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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서론 1장 자코뱅파의 유산: 사회 정의의 기원들 2장 국민 복지와 세계인권선언 3장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제2권리장전 4장 제국 이후의 복지 세계화 5장 기본 욕구와 인권 6장 전 지구적 윤리, 평등에서 최저 생활까지 7장 신자유주의 소용돌이 속의 인권 결론: 크로이소스의 세계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 찾아보기 |
Samuel Mo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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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근본 과제는 경제·사회권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근대사에 걸쳐 경제·사회권이 어떻게 분배의 두 가지 절대 원칙(충분성sufficiency과 평등equality)을 논하고 정착시키려는 보다 광범위한 투쟁과 맞물리는지도 기록해야 한다. 사회권이 응분의 대우를 받았어도, 우리 시대에 물질적 평등이라는 이상은 실패했다. 인권의 시대가 오기 전, 평등의 꿈은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인권의 시대에 와서는 충분성을 넘어서는 공정성의 타당성은 잊혔다.
--- p.17 탈식민지 국가들의 구체적인 분배의 이상과 정책은 지역 차원에서도 전 지구적 차원에서도 거의 연구된 바 없는 주제다. 제2차 세계대전과 1970년대 사이에 그 국가들이 보여준, 스스로의 복지를 구축하고 나아가 과거 어느 누가 꿈꾼 것보다 광범위하게 분배의 평등을 세계화하려는 열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인권” 및 관련 개념들을 둘러싸고 전 세계적으로 충분성이 부상하게 된 본질적인 배경이다. --- p.161 인권은 이론적으로도, 세계화된 경제 안에서의 충분한 보호라는 하한선에만 도덕적 초점을 맞춘 탓에, 분배적 불평등의 상한선이 없어지는 데 어떠한 방해도 하지 못했다. 국민 복지적 환경을 빼앗긴 채,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권은 충분한 지급만을 목표로 하는 나약한 도구로 부상했다. 인권의 이름을 내건 정치적·법적 프로젝트는 불평등이 폭증하는 가운데 힘없는 동반자일 뿐이었다. --- p.305 이전에 국유화되었던 산업이 민영화되고(이전의 공산주의 유럽에서 미래의 독점 재벌들에게 파격적으로 싸게 매각됨) 대외 정책 입안자와 지역 정치인들의 동맹을 통해 신자유주의 처방들이 제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 운동은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같은 풋내기 규범들의 보호를 요구했다.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인권 운동은 다른 일을 하느라 바빴다. --- p.319 그러나 인권법과 인권 운동은 자신들의 기본 지급 규범의 일부를 정당화하는 데 성공하게 해준 대단히 불평등한 방식을 거부할 능력이 없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인권법 체제와 인권 운동의 최대 오점은 충분성의 달성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안 된 반면, 충분성이 성취됨에 따라 폭주하는 불평등을 고발할 윤리 규범이나 실질적 능력조차 결여했다는 점이다. --- p.352 그러나 물질적 평등이 필연적으로 배제 또는 폭력에 달려 있다거나, 국제적 공정성에 대한 대담한 계획이 몽상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인권이 잔학 행위와 폭정에 맞서는 데 필수적인 방어벽이라는 생각이 한 세대 만에 친근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더 오래되고 더 원대한 선택을 다시 배워야 할 때고, 또한 한 번도 전 지구적 계획이 되지 못했던 선택을 전 지구적 계획으로 승격시켜야 할 때다. 불평등이 지속되거나 심지어 증가하는 가운데 기본권과 기본 욕구가 충족되는 크로이소스의 세계는 그저 부도덕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세계에는 불안정과 몰락이 예정돼 있음이 하루하루 분명해지고 있다. --- p.3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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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충분성, 자코뱅파의 이상
인권과 평등, 충분성에 대한 논의는 루소를 포함한 여러 사상가와 심지어 성서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만, 실제 정치의 장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혁명과 자코뱅파의 정책들부터였다. 프랑스혁명은 ‘필요를 넘어서는 세계’를 약속하고 평등주의적 공동체를 설정함으로써, 인권이라는 말을 일찍이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 복지’를 위한 논쟁을 거의 처음으로 촉발시켰다. 자코뱅파의 국가는 공정한 분배, 특히 대강의 물질적 평등을 염두에 두면서도 재화를 충분한 정도로 지급해야 한다는 난제를 가시화하는 데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1793년 인권 선언에서 빈곤 구제와 공공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최초의 두 사회권 개념을 탄생시키는 등, 자코뱅파는 최초의 복지국가라고 할 만한 체제를 만들어냈다. 비록 이를 완전히 실현해내지는 못했지만, 충분성과 평등이라는 두 요구를 조화시키려고 애쓰면서 공정한 분배를 약속했다. 이렇게 충분성과 평등은 프랑스혁명에 이르기까지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며 국민복지국가가 등장하자 둘은 분리되기 시작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T. H. 마셜이 이야기했듯이, 근대 복지국가는 빈곤층의 삶을 문제시함으로써 그들이 더 이상 궁핍하지 않게 했으나 부유층이 얼마나 높은 곳에서 빈곤층을 내려다보는지는 간과하고 말았다. 