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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구절판을 걷어찰 때 이야기는 시작된다
1부 - 이대녀로 산다는 것 국회 보좌관은 왜 다 중년 남성일까 _신민주 이대녀는 정말 정치에 관심 없을까 _노서영 이대녀가 트위터로 향한 이유 _로라 내 이름은 민지가 아닌데 _신민주 남초 사이트에서 ‘공정한 여론’ 찾기 _로라 여성혐오로 빚은 ‘신남성’들의 정치 _노서영 코로나 시대의 자발적 실업자 _로라 2부 - 백래시에 맞서다 유세차를 탈 수 없다면 트럭을! _신민주 N번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_신민주 누구를 위한 알페스 처벌법인가 _로라 총여학생회를 폐지시킨 권력 _노서영 국가가 차별을 차별이라 말할 때 _노서영 이대녀를 위한 언론은 없다 _로라 ‘감히 여자가’ 군대에 대해 말한다면 _노서영 에미야, 국이 짜다 _신민주 3부 - 우리가 가진 이름으로 가족 바깥에 가족을 짓자 _노서영 원피스와 탈코르셋 _신민주 가난한 사람들의 밸런스 게임 _로라 우리 자연사하자 _신민주 가해자의 죽음을 추모한 사람들 _로라 정치판에도 송은이가 필요하다 _신민주 에필로그 인터뷰: 또 악플이 달리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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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젊은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젊은 여성들의 능력을 탓하기 바빴다. 구색 맞추기로 딱 한 명, 아주 소수의 여성이 정치에 진입하는 것을 허가하고 그들이 여성혐오와 외롭게 싸우는 동안에는 방관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마침내 나가떨어졌을 때 “거봐, 여자들은 멘탈이 약해서 안된다니까”라는 말을 뒤에서 했다. 나는 정치하는 이대녀가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 언제까지 자원과 동료 없는 판에 이대녀를 밀어 넣고 그들을 탓하고만 있을 것인가.
--- p.24 페미니즘 때문에 이대남이 떠나갔다고 하지만 정작 떠난 건 이대녀였다. 낮은 출생률은 여성 탓을 하면서 여성의 건강권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해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평생 여성운동과 함께했다면서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무책임한 죽음을 택해서 이대녀는 떠났다. 그래서 대안적인 정당, 새로운 후보, 다른 정치를 찾아 이것이 ‘우리의 정치’라고 말했던 거였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아니라 정치가 우리의 문제를 소외시킨 것이라고. 이것이야말로 아주 정치적인 일(…)이라고, 이대녀의 표는 말하고 있었다. --- p.32~33 청년 여성들도 심상정 후보와 김재연 후보가 거대 양당 후보에 비해 당선 확률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여성 후보들을 지지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많은 언론이 분석하는 대로 ‘거대 양당 체제에 대한 분노’도 시사점이겠지만, 나는 이대녀가 분노로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것은 이대녀의 새로운 투자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맞다. --- p.49~50 정치권이 번역하고자 하는 ‘남초’의 합의란 ‘평등은 불공정하다’는 믿음,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그리고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 ‘역차별’이라는 믿음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이 믿음들 속에서,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은 체계적으로 무시당하고 배제당한다. (…) 남초의 지향을 수식하는 ‘공정, 합리성, 경제적 이득 논리, 실용주의’ 등의 말들은 결국 차별과 혐오의 논리에 맞닿아 있다. --- p.57~58 책상을 치며 호통치고, 폭탄주를 돌리며 남자들끼리만 으쌰으쌰 하는 호모소셜(homosociality, 같은 성끼리의 강한 유대감) 정치는 여성이 주요한 결정권을 갖는 것을 막았다. 남성이 싸우는 동안 여성은 뒤에서 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 역할을 거부하는 사람은 별종 취급을 당했다. 까놓고 말해, 엄마도 책상을 치며 호통칠 수 있고, 폭탄주를 돌릴 수 있고, 다정하고 온건한 말투 대신 강하고 사나운 말투를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폭력적이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리더십은 끊임없이 탐구되어야 하지만, 그 리더십이 여성의 ‘선천적인 능력’에 기반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한 믿음은 여성의 성역할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 p.82~83 선거에서 차악을 선택하긴 쉽지만, 최선을 택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그 2600명이 용기 내어 자신들의 최선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안다. ‘버려질 표’라는 말을 듣고도 그들은 선거에서 자신의 미래를 선택했다.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정치는 나에게 등을 돌렸지만, 은평에 사는 한 줌의 페미니스트들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 이름을 가진 여자들과 세상에 없는 선거를 했다. 