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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5
『화랑세기』에 나오는 김유신 세보의 주요 인물 9 제Ⅰ장 만노군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김유신(595~609년) 13 제Ⅱ장 선문에서 활동하며 역사를 만들 두 가지 큰 꿈을 기획한 김유신(609~629년) 47 제Ⅲ장 군사 엘리트로 데뷔해 꿈을 이루고자 첫발을 내디딘 김유신(629~647년) 145 제Ⅳ장 진덕여왕을 세우고 김춘추를 왕으로 올릴 혁명적 준비를 한 김유신(647~654년) 185 제Ⅴ장 김춘추를 왕으로 세우고 백제를 평정한 김유신(654~661년) 233 제Ⅵ장 문무왕 대의 고구려 평정과 당군 축출 전쟁 때의 김유신(661~673년) 267 제Ⅶ장 김유신의 죽음과 그 뒤에 벌어진 일들 313 제Ⅷ장 김유신의 일족들 345 책을 마무리하며 380 김유신(595~673년)의 연보 391 이 책에서 사용한 신라의 제도와 용어들 405 참고문헌 419 |
李鍾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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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은 풍월주가 된 뒤로 날마다 온갖 병장기를 제조하고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함께 연마했다. 부제 때 고구려와 백제라는 두 적국을 평정해야 신라인들이 부귀를 누릴 수 있다고 한 말을 실천하고자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김유신이 풍월주로 있던 시기 화랑도들은 그의 뜻에 따라 골품을 따지거나 화랑도의 파맥을 따져 싸우기보다 국가를 위해 군사적 실력을 축적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 p.85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하)”의 기록에 따르면 김유신과 지조부인 사이에 네 명의 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유신의 딸들에 대한 구체적 기록들은 『삼국사기』가 아니라 『화랑세기』에 나온다. 『화랑세기』 27세 풍월주 흠돌 조는 “신광의 형 진광晋光은 곧 흠돌의 처였다.”고 적었다. 『화랑세기』 26세 풍월주 진공 조에는 “신광은 유신공의 딸로 태자의 첩이 된 사람이다.”라고 나온다. 또 “보로〔전군〕는 ……곧 김유신의 삼녀 작광酌光을 맞이하여 처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화랑세기』 19세 풍월주 흠순공 조에는 “[흠순]공의 셋째 아들만이 홀로 [염장공의 딸을] 버리고 유신공의 딸 영광令光을 아내로 맞아 아들 영윤令胤을 낳았으니 곧 반굴공이다.”라고 나온다. 반굴은 태종무열왕 7년[660년] 7월 9일 황산벌에서 백제 계백의 5천 결사대와 맞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러므로 반굴과 혼인한 김유신의 딸 영광令光은 김유신과 655년에 혼인했던 지조부인의 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영광의 예를 하나의 실마리로 삼으면,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하)”에 나오는 김유신과 지조부인 사이의 5남 4녀 가운데 지조부인이 아니라 영모의 자녀가 있을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p.356~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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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을 넘어선 새로운 해석: 신라인 김유신을 만나다
신라시대 김유신의 삶속으로 들어가 나온 듯한 평전이 나왔다. 그의 원대한 꿈은 단편적 기록에만 의존하는 기존 연구를 뛰어넘은 저자 이종욱 교수의 도전으로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다. 계획이 있었던 김유신 『화랑세기』에 따르면, 김유신은 화랑도의 세 파맥 가운데 가야파이면서도 자기파의 이익만을 탐하지 않고 다른 파들을 화합시키고 ‘칠성우’를 만들어 김춘추를 왕으로 세우고 삼한일통의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성골 왕에서 진골 왕으로 시대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룬 대인배이자 용장인 김유신과 승부사 김춘추의 거대한 드라마가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여러 논쟁점들 이 책에는 ‘신국지웅’ 김유신 이야기 한편으로는 『화랑세기』에 근거한 여러 해석들이 쏟아져 나온다. 김춘추의 두 아버지, 김유신 자식들과 형제들 정보만이 아니라 칠성회의 존재, 칠성우의 면면 등은 학계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쟁점에 대한 치열한 논의는 곧 고대사의 실체에 한 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되며 식민사관, 현재적 관점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