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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 현대 사회의 새로운 집단
모두가 사소하다 비웃어 넘기는 것들을 파헤치는 문화비평가 최태섭. 단군 이래 ‘가장 영향력 없는 집단’ 오늘의 ‘젊은 잉여’들을 파헤친다. 도전하지 않고 온라인 속으로 침잠하는 젊은이들, 인터넷에서의 무수한 댓글놀이로 상징되는 ‘잉여청춘’들을 현대 자본주의가 존속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새로운 집단으로 바라보며 본격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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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_잉여, 잔혹한 시대를 돌파할 작은 가능성
프롤로그_내가… 내가 잉여라니?! 잉여인간들의 출현 / 할 일 없이 산다 / 싸우지도 못했기에 루저도 아니다 / 가능성이라는 희망과 저주 1부_잉여란 무엇인가 _ 잉여를 만들고 내쫓는 세계의 작동 방식 1장_우리들의 찌질하고 처절한 21세기 슈퍼88만원세대K / 20대 개새끼론,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어 /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2장_역사의 죽음과 잉여의 탄생 노동이 모욕이 된 꿈의 신세기 / 자유가 너희를 속박케 하리라 / 역사 이후의 인간들, 동물과 속물 / 근거 없는 존재의 탄생 3장_무엇이 잉여인가 세계에 곤란함을 제공하다 / 쓰레기가 되는 어느 민감한 삶 / 결핍, 잉여의 필요조건 / 과잉, 잉여의 충분조건 / 좀비와 유령의 존재론 4장 잉여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잉여와의 전쟁, 탄압에서 무력화로 / 저 남아도는 존재들을 통치하라 / 잉여 추방을 위한 시공간 / 잉여는 제거되지 않는다 2부 잉여 생태계의 탄생 _ e-병맛 쩌는 세상의 지도를 그리다 5장_병맛의 세례를 받으라 : 잉여들의 서사와 통찰 잉여 문화의 새벽 / 병맛, 그 새로운 서사의 탄생 / 이말년과 귀귀, 부조리와 검열의 이중주 6장_고자와 게이로서 말하기 : 관계 불가능에 대한 자조와 공포 어디선가 들려오는 찰진 소리 있나니... / 후로게이들의 역사 /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7장_키보드워리어의 생태와 습성 : “어쨌거나 싸우자!” 그 소통의 이면 논객의 등장과 방언의 시대 / 사이버 전사들 : 악플러와 어글러 / 인터넷 대첩과 네티즌 수사대 / 무엇을 위해 뭉치고 싸우고 파헤치는가 8장_잉여들의 완장놀이 : 비겁한 쾌락과 박탈의 세계화 ‘힘’의 기원 / 도취된 자경단의 출현 / 일베는 괴물인가 / 피해의식과 쾌락의 동반 폭발 / 박탈과 불안의 인터내셔널 / “민주화 당한” 세계가 보내는 위험신호 에필로그 _ 잉여는 어디로 가는가 진짜를 찾는 모험: 잉여와 진실의 문제 / 잉여는 저항할 수 있는가? / 잉여에게 제안하는 세 가지: 생존, 성장, 만남 주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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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디씨로, 웃대로, 오유로, 일베로, 루리웹으로 달려가자. 그러자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세상에는 이다지도 잉여들이 많고 많았던 것이다. 누가 더 잉여인가를 겨루는 일생일대의 패배자 배틀이 벌어지다가, 급기야 웃음이 번진다. 끝나지 않는 ㅋ의 군집 이동, 웃음은 Ctrl+C와 Ctrl+V를 타고, 여기에서 저기로 빛의 속도로 번져 나간다. 웃는 것이다.--- p.13
번듯한 직장, 그럴듯한 대학, 멀쩡한 허우대를 가진 이들도 잉여라는 말에 출렁댄다. 웃음은 부쩍 흔들거리는 발밑에서부터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은밀하게 흘러들어간다.--- p.13 크게 보아 잉여가 되는 것들은 이 기준들에 못 미치거나 넘치거나, 때론 둘 다인 존재들이다. IQ 430은 현대의 뇌과학과 지성계가 받아들이기에는 넘치는 수치이기 때문에 잉여가 된다. 반면 자신의 신발사이즈에 준하는 토익 점수는 그것이 이 시대의 기준이 용납하지 않는 부족한 수치이기 때문에 잉여가 된다.--- p.15 오늘의 패배자들에게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예민한 감수성이 아니라, 일상적인 패배 속에서 무던해지고 무감각해진 감수성이 남아 있다. 어떻게든 먹여주고 살려주던 호황의 시대는 속절없이 끝났고, 루저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들의 여유도 늘어가는 빚 속에서 사라졌다.--- p.21 자신의 자녀들이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명문대 출신의 전문직 엘리트가 되길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이야말로 이 변화의 핵심에 있다. 누군가가 궂은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나나 내 자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이 노골적인 고백들이 20대를 욕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공존한다.--- p.39 과거의 희생에는 그들이 뭔가의 거대한 이념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다는 가상의 만족감이라도 있었지만, 새로운 시대의 고달픔은 이 모든 것이 네가 선택한 것이고 너를 위한 것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p.59 오늘날 나의 존재를 구제해줄 거대 서사나 역사적 소명 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근거 없는 존재'이고, 세계는 우리에게 '알아서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거대한 막연함은 우리를‘잉여’라는, 피할 수 없는 시작 지점으로 인도한다.--- p.76 길을 걷다 걸려서 넘어진 후에야 인지하게 되는 보도블록의 미세한 단차나, 콘크리트 벽에 박혀 평소엔 눈에도 띄지 않다가 스웨터의 올 따위가 걸렸을 때에나 인지하게 되는 작은 못처럼, 잉여는 그것이 체제나 체계를 크고 작은 곤경에 빠뜨릴 때에야 비로소 인지되고, 정확하게는 바로 그 순간부터 존재하게 된다.