정치가 등을 돌릴 때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정치는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92~93 알페스 처벌법이 문제적인 것은 그런 기획을 국회 차원에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국회는 ‘여성’들의 문화에도 (마치 남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는 요구에 응답하면서, 디지털 성폭력의 지난한 역사를 일종의 영역 싸움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켰다. 알페스 처벌법은 그 모욕의 증거다. --- p.111~112 ‘멘토스 혁명’. 에브리타임에선 우리 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을 이렇게 불렀다. 총학생회에서 투표 독려를 위해 멘토스라는 이름의 사탕을 나눠 주어서 붙은 이름이었다. (…) 많은 사람들은 곧바로 이어진 다른 대학들의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에서도 투표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민주성보다는 투표의 결과가 담보하는 민주성에 집중했다. 그리고 총여학생회라는 형태가 낡아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말 그 역할을 다해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것이었다면 ‘혁명’이라는 말까지 동원될 필요가 있었을까. --- p.118 국회에서 허용하지 않는 것이 바지인가 원피스인가는 다르지만 분명 그 두 시대는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여성 의원은 한 사람의 정치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여성으로 먼저 간주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겪는 일들은 이 세상에서 수많은 여성이 겪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 p.173 ‘그런 게 아닌 정치’, 가혹한 선택을 필요로 하는 정치는 그들의 정치다. 예전에 선배가 나에게 “정치는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그런 게 아닌 정치’에 나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 물론 이대녀들의 정치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최소한 그런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변덕스럽거나, 이해할 수 없거나, 궁금하지도 않거나, 중요하지도 않은 의제들에 휩쓸려가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우리의 정치를 하고 있었다. --- p.200~201 이런 이야기를 하면 50대 정치인들은 혀를 찰 것이다. 현실을 모르고 이상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들이 살아낸 현실에서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나의 현실이 있다. 그리고 나의 현실에서 성평등은 이상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과 가장 가까운 정치다. --- p.201~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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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계속 우리의 정치를“
외로워도 슬퍼도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대녀들 “우리는 슬픔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몫과 말들을 찾았다.”(p.101) 정치인들이 남초 사이트에서 이대남의 입장을 대변할 때도, 국회가 혐오의 목소리에 응답할 때도, 이대녀의 표심이 ‘사표’ 이상으로 해석되지 못했을 때도 젊은 여자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외로워도 슬퍼도 기꺼이 변화를 만들고 자신을 대변하는 정치를 실현했다. 이 책은 낡아빠진 판은 걷어차고 새로운 판을 깔고자 하는 “오만하고 건방지고 되바라진” 이대녀들이 스스로 엮어낸 투쟁사(史)다. 청년 이슈는 기성세대에 의해 분석되어 왔다는 점, 여성의 목소리는 흩어져왔다는 점에서 ‘이대녀의, 이대녀에 의한 책’은 소중하다. 현재 기본소득당에서 피디로, 여성주의 의제기구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노서영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여진 대학가 총여학생회 폐지의 흐름 속에서 총여학생회 재건을 위해 학내 투쟁을 했다. ‘삼대녀’를 코앞에 둔 우울증 환자이자 정치 덕후 트위터리안인 신민주는 과거 의원실 보좌직원으로 일하며 충격적일 만큼 여성 비율이 낮은 국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정책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직장인 대열에 합류했으나 이내 “모두가 그렇게 버텨내야만 유지되는 세계”(p.78)를 떠나버린 로라는 365일 온갖 분야의 ‘덕질’을 수행하는 페미니스트로서 성폭력과 성차별, 열악한 노동 환경의 문제를 짚어내며 “일하면서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 세계”(p.78)가 도래하기를 희망한다. 이뿐만 아니라, SNS 해시태그 운동, N번방 강력처벌 촉구 시위 등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이대녀들이 분투한 흔적을 엮어내고 해석한다. 뿌리 깊은 여성혐오의 시선들을 꼬집고 대학·국회·일터·언론·군대에 만연한 소수자 배제의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마침내 “페미니스트들이 섬처럼 서서 여성혐오와 성차별의 파도를 마주하고 있는”(p.23) 사회 너머로 뻗어나가는 목소리를 기록한다. “그러나 죽음의 목격자들은 디지털 성폭력(그리고 성폭력)에 대한 다양한 언어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던 말들이 터져 나오며 더 많은 것들을 지적한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시위에서 나왔던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라는 말은, 2018년 혜화역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서 “단 한 명의 여성도 잃을 수 없다”라는 말로 변모했다. 