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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
양장
윤희상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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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_ 5

1부
몸에게 말하다_ 12
세 사람과 오토바이_ 14
창밖의 나무_ 16
옹이_ 18
어떻게 살면 좋으냐_ 19
하늘이 보았다_ 20
이 땅의 샤머니즘_ 22
홍운탁월_ 24
산에 들에 꽃이 피고_ 25
소가죽 구두_ 26
땅이 책이다_ 27
겨울 저수지_ 28
달_ 29
마포는 출발이다_ 30
힘내라, 번역가_ 32

2부
가끔, 그럴 때가 있다_ 34
범해 스님 법문_ 35
열 번의 겨울과 열한 번의 봄_ 36
환기미술관_ 37
소설가 최인훈 선생님 묘소를 내려오면서_ 38
몸이 불편한 당신은_ 39
다람쥐길_ 40
옹기 수화문_ 42
흘러간 노래_ 44
너무나 인간적인_ 46
하늘은 푸르다_ 47
새끼는 죄가 없다_ 48
자본주의 사랑_ 49
신문 중독자_ 50
마지막 한 사람_ 54

3부
시_ 56
말과 정치_ 58
색으로 기억하다_ 59
사진 안에 내가 있다_ 60
다시 광주에서_ 62
refugee_ 63
두 가지 방법의 평화_ 64
동물의 왕국_ 65
용이 사는 연못을 용연이라고 한다_ 66
일기, 2016년 4월 13일_ 67
식민지 경영법_ 68
두물머리_ 69
조선대학교부속중학교_ 70
부여를 사랑했다_ 72
종교학자 정진홍 선생님 말씀_ 74

4부
나무_ 76
시인_ 77
명품 옷을 입는 이유는_ 78
이장우_ 79
홍어 문화권_ 80
집안의 내력_ 81
치약 튜브의 구멍이 작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_ 82
시계_ 84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_ 85
구진포 장어구이_ 86
어린 날의 풍경_ 88
호원이네 집_ 90
도보승_ 92
보타사 금동보살좌상_ 94
보타사 마애보살좌상_ 96
보타사 여름 자목련_ 98
카페 평화만들기_ 100
일기, 2020년 4월 15일_ 101
황현산 선생님 생각_ 102
시인에게_ 104
익숙한 것들이여, 안녕_ 105
마지막 말_ 106

해설 류신 | 벌초된 언어와 체념의 시학 _ 107

저자 소개 1

1961년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남 나주시 영산포 조선시대 제민창 터에서 태어났다. 광주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9년 『세계의문학』에 「무거운 새의 발자국」 외 2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줄곧 편집자로, 편집회사 대표로 오래 일했다.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소를 웃긴 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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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22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266g | 132*207*13mm
ISBN13
9788982182891

출판사 리뷰

“오직 한 사람만 알고 있는 말”

자니는 날카로운 칼로 팔목에 선을 그었다
선영은 허벅지에 문신했다
미키는 젖꼭지에 피어싱했다

피 흘렸다

아파도, 아프지 않았다

누가 읽거나 말거나,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 알고 있는 말이 있다

말의 뿌리를 알 수 없다

어쩌다가, 혹시 누가 읽었다고 했을 때,
그 말은 이미 좀처럼 열리지 않는 방으로 들어간 뒤였다
-「몸에게 말하다」 부분

윤희상 시인은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의식으로서의 언어, 즉 사회적 공론장에서 소통되는 언어의 중요성 못지않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 알고 있는 말”의 절대적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후자의 말은 생의 환희와 행복의 기쁨에서 발화되기 어렵다. 대개 ‘오직 한 사람만 알고 있는 말’은, 실존적 고독에서 촉발되어, 삶의 비애로 빚어지며,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담금질 된다.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따져 물으며 최후 결단을 내릴 때 내지른 내면의 절규 같은 것이 ‘오직 한 사람만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러니, 이 말은 몸을 통해 밖으로 발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체에 아로새겨진다. 이때, 몸은 말의 매체가 아니다. 몸은 언어의 메가폰이 아니다. 몸은 언어의 기관이 아니다. 몸은 말의 출구가 아니다. 몸은 말의 마지막 귀착점이다. 그렇다. 몸 자체가 말이다. 몸은 육화된 언어인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피를 흘린다.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이 ‘위험한’ 말을 읽어내야 한다. 고독한 실존이 세계를 향해 타전하는 암호와 같은 구원의 몸짓에 주목해야 한다. ‘몸을 통해 말하는 자’가 아니라 ‘몸에게 말하는 자’의 비명을 감청해야 한다. 이것이 시인에게 부여된 특명이다. 하지만 시인의 고백처럼, “자니”, “선영”, “미키”가 몸에게 말한 뜻을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말의 뿌리를 알 수 없다”). 가까이 다가가면, 이 말은 밀실로 들어가 잠복하기 때문이다(“그 말은 이미 좀처럼 열리지 않는 방으로 들어간 뒤였다”). 고통으로 다듬어진 말은 좀처럼 일상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이들의 언어는 창문 없는 단자(Monad)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자. 이 말을 해독할 일말의 희망은 있다. 그 단초를 「겨울 저수지」에서 찾을 수 있다.

