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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의 나무
백시종
문예바다 2017.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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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1부
-2부
-3부
-4부
-5부
-6부
-7부
-8부

저자 소개 1

白始宗

1944. 4. 9. 경상남도 남해 출생으로 1967. [동아일보] 신춘문예 『비둘기』, [대한일보] 신춘문예 『뚝 주변』이 당선되었다. 한국소설문학상·오영수문학상·채만식문학상·류주현문학상·중앙대학문학상·노근리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문예바다 발행인, 김동리기념사업회 회장이다. 주요 작품집으로 『주홍빛 갈매기』 『들끓는 바다』 『망망대해』 『북망의 바다』 『겨울 두만강』 『환희의 끝』 『그 여름의 풍향계』 『서랍 속의 반란』 『굿바이 수라바야』 『돼지감자꽃』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팽』 『자라지 않는 나무들』 『비, 축제에 쏟아지다』 『돈황제』 『달래산 달래강』 『길을
1944. 4. 9. 경상남도 남해 출생으로 1967. [동아일보] 신춘문예 『비둘기』, [대한일보] 신춘문예 『뚝 주변』이 당선되었다. 한국소설문학상·오영수문학상·채만식문학상·류주현문학상·중앙대학문학상·노근리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문예바다 발행인, 김동리기념사업회 회장이다.

주요 작품집으로 『주홍빛 갈매기』 『들끓는 바다』 『망망대해』 『북망의 바다』 『겨울 두만강』 『환희의 끝』 『그 여름의 풍향계』 『서랍 속의 반란』 『굿바이 수라바야』 『돼지감자꽃』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팽』 『자라지 않는 나무들』 『비, 축제에 쏟아지다』 『돈황제』 『달래산 달래강』 『길을 묻는 여자』 『서울의 눈물』 『수목원 가는 길』 『강치』 『풀밭 위의 식사』 『오주팔이 간다』 『물』 등이 있다. 대하소설로 『걸어다니는 산』(전7권), 『대물』(전5권), 『재벌본색』(전5권) 등이 있다.

- 1967년 동아일보·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 현대문학 추천 완료(김동리 선)
- 한국소설문학상·오영수문학상·채만식문학상
- 류주현문학상·중앙대학문학상·노근리문학상 등 수상
- 황순원문학상양평문인상 수상
- 2020년 김동리문학상 수상
- 2021년 세종문화상 예술부문(대통령 표창) 수상
- 2022년 이병주국제문학상 대상 수상
- 2024년 둔촌 이집문학상 수상
김만중유배문학특별상 수상
- 계간 『문예바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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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152*224*30mm
ISBN13
9791161150109

출판사 리뷰

저자 백시종은 세상에 묻는다. 단순한 것은 유치하고 부박(浮薄)한 ‘비정상’인가? 복잡한 것은 품위 있고 고상한 ‘정상’인가? 용계리 은행나무의 명운을 두고 수많은 인사들이 오가기를 반복했다. 복지부동 공무원, 동상이몽 마을주민, 들어내서 살리고 싶은 이들, 자연 섭리에 따라 놔두자는 이들, 차라리 거대 불상으로 파내서 이권을 탈취하자는 이들, 국고보전에 따라 나누어 먹자는 이들… 저마다 다른 속셈과 저의로 은행나무의 우람한 둥치를 탐하였다. 탁상공론과 난상토론의 경계를 줄타기하며 고담준론과 공리공론이 난무했지만 그 누구도 진정으로 나무의 생명가치를 존중하는 이는 없었다. 배웠다는 이들, 돈 좀 가졌다는 이들, 권력을 잡은 이들, 그 땅에 오래 살았다는 이들도 자기 식대로 아전인수 해석만 각자가 분분했다. 그래서 어렵고 복잡한 이들의 쉴 새 없는 말들은, 바람에 떨어지는 은행잎보다도 부질없고 부수적인 것이었는지 모른다.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이들의 고집과 가식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작품 속 영수라는 등장인물은 백시종의 이번 신작 소설세계에서 가장 눈 여겨 봐야할 존재다. 그는 속칭 ‘덜 떨어진’ 백치, 지능이 모자란 바보다. 특별한 꾀를 쓰거나 영악한 말놀이도 없다. 그러나 생명가치에 대한 순수한 존중으로 일관한 작품 속 유일한 존재다. 그는 5공 치하의 철혈권력에 엎드리지 않는다. 중절모 통치자에게도 과감하게 도발하고, 누렁이 묘소(墓所)의 십자가를 부러뜨린 귀빈의 자동차를 향해 준열하게 달려든다. 눈치보고 앞뒤 재서 고민하지 않고 일단 ‘단순하게, 쉽고 빠르게’ 돌진한다. 때론 그 같은 무모함으로 인해 폭력과 탄압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렵고 복잡하게’ 사는 이들이 보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인 것이다.

