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01 마르틴 하이데거 ? 프리드리히 횔덜린 세계의 밤에 시인이 짓는 언어의 집 궁핍한 시대의 시인 / 시인 중의 시인, 횔덜린 / 예술작품의 근원 / 존재란 무엇인가 / 횔덜린과 시의 본질 02 모리스 메를로퐁티 ? 폴 세잔 모호함으로 드러나는 세계의 깊이 세잔의 회의 /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적 인식에서 현상학적 인식으로 / 지각의 현상학: 사태에서 다시 지각으로 / 지각의 장으로서의 신체 / 세계와 공유하는 신체의 이중성 / 세잔은 무엇을 그리고자 했는가 / 본다는 것의 의미 / 살la chair / 깊이Profondeur,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03 테오도어 아도르노 ? 사뮈엘 베케트 거짓된 화해의 부정 속에 숨겨진 유토피아 비판이론의 등장 / 계몽의 변증법 / 부정 변증법 / 자율적 예술의 부정성 / 구원 없는 세계에서 글쓰기 / 승부의 종말 / 상실된 리얼리티 04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 바넷 뉴먼 존재하지만 표현 불가능한 숭고 지금, 여기에 무엇인가가 있다 / 진보라는 희망의 붕괴 : 아우슈비츠 이후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 / ‘전체’에 대항하는 포스트모더니즘 / 숭고the Sublime 개념의 역사 / 칸트의 숭고 개념 / 숭고한 회화 / 공간적 숭고에서 시간적 숭고로 05 모리스 블랑쇼 ? 스테판 말라르메 진리를 말하는 비인칭의 언어 이해할 수 없는 시인, 말라르메 / 언어의 불가능성 / 바깥의 사유 / 거친 말, 본질적 말 / 부재 속에서 완성되는 시의 진리 / 비인칭의 시 / 이지튀르 혹은 엘베농의 정신착란 06 미셸 푸코 ? 르네 마그리트 원본 없는 이미지들의 서로 닮음의 놀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말과 사물 / 르네상스, 고전주의, 근대의 에피스테메 / 「시녀들」 , 고전적 재현의 불가능성에 대해 / 근대 회화의 원칙을 파괴한 클레와 칸딘스키 / 마그리트, 흐트러진 칼리그람 / 유사를 넘어서는 상사 07 자크 랑시에르 ? 귀스타브 플로베르 해방된 낱말들이 실현하는 문학의 민주주의 예술의 정치란 무엇인가 / 치안과 정치 / 평등의 실천으로서 민주주의 / 정치의 무대 / 플로베르, 문학의 민주주의 / 엠마 보바리의 처형 / 문학의 치유 08 장 보드리야르 ? 앤디 워홀 기호의 무한증식이 만들어내는 시뮬라크르의 세계 지도와 영토 / 시뮬라크르의 질서 / 실재의 부재를 감추기 / 시뮬라크르를 모방하는 시뮬라크르들 / 예술의 종언 / 상징적 교환체계로서의 예술 / 앤디 워홀, 현대적 시뮬라크르의 정점 참고문헌 |
김동국의 다른 상품
|
철학자들은 모두 자신만의 예술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메를로퐁티의 사유의 핵심이 그가 쓴 세잔에 대한 글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이데거에게 횔덜린이 없었다면 언어·예술·존재에 대한 그의 사유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푸코는 자신의 『말과 사물』을 읽고 편지를 보내온 르네 마그리트를 통해 현대 회화의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집필했습니다. 이 제목은 르네 마그리트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문구이기도 합니다.
---「머리말」중에서 언어는 존재의 집입니다. 존재는 언어 속에 거주합니다. 여기에 하이데거의 시론과 예술론, 더 나아가 존재론 전체를 함축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횔덜린은 「사랑스러운 푸르름 안에서」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대지 위에서 시적으로 거주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만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인간 존재의 전제이기도 합니다. 시인의 시짓기는 그러므로 인간을 창조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시를 짓고,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이데거는 시인이 시를 짓는 행위를 통해 현존재의 건립에 참여한다고 말합니다. --- p.45~46 봄은 비가시적인 것에서 가시적인 것으로의 이행인 동시에, 가시적인 것 속에 남아있는 비가시적인 세계를 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모호한 영역에 세잔의 회화가 보여주는 놀라움이 있습니다. 깊이는 모호함 속에서 드러납니다. 이 모호함이 ‘세잔의 회의’이자 ‘메를로퐁티의 회의’입니다. 화가의 회의이자 철학자의 회의입니다. 아직 화가와 대상이 분리되지 않은 세계, 화가가 대상과 접촉하면서 스스로의 시선과 대상의 모습을 구분하지 않은 채, 대상을 자신 안에 받아들이고, 자신을 세계 속에 펼쳐놓는 순간, 이 모호함과 회의 속에서 세잔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성공하는 것입니다. --- p.90 베케트 작품의 인물들은 나는,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것 이상을 말할 수 없습니다. 타자와의 관계가 상실되어 있다는 것은 세계와의 관계가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피히테라면 아마 이 독자적인 상태야말로 모든 것을 자명하게 하는 자기의식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실존주의자들은 이 순수한 자기 정립 위에서 구체적인 자신을 발견하고자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도르노에게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베케트의 작품은 이러한 ‘실존’의 어리석음을 폭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자기의식이라는 것은 모호하기 짝이 없는 텅 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실존이란 자기동일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나일 뿐 누구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실존주의적 존재론이란 결국 이 추상적인 동어반복 속에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개성을 가진 고유한 인간이자 합리성 이상을 가진 주체적 개인이라는 근대적 이상이 망상이자 환상이었음이 이처럼 베케트의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폭로됩니다. --- p.129~130 미에 대한 뉴먼의 투쟁과 전체에 대한 리오타르의 투쟁은 여기서 하나로 겹쳐집니다. 칸트에게서 상상력은 공간 안의 대상을 상상하는 것이고, 이 대상의 상상 불가능성이 숭고와 연결되었습니다. 뉴먼에게서 숭고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성에서 시작됩니다. 