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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108~219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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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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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남방우편기》 《남방우편기》 《인간의 대지》 등
무수한 작품을 쓴 프랑스 작가이자 비행사 생텍쥐페리의 소설 중 가장 최후에 쓰인 유작 《성채》(상·하) “다른 모든 작품은 《성채》를 쓰기 위한 연습에 불과한 것이고 필생의 대작이다” 전쟁, 모험, 시련 그리고 작가에게 덮쳐온 모든 체험을 딛고 파리 《스와르》지 특파원으로 스페인 내란을 취재 중인 1963년부터 비행기 사고로 실종되는 순간까지의 생활과 사상, 비전을 대서사시로 나타냈던 것이 바로 이 《성채》다. 이 작품에 대해 작가 자신도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문단이나 독자에게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채》는 잠언과 우화를 통하여 명상을 풀어낸 수필 형식으로 전개된다. 《성채》에 등장하는 인물은 조직 사회 속에서 맡고 있는 직분, 예를 들면 헌병, 창녀, 대신, 목수, 대장장이 등 ‘메티에(Metier)’만 있지 하나의 개체를 존중하는 뚜렷한 이름(고유명사)이 없다. 그러자니 나, 그대, 너, 그, 그 여자, 우리들, 당신네들, 그들 하는 식의 인칭 대명사가 곧 주역들이다. 또한 그들 삼인칭과 대화를 끌어가기 위해 예고 없이 그들을 ‘그대’로 불러 앉히기 때문에 잦은 혼동을 빚을 때도 있다. 생텍쥐페리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투 조종사로서 사르디니아에서 모로코에, 이탈리아에서 코르시카를 비행하면서 항시 파일럿 여행 가방 속에 타이프로 친 이 작품의 초고를 넣고 다녔다. 그는 1938년 초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요양하러 떠날 무렵부터 구상하고 계속 틈만 나면 쓰기를 쉬지 않았다. 주요 부분이 된 15장까지 완성하고 작자 자신이 여러 번 퇴고를 거듭하여 부왕의 궁정, 처형(處刑), 여인들이란 소제를 붙여 깨끗이 타이프했었다. 그는 친지들에게 《성채》가 자신의 유작이 되고 말 것을 언급했으며 그의 누이 시몬느 생텍쥐페리가 출판을 서둘렀다. 생텍쥐페리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인 1948년 갈리마르 출판사가 이 작품을 출간했을 때 프랑스 문단은 덤덤했다. 그 이유는 녹음기를 통한 구술 부분이 있는가 하면, 퇴고하지 않은 원고를 차례대로 정리하여 몇몇 군데의 문장이 거친 데다 동음이의어나 연철음 등 오해하기 쉬운 대목이 많고 중복되거나 거친 초고 그대로, 작품 대부분 우화적 구성이 많아 난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이 작품은 장 클로드 이베르나 달로즈 같은 생텍스 전문가들의 끈질긴 연구와 설득으로 1968년 프랑스의 베스트셀러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생텍스 연구가나 달로즈, 시몬느 랑브랭, 피에르 슈브리에 같은 이들은 “다른 모든 작품은 《성채》를 쓰기 위한 연습에 불과한 것이고 필생의 대작이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생텍쥐페리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길고 난해해 ‘가장 나중에 읽어야 할 작품’으로 일컬어지지만, 《어린왕자》 《남방우편기》 《야간 비행》 《인간의 대지》 등 무수한 작품을 써낸 작가의 생애에 걸쳐 삶이 녹아 있는 마지막 작품을 이 한 권의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권한다.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성채》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중 가장 최후에 쓰인 것으로 자신이 퇴고도 하지 못한 이 작품은 1968년에야 올바른 평가를 받고 알려지게 되었다. 생텍스 문학 전문가 장 클로드 이베르 같은 이는 이 소설을 두고 ‘가지고 다녀야 할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는 책’이라고 했다. 전쟁, 모험, 시련 그리고 작가에게 덮쳐온 모든 체험을 딛고 파리 《스와르》지 특파원으로 스페인 내란을 취재 중인 1963년부터 비행기 사고로 실종되는 순간까지의 생활과 사상, 비전을 대서사시로 나타냈던 것이 바로 이 《성채》다. 작가 자신도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문단이나 독자에게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기록에 남아 있다. 《성채》는 뚜렷한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잠언과 우화를 통하여 명상을 풀어나간 수필 형식이다. 