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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돈대 순례
세계 유일의 희귀 유적, 54개 강화돈대를 찾아서
이광식
들메나무 202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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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강화돈대 르네상스’를 꿈꾸며
Intro 세계 유일의 희귀 유적, 강화돈대

돈대 꿰미길 첫 번째-강석해협의 강화돈대

1 ‘위태로움이 없다’-무태돈대
2 앞에는 바다, 뒤로는 평야-망월돈대
3 강화돈대 중 최고 걸작-계룡돈대
4 최고의 전망지에 버려진-석각돈대
5 큰길 가에 이런 아름다운 유적이!-삼암돈대
6 외포리 젓갈시장 옆-망양돈대
7 손대다 갑자기 멈춘 ‘미복원’-건평돈대
8 아름다운 반원형의 해넘이 명소-굴암돈대
9 폐타이어 계단이 말해주는 유적-송강돈대
10 잘못 알려진 것이 너무 많다-선수돈대
11 강석해협의 길목을 지킨다-장곶돈대

돈대 꿰미길 두 번째-강화 남해안의 강화돈대

12 호젓한 산길 1km 걸어간다-북일곶돈대
13 환상적인 봄의 아름다움-미루지돈대
14 동막해변의 제1명당-송곶돈대
15 초승달 모양의 아름다운 성채-분오리돈대
16. 17 철저히 버려진 쌍둥이-양암-갈곶 두 돈대
18 단정한 형태의 아름다움-후애돈대
19. 20 폐허로 방치된 형제 돈대-택지-섬암돈대
21 강화도 바깥의 유일한-동검북돈대

돈대 꿰미길 세 번째-염하 수로의 강화돈대

22 일본의 조선 침탈 첫 단추-초지돈대
23 외세 침탈을 제1선에서 막아낸-덕진돈대
24 돌출한 ‘용머리곶’에 앉은-용두돈대
25 손돌의 전설이 어린-손돌목돈대
26 신미양요의 격전지-광성돈대
27 ‘자라머리곶’에 자리잡은-오두돈대
28 기단만 복원한 ‘사직단’--화도돈대
29 ‘별나무’가 지켜주는-용당돈대
30 큰길 가에 우뚝 선 성채-좌강돈대
31 철저히 버려진 산등성이 돈대-가리산돈대
32 갑곶돈대에는 ‘돈대’가 없다-갑곶돈대
33 염하 건너 문수산이 빤히 보이는-염주돈대
34 안내판 하나 없는 ‘폐허’-망해돈대
35 문수산이 한눈에 보이는 요충-옥창돈대

돈대 꿰미길 네 번째-강화 북안의 강화돈대

36 가장 아름다운 정자가 있는-월곶돈대
37 ‘강화외성’이 시작되는-적북돈대
38. 안내판 하나 없는 폐허-숙룡돈대
39 ‘높이’만 남아 있는-소우돈대
40 평화전망대 가는 길 옆의-석우돈대
41 군데군데 토축만 남아 있는-천진돈대
42 ‘별처럼 펼쳐진’-철북돈대
43 개성 송악산이 빤히 보이는-의두돈대
44 강화도 최북단에 위치하는-불장돈대
45 문 옆 돌에 명문이 있는-초루돈대
46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까치아래돈대(작성돈대)
47 ‘거북이가 기어오른’-구등곶돈대
48 조금 손대면 원형 되찾을-광암돈대
49 접근로도 없이 쓰레기장이 된-인화돈대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5개 멸실 돈대

50 정미소가 들어선-장자평돈대
51. 군 시설이 가로막고 있는-제승돈대
52 3~4m 석벽만 남은-휴암돈대
53 저수지 바닥이 된-낙성돈대
54 면석 한 개만 남아 있는-빙현돈대