--- p.79 오늘날 이렇게 생산된 잉여들의 존재론적 위상과 관련된 가장 적절한 표상은 ‘좀비와 유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존재는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적 분류법에서는 언데드Undead에 속하는데, 이는 인간으로서의 생을 마감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인하여 죽지 못하고 지상에 남아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들이다.--- p.94 자기소개서가 그토록 쓰기 어려운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각기 다른 에피소드들인 내 인생을 하나로 엮어서 이야기로 만들라는 곤란한 요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써놓고 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 매끈한 이야기에 비해 병맛 웹툰은 오히려 진짜 이야기가 존재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p.141 귀귀의 기괴한 만화를 비롯한 수많은 잉여적인 것들은 그것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검증받기도 전에 검열과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병맛처럼 이해할 수 없거나, 박정근처럼 ‘성스러운 악’ 북한을 함부로 건드리며 놀았거나, G20 포스터에 감히 쥐그림을 그려 넣었거나……. --- p.151 사실 일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후속 세대들에게 민주화는 교과서 속에서나 등장하는 무언가이다. 이들이 느끼는 민주화의 시간성은 5.18과 5.16을 혼동하고, 4.19가 먼저인지 6.10이 먼저인지 헛갈리는, 시험 문제로 나오지 않으면 딱히 외워야 할 필요는 없는 어떤 역사들의 무더기 같은 것이다. (…) 이들이 빠진 함정은 지금 우리도 함께 빠져 있는 함정이다. 일베가 아닌 모든 이들고 불안과 불만을 양손에 가득 쥐고 있다. 이들의 행동 역시 이 ‘영원한 현재’를 벗어나기 위한 궁여지책의 하나일 뿐이다.--- pp.229-248 약자나 싸울 수 없는 이들에게 던지는 1/n의 돌팔매로 비겁하게 분노와 울분을 해소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이 세계가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조차도 잊은 채로 삶이 아닌 그냥 텅 비어 있는‘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p.257 우리들의 만남은 결코 무해하고 가식적인 우아한 사교의 장이 아니라, 각자의 곤경과 궁핍함을 딛고 은연중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라난 다른 사람들, 다른 세계들 간의 충돌이 될 것이다. --- p.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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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잉여 인간’이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 세대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시선으로, 잉여사회의 정체를 밝히다 모두가 사소하다 비웃어 넘기는 것들을 파헤치는 문화비평가 최태섭 단군 이래 ‘가장 영향력 없는 집단’ 오늘의 ‘젊은 잉여’들을 파헤치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서 “네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라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 착취를 분석했던 최태섭이 현대 사회를 뒤덮고 있는 잉여 현상에 주목했다. ‘열정 노동’뿐만이 아닌 수많은 소외와 착취가 만연하는 이 답답한 시대에 작은 숨통을 트기 위한 노력이다. 잉여라는 키워드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대사 “대학 못 가면 잉여인간이야, 인간쓰레기 되는 거야!”와 같은 일갈에서 시작하여,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하지 못한 자신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 되고, 이제는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느끼는 불안한 정서와 그것을 잊기 위해 무의미한 일에 몰두하는 행위까지도 합산한다. 잉여라고는 하지만 한편으로 청춘인 그들은 왜 인터넷 안에서만 자신을 표출하는가? 그들은 왜 긍정과 도전을 외치는 세상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모니터 앞에 앉게 되었나? 이 책은 댓글놀이, 병맛 웹툰, 키보드워리어와 일베 논란을 들여다보며 잉여들의 심리와 행태를 추적한다. 자기 자신도 ‘잉여’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회학도이자 문화비평가인 최태섭은 어른이나 선생의 눈이 아닌 잉여 스스로의 눈으로 이 현상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무엇보다 《잉여사회》는 잉여를 낳게 된 현대 자본주의의 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데 그 의의가 크다. 