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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나를 알기 위해, 나의 언어로 기록하기 위해
살며시 다가온 운명이란 손님 - 익숙한 그 자리 - 뼛속까지 - 어느 수학자의 고통 대처법 - 엡실론만 한 진실이라도 - 언저리에서 - 그러게나 말입니다 - 귀한 손님 - 재봉틀과 소창 기저귀 꿈을 위한 변명 - 신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 - 선물처럼 찾아온 '오늘' - 아직, 겨울 - 그 섬에서 - 이야기하기 위해 친애하는 나에게 - 섬 넘어 산 - 하얀 질병 - 교훈을 얻게 해주는 사람 - 나의 친애하는 - 20201221 - 들꽃처럼 - 혼자 할 수 없는 직업 - 우리의 '인테그랄' 허락된 날까지 나를 찾아서 - 나리 나리 미나리 - 문어와 비싼 취미 - 미혹되기 좋을 나이 - 가끔 잃고 싶은 길 - 피어나는 모든 것 에필로그_신춘문예라는 버튼 더하는 글_인테그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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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동시에 고학력 백수가 된 남편, 그리고 경력이 단절된 나. 현실은 냉혹했다.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는 결혼이라는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출산이라는 가시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 p.67 지금까지 나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를 예술성의 흔적을 지우는 데 썼다. 잠자는 것까지 잊고 끼적이던 글들도, 친한 친구에게 언젠가 꼭 글을 쓰고 싶다고 전한 진심도 주정으로 덮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병 같은 것이었나 보다. 늦은 나이에도 결국 문학의 길을 밟은 할아버지처럼, 대를 이어 도망가기도 끊기도 어려운. --- p.85 그 이야기를 하며 촉촉이 젖어 드는 남편의 눈시울을 보면서 나는 결심했다. 그가 사랑하는 수학의 세계를 위해 나는 기꺼이 페렐만의 노모 같은 사람이 되어주리라. 가난한 수학자의 아내가 되리라.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결혼하기 전, 아이가 둘이 되기 전 이야기다. --- p.90 거대한 인공섬은 완벽했다.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비바람을 맞지 않도록 지하에서 지하로 통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커다란 공원과 쇼핑몰, 도서관과 학교.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이 도시에도 완벽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그 배경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나. 내가 길고양이에 집착한 이유는 이곳에서 나 역시 길고양이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p.108 “아니, 엄마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지난번에 네가 유치원의 꽃을 딴 행동은 ‘잘못된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남이 딴 꽃을 던지고 밟는 건 확실히 ‘나쁜 행동’이야. 한 나무에 수백 송이 피는 꽃들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지고 말 거야. 너는 흔들리는 꽃이 되지 말고 뿌리가 되렴. 홀로 어두운 땅속에 묻혀 있어도 언제든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강한 뿌리 말이야.” --- p.111 “엄마는 다 컸는데 왜 아직도 꿈이 있어?” 수업을 갈 때마다 헤어지기 싫어 울어대던 첫째가 물었다. 나는 어떤 꿈은 나이가 들면 더 선명해지기도 하고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나도 믿지 않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 p.115~116 나는 글보다 나와 타인의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결코 다르지만은 않다는 교훈도 얻었다. --- p.143 대부분 상처가 더 쓰라린 이유는 그 고통이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론 아무리 가까운 사이에게도,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나 스스로에게조차 말이다. --- p.146 이제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 한 가지는 확실히 해결한 듯하다. ‘태어났다’ 다음의 문장도 이어 쓸 수 있다는 것. 글을 마음에 담고도 넘쳐 이렇게 책까지 쓸 수 있다는 것. 나는 오늘도 애정을 담아 편지를 쓴다. 내 모든 글의 첫 번째 독자이자 수취인, 친애하는 나에게. --- p.150 딸에게 밝힌 나의 바람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수많은 꽃을 피우는 튼튼한 뿌리가 되지 않아 도 괜찮다. 나는 그냥 나이면 되는 것이다. 이 거대한 세상에 나라는 정서를 작게나마 피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 p.162 이 커다란 세상에 작게나마 내가 피어 있다는 것만으로,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앞으로도 들꽃처럼 열심히 피어 있겠다. (신춘문예 수상 소감) --- p.163 우리의 결혼 생활 그래프는 이제 무한정 넓어지지도, 소멸되지도 않는 적절한 평행선을 그리며 안정적인 면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인생이라는 변화무쌍한 구간에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이 평행선 그래프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 p.173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누군가’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살다 보니 ‘나’라는 존재가 된 것처럼 허락된 날까지 나를 찾아가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 p.188 남편과 나의 관계. 나는 우리의 관계가 거울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를 비추고 있지만 모든 것을 반대로 비추는 거울. 거울 속에서는 왼쪽과 오른쪽의 기준이 바뀌듯 우리의 옳고 그름의 기준도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 p.199~200 앞서가는 누군가와 비교하면 내가 너무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도 우리 모두의 목적지는 각각 다르다. 같은 종류의 나무라고 해서 같은 시간에 잎을 틔우지는 않는 것처럼. --- p.207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직업과 세상의 작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직업이 더해졌으니 영혼의 가성비는 매우 좋은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 p.