그리고 2019년과 2020년 N번방 사건을 경유하며 “그 방에 입장한 너흰 모두 살인자다”라는 말로 변화했다. 이 말들이 겨냥하는 뜻은 모두 동일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구호에서 ‘아무도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_101쪽 “그것은 어리석은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흐르는 감성이었다“ 여성을 동료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치권에 바치는 통렬한 사회 비판서 제20대 대선을 앞둔 거대 양당 정치인들의 언사 속에서 이대녀는, ‘청년의 경쟁 상대’로 언급되거나 ‘민지’라는 이름으로 정치인들이 MZ세대를 호명할 때만 가끔 등장하는 존재가 되었다. 국회를 포함한 사회 곳곳의 남성 중심 카르텔은 차별과 혐오의 논리로 견고하게 유지되어왔다. 국회에서 여성은 치마를 입어도 바지를 입어도 ‘논란’이 되었고, 여성의 문제가 주목받고 입법화되는 일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러는 동안,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더욱 거세진 백래시의 물결 속에서 정치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는커녕, 남초 커뮤니티의 말들을 무분별하게 공론장으로 끌고 오기를 선택했다. 이는 “동시에 그 반대편에 있는 존재들, 이대녀의 여론을 무시하기로 선택하기도 한 것이다.”(p.59) 이대녀는 기성 정치인들 “머릿속의 표 계산에서 ‘1’로 표기되기 위해”(p.8) 존재하는 것만 같다. 여성을 없는 존재처럼 무시하거나 여성은 유난하다고 부풀려 트집 잡기. 둘 중 무엇이든, 더 쉬운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기를 택한 남성 정치인들의 게으른 전략을 이대녀들은 기민하게 알아차린다. “유권자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주더라도 유권자를 유권자의 위치에만 묶어두려 한다면 좋은 정치라고 할 수 없다”(p.68)는 것을 이대녀들은 알고 있다. 이 책은 여성을 동료 정치인으로 신뢰하거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정치권에 바치는 통쾌한 비판서로, 군 내 성폭력 문제, 다양한 가족의 법제화 문제와 같은 풍부한 사례를 들어 고루한 정치판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정치가 뭐냐고 다시 묻는다면, 나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우리의 정치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말 심문받아야 하는 정치는 성폭력 가해자의 죽음을 추모한 사람들의 것이다. 자신이 했던 정치가 무엇인지 직시해야 하는 건 그들이다. 거기에 성차별이 있고, 안티페미니즘이 있고, 형편없는 성인지 감수성이 있고, 정치가 무엇이냐에 대한 비루한 상상력이 있다.”_202쪽 “우리가 이 시기에만 쓸 수 있는 책” 물론 또 악플이 달리겠지만 『판을 까는 여자들』의 저자들이 앞으로의 이대녀를 위해 새로운 판을 까는 역할을 자처했듯, 이 책 역시 이대녀의 모든 것을 담으려 하기보다 이대녀들이 얼마나 다양한 정치적 욕망을 품고 있는지 드러내는 책이다. 균질한 집단으로 말하기에는 그 욕망들이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에 저자들은 자신이 “모든 이대녀를 대변할 수 있다는 거짓말”(p.6)은 하지 않는다. 그토록 단일하지 않은 목소리들을 하나의 궤도로 이어 올리는 작업은 쉽지 않다. 세 저자들의 솔직한 고민은 이 책의 마지막 구성인 ‘에필로그 인터뷰’에 녹아 있다. “이대녀들이 지금과 완전히 다른 것을 원하고 있”(p.211)다는 공통적인 감각에 기대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누가 알아줬으면”(p.222) 좋을 것 같아서 책을 쓰기 시작한 세 이대녀들은 또 악플이 달리겠지만 고민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각자의 서투른 경험들도, 괴로웠던 이야기도 모두 담긴 이 책은 이 시기에만 쓸 수 있는 책이므로. 이 책을 통해 정치하는 이대녀들이 더 많은 동료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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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이런 글을 기다려왔다. 이대녀에 대한 글이 아니라 이대녀에 의한 글. 여자들에 대한 글이 아니라 여자들에 의한 글. 누군가 알아주고 기록해주기를 기다리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주고 기록하기 시작한 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묻는 대신 스스로 그 일이 되어버린 이들의 글.
『판을 까는 여자들』은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에 각자가 통과해온 역사가 달라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페미니스트에게도, ‘이대녀’ 혹은 ‘페미니스트’라는 이름 아래 묶이는 게 당최 불편한 여자들에게도, 알 수 없는 표심을 가진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성별 및 세대 불문의 이들에게도 좋은 지침이 될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처럼, 세상이 부여한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이름으로 사는 여자를 어떻게 규정하고 막을 수 있을까. 자신을 대변할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들을 만나 열렬히 싸우며 함께 자라고 싶다. - 하미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