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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소나기]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김동리 [무녀도] 김유정 [봄봄] 현진건 [운수 좋은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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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가 막 달린다. 갈밭 사잇길로 들어섰다. 뒤에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갈꽃뿐. ---「황순원 [소나기]」중에서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중에서 문득 김 첨지는 미칠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 [운수 좋은 날]」중에서 “성례시켜달라지 뭘 어떡해.”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빨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질을 친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되는 심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뒷모양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김유정 [봄봄]」중에서 봉창에서 방 안으로 붙어 들어가는 불길을 덮쳐 끄는 순간, 뒷등허리가 찌르르하여 휙 몸을 돌이키려 할 때 이미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은 허옇게 이를 악물고 웃음 웃는 모화의 품속에 안겨져 있었다. ---「김동리 [무녀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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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과거 세대가 살아온 한 시절, 지금은 잃어버린 풍경들과 잊혀진 얼굴들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스크린이 아닌 책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되살아난 [소나기]의 소년·소녀,[메밀꽃 필 무렵]의 동이, [무녀도]의 낭이와 [봄봄]의 점순이, 그리고 [운수 좋은 날]의 경성 인력거꾼을 함께 만나러 가보자.
20대 한 남성의 사랑을 이루기 위한 고군분투를 해학적으로 그려낸 김유정의 [봄봄] 40대 가장의 어느 하루를 통해 본 경성 골목의 명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그리고 60대에 돌아보는 삶의 회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슬퍼도 웃어야 했던, 고달파도 기어이 살아내야 했던 인생들의 사연 많은 얼굴을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되살려 생기를 불어넣었다. ▷ 수록 작품 명장 안재훈 감독의 3만 장이 넘는 애니메이션 원화가한국의 아름다운 명작 단편소설로 피어났다! 첫사랑의 기억을 오롯이 담아낸, 황순원 [소나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충돌, 김동리 [무녀도] 머슴 데릴사위의 결혼을 위한 투쟁기, 김유정 [봄봄] 인력거꾼의 슬픈 발걸음, 현진건 [운수 좋은 날] ▷ 여는 글 미래를 위한 아름다운 편지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이다. 한국 단편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일은 가히 무섭고도 기가 막힌 일이었다. 단편문학에 대한 한국인 머릿속의 형상은 각자의 기억과 사연과 함께 자리를 잡고 있어 누구 하나가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할리우드와 일본 애니메이션이 자국의 언어와 이야기로 어른의 지성과 아이들의 감성에 깊은 영향을 주는 일을 지켜보았다. 한글로 쓰인 한국문학이 우리가 살아가는 땅과 정서를 담은 애니메이션이 되어 세계 곳곳에서 상영되고, 빠른 경제 성장으로 세대 간의 멀어진 고리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엮이었으면 하고 다른 나라의 창작자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순간, 한국 단편문학이 제시할 수 있는 가치는 옛것으로의 복고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해석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은 관객에게 쓰는 나의 연애편지다. 커다랗게 비어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한 구간을 정성스레 채우는 일이다. 연필로 명상하기 안재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