외딴 산골 겨울 저수지 얼음 위에
돌을 던진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다
누구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사람이다
돌은 말이 되기 위해
찬바람을 맞으며
얼음이 녹는 봄까지 견뎌야 한다
돌이 말이 되어 가닿는 곳은
저수지의 마음자리일 것이다
아무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겨울 저수지」 전문

한겨울 결빙된 저수지 위에 내던져진 차가운 돌은 창문 없는 독방에 밀폐된 언어로 읽힌다. 겨울 한파가 물러가고 따듯한 봄이 다가오면 꽁꽁 얼어붙었던 호수의 표면이 차츰 녹기 시작할 터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다. 여기서 시인은 결빙되었던 수면이 녹아서 종국에는 돌이 저수지 밑바닥으로 하강하는 순간에 주목한다. 이 순간이 결정적인 이유는, “저수지의 마음자리”에 돌이 가닿는 순간, 그동안 해독을 불허했던 고통의 언어가 처음으로 창문을 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다.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고통의 언어에게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 고통의 언어를 위무하는 시인에게도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심이 웅숭깊어야 경화(硬化)된 고통의 언어를 품어 안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저수지의 마음자리”는 윤희상 시인이 희원하는 시혼의 좌표, 즉 그의 시에 내재한 ‘장소의 정령(genius loci)’이다.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 중 수작으로 꼽히는 「겨울 저수지」의 전언을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아픔이 남긴 흉터에서 새살이 돋듯, 생의 고통 속에서 시의 언어가 움튼다. 돌이 말이 되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 언어를 자신의 지배에 두겠다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언어를 도구화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언어가 자신의 현존을 스스로 증명하도록 기다려야 한다. 고통은 자신의 현존과 더불어 오늘도 언어에게로 가고 있다. 돌이 언어가 될 때까지, 시인은 호수 밑바닥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이 응답 없는 기다림을 위해 필요한 덕목이 있다. 바로 체념의 기술이다. 이때의 체념은 허무주의적 패배의식에 빠진 자의 무책임한 포기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한 자의 최종 귀결점이다. 이때의 체념은 행위의 중단이 아니라, 반성이자 자각이며 결심이 된다. 포기는 힘에 굴복하는 것이지만 체념은 스스로 힘을 거두어 자신과 독대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모색하는 일이다. “행여나, 어떤 곳이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체념 속에 ‘아마도, 새로운 어떤 곳이 있지 않을까’라는 한 줌의 희망과 기대가 움틀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시는 채집하고 포획한 언어의 재물로 쌓은 화려한 예술의 왕국이 아니다. 시는 무한무변한 사막의 모래밭에 희미하게 남은 오토바이 바퀴 자국 같은 것일지 모른다. 이것이 슬프게 체념을 배운 자의 아르스 포에티카(ars poetica), 즉 윤희상의 시학이다.


■ 시인의 말

이 세상은 말로 이루어졌다.
꽃도 말 안에서 피고 진다.
사람도 말 안에서 살고 죽는다.
당연히 사랑도 그렇다.
과학이다.
더러 그것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말을 믿는다.
시인은 그런 사람일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더 살 수 있다면,
아직 말이 스미지 않은 곳으로,
그래서 보다 더 낯선 곳으로 가고 싶다.

추천평

윤희상의 시에는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이 녹아 있다. 절간 당간 지주 끝에서 흔들리는 것은 깃발도 바람도 아닌 마음이듯이, 창밖에서 흔들리는 나뭇잎도 매한가지다. 시인은 “흔들리면서 피는 꽃도 내가 피운 것/흔들리는 나뭇잎도 내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계수나무가 자라는 ‘달’도 그렇고, 내가 믿는 ‘신’도 그러하며, 보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보타사 여름 자목련’도 그렇다. 내가 없으면 세계가 없고, 마음 밖에는 사물이 없다. 달을 그리지 않고 어둠을 그리는 ‘홍운탁월’의 화법처럼, 그의 시선은 사물 뒤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향한다. 시인의 언어는 감미롭지도 화사하지도 않다. 이름 없는 도공이 빚어낸 ‘옹기 수화문’처럼, 무심하게 일상 언저리에 놓여 있다가 안 보이면 문득 서운한 게 그의 시다. - 이승환 (철학자, 고려대학교 교수)
윤희상은 천상 시인이다. 그는 한겨울 깜깜한 호수의 심연에서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의 말을 품어 안는다. 그의 시의 심장이 따뜻한 연유이다. 윤희상은 숙련된 시인이다. 그는 불필요한 언어를 베어내고 꼭 필요한 언어도 다듬고 또 다듬는다. 그의 시의 용모가 단정한 까닭이다. 윤희상은 체념의 기술을 체득한 시인이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사막의 오지를 달리며 인간 존재의 필연적 제한성을 자각한다. 그의 시의 품성이 겸손한 소이연이다. 동시에 윤희상은 이런 시인이기 이전에 현실의 땅에 굳건히 발을 딛고 오늘을 살아가는 성실한 시민이다. 그는 다사다난한 삶의 궤적이 생생하게 인쇄된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을 또박또박 읽는다. 그의 시의 마음가짐이 정직한 이유이다. - 류신 (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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