바이블과 사막이란 웅장한 배경 속에 인간이 겪어야 하는 서정주의를 전개하고 생텍스 특유의 휴머니즘을 기저로 이상사회를 펼쳐 나간다. 그는 인간 내면을 추구하면서 조직을 이루고 있는 국가와 사회라는 계층 속에서 그들을 다스려 나가야 된다는 것을 크게 문제 삼고 있다. 그러기에 자신을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세워진 베르베르족의 왕국 군주로 설정했다. 신의 권능을 빌어 다스리는 사람이란 백성들을 하나하나 연결해 주는 매듭이 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하여 숱한 곤경을 치르게 된다. ‘질서란 생명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질서가 강력한 국가의 표징일 수는 있어도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오로지 생명력과 열정과 강한 지향이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건설한다’, ‘이룩한다’, ‘쌓아 올린다’는 동사의 연발이 거의 페이지마다 한 번씩 미래형으로 반복된다. 조직 사회를 이루는 각자는 제각기 선 위치에서 전문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전체를 보지 못한다. 그러면서 평등과 자유를 강조하는 민주를 앞세우고 강요하는 백성들의 영상에게서, 제각기 누리고 싶어하는 자유란 속박을 겪어야 하는 것이고 자신의 휴머니즘과 반대되는 부류의 인간을 많이 설정해 두고 숱한 논쟁에서 논쟁을 겪어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만 이 우주 속 모든 인간을 다스릴 수 있는 치자(治者)가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성채》에 등장하는 인물은 조직 사회 속에서 맡고 있는 직분, 예를 들면 헌병, 창녀, 대신, 목수, 대장장이 등 ‘메티에(Metier)’만 있지 하나의 개체를 존중하는 뚜렷한 이름(고유명사)이 없다. 그러자니 나, 그대, 너, 그, 그 여자, 우리들, 당신네들, 그들 하는 식의 인칭 대명사가 곧 주역들이다. 또한 그들 삼인칭과 대화를 끌어가기 위해 예고 없이 그들을 ‘그대’로 불러 앉히기 때문에 잦은 혼동을 빚을 때도 있다. 베르베르족의 왕국을 다스리는 군주가 있고 훌륭한 통치자가 되기 위하여 시인, 조각가, 무용수, 걸인, 나병 환자, 창녀, 기하학자, 장군, 대신 등 여러 계층의 백성들과 숱한 대화를 가진다. 창녀에게 그 소굴에서 빼내어 정결한 생활을 하도록 해주어도 얼마 가지 않아 거기서 불편을 느끼고 걸인도, 예술가도 모두 원래의 질서로 복귀하고 장군은 힘으로, 대신은 부정을 쌓아 가는 것으로써 백성을 다루어 나가는 등 이들 많은 대화에서 군주가 얻은 결론은 오로지 전체를 보지 못하는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는 양상만 짚어 보게 된다. 그리하여 군주 자신은 속박을 해야 각자의 자유가 증대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견(異見)을 지닌 각계 직업인들의 의견을 조정하여 인간 내면의 정신을 함께 엮어 줄 수 있는 정신의 성채를 구축해 나가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인간이 한 번 땅을 향해 내던지는 곡괭이질에도 반드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정지된 상태의 쾌락과 소유욕을 무시하고 오로지 신(神)을 향한 탁월한 눈동자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그는 작품 속에서 말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구성과 주제는 다양하다. 전반부에서는 자신이 왕이 되기 전 부왕(父王)에게서 받은 교훈과 예지를 간접으로 전해 주고 있다. 시종일관 작자의 의도에 부응하는 이상향인 성채를 구축해 나간다. 왕은 공허와 허무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은 미친 상태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그러기에 질서와 속박에서 창조를 이룩해야만 올바른 자유가 증대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을 당시의 프랑스가 찢어지듯 복잡한 국론 분열에 직면해 있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작자 자신이 질서나 속박을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가를 전편을 통해서 터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는 분명히 하나의 왕국에 군림 한 왕이지만, “내가 인간을 왕국에 복종시키고 있는 것은 오직 인간을 이룩하기 위해서이지 인간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라고 명백히 말하고 있다. 따라서 권력에 대해서도 “우리 백성들이 내게 복종하는 것이 상으로 나는 나의 백성들에게 복종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결국 이러한 통치 이념을 통해 보면 생텍스의 치민의식(治民意識)은 하나의 나무를 가꾸어 나가듯 외부로부터의 구속이나 통제보다는 백성에게 통일과 조화를 위한 자발적인 참여로 백성을 이끌고 이상 향 성채로 나가려는 것이다. 