저자 소개 1

‘별과 우주’를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들려주는 국내 대표적인 천문학 작가. 젊은 시절 우주에 대한 호기심에서 헌책방을 순례하고,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 출판사를 차려 한국 최초의 천문 잡지 [월간 하늘]과 교양 천문학 책 등을 펴냈다. 일에 파묻혀 살다가 사라지기 전에 우주를 더 알고 사색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찌감치 강화도 퇴모산으로 들어가 낮에는 텃밭 일을 하는 한편, 밤에는 망원경으로 별 보고 천문학 책 읽는 생활을 계속했다. 현재 '원두막 천문대'라는 개인관측소를 운영하면서 과학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천문학 콘서트』, 『십대, 별과 우주
‘별과 우주’를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들려주는 국내 대표적인 천문학 작가. 젊은 시절 우주에 대한 호기심에서 헌책방을 순례하고,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 출판사를 차려 한국 최초의 천문 잡지 [월간 하늘]과 교양 천문학 책 등을 펴냈다. 일에 파묻혀 살다가 사라지기 전에 우주를 더 알고 사색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찌감치 강화도 퇴모산으로 들어가 낮에는 텃밭 일을 하는 한편, 밤에는 망원경으로 별 보고 천문학 책 읽는 생활을 계속했다. 현재 '원두막 천문대'라는 개인관측소를 운영하면서 과학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천문학 콘서트』, 『십대, 별과 우주를 사색해야 하는 이유』, 『내 생애 처음 공부하는 두근두근 천문학』, 『잠 안 오는 밤에 읽는 우주 토픽』, 『별아저씨의 별난 우주 이야기』(전3권), 번역서로는 『우주에서의 삶: 우주인에게 묻다』 등이 있다. 『천문학 콘서트』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교육과학기술부 우수과학도서, 청소년 추천도서 등으로, 『잠 안 오는 밤에 읽는 우주 토픽』, 『별아저씨의 별난 우주 이야기』(1,2권)는 미래창조과학부 우수과학도서 등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강화도에서 개인 관측소 ‘원두막 천문대’를 운영하며, 일간지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기사와 칼럼 등을 기고하는 한편, 사회단체와 학교 등을 다니며 우주 특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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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55쪽 | 622g | 150*215*30mm
ISBN13
9791186889282

책 속으로

「비변사등록」 기록에 따르면, 돈대의 성곽을 만들기 위해 그 전해 12월 1일부터 석재를 채취해 운반하기 시작했다. 채석장 약 1,700명, 축성 기술 인원 1,110명, 석수 400여 명 등 직접 공사에 15,972명이었고, 여기에 한양의 주물 기술자 50명이 추가되었다. 또 돌을 나르는 운석선은 75척으로 각 배의 사공과 격군 2명 등 3명이 투입되어, 대략 1,635명 이상이 돈대 축조를 위한 사전 석재 공사와 운반에 투입된 셈이다. 이후 추가 투입된 장비와 인력을 더하면, 석재를 캐고, 석재 운반과 그에 필요한 잡물을 나르는 배가 84척에 약 1,700명이 동원된 것으로 나온다.

이상으로 살펴보면 강화 돈대 축성에 총 투입된 인력은 대략 16,000명으로, 당시 조선의 인구가 약 1천만 명이었던 점에 비추어볼 때 대단히 거국적인 역사였다. 그 무렵 강화의 인구는 22,336명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돈대축조 기간은 강화에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인구가 북적거리는 시기였을 것이다.
---「Intro-세계 유일의 희귀 유적, 강화돈대」중에서

340년 전에 축조된 해안 군사실설인 돈대가 지금까지 그 효용성을 인정받아 군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강화돈대가 역사적인 유물의 차원을 넘어 ‘살아 있는 유산(Living Heritage)’임을 확연히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하지만 강화돈대 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몇몇 돈대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방치되어 있어 점차 그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석렬의 일부라도 남아서 보존되고 있는 돈대는 35개에 불과하다. (......) 340년 전 국토를 지키기 위해 온 민족이 거국적으로 세워놓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지금처럼 이대로 방치해둔다면, 세월이 지날수록 복원작업이 더욱 어려워질 것 같아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Intro-세계 유일의 희귀 유적, 강화돈대」중에서