그렇다. 저토록 순진한 영수가 비정상으로 낙인찍히는 사회야말로 진정 ‘비정상’이다. 시대적응이라는 그야말로 ‘정상적이지 못한’ ‘정상의 장막’ 뒤에서 안온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버둥거리는 인생은 비참하고 씁쓸하다. 자연의 가치, 인간의 존엄과 가까운 것은 단순하고 순수하고 질박한 마음이다. 복잡하게 계산해서 따져드는 이들은 이미 속세의 단맛에 젖었고, 어떤 경로로든 불의한 현실과 타협한 허름한 소시민의 군상일 따름이다. 용계리 은행나무의 진실한 친구는 결국 ‘착하디착한’ 영수뿐이다.

근사한 물욕, 질탕한 성욕, 핏빛 권력욕이 정상으로 받들어지는 시대는 굴곡지고 비틀려진 욕망 충동의 세계다. 자기 멋대로 용계리 은행나무의 처지와 형편을 재단하는 교활한 인간들의 분탕질은 역사의 얼룩이자 암담한 추태다. 5공 치하의 허황된 3S 정책에 물들어 흥청대는 교언영색의 그림자들은 진정한 의미와 진실한 가치로서의 사랑과 용기를 갖지 못했다. 사랑을 빙자한 색욕, 용기로 꾸며낸 만용일 따름이다.

용계리 은행나무는 절망의 물속에서 길어 올린 구원(救援)이라는 이름의 거목(巨木)이다. 백시종의 이번 신작은 ‘물속의 절규’를 ‘대지의 희망’으로 바꿔낸 우렁찬 섬광(閃光)이다. 천지자연의 흐름과 기상을 존중하는 겸손한 자세로부터 만물의 향기는 샘솟는다. 들불보다 거세고, 초목보다 강인한 민주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한, 철권통치 독재의 늪지는 결단코 잡풀 하나 뒹굴 땅을 갖지 못한다. 녹슨 철퇴는 사슬이 끊어질 것이고, 국민의 열망(熱望) 속에 불살라져 쇳물로 박제될 것이다. 역사의 불의로 단죄 받을 것이다. 과거사의 비극을 직시하고, 호국영령을 애도하는 본분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오늘날 백시종 문학이 일궈낸 ‘아름드리나무’를 주목해야하는 이유다.

추천 글

백시종의 장편 ‘물 위의 나무’는 열려 있는 결말, 진실한 소통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단일한 해답과 명쾌한 설명이 아니라, 날카로운 질문을 지금 우리 시대에 제시한다. 해석의 지점이 다층적이고, 독법의 방향도 여러 가지다. 작가만의 독점적 지위를 내려놓았다. 바로 이 같은 소설이 미학적 격조를 내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스스로가 자의식에 너무 충만한 나머지 독자의 분석·해석 기회를 박탈하고, 자아도취한 장치들로 버무린 이야기는 결코 공감의 지평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백시종 소설가의 필치와 문체, 취재와 플롯은 일면 격정적이고 강단 있는 기세를 내재할지언정 은은한 기품을 잃지 않는다. 마치 천년세월을 버텨온 용계리 은행나무처럼 말이다. 마지막 생을 다하여 대지의 한 줌 흙으로 되돌아가는 그날, 온 가지와 줄기, 우람한 잔뿌리들마저 여윌 때까지 낙화(落花)의 이치를 실현하고 있는 거목은 도저한 에너지를 보유하고도 뽐냄이 없다. 힘을 과시하거나 영역을 드넓게 해 지상을 평정하고자 하는 야욕이 없다. 그래도 그 거목은 종교의 경계를 무화하고, 이념의 쟁탈을 초월하여 평생토록 존경받는다. 겸손한 상생(相生)의 품격을 스스로의 본질적 자아로 확충해냈기 때문이다.
-신승민 / 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람 생애의 9할은 실내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실내란 말 그대로 건물 안이다. 집, 사무실, 학교, 찻집, 자동차, 전철 등등‥… 우리의 사고와 느낌, 감각 또한 사위가 꽉 막힌 어두운 공간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햇빛 쨍쨍한 탁 트인 자연과 깊이 만나는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연을 묘사할 뿐인 영상이나 언어의 이미지를 통해 자연을 어렵사리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일찍이 숲 문학의 경지를 이룬 작가 소로우가 말한 대로 ‘야생의 자연은 우리 문명과 다른 문명이다’라는 주장에도 동감했으며, ‘찬찬히 보면 한 송이 작은 들꽃에서도 지구의 웃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라는 말에도 나는 근본적으로 동의해 마지않게 되었다.
하물며 경이로움 외에는 어떤 말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거대한 용계 은행나무가 비밀스럽게 간직한, 더 큰 자연, 그리고 또 다른 심오한 문명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규명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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