이끌고 나가는 과정에서 작자는 사막 속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을 큰 배에, 인간을 제각기 맡은 직분에서 노를 젓는 선원에, 그리고 나아가는 그룹 사회의 모든 추진을 항진에 비유하고 우주를 바다로 삼았다. 모험에 그치지 않고 모험에서 얻어지는 하나의 건설을 지향하고 있었다는 점이 그의 다른 작품과 다른 점이며 모든 그의 소설을 압축했고 거기서 진일보한 상태라고 말하는 생텍스 전문가들이 내세운 평가의 까닭이 여기 있다고 하겠다. 그는 신이 있는 자리에서보다 더 가까운 자리라고 생각되는 바위 언덕에 올라가 신과 대화를 기도로써 행하고, “성채여, 나는 너를 인간의 마음속에다 쌓아 올릴 것이니……”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혼을 종착점으로 한 생(生)에의 정신적 탐구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한마디로 결론을 짓자면 생텍스는 이 작품에서 인간은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협력을 통하여 위대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매진해야 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개개인이 마음의 왕국(성채)을 짓고 지도자는 백성의 생활에 활기와 열정을 불어넣는 일에 열중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여기서 비친 생텍스와 정치사상은 의식과 예약(禮樂)을 치도(治道)로 삼으라는 공자(孔子)의 인(仁)과도 상통하는 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러 계층과 만나 본 하나하나의 사례를 통하여 풀어나가는 연역 역시 《논어(論語)》의 전개나 동양 사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의식이 담긴 행동주의 문학에서의 모험과 부딪치는 현실 위주의 이미지로만 알려진 생텍스의 또 다른 일면을 캐낼 수 있다고 하겠다. 생텍쥐페리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투 조종사로서 사르디니아에서 모로코에, 이탈리아에서 코르시카를 비행하면서 항시 파일럿 여행 가방 속에 타이프로 친 이 작품의 초고를 넣고 다녔다. 그는 1938년 초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요양하러 떠날 무렵부터 구상하고 계속 틈만 나면 쓰기를 쉬지 않았다. 주요 부분이 된 15장까지 완성하고 작자 자신이 여러 번 퇴고를 거듭하여 부왕의 궁정, 처형(處刑), 여인들이란 소제를 붙여 깨끗이 타이프했었다. 그가 산화(散華)하기 전 1년까지만 해도 친지들에게, “지금 집필 중에 있는 작품이 있어. 이건 아마 ‘원광(原鑛)’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이네. 언제 출판하게 되느냐고? 아직 안 끝났어…… 아마 그건 내 유작이 되고 말 것일세.” 이렇듯 그는《성채〉가 미완성 유작이 될 것을 내다보았다고 첫 출판을 서둘렀던 그의 누이 시몬느 생텍쥐페리는 술회하고 있다. 그가 작가로서 일생을 다한 지 4년 후인 1948년 갈리마르 출판사가 이 작품을 출간했을 때 프랑스 문단도 덤덤했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녹음기를 통한 구술 부분이 있었는가 하면 퇴고도 하지 않은 원고를 차례대로 정리하여 몇몇 곳의 문장이 거친 데다 동음이의어나 연철음 등에 있어 오해하기 쉬운 대목이 많은가 하면 중복 등이 심한 거친 초고 그대로가 많고 대부분 우화 수법의 구성이 많아 난해한 것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장 클로드 이베르나 달로즈 같은 생텍스 전문가들의 끈질긴 연구와 설득으로 1968년 프랑스의 베스트셀러의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생텍스 연구가나 달로즈, 시몬느 랑브랭, 피에르 슈브리에 같은 이들은 ‘다른 모든 작품은 《성채》를 쓰기 위한 연습에 불과한 것이고 필생의 대작이다’고 말했다. 《성채》는 1948년 3월 1일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출간(500페이지)한 이후 1950년 다시 갈리마르 사에서 다른 작품들과 함께 데랭의 해설을 곁들여 전집으로 출간, 1959년 플레야드 판에서도 전집으로, 1950년 클럽 데 리브레르에서 단행본으로 출간, 다시 1968년 갈리마르 사에서 포켓북으로 출간된 이후부터 베스트셀러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독일, 영국, 아르헨티나, 덴마크,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등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서정철 교수의 초역(初譯)이 나왔다. 난해한 곳이 많고 시적 비약이 심하여 오역이 많이 나오지나 않았나 두렵다. 원본은 1968년 갈리마르 사의 포켓판을 썼다. 옮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