리오타르에게 시간에 대한 상상은 무엇보다 먼저 파괴되어야 할 상상입니다. 먼 과거로부터 이 세계의 완성에 이르는 미래까지의 하나의 총체로 파악되는 시간/역사. 리오타르는 바넷 뉴먼의 시간적 숭고가 이러한 총체성을 파괴하는 예술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 속에서 시간에 따른 기계적이고 신화적인 믿음이 전제하는 미래, 진보, 완성된 역사 등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간성에 대한 환상의 파괴, 시간이 기계적 인과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시간의 환상이 주는 테러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 p.176~177 작품이란 곧 그것 자체가 하나의 경험입니다. “경험은 의미한다. 존재와의 접촉을, 접촉에 따른 자신의 갱신을 ― 하나의 시련을, 하지만 미결로 남아 있는 시련을.” 이 경험은 불가능성의 경험입니다. 말라르메는 이러한 불가능성의 극단을 자신의 시를 통해서 하나의 시련으로서 직접 경험합니다. 작가가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경험이 작가를 겪는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의 만년의 역작 「이지튀르Igitur」는 말라르메가 자신이 마주한 삶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진지함과 수고를 통해 생생하게 경험한 일종의 수련입니다. 블랑쇼는 단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삶을 다해야 하며 더불어 예술을 다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술은 탐구이고, 그 탐구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미결에 의해 결정된 탐구, 비록 삶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삶 전체를 관통하는 탐구”이기 때문입니다. --- p.209 푸코는 20세기에 이르러 클레와 칸딘스키가 근대회화의 기본적 원칙들을 각각 서로 다른 두 방향에서 의심하고 마침내 부정했다고 설명합니다. 근대회화의 두 가지 원칙, 그리고 그것을 깬 클레와 칸딘스키. 그런데 푸코가 논의하고자 하는 마그리트는 클레와도 칸딘스키와도 달라 보입니다. 그는 칸딘스키처럼 재현을 완전히 떠나지 않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과, 사람, 모자, 하늘, 바다, 나무 등의 대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클레와도 다릅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도 문자와 이미지가 함께 등장하지만, 문자와 이미지가 서로 호응하고 차이를 통해 서로의 의미를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면서 유사와 재현의 논리에 전면적인 뒤틀림을 주기 때문입니다. --- p.247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작가와 문학이 수행하는 정치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플로베르는 작가의 정치라는 차원에서는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귀족주의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러한 관점에서 플로베르를 비판합니다. 그러나 랑시에르에게 플로베르는 문학의 정치, 곧 문학에서의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플로베르에 대한 이 양극단의 평가를 통해 우리는 랑시에르가 ‘문학의 정치’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 p.279 보드리야르가 진단하는 현대 예술의 상황이란 무가치, 무의미, 무관심 등으로 요약됩니다. 예술의 역사를 20세기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는 가장 큰 사건은 아마도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뒤샹은 공장에서 생산된 변기에 가상의 인물의 서명을 남김으로써 공산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때 작가는 작품을 창조하지 않고, 생산된 상품을 예술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했을 뿐입니다. 이 변화는 현대 예술의 개념을 새롭게 창조하는 변화이자, 동시에 전통적인 예술을 소멸시키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작가는 작품의 창조자가 아니라 다만 존재하는 사물에 새로운 기의를 부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 p.318~319 |
|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의 만남
철학자들은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을 예술에서 찾아냈다. 철학은 늘 세계의 근원을 파고든다. 철학의 질문들은 인간은 닿을 수 없는 캄캄한 심해를 떠도는 레이더 전파 같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다. 철학자는 예술을 인간과 삶을 포착한 하나의 부표로 삼아 심해의 질문들을 쏘아 올려준다. 철학자들의 질문들이 예술 작품으로 고스란히 떠오르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삶에 부표로 존재하는 예술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예술의 문제는 진리의 문제와 결코 분리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이 진리를 담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철학에 있어서 예술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은 예술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예술 또한 철학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저자의 말은 예술과 철학의 관계가 어떠한지 한눈에 알게 한다. 푸코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아야 하고, 세잔을 이해하기 위해 메를로퐁티를 펼쳐야 한다. 이것이 곧 철학과 예술의 만남인 미학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8명의 철학자들은 자신의 사상의 부표로 삼은 8명의 예술가들을 통해 이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하이데거와 횔덜린, 메를로퐁티와 세잔, 아도르노와 사뮈엘 베케트, 리오타르와 바넷 뉴먼, 모리스 블랑쇼와 말라르메, 푸코와 르네 마그리트, 랑시에르와 플로베르, 보드리야르와 앤드워홀. 독자들은 이들 철학자와 예술가들을 통해 20세기 철학과 예술의 변화를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