현대인이 말려들 수밖에 없는 ‘대잉여시대’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 청년들의 75%가 스스로를 잉여라고 생각해 급속히 퍼져나가는 ‘청춘담론’이 가리고 있는, 이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다 보통 잉여라 하면 곧바로 ‘청년 백수’, ‘아프니까 청춘’인 20대를 떠올린다. ‘88만원 세대’부터 ‘20대 개새끼론’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이 사회 변화와 발전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분석한 담론은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그렇게 근 10년간 ‘청춘담론’이 급속하게 확산되었는데, 청춘들의 현실은 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세대 담론은 나이가 들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본과 권력의 구조 안으로 진입시키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고, 한국 사회의 경우 그들을 ‘특정 세대’로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세대론은 나름의 역할과 힘이 있었지만, 지금의 20대론은 그저 ‘무기력하기만’ 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20대’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백수이나 더 이상 청춘도 아닌 이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저자는 지금과 같은 현실이 계속된다면 20대의 정체와 무기력은 몇 년 후 20대가 될 10대의 문제가 되고, 청년들이 30대와 40대가 되어서도 이 문제를 그대로 안고 갈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니 이제 세대론을 넘어서서 잉여사회의 근원적 구조를 통찰해야만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기성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주체들의 생태 현대 자본주의가 존속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버려지는 존재’들의 실체 저자는 잉여란 ‘젊으나 쓸모없는 백수들’이 아니라, 앞으로 현대 자본주의가 존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만들어낼 ‘거대하나 무기력한 타자’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좀비 혹은 유령 같은 존재’로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풍미하는 존재의 대명사가 있어, 어떤 시대에는 노동자였고 어떤 시대에는 신세대였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방식은 그 이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어떤 누구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구현할 수 없는 시대’. 그런 ‘비자발적인 주체’들은 스스로를 대변하는 용어로 ‘잉여’를 선택했다. 그들은 왜 뜻도 잘 모를 이 어려운 한자어를 자신의 존재방식을 표현하는 단어로 택했는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남아도는 인생’이라고 자조하게 되었는가? ‘잉여인간’이라는 말이 담은 ‘현대 사회의 남아도는 존재’라는 개념은 1840년대 투르게네프의 소설에서 처음 형상화 되었고, 국내에는 1958년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으로 알려졌다. 그 시절까지만 해도 잉여인간은 소수다. 하지만 지금은 취업에 성공한 1명 외의 9명이 잉여가 되고, 이제는 자본의 선택은 받았으나 혹사를 못 견뎌 탈락할 수 있는 그 1인까지도 잉여다. 성장은 느려지고 사람은 남아도니 필요하다면 언제든 내쳐질 수 있고, 그렇기에 남부럽잖은 스펙을 가진 이들도 자신이 잠재적인 잉여임을 인식하는 시대다. 삼포세대라 불리는 실업 청년부터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불필요하다면 언제나 무엇이든 치울 준비가 되어있는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존재를 잉여로 만드는 ‘잉여사회’가 되어간다. 즉 잉여들은 끊임없는 경쟁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삼키지 못한 찌꺼기이면서, 이 체제가 유지되는 이상 결코 없앨 수는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잉여는 새로운 가능성일까? 아니면 시대와 불화하는 실패한 세대일 뿐일까? 그러나 이 책은 결코 사라지지도 않고 완벽하게 처리되지도 않는 잉여들이 품은 에너지를 현대 사회의 가능성 중의 하나로 본다. 그 잉여적 에너지의 발현을 가장 쉽게 관찰 가능한 곳인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보여준다. 우선 인터넷 공간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소통하고, 놀고, 존재할 수 있는 공유지이다. 저자는 이 인터넷 공간에서 발현되는 잉여 문화의 발생과 생태를 꼼꼼하게 훑어 내리며 잉여들, 나아가 이 사회의 내밀한 회한과 욕망을 파악해간다. 이말년과 귀귀 등의 ‘병맛 웹툰’으로 대표되는 잉여들의 서사 ‘병맛’을 한 번 들여다보자. 이 말은 ‘병신 같은 맛’의 준말이다. 자신의 삶을 매끄럽고 단단한 스토리로 꾸며낸 ‘자기소개서’가 병맛의 정반대라고 보면 된다. 기승전결 없이 불확실하거나 어이없이 흘러가는 이 현실의 이야기에 잉여들은 공감하며 작은 위안을 얻는다. 병맛이라는 정서 아래 잉여들은 자기를 ‘고자’나 ‘철벽녀’라고 칭하며 소통과 관계 불가능성을 자조하거나, 좌표만 있다면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는 ‘키보드워리어’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최근 큰 이슈가 된 ‘일베’ 사태에서 잉여 현상 중에서도 부정적인 것들이 겹치고 쌓이며 현대 사회의 곪아 터진 상처를 드러냈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이버스페이스의 역사를 훑으면서 잉여들의 부정적 측면은 물론 연대와 공감, 창작 능력에 이르는 긍정적인 측면까지 그들의 다양한 심리와 행동을 설명한다. 저자는 잉여가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다듬어지지도 않았고, 또 다듬어지지도 않을 것이기에 작으나마 그들에게 이 시대를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좀비처럼 죽여도 죽지 않는 가능성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 모든 잉여들에게 공통적으로 말해야 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 과업은 ‘살아있을 것, 그리고 적어도 스스로를 솔직히 받아들이며 살아있을 것, 그 후 진정으로 만날 것.’ 즉 생존, 성장, 만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