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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평범했던 스무 살 청년 5 포로감시원 3년, 그리고 포로 신분 2년 12 이야기에 들어가며 스무 살의 젊은 청년 최영우 36 포로감시원의 정체 46 1장. 우리는 남방으로 간다 끝나지 않는 항해 53 육지를 밟다 61 말랑 제 5 분견소 69 화란인들이 살던 주택가와 휴양지 75 위안소 11호실 81 자카르타 총분견소로 이동하다 86 2장. 급박해지는 전선 수마트라행 포로 수송선의 침몰 95 일반인을 억류소로 몰아넣다 105 교통망 개척을 위한 포로들의 대이동 111 하푸카스 여인과의 만남 119 친구의 충격적인 증언 129 글로독 수용소로 전근하다 141 포로가 된 독일의 잠수함 승무원 146 3장. 일본의 항복 선언 천황의 축어를 읽다 155 조선인 민회 결성 163 인도네시아 독립군과 화란군 사이의 전투 168 갑작스러운 승선 명령 175 싱가포르 창이 전범 수용소 179 고통스러운 수용소 생활 186 치피낭 형무소 192 석방과 교수대 사이에서 197 이야기를 마치며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204 미완성의 일기 211 부록 포로감시원의 전범 재판에 관하여 218 참고 자료 224 도판 출처 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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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첫 장을 읽던 순간의 전율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가 남긴 글을 읽는다는 것.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서 죽은 후지이 이츠키의 행적을 찾아 헤매는 히로코가 되었다고나 할까.
--- p.6 포로감시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했기에 역사의 파고 속에 몸을 담글 수밖에 없었고, 그 물결의 압도적인 위력 끝자락에 애처롭게 흔들리는 조각배 같았던 그의 내면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 p.11 군속은 군인이 아닌 군대 소속 공무원이다. 전쟁터에서 직접 총을 들고 싸우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고, 월급도 많이 주니 좋은 기회다. --- p.42 대양의 넓은 바다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그래, 우리는 총을 쏘며 적군을 죽이는 전쟁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야. 우리는 단지 공무원일 뿐이야. 포로감시원이지. 나는 주어진 임무만 잘 소화하면 돼. 2년이다. 2년이면 제법 돈이 모여 있겠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 거야. --- p.44 지난 일주일간의 항해는 정말 악몽이었다. 현해탄의 파도는 매우 거칠어서 항해를 처음 경험하는 우리들은 심한 뱃멀미를 하고 여러 끼니를 챙기지 못했으며 그나마 먹은 것도 죄다 게워냈다. --- p.53 그래도 잊지 말자. 우리는 지금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일본인 군인이나 조선인 군속이나 다 같이 미지의 세계, 남방으로 간다. 목적지에 닿으면 서로 제 갈 길을 갈 것이고 그 임무와 활동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 p.57 이곳 말랑에 있는 수용소는 제 5 분견소라 불리고, 이곳에서 관리하는 포로는 약 오천 명이다. 수용소 주변에는 철조망과 암페라가 둘러쳐져 있어 외부 세계는 볼 수가 없다. --- p.69 휴일을 이용해 조금 큰 거리로 나가 보았다. 멋진 야자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있는 고급 주택가 안 정원에 광택으로 번들거리는 승용차 두 대가 보인다. 천황의 친척이 전선을 시찰하러 와서 묵는 중이라고 한다. --- p.76 젊은 화란인 학자 한 사람이 마중 나와 인사한다. 그의 신분이 포로이기에 우리는 지금 그를 감시하러 온 것이다. 그는 식물의 잎을 따서 가스 불에 말린 다음 표본을 작성하고 있다. 그 작업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꽤나 집중하는 모습이다. --- p.79 전쟁터에서 인간 하나하나의 운명은 군 간부들 책상 위의 명부 안에 체크된 점의 형태로 결정된다. 우리도 이곳 말랑 수용소의 철수 작업을 단행한다. --- p.87 어느 포로였던가,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일본군은 어딜 가나 손쉽게 쌀을 구하고 밥통으로 금방 익혀 먹지. 하지만 우리들은 빵을 만들고 수프를 끓이는 사이에 시간을 다 빼앗겨 버렸어. 그래서 포로가 된 거야.” --- p.90 정오쯤 되었을까. 천지가 떠나갈 듯 ‘꽝!’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진동과 함께 배가 온통 아수라장이 된다. 배는 뒤뚱거리며 조금 나아가다가 뱃머리부터 급히 기울기 시작한다. “바다로 뛰어라! 멀리 피해!” --- p.96 평화가 올 날만을 기대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이제 설상가상으로 억류소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그다음으로 무슨 격변이 몰아닥칠지는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우리처럼 패잔 민족의 서러움이 뼈에 사무칠 것이다. --- p.109 수용소 안에는 식용으로 기르는 염소들도 있다. 하루는 이들을 먹일 나뭇잎을 따기 위하여 리어카를 끌고 대여섯 명의 포로들과 주택가로 나갔다. 우리는 이 일을 ‘감빙 마가낭’이라고 부른다. 감빙 마가낭은 요즘 우리의 일과다. --- p.121~122 우리가 군복을 입고 군속의 문에 들어선 지 벌써 만으로 두 해가 지났다. 약속된 기한이 지났는데도 우리와 교대할 부대는 오지 않는다. 하긴, 교대 인원을 수송할 배조차도 없을 텐데. 배가 있다면 군수 물자를 우선 수송해야 할 형편이다. --- p.131 “그래, 이 전쟁은 빨리 끝나야지. 당신은 코리아 사람이지?” 나는 당황했다. 그들은 우리의 국적을 정말로 알고 물은 것일까. 