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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장 차나무를 키우는 즐거움 대나무 사이에 차꽃이 피었네? 자연의 이치 속에 깃든 생(生)과 사(死) 매화차와 연담선사- 바람결에 살며시 실려온 매화 향기 차 농가, 서리 피해 막는 법? 대나무 사이에 차나무를 심자 차 따는 시기‘곡우’는 상징…생태변화 고려해야 제2장 명차의 조건 햇차는 언제 따나 - 비 내렸다면 이삼 일 지나야 환경이 만드는 생기 넘치는 차- 입춘과 차 일조량 봄 맞은 다인의 마음 - 정진하듯 준비하는 채다(採茶) 좋은 햇차에 대한 기대 기품- 품색 갖춘 차가 수행에 유용 명차(名茶)의 조건- 순리 터득하고 화력의 완급 관건 장마철 차 보관법- 옛 사람‘습기·화기 제거법’응용 차와 불의 관계-제다·탕법 핵심은 화후(火候)의 완급 제3장 차의 중심에 있는 물-차는 물의 체 차를 마시는 온도 - 원래 우리의 차는 뜨거웠다 차와 물의 관계-차의 체(體)는 곧 물 어떤 물을 써야 하나 -샘의 일조량도 차맛 좌우 운길산 수종사, 초의선사 체취에 취해 다산을 그리다 이목의 심차(心茶) - 차는 마시는 자의 마음과 융화돼 기량 발휘 추사의 편지 한 통 - 초의와의 우정 매개는 편지보다 차를 통해 물 끓이기? 수돗물, 뚜껑 열고 끓이다 뚜껑 닫고 일 분 더 최한기의‘기열생풍’- 차는 뜨거워야 함을 알려준 선조의 지혜 제4장 차와 우정 《동다송》은 원래 《동다행》이었다 〈동다송〉의 의미 초의스님과 추사는 최고의 차벗 황상과 초의스님-사십 년 뒤에 만나 나눈 따뜻한 정 유숙의〈벽오사소집도〉 - 《 동다송》 저술 후 차저변 확대 추정자료· 가을과 함께한 추사 김정희 - 초의‘차’답례로 쓴 ‘명선’ 초의차의 매력 - 단 한잔 마셔본 사대부도 ‘감탄’ 햇차가 주는 즐거움 - 풋풋한 차향과 다가(茶歌)를 즐기다 차 수확기의 기쁨 - 벗과 함께 햇차의 싱그러움 나눈 선조들 차의 유행 심미안 가진 열정가가 ‘신차(神茶)’ 선보여 송 휘종의‘문회도’ 그림으로 본 송대 다회의 극치 차의 춘궁기- 차의 춘궁기를 나는 법 백제 유적 출토물과 다구논쟁- 계수호는 과연 백제에서 다구로 쓰였을까 제5장 차문화 우리의 차문화 - 담박하고 소쇄한 맛과 멋 담겨 다회(茶會)의 이면 - 연차 즐길 욕심에 정작 연꽃 학대 이한영 생가 보존의 당위성 - 근대 차 산업화 초기단계 연구 유산 본문조판(1-3)순서 2013.9.24 9:54 AM 페이지010 mac4 ‘다설의 발굴’- 차 교역 통해 국익 꿈꿨던 소중한 흔적 한국 차의 미감 - 생기 넘치는 맑고 산뜻한 맛 구양수와〈집고록발〉- 구양수가 전한 다신(茶神) 육우의 기록 차와 농약 검출 소동 - 차나무 관리는 엄격하고 양심적이어야 차의 해독성 -소화를 돕는 실생활의 탕약 부록 1 동다송 동다송은 어떻게 저술되었을까 부록 2 다신전 다신전은 어떻게 저술되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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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동다송》을 책으로 출간 하려 하니 마음이 벅차다.제목이 주는 의미에 합당한 것을 담아야 하련만 동다(東茶)라는 의미 규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굳이‘우리시대 동다송(東茶頌)’이라는 표제로 시대를 구분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이 물음에 대한 답이 이 책에서 다룰 이야기들이다.
처음 차를 접한 것은 1970년대 중반 임창순 선생님께 한문을 공부할 무렵이었다. 노스승께서는 오래 전부터 차를 드신 듯, 낡은 다관에 차를 달여주셨는데 그 맛이 신기하였다. 하지만 그 느낌들은 일상의 일에 묻혀 잊혀졌다. 1979년경 모 대학 박물관에 계신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응송스님이 원고를 정리할 사람을 구한다며 필자가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이런 저간의 사정으로 응송스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 당시 노스님은 해남 대흥사 입구 작은 암자인 백화사에 계셨다. 무더운 여름 먼 길을 찾아간 필자에게 노스님은 뜨거운 차를 내주셨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뜨거운 차라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차를 마시는 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깰 뿐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정수리를 타고 시원한 바람결이 스치는 듯하였다. 이렇게 차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노스님께서 계신 암자는 네 귀퉁이를 버팀목으로 받쳐야 했던 쇠락한 한옥에 유일한 사치라면 스님의 두어 평쯤 되는 방 앞, 고목 영산홍에 핀 꽃이 창호지 문을 붉게 물들일 즈음 차를 마시는 일이었다. 노스님의 차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였다. 이미 90여 세 가까운 노구를 이끌고 한밤중까지 차를 만드셨다. 찻잎의 선별, 물의 선택, 찻물 끓이는 일은 차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엄격하셨다. 특히 차를 다루는 일을 수행이라고 하셨다. 필자가 백화사에 머문 지 두 해가 되었을 무렵 노스님은 두툼한 원고뭉치를 주셨다. 검은색 잉크로 한 자 한 자 눌러쓴 빛바랜 이 원고는 70여 년 동안 몸소 체험했던 차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이었다. 이것은 1985년 여름 활자화되어《동다정통고(東茶正統考)》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조선 후기에 쓰인 초의선사(1786~1866)의《동다송》은 단지 차를 칭송한 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선인의 자취를 따라 원리에 다다르고자 했던 초의선사의 차를 통한 수행의 발자취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한 방편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동다송》을 얻었다. 역사는 흘러간다. 그리고 풍습도 변해간다. 그 땅에 사는 사람도 바뀌어간다. 우리는 어떻게 온고(溫故)할 수 있는가. 증거다. 증거는 역사 속에 소중히 남아 있는 문헌들이다. 이것들은 증험할 수 있는 자취를 담고 있기에 소중하다. 특히《동다송》을 소중한 유산으로 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우리 차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밝힐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우리의 차문화를 복원할 수 있다. 《동다송》은 여러 차례 번역되었다. 굳이 번역을 피하여《우리시대 동다송》이란 제목으로 차문화를 보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차는 과연 사람에게 무엇인가라는 화두에서 시작하여 차의 원리를 터득한 이들이 바로 초의선사나 응송스님이리라. 그들도 선인들의 차에 대한 고민이나 이상의 자취를 따랐을 것이다. ---「저자의 말」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