광대돈대, 겨룽돈대로 불리기도 한 계룡돈대의 석문 입구를 들어서면 길쭉한 장방형의 내부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핸드볼 경기장 남짓한 직사각형의 3면은 석축을 올려 해변을 향해 정면으로 외적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한때 수십 명의 장정들이 숙식을 같이 하며 밤낮으로 우리 바다를 지켰을 것이다. 지금 강화 해안을 경계하는 해병대 병사들과 다를 게 없다. 옛날 그 장병들은 모두 시간과 함께 과거 속으로 떠내려가 버렸지만, 당시 저 돈대 한쪽에는 가마솥이 걸리고 천막과 볏짚으로 꾸려진 숙소들이 자리잡았으리라. 고향에서 농사짓다가 징집된 그 수많은 병사들 중에서 과연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간 장정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강화도에 이처럼 수많은 돈대들이 세워지고 병사들이 배치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강화가 도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말의 강화도는 힘과 힘이 맞부딪치는 격랑의 역사 한가운데서 부침하는 섬이었다.
---「3. 강화돈대 중 최고 걸작, 계룡돈대」중에서

미루지돈대의 감상 포인트는 아름다운 원형을 간직한 홍예문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듯하다. 특히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요즘 같은 봄날 미루지돈대를 방문한다면, 돈대 바닥 가득히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꽃다지 양탄자를 볼 수 있다. 노란 양탄자 여기저기에 민들레, 제비꽃들이 점점이 박혀 있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다.

또 가을에 방문한다면 돈대 가는 길 아래 바닷가에 넓게 물들이고 있는 붉은 나문재밭의 아름다운 해안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바닷가의 소금기 있는 땅에서 자라는 나문재는 한해살이풀로, 줄기는 1m까지 곧게 자라고, 가을에 붉게 변한다. 어린 순은 식용 나물로 건강식품이다. 강화나들길 20코스를 걸으면 볼 수 있다.
---「13. 환상적인 봄의 아름다움, 미루지돈대」중에서

두 차례의 치욕적인 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왕조는 국가 위급시 최후의 보장처가 필수적이라고 자각했다. 그리하여 전략적 요충지인 강화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전략에서 강화섬 해안선 100km를 따라 돈대 축조에 대대적으로 나선 결과 강화도는 요새의 섬이 되었다. 이처럼 섬 하나를 요새화하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촘촘히 돈대를 쌓은 경우는 세계적으로 강화가 유일하다.

이처럼 외적의 침략에 대해 방어와 측후를 맡았던 이들 돈대는 모두 해안선 중에서도 조망이 좋은 곳에 축조되었기 때문에 주변 경관이 빼어나 오늘날에도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되고 있다. 특히 자연과 역사에 관심 깊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데, 오로지 돈대 탐방만을 목적으로 한 여행객들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강화도 지도에 돈대들의 장소를 표시한 디자인이 된 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본격적인 ‘돈대 투어’를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돈대 투어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오로지 강화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투어다. 역사와 자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돈대 투어’는 앞으로도 꾸준한 인기 여행 티켓으로 자리잡아갈 것으로 보인다.
---「14. 동막해변의 제1명당, 송곶돈대」중에서

조선 숙종 때의 축성 기술을 잘 간직하고 있는 분오리돈대는 여느 돈대들과는 달리 독특한 개성미를 자랑한다.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고, 강화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강화의 돈대들 중 가장 아름다운 돈대의 하나로 꼽히는 이 분오리돈대에 올라가 사방을 조망해보면, 탁 트인 강화 남쪽 바다가 270도 광각으로 조망된다. 그래서 일출과 일몰을 한곳에서 다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멀리 영종도와 영종대교 보이며, 또 뒤로는 강화 제일의 산 마니산이 우뚝 서 있다. 강화도 제일의 명승이라 할 만하다.

코로나로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요즘, 분오리돈대에 올라 써늘한 바닷바람을 쐬며 270도 광각으로 바다와 갯벌을 조망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해질녘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넓은 바다와 그 너머로 떨어지는 낙조를 보면 가슴이 웅장해지는 호연지기를 맛볼 수 있다.
---「15. 초승달 모양의 아름다운 성채, 분오리돈대」중에서

신식무기로 무장한 미군에 맞선 끝에 어재연 장군 이하 100여 명의 수비군이 전원 산화한 격전지였던 용두돈대는 침략군인 미군에게 서늘한 공포를 안겨준 역사의 현장이다.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총탄이 떨어지면 돌을 던지며 싸우고, 불타서 죽을지언정 걸어나와 항복을 하지 않았던 조선군을 보고 미군들은 자기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인류를 보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미군이 비록 전투에는 이겼지만 더이상 진격을 포기하고 서둘러 철수한 것은 무력으로는 도저히 이 민족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때문이었다. 그래서 후세의 역사는 조선이 전투에는 졌으되 전쟁에는 이긴 것으로 기록되었다.