그러나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일본인이다, 일본인.” --- p.133 며칠 후 나는 다른 수용소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녀서 이제는 전근 명령을 받아도 별 감흥이 없다. 이번에 배정받은 곳은 글로독에 있는 조그마한 수용소로, 전쟁 전에는 형무소로 쓰였던 곳이란다. --- p.141 1945년 8월 14일, 라디오에서 내일 정오에 천황의 축어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기에 우리는 모두 15일 정오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정작 그 시간에는 아무 말이 없었고, 저녁이 되니 장교 회의가 소집되었다. 다음 날인 16일, 사병들에게도 항복의 발표문이 공시되었다. --- p.156 그러나 그다음 조항이 꺼림칙하다. 우리가 관리한 포로들은 오랜 시간 고생을 했다. 억류자 수용소에서는 매일같이 노인과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 나갔다. 이제 처지가 바뀌었으니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취급할까? --- p.161 8월 15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는 일단 무기를 반납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주택가의 가옥 몇 채를 점거한 후 조선인이 집결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조선인 민회’라 명명했다. --- p.163 우리에게는 건물 안을 구석구석 들여다볼 자유도, 권한도 없다. D 블록에 들어온 사람은 감방과 좁다란 뜰, 식당을 오르내릴 수 있을 뿐, 끝까지 D 세계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른 블록에 가려면 달나라에 가는 것만큼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 p.181 어느 날, 가는 나무에 걸쳐 놓은 천장 서까래 위 기왓장이 파손되어 비가 약간 샜다. 그것은 엊그제 인도네시아 독립군의 총탄이 뚫은 것이다. 하마터면 기와 파편에 크게 다칠 뻔했다. 감방 너머 어딘가에서 산발적으로 총성이 울린다. --- p.196 나의 운명은 실로 풍전등화 격이다. 언제 교수대가 나를 부를지 모른다. 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겪는 운명의 장난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다른 감방에 남아 있는 자들은 서로의 심정을 헤아릴까? --- p.199 예전 생각이 난다. 우리가 포로들을 감시했을 때에 약간의 친절과 연민을 보였더라면, 저들도 지금 우리에게 두 배의 호의와 동정으로 갚으련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 p.200 어떤 이는 재판 끝에 사형을 언도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중형을 언도받은 이는 다른 감옥으로 이감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감옥 안 포로감시원의 숫자는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떠한 결과도 통보되지 않았다. --- p.205 그의 행적을 쫓던 걸음을 멈추고 이제는 가만히 그의 내면을 되새겨 본다. 다시 하나의 가정을 해 본다. 그가 포로감시원으로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 p.211 소수 위정자들의 결정으로 수행된 전쟁은 수많은 무명의 개인에게 큰 고통과 피해를 주었다. 무엇보다 전쟁의 최전선에 서야 했던 젊은이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지금이라면 서로 자유롭게 어울리며 친구가 되어 교류했을 전 세계의 청년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만 했다. --- p.213 스무 살의 청춘, 꿈 많고 패기 넘치던 청년 최영우. 이 젊은이의 꿈을 좌절시킨 그 난폭한 시대를 부질없이 원망해 본다. --- p.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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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끓는 혈기로 꿈과 이상이 넘쳐났던 스무 살 청년 최영우. 이 젊은이를 나락으로 내밀고 폭풍 속에 허우적대도록 한 그 난폭한 시대를 부질없이 원망해 본다. 그 시기는 이 땅에서 다시는 재현되지 말아야 할, 아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어둠의 시간이었다. 그는 빛도 보이지 않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역사의 깊은 터널을 힘겹게 통과한 무명의 젊은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를 함부로 폄훼하거나 나약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의 마음을 무 자르듯 단정 지어 헤아리고 서글퍼할 필요도 없다. 슬픔이란 단어는 이럴 때 흔히 쓰는 진부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시대를 통과했고 운명처럼 주어진 결과를 감내했을 뿐이다. 엄혹한 세상이 제시한 선택지는 적었고, 그는 그 선택지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질풍 광기의 시대에 소수의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은 수많은 무명의 개인에게 큰 고통과 피해를 주었다. 무엇보다 전쟁의 최전선에 서야 했던 젊은이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서로 자유롭게 어울리며 친구가 되어 교류했어야 할 전 세계의 청년들이 먹고 먹히는 살육의 현장에 있어야만 했다. 전쟁은 인성과 감성은커녕 이들에게 승리를 위해서는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인권과 존엄조차 짓밟아도 된다고 강요했고, 순수함과 열정이 가득했던 그들의 내면을 황폐화시켰다. 스무 살 조선인, 자신의 정체성조차 모호했던 그 역시 이 서글픈 비극의 역사에 반강제적으로 내던져진 젊은이들 중 하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