분명 자코뱅파의 이상을 계승했으나 그 계승이 완전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그 증거로 세계인권선언이 발족 당시에는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최근 몇십 년 사이에야 전혀 다른 의미로 주목받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 세계인권선언은 국민복지국가의 헌장이나 본보기로서 주로 분배에 관련된 정의에 대한 것이었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사상, 표현, 신체의 자유 등 개인적·정치적 권리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인권선언은 경제권, 사회권, 건강권 등 복지주의의 열망을 담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회적 최저치를 넘어서는 사회적 평등에 대한 현시대의 강한 욕구를 충분히 담아내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미 복지를 위한 정책적 고민이 힘을 잃기 시작한 시점에, 너무나 밋밋한 방식으로, 심지어 늦게 도착한 선언이었다. 훗날 인권 개념이 신자유주의 흐름에 동참하게 되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이는 상징적인 실패였다. 전 지구적 평등을 향한 열망과 실패 이렇게 충분성과 평등은 세계 차원으로 격상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복지에 대한 고민도 어디까지나 국민 복지, 즉 국가 하나의 규모에서 멈췄지 세계적인 차원으로 뻗어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분배의 세계적 평등에 대한 열의는 분명 남아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맹아가 싹텄던 서구·북반구 국가들이 아니라 탈식민지 국가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국가들은 이제 국민을 위해 충분성과 평등이라는 짐을 모두 짊어졌고, 특히 사회 정의와 관련하여 충분성이 아니라 평등을 우선시했다.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가진 탈식민지 국가들은 그들의 복지 체제를 수립하며 근대 복지국가의 국가주의적 제약을 지적했다. 그리고 복지를 전 지구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을 비롯해 이런 흐름을 지지하는 목소리들도 생겨났다. 특히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국가가 승리하면서 국제주의적 전망이 패배했고, 결국 ‘인권은 보편성 개념을 수반한다’는 중요한 진실이 방치되었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탈식민지 개발도상국들이 신국제경제질서NIEO를 발족하여 이 흐름을 주도했다. 그들의 목표는 부국과 빈국의 세계적 평등화였다. 그러나 이들은 인권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를테면 니에레레는 부유층에게 유리한 전 지구적 구조로부터 ‘경제적 해방’을 이루려면 국내 인권의 실제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위선적인 이중 잣대 때문이었을까? 이후의 국제 경제 질서로 성장한 신자유주의와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던 신국제경제질서는 결국 여러 이유에서 실패로 끝났다. 이제 그 빈자리에 신자유주의가 입성하게 된다. 사소하고 무력해진 인권, 신자유주의와 공존하다 인권 개념은 1970년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는 냉전 후반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맞물려 있었으며, 국제적 평등을 내세웠던 여러 탈식민지 국가에서 빈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과도 연관 있었다. 인간에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 욕구라는 패러다임이 등장한 것은 그러므로 자연스러웠다. 경제학에서는 기본 욕구를 정의하고 이를 정책에 활용하기 위해 수량화했으며, 인권의 세부적인 내용들이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세계인권선언은 국민 복지가 아니라 억압적 국가로부터 수호해내야 할 개인의 정치적 권리를 위한 것으로 재정의되었다. 이렇게 기본 욕구에 대한 고찰이 인권 혁명과 교차하며 충분성을 강조하는 운동과 정책들이 힘을 얻었다. 결국 평등은 폐기되고 충분성이라는 이상만 살아남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의 실패, 혹은 사회주의 정책의 폭력성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인권을 도덕적으로 순수한 가치로 받아들였다. 동유럽이나 남아메리카에서는 국가가 생명권과 사상·행동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었고, 국제적 평등을 핑계 삼았던 독재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세계의 빈곤층을 지금 당장 돕기 위해 국제적인 불균형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특히 카터 행정부의 정책은 미국에서 기본 욕구 개념을 신국제경제질서에 대항할 전략으로 강조하여, 기본 욕구와 인권을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연결시켰다. 기본 욕구와 인권은 정책적 보호의 최저치를 정의하는 기준 역할을 했으며, 미국은 평등을 제쳐두고 충분성만을 약속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기본 욕구와 인권 개념은 결국 분배의 평등을 피하게 해준 좋은 구실이 되었다. 이는 신자유주의 질서가 세계에 본격적으로 안착하는 데 큰 힘으로 작용했다. 인권 운동이 형태를 갖춘 바로 그 시기에 민영화, 규제 완화, 국가의 사회적 지급 철회 등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급부상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으며, 인권은 자기도 모르게 신자유주의의 공모자가 되었다. 