지금도 용두돈대 앞에 서면 손돌목의 거친 물결 위로 그때 조국을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버렸던 조선군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24. 돌출한 ‘용머리곶’에 앉은 용두돈대」중에서

강화에는 숙종 5년 48돈대를 비롯해 모두 54개의 돈대가 해안선 100km를 따라 축조되었는데, 하나의 섬에 이처럼 밀집된 돈대들이 들어선 예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다. 그리고 돈대가 들어선 곳은 하나같이 모두 조망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승지이다. 하지만 지금은 더러 멸실되고 40개 남짓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이 돈대들을 모두 복원해 돈대를 순례하는 ‘돈대 꿰미길’을 만든다면 보행으로 4박 5일 정도면 ‘강화돈대 투어’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어쩌면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더 인기를 끌 수도 있으리라 본다.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강화돈대 투어를 찾아오는 그런 날을 꿈꾸어본다. 우리 젊은이들을 산티아고로 보내지 말고 강화로 불러들여, 우리 선조의 호국정신이 깃든 돈대 꿰미길을 걷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29. ‘별나무’가 지켜주는 용당돈대」중에서

강화도 54개 돈대는 크게 정비·복원된 돈대 18개와 미정비 돈대 36개로 나뉜다. 망해돈대처럼 거의 멸실 단계에 있는 돈대들의 수는 무려 22개소나 된다. 전체 돈대 수의 반에 가까운 셈이다.

2000년 육군박물관의 조사에 따르면, 강화도의 국방유적은 5진, 7보, 54돈대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중 섬 전체 해안선을 따라 설치돼 있는 돈대는 국내에서는 강화도를 제외하곤 거의 자취를 찾을 수 없어 특별히 주목되는 유적이다. 대부분 해안가 요새에 위치한데다 원형, 방형, 타원형 등 형태도 다양해 ‘국방유적의 꽃’으로 불릴 정도다.

관계당국에서는 앞으로는 국방유적에 대한 종합정비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문헌·유구기록 조사와 지표발굴 조사를 거쳐 정비·복원을 체계화할 계획이라 한다.
---「34. 안내판 하나 없는 ‘폐허’, 망해돈대」중에서

지난 11월 20일부터 정부가 개방한 접경지역의 ‘DMZ 평화의 길’ 7개 테마노선 중 강화 구간에 속하는 의두분초에서 불장돈대 전까지의 구간은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도보로 이동하는 길이다. 강화군은 1.5km의 도보 구간 중 800m에 데크길을 만들어 개발되지 않았던 비무장지대를 편안하게 걸으며 관람하도록 조성했다. 앞으로 돈대 복원사업이 본궤도에 올라 이 불장돈대가 350년 전 아름답던 원형을 되찾게 된다면 강화에서도 가장 풍광이 아름다운 관광의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309페이지 「44. 강화도 최북단에 위치하는 불장돈대」 중에서
---「44. 강화도 최북단에 위치하는 불장돈대」중에서

현재 인천시는 강화 해안방어유적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 등재 전 단계인 ‘잠정목록’ 등재 신청을 할 계획으로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300년 넘게 군사시설 역할을 하고 있는 강화 해안방어 유적이 세계문화유산 지정의 주요 요건 중 하나인 ‘진정성(authenticity)’에 부합한다”며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지정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만약 강화돈대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면 강화돈대 르네상스가 이루어질 것이며, 세계에서도 유일한 돈대 투어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46.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까치아래돈대」중에서

출판사 리뷰

강화도의 숨은 보물, 돈대를 아십니까?
ㅡ'강화돈대 르네상스'를 꿈꾸며 1년간의 취재와 집필,
500여 장의 사진으로 완성한 국내 최초의 돈대 안내서


* 강화돈대들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역사유물로, 일종의 소규모 해안 방어시설이다. 외침에 대비해 조선 후기 강화에는 54개나 되는 방어용 성채들이 100km 해안선을 따라 집중적으로 축조되었다. 약 2km마다 하나꼴로 돈대를 쌓은 그야말로 거국적인 사업으로, 돈대 하나하나에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호국의 얼'이 서려 있다.