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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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 수학자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가정을 꾸리는 데 충실해온 삶. 그러나 생활의 안정은 요원해 보이고 ‘나’라는 존재는 지워져만 가는 듯한 초조함. 저자는 전업주부에게 곧잘 ‘엄마태만’ 같은 딱지를 붙이는 사회의 시선에 위축되는 자신을 위로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학밖에 모르는 세상 물정 어두운 남편 때문에 속 끓이고, 종일 곁을 떠날 줄 모르는 두 딸 덕에 녹초가 되고, 모처럼 이사 간 신도시의 ‘엄마 커뮤니티’에서 소외됐던 지난날. 삶에서 자꾸만 고개를 내미는 분노와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곧 글쓰기의 원동력이자 글감이 되었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자기 꿈을 재설정하는 과정, 현실과 꿈을 양립하게 만드는 힘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한 부단한 일련의 노력이 담긴 작가 유성은의 『나를 찾아가는 직업』이 마음산책에서 출간되었다. 누구든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작가 지망생들에게 신춘문예는 ‘인증된’ 작가로 시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연례행사다. 책의 저자 유성은은 2021년 제9회 한경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되며 꿈꿔왔던 작가의 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인 권남희 번역가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그의 글은 에세이의 정석 같다. 흠도 없고 군더더기도 없다”라며 극찬을 보냈다. 신춘문예 심사 당시, 유성은 작가의 「인테그랄」은 수많은 원고 중에서 독보적으로 반짝거렸다. 심사를 하면서 열 번도 더 읽었는데, 뽑을까 말까 고민돼서가 아니라 자꾸 읽고 싶어지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완성된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아, 역시!’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의 글은 에세이의 정석 같다. 흠도 없고 군더더기도 없다. 언젠가 교과서에 실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_번역가 권남희 빳빳하게 풀 먹인 소창을 부드럽게 풀어주듯 쉼 없이 반복하며 글쓰기에 익숙해지도록 아동문학가였던 할아버지 서재를 제 방처럼 드나들던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며 미술에 눈 뜨게 된 청소년기를 거쳐 대학생이 되어 다시 찾은 한국에서 불문학과에 진학하기까지, 그의 생애에는 글과 그림이라는 창작의 산물이 바짝 붙어 있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이른 나이에 진행된 결혼, 출산, 육아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앗아갔다. 산후우울증을 겪던 시기에는 풀 먹인 누런 소창을 부드럽고 새하얗게 정련한 뒤, 재봉틀로 기저귀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자 우울의 돌파구였다. 그는 글을 쓰겠노라 결심하기 전까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를 예술성의 흔적을 지우는 데 썼다”라고 털어놓는다. 역할도, 핑계도,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진 나이에 자기 꿈을 고집해도 될지 고뇌하는 대목에서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왕복 네 시간을 무릅쓰고 비장하게 찾아간 글쓰기 강좌에서 낭패감을 맛보기도 하고, 둘째가 조금 더 크고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꿈을 유보해달라는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다. 꿈에 대한 자세가 적극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 작가에게 글쓰기 수업을 듣고 나서다. 저자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라는 조언에 따라 소소하지만 드라마 같은 일상을 소재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는 마흔에 교정을 하러 간 치과에서 나이가 들수록 잘 미혹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길고양이를 보며 동료애를 느끼기도 한다. 주의 깊게 일상을 들여다보고 살뜰히 글에 담아내는 재능과 타고난 유머 감각이 어우러진 간결한 문장은 무엇보다 ‘글의 재미’라는 측면에서 탁월하다. 지금까지 나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를 예술성의 흔적을 지우는 데 썼다. 잠자는 것까지 잊고 끼적이던 글들도, 친한 친구에게 언젠가 꼭 글을 쓰고 싶다고 전한 진심도 주정으로 덮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병 같은 것이었나 보다. 늦은 나이에도 결국 문학의 길을 밟은 할아버지처럼, 대를 이어 도망가기도 끊기도 어려운. _「신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에서 “엄마는 다 컸는데 왜 아직도 꿈이 있어?” 선명하고 간절해진 작가로의 길을 향해 대학 졸업 후 명품 브랜드 유통회사에 다니던 저자는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직장을 자주 옮겨 다닌다. 도망치듯 사촌이 거주하던 미국으로 갔다가 만난 ‘교회 오빠’와 결혼한 후, 네 살 터울의 자매를 차례차례 낳는다. 한 손으로는 큰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아차를 미느라 글을 쓸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어느 날 딸이 물었다. “엄마는 다 컸는데 왜 아직도 꿈이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뻔한 이유를 덧붙였지만, 그는 “어떤 꿈은 나이가 들면 더 선명해지기도 하고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는 말로 아이를 이해시켰다. 로또 1등 당첨과 신춘문예 당선을 선택하라면 두말할 것 없이 신춘문예 당선을 고르겠다고 단언하는 작가 유성은. 그의 첫 책 『나를 찾아가는 직업』에는 돌봄노동의 주체로서 여성이 겪는 고충과 애환을 비롯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작가 지망생의 고뇌와 좌절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신춘문예 당선작 「인테그랄」의 숨겨진 이야기와 당선 이후의 삶, 책 출간에 이르기까지 초보 작가의 다양한 일화를 엿볼 수 있다. 내가 한 작업은 창작이라기보다 일상 속에 숨겨진 ‘단서’를 내 언어로 옮겨 적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영화처럼 매혹적인 히로인이 나오거나 소설처럼 극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내 삶을 기탄없이 쓴 글들이 누군가의 시선을 잡고 공감을 얻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믿는다. _「프롤로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