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그 밤의 경숙
국수 옥천 가는 날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막차 구덩이 발문|이병창 새로 쓴 작가의 말 작가의 말 추천사 수록작품 발표지면 |
김숨의 다른 상품
|
반죽에 찰기가 붙으며 한덩이의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차지게 맺힌 응어리와 한바탕 씨름이라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괜한 오기까지 뻗치는 게,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내 손가락들이 악착같이 달려들고 매달릴수록 양푼 속 응어리는 더 차져집니다. 그런데요…… 응어리와 달리 내 안의 뭔가가 풀리는 것만 같은 게…… 뭉치고 맺힌 뭔가가…… 응어리라고밖에는 별달리 표현을 못하겠는 그 뭔가가 부드럽게…… 반죽의 시간이 당신에게 가슴속 응어리를 달래고 푸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 p.56 「국수」 중에서 “언니, 엄마는 옥천이 뭐가 그리 좋아서 그렇게나 가고 싶어했을까?” 애숙은 스스로에게 묻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옥천 말고 갈 데도, 떠오르는 데도 없었나보지, 옥천 말고는……” “엄마…… 옥천 가니까 좋으세요?” 애숙이 보채듯 물었지만 어머니는 역시나 아무 말이 없었다. “옥천 가니까 좋으시냐구요?” “엄마, 애숙이가 묻잖아요. 옥천 가니까 좋으시냐고……” 정숙과 애숙의 입이 다물리며 그녀들의 고개가 서로 다른 곳을 향했다. 차들이 밀물처럼 몰리는 톨게이트를 통과해 고속도로에 들어설 때까지 그녀들은 그렇게 고속버스에서 우연히 옆에 앉은 낯모르는 승객들처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 p.93~94 「옥천 가는 날」 중에서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인지, 그녀는 다른 이들은 여느 날 밤처럼 아무렇지 않게 집에 돌아왔는지 궁금해졌다. 그녀는 거실 창문 너머 앞 빌라를 살폈다. 창틀 너머로 손을 뻗으면 벽에 손끝이 닿을 듯 가까운 신축 4층 빌라에는 열여섯개의 창문이 있었는데, 불을 밝힌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돌아와 벌써 잠자리에 든 것인지, 아니면 다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 p.138~39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중에서 땅이 흔들렸어…… 전날 돼지 천오백여마리를 구덩이에 파묻고 마무리 작업을 얼추 끝냈을 때였다. 굴착기에서 내려와 두 발을 내딛던 그는 매몰지 일대 땅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착각이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혼자만 느낀 게 아니었다. 가까이 있던 유령 둘이 자기들끼리 나직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그에게 들려왔던 것이다. “돼지들이 몸부림을 치는군……” 유령 하나가 매몰지 한가운데 경고 푯말을 세우고 있었다. 그 유령 너머 서쪽 산 너머 낮게 내려앉아 있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핏빛은 점점 짙어지고 탁해지며 땅으로 깔려왔다. 나는 구덩이만 팔 뿐이야…… 그 구덩이에 뭘 묻든 내가 알 바 아니야…… ---- p.199~200 「구덩이」 중에서 |
|
“김숨은 지금까지 한번도 멈춤 없이 꾸준하게
자신만의 개성적인 문학세계를 만들어온 작가이다.” (제58회 현대문학상 심사평) 이 소설집에서 깊이 집중하는 관계는 ‘가족’이다. 부부의 갈등과 균열을 사회적 층위와 연결 지어 긴장감 있게 그리는 동시에(「그 밤의 경숙」 「막차」),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편한 동거를 기묘한 분위기로 드러내기도 하고(「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증오만 남은 부자 관계를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 집단 살육의 현장과 중첩시켜 표현하기도 한다(「구덩이」). 현대문학상 수상작 「그 밤의 경숙」은 사소한 접촉사고로 얼룩진 하룻밤을 그린 작품이다. 콜센터 직원 경숙의 남편과 퀵서비스 기사 사이에서 접촉사고가 날 뻔한 일로 시비가 벌어지고, 남편과 기사가 벌이는 폭력적인 광경을 불안하게 지켜보던 경숙은 혼잣말을 계속한다. 