폭력적인 사회주의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 인권 운동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수호했을 뿐 거시적인 구조를 지적하거나 경제·사회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체제를 상상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당연할 수 있지만 아쉬운 일이었다. ‘사회주의’라는 단어의 사용 감소와 ‘인권’이라는 단어 사용 증가가 같은 시기에 맞물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이터에서 알 수 있듯, 인권은 단지 기본적인 권리를 충분히 보호하는 데만 급급했던 것이다. 인권 운동이 대항했던 폭력이 무너진 자리에는 자연스레 신자유주의가 들어왔다. 그 와중에도 인권은 물질적 평등에 참여하지 못했고 새로운 정치경제의 위계를 방해하는 데 실패했으며, 오히려 이와 공존했다. 이렇게 평등을 도외시하는 충분성, 신자유주의의 동반자가 된 인권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 책은 인권이나 인권 운동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듯이 “신자유주의는 인권이 아닌 신자유주의의 잘못”이며, 인권이 부적절하다고 말해버리는 것은 “나사못을 돌리는 데 쓸모가 없다고 망치를 비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요점은 인권이 어떻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교묘한 기수가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인권이라는 지고한 이상이 불평등이라는 커다란 악과 양립할 수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저자는 크로이소스 왕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크로이소스 왕은 모든 것을 가졌으며, 사람들이 굶주리길 원하지 않을 만큼 관대하고 자비롭고 일체의 폭력과 억압을 미워한다. 그는 모두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충분한 보호를 주장하기도 한다. 대신 모든 것을 그가 분배하며, 전체적인 불평등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계는 정말로 이런 세계인가? 전 지구적 평등이라는 유토피아는 정말로 유토피아일 뿐인가? 충분한 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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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역사에 관해 새뮤얼 모인보다 더 날카로운 회의주의를 보여준 이는 없었다. 『충분하지 않다』에서 그는 인권 이론가와 옹호자들이 모두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다 사실은 세상을 악화시킨 게 아닌지 묻는다. 이 책은 정치적, 경제적 과제들에 대한 더 넓은 토의를 확실하게 불러일으키는 귀중한 학술적 연구를 담고 있다. - 애덤 커시 (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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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권의 현 상황을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다. (…) 『충분하지 않다』를 읽으면 비평과 윤리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뛸 것이다. - 마크 구데일 (보스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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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 분배되지 않는 우리의 시대에, 인권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새뮤얼 모인의 매혹적이고 시의적절한 이 책은 지난 200년간 여러 정치적, 철학적 운동이 인간성에 대한 커다란 희망을 좇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리가 여기서 멈추고 말았는지 탐구한다. - 마티아스 리서 (『전 지구적 정의에 대하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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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모인은 비효율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서구식 인권 모델의 편협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 『충분하지 않다』는 탈식민지화의 정치적, 지적 소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일부이며, 팍스 아메리카나에 의해 창조된 자유주의 질서와 세계 거버넌스 제도를 날카롭게 추궁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꾸준히 보강되고 있는 이 책의 (자기)비판적 에너지는 필수불가결한 현대 전통으로서의 평등과 정의에 대한 지향을 회복하는 하나의 조건이다. - 판카지 미슈라 (런던리뷰오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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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나카르타에서 세계인권선언으로 발전한 개선 행진 같은 인권 역사의 이야기를 새뮤얼 모인만큼 뒤흔든 사람은 없었다. (…) 이 책은 인권이 단순히 국가 권력의 한계를 설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힘으로 경제적 평등을 촉진하기 위해 활용된다면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재고해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 벤저민 네이선스 (뉴욕리뷰오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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