모르는 이’를 증하니까, 결국은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남을 제도한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저는 모르는 사람이 되게 되니까, 부처님 국토는 장엄할 수가 없어요. (266쪽) 남을 제도한다는 것보다도 ‘나’와 ‘남’이 그냥 없어지게 되고, 곧 자기 행동이 우주에 그냥 통하게 되는 것, 이것을 대승이라 하고 최상승最上乘이라고 말하게 되었어요. 이 우주라는 것은 모두 원인 지어서 결과가 되기 때문에 서로 이렇게 마주쳤거든요. 자기가 아무리 수도修道를 해서 이걸 뺀다고 하더라도, 여기 이것 자체는 있어서, 언제라도 자기가 약할 때 이것이 들어와집니다. 그러니까 애당초에 이것을 맞푸는(동시에 해결하는) 일은 무엇이냐 하면, 내 마음을 닦는 동시에 밖의 그 고생스러운 것을 자기가 실지로 침투해서 해결을 해 보고, 해결하면서 제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223쪽) ‘마음 닦는 사람이 어떻게 마음을 쓰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으리까?’라는 수보리 존자의 물음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 이것이 《금강경》의 시작이었다면, 백성욱 박사의 금강경 강화에서는 그 마음을 ‘밝은 이’, 곧 부처님에게 향하고 바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자기 마음속의 망념을 자꾸 부처님을 향한 마음으로 바꿨는지라, 실지로 제 마음속의 망념이 밝은 마음으로 바꾸어졌을 것 같으면 제 마음은 비었을 것입니다. 제 마음이 빈다는 것은 곧 다시 말하자면 지혜가 난다는 것입니다. (69쪽) 자꾸 부처님께 바치면 참은 궁리가 하나도 없거든. 자, 그 말을 들어 보니 《금강경》이 맞는 것이, “다 부처님 만들겠다고 해라, 다 만들고 나면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 없느니라” 그러거든. 왜 그러냐 하면, 궁리를 자꾸 바치면 결국은 어떻게 돼요? 제 궁리라는 건 컴컴한 거거든. 컴컴한 걸 밝은 곳으로 드러내 내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컴컴한 것이 없어지지요. 컴컴한 것이 없어지니까 자기가 궁리했던 것 또한 사라질 겁니다. (361쪽) 현재 현재가 진실하면, 미래 미래는 완전할 겁니다. 그건 누구든지 부인 못 할 겁니다. 현재 현재에 자꾸 일어나는 생각을 “부처님, 부처님” “미륵존여래불” 해 보라는 겁니다. 모르면 몰라도 부처님이 밝은 뜻이라면 우리가 밝지 않을 수 없고, 만약 우리가 밝는다면 컴컴한 것한테 미혹 당하지는 않을 거예요. (387쪽) 바로 지금, 오늘의 일상에서 내 마음 밝고 바르게 쓰자는 백성욱 박사의 권유는, 부처님이 《금강경》을 말씀하셨던 그 자리에 동참하여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자는 권유와 다름없다.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공덕을 쌓기 위해 무작정 독송에 몰두했던 사람들, 반대로 경전의 해석에만 매몰되어 어떻게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하는지 막막했던 독자들에게도 이 책 속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그 ‘달’을 바로 보는 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이것이 강의 후 6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백성욱 박사의 금강경 강화》를 다시 펴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강경》 읽는 거로는 만족스럽지 않아요. 《금강경》을 읽고 또 그 《금강경》을 실행해 보자는 겁니다. 실행해 보면 아주 재밌는 일이 많이 있는 겁니다. 아마 한 1,000일 실행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지혜가 폭발하는 걸 많이 보게 돼요. (380쪽) 그래서 이거 《금강경》을 실행만 하면, 실행하는 한 번 한 번에 자꾸 이利해요. 그러고 재미있는 것이, 처음에는 도무지 막연해서 알 것 같지 않은데, 자꾸만 하면 느닷없이 알아져요. 이건 내가 경험을 해 본 것이고, 여러분도 경험을 쌓으면 얼마나 편안한지 알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아침저녁 부지런히 《금강경》 읽고 무엇이든지 부처님께 바치자 그 말입니다. (39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