콜센터에서 일하며 세상에서 고립돼 인간성이 말소된 처지에 이른 경숙,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퀵 기사와 그에게 막무가내로 분노를 표출하는 남편은 불안한 기운과 폭력의 잔해가 떠도는 우리 시대를 형상화한다. 「옥천 가는 날」은 초로의 자매가 아흔 넘어 운명한 어머니의 주검과 함께 응급차에 타고 고향 옥천으로 향하는 과정을 핍진하게 그린다. 생전에 그토록 옥천에 가고 싶어했던 어머니의 소망을 들어드리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보조금을 타내고자 멀쩡한 어머니를 치매 환자로 둔갑시켜야 했던 데 대한 회한은 끝내 자매의 통곡으로 마무리된다. 위 두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안에서 서사가 진행되는 「막차」에는 며느리가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행 막차에 오른 노부부가 등장한다. 이처럼 자동차는 파편화한 가족들을 마치 끈처럼 이어주는 장치로 등장한다. 표제작 「국수」에도 “끈”에 대한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온다. 자식이 끈이더라는 말을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남편과 자신을 이어주는 끈일 뿐 아니라 세상과 이어주는 끈이 돼주더라는 말을요. 일찌감치 결혼해 자식을 넷이나 낳은 친구였지요. 그러고 보니 국숫발이 모양으로만 보자면 끈 같기도 하네요. 혹 당신이 뽑아낸 국숫발들은 끈이 아니었을까요. 당신은 자식이란 끈 대신 밀가루로 반죽을 개어 끈들을 만들어냈던 게 아닐까요.(64면) 화자 ‘나’는 29년 전 의붓어머니가 처음 해주었던 음식인 국수를 반죽하고 만들면서 흘러간 세월을 돌아본다. 자식 딸린 남자의 후처로 들어온 의붓어머니는 남편과 의붓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식구 대접을 받지 못한 채 29년 세월을 살아왔다. “빚을 갚는 심정으로 반죽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화자의 말처럼 국수를 만드는 과정은 지난 시간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화해의 과정과 포개진다. 작가는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세심한 손끝으로 새로 쓰듯이 고치고 또 고치는 시간을 건너왔다. 등단작을 개작하여 2019년 새로 펴낸 것처럼, 이미 끝이 맺어진 이야기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행위는 김숨의 소설세계와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이 사회의 가장 외진 곳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약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가는 이 책의 초판 ‘작가의 말’에 썼듯이 누구보다 “성실하게, 한결같이” 소설만을 써왔다. 정성스레 잘 차려진 한끼 식사 같은 소설의 미덕을 한껏 보여주는 이 소설집은 한결같이 성실한 작가의 개성과 깊이를 다시 한번 증명해낸다. 새로 쓴 작가의 말 묵은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의 첫날에 그들을 만나러 갔다. 그 밤의 경숙, 마루 한쪽에서 국수 반죽을 빚던 그녀, 골목에서 주운 성경 속 족보를 필사하던 노인, 오리 뼈 고는 냄새가 진동하는 여름밤 누구든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그녀, 그리고 어머니를 모시고 옥천을 찾아가던 정숙과 애숙, 그녀, 그…… 수년 전 어느 낮의 시간에 혹은 어느 밤의 시간에 혹은 낮도 밤도 아닌 시간에 박제돼 고정불변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반복하는 그들 앞에서, 나는 아이처럼 울먹였다. 수년 전 그들을 생생히 만났을 때보다 그들의 인생이 더 깊이 들여다보여서였다. 그들의 슬픔도, 불안도, 고통도…… 내 뒤늦은 울먹임이 그들을 위안하는 기도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국수』를 다시 펴낸다. 초판을 낼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병창 선생님의 발문 제목 ‘뿌리 뽑힌 자들의 비명’을 읽고 그것이 어떤 예견이었음을 깨닫고 놀랐다. 이병창 선생님께 새삼 감사를 올린다. 뒤돌아보는 시간을 보냈으니, 나는 다시 앞을 응시하며 나로부터 좀 멀리 떠났다 돌아와야겠다. 2022년 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