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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프롤로그 제1장 세모로 된 세상 제2장 우리들의 묵정 밭 제3장 평등은 없다 제4장 럭키 서울 제5장 불어라 바람아 제6장 벵골 이야기 제7장 방글라데시의 인연 제8장 모감주나무 아래서 제9장 손톱 낙원 제10장 절반의 분배 제11장 벼랑 끄트머리 에필로그 해설·‘오래된 미래’를 위한 ‘빵’과 ‘장미’의 비망록 | 임정연 |
白始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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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만 오래오래 숙성시켰던 단편적인 기억들을 실로 24년 만에 끄집어내어 밀가루반죽 치듯 주무르고 때리고 밟고 어루만져 『삼봉이 순자 연대기』를 탄생시킨 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 애착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대재벌 회사에 몸담으며 의문을 가졌던 우리나라 경제가 압축성장한 과정을 나름대로 추적하고 증언하는 데 초점을 맞춘 터라 더욱 그러하다. 물론 아무리 24년여를 숙성시켰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자의 반 타의 반 은퇴에 들어갈 나이에 늦바람나듯 일 년에 한 권씩 작품을 써 대는 이 겁 없는 객기가 언제까지 지속될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할 따름이다.
---「작가의 머리말」중에서 공정이 시대정신과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고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한 경쟁을 원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작가는 다시 묻는다. 이 시대가 이토록 공정과 상식을 갈망하기까지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마땅한 의문을 환기하는 방식으로 작가는 경제 성장의 환각 속에 자본의 위력이 인간을 압도하기 시작했던 그 시절을 소환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관심사는 그 시절 불의와 반칙이 규정했던 삶들을 가시화함으로써 불공정과 비상식의 역사적 기원을 탐사하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이 자본을 대하는 태도와 관습이 전혀 ‘문학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문학은 기본적으로 ‘돈’을 비속화하고 경계하는 습성이 있다. 탐욕은 인간다운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주범으로, 자본의 욕망에 길들여진 인간들은 부정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문학은 자본주의 시스템 밖에서 안을 주시하며 구조화된 가난과 궁핍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겼고, 돈의 메커니즘에 압살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이를 대변하는 것이 문학의 소임이라 믿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빵(생존)과 장미(인간 존엄)가 요구된다고 할 때 문학의 관심은 주로 ‘장미’의 존재를 질문하는 쪽이었던 것이다. 세계를 향해 인간다움의 가능성, 인간답게 사는 최소한의 조건을 매 순간 질문하고 타진하는 것. 이것이 한 번도 배부르지 않았던 문학이 문학다움의 품위를 지켜 온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고상한 문학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누추한 돈의 향방을 좇아 적진으로 투신한다. 타성에 젖은 ‘가난의 문법’을 반복하는 대신 ‘돈의 문법’을 재구해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포섭된 ‘그들’의 존재를 정면에서 응시한다. …공정이 공동체의 상생을 위한 벡터가 되기 위해서는 이처럼 과거의 과오를 탓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보다 내가 속한 세계의 공존과 공생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일이 먼저여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는 한 개발독재의 환영과 망령은 언제든 부활하고 ‘과거와 명랑하게 작별’하는 일은 영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소설은 성공에 집착해 성장의 과실을 분배하는 데 무지했던 삼봉이와 순자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들이 남긴 “쓰레기 산”을 떠안아야 하는 상규와 핫산들을 위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정정해야겠다. 이 소설이 ‘장미’가 아닌 ‘빵’의 행방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말은 틀렸다. 이 소설은 한 공기의 밥과 한 덩이의 빵을 절실하게 원했던 사람들은 언제나 그만큼, 아니 그 이상의 장미 송이들을 함께 열망했다는 역사적 진실을 증언하기 위해 쓰였다. 다시 말해 이 소설 『삼봉이 순자 연대기』는 지금 여기,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정확하게 좌표화하기 위해 써내려 간 절박한 비망록과도 같다. 멀리 에둘러 왔어도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다시 여기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백시종의 소설이 믿음직스러웠던 건 늘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임정연 문학평론가의 해설 ‘오래된 미래’를 위한 ‘빵’과 ‘장미’의 비망록」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