*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감시가 수월한 접경이나 해안지역의 높은 평지에 밖으로 성곽을 높게 쌓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둔 방어시설로, 54개의 강화돈대들은 대부분 숙종 5년(1679)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승군 8,900명과 어영군 4,300명, 석수 등 전문인력과 보조원 2,000명이 축성에 투입되어 80일 만에 축조되었다. 계산해보면 돈대 1개소당 연인원 25,000명이 투입된 셈이다. 강화도 유사 이래 최대의 역사(役事)였다.

* 한말의 역사가 말해주듯,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을 제일선에서 막아낸 것이 바로 강화돈대들이었다. 지금도 초지돈대, 손돌목돈대 등에는 우리 선조들이 압도적 무력을 앞세워 쳐들어오는 적을 피 흘려 막아낸 그날의 상흔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 돈대들이 들어선 자리터는 예외 없이 조망이 아주 좋은 요충으로, 강화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대로 보여주는 명소들이다. 그런 연유로 근래 문학-연극-음악-미술 등 여러 문화행사들이 이루어지는 무대가 되고 있으며, 수도권 별지기들이 천체관측을 위해 즐겨 찾기도 한다.

* 『강화돈대 순례』는 강화돈대 54개를 일일이 발품 팔아 답사하여 총정리한 책이다. 저자가 '강화돈대 르네상스'를 꿈꾸며 1년간의 취재와 집필, 500여 장의 사진으로 완성한 국내 최초의 돈대 안내서이다.

이처럼 귀한 문화유산을 잊고 있었다니...
ㅡ최초 공개 민통선 10개 돈대 포함, 54개 강화돈대 총정리!


* 이 책은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을 제일선에서 막아낸 호국의 징표이자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강화돈대의 전모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 역작이다. 특히 강화 북쪽 해안에 축조된 10여 개의 돈대들은 민통선 안에 위치한 것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된 유적들이다. 이번에 해병대의 협조를 받아 최초로 민통선 내 돈대들을 모두 취재해 국민에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 저자는 강화의 놀라운 유적인 '돈대'에 꽂혀 2021년 1월부터 1년간 강화 해안 100km에 촘촘히 박힌 총 54개 돈대를 탐방 취재한 강화돈대 기사를 매주 한 편씩 [강화뉴스]에 연재해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관심과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문화유산이 강화에 54개나 있다는데, 이렇게 귀한 문화유산을 옆에 두고도 여태 모르고 지나쳐 왔다는 것이 부끄럽고 반성이 됩니다. 이제라도 돈대의 가치를 세상에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느 독자가 보내온 소감

제주에 올레길이 있다면 강화엔 돈대길이 있다!
ㅡ역사 되살리기를 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하며


* 『강화돈대 순례』는 단순한 역사 되살리기를 넘어 54개 돈대들을 복원하여 ‘돈대 꿰미길’을 조성해 전 국민이 즐겨 찾는 순례 명소로 만들고, 더 나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펴낸 뜻깊은 책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선조들의 '호국의 얼'이 서린 강화도 54개 돈대들을 줄줄이 꿰며 순례하는 ‘돈대 꿰미길’을 만들어 전 국민에게 개방한다면 인기 있고 사랑받는 국민 순례 코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그뿐인가, ‘돈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돈대문화제’를 열어 우리 강화를 한껏 빛낼 수도 있을 것이며, 또한 돈대를 주제로 한 다양하고 예쁜 굿즈들을 개발한다든가, 돈대 공간을 활용한 ‘스타(star) 파티’ 같은 천체관측 행사를 벌여 수도권 별지기들을 불러도 좋을 것이다.

* 이처럼 무궁한 활용 가치를 지니고 있는 강화돈대는 적절한 개발 과정만 거친다면 제주의 올레길보다 더 크게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관계당국과 정책 입안자들이 보다 높은 비전을 지니고 ‘강화돈대 르네상스’를 힘차게 일으킴으로써, 세계 유일의 유적 강화돈대를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해 후손에게 물려주길 기대한다. 이 책이 그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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