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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인간들의 내기
도깨비의 인간, 인간의 도깨비 에필로그1 복수, 그 이후의 시간 에필로그2 감동의 아이 |
YANG SOO RYON,梁秀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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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내가 내기에서 이긴다면? 그렇게만 된다면야, 귀설에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홍제의 조롱을 더는 받지 않아도 될 절호의 기회가 될지도 모를 일이잖은가. 홍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p.17 어느 날인가부터 오르의 방에 수상한 것들이 기생하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소리. 습습한 그림자. 까무룩 잠이 들다가도 웅성거림에 오르는 몸이 절로 동그랗게 말렸다. 정체불명의 소리가 자신을 해코지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아니고 장터의 왁자지껄 사람소리도 아니다. --- p.33 차량의 외부는 물론 내부 어디에도 불은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불에 탄 것이라고는 사람뿐이다. 사람이 수시로 드나드는 호텔 주차장임에도 불기운이나 냄새를 맡았다는 사람은 없었다.“경찰도 어이가 없는지 그냥 갔습니다. 하기는 저도 이런 사건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라니까요.” --- p.49 탈린을 펼치자면, 파란 불꽃은 그 안에서 빠져나왔다. 그 불꽃 역시 오르는 탈린이라 불렀다. 탈린은 귀화가 잠든 틈을 타 집안 곳곳을 훑고 다녔다. 나중엔 오르가 있는 곳이면, 학교든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이든 상관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따라다녔다. --- p.69 “조그만 녀석이 쓸데없는 노파심이 많군. 너를 잡아먹진 않을 거야. 심장을 꺼내 먹지도 않을 것이고. 일단은,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 들어줄 거야.” “그 다음엔요?” “그 다음엔 내가 원하는 걸, 네가 좀 해주면 돼, 아주 먼 나중의 날에 말이지.” “그것뿐인가요, 정말로?” “정말로 그것뿐이야.” “그래도 만약, 내 심장이 필요하면 일 년, 아니 십년 뒤에나 가져가요. 아니, 아니에요. 내가 죽고 싶다고 말할 때 그때 가져가요.” --- p.83 괴물은 홍제가 아니라 인간들이다. 인간은 홍제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측은하게도 몸부림쳤다. 홍제에게 인간은 흔하게 태어나고 흔하게 죽는 생명에 불과했다. 인간은 아둔해서 그것을 알지 못했다. --- p.117 홍제의 책을 들추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되는 일임에도 인간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권력을 쥔 자들의 잔꾀는 거기서 나왔다. 책이 사람을 삼킨다면 뒤탈이 없는 이들을 불러 시험하면 된다. 책을 펼친 찰나,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책이 토해낸 사람들이 간혹 있어서 그들은 책의 정체를 알았지만 함구했다. --- p.141 늙음을 모르는 홍제를 누군가는 숭배하고 또 누군가는 저주했을 것이다. 홍제 옆에서라면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결코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그것은 천형.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괴물, 홍제. 기문의 불어나는 나이는 훈장도, 지혜도, 뭣도 아니었다. --- p.183 하진은 차에서 내렸다. 불덩이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는 몸을 낮춰 걸었다.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불덩이를 눈으로 쫓았다. 횃불도 반딧불도 아니다. 제 의지로 움직이는 불덩이.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음에 하진은 얼떨떨했다. 허둥지둥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이라도 찍을 심산이지만 손이 말썽을 피운다. 하진의 손끝이 자꾸 엉뚱한 버튼에 닿았다. --- p.203 껍데기뿐인 고백.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고백이었다. 귀화를 탓할 수 없음에 홍제의 실소는 허탈하게도 번져갔다. 제 아무리 도깨비라도 죽은 아이를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보지도 못했으니 그리움 따위는, 애잔함 따위는 없어야 했다. 자신의 아이라고 받아들인 순간부터 죽은 아이는 홍제의 가슴에 큰 구멍 하나를 남겼다.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홍제는 리아의 죽음과 삶이 있던 곳을 찾아다녔다. --- p.246 홍제는 아내의 치마를 뒤집어쓰고 뒹구는 청소부에 눈살을 찌푸렸다. 팽하니 돌아앉았다. 도깨비 섬에 대한 얘기를 다 듣지 못한 것이 억울하고 또 허전했다. --- p.252 생의 유한함은 얼마나 고귀한가. 하나의 죽음이 수많은 생명을 위해 남긴 것들은 또 얼마나 감동적인가 말이다. 홍제는 어리석고 아둔한 인간을 닮아갔다. 경멸은 사랑받지 못한 홍제의 옹졸한 마음이었다. --- p.295 도깨비와 인간이 다름에도 무녀라는 신분을 등에 지고 홍제와 똑같기를 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비령은 도깨비를 농락했고 하늘은 노했다. 비령은 어두운 동굴에 갇히고 혼령은 저 홀로 구천을 떠돌았다. --- p.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