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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서 책에서 길을 찾다] 「시사IN」 장일호 기자의 첫 에세이. 진솔한 이야기 속에 ‘슬픔의 가능성’을 담아내는 그는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책을 통해 사는 동안 피할 길 없는 크고 작은 슬픔을, 과거를, 기억을, 책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 기대어 다른 하나의 인생 사용법을 찾는다. -에세이 P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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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슬픔의 자리에서 비로소 열리는 가능성 1부 문장에 얼굴을 묻고 엄마, 다음 생엔 내 딸로 태어나 꽃을 밟지 않으려 뒷걸음치던 너와 술병 뒤에 숨는 마음 이쁘다고 말해 주고 싶다, 너에게 할머니, 지금 죽지 마 아주 평범한 가난 네가 남겨 둔 말 나의 영원한 미제 사건 2부 우리는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 글은 우리 집 고양이가 썼습니다 누구나 특별한 사람을 가질 권리 우리, 같이 망해 볼까요? 여러 개의 진실 앞에서 무례한 가족보다 예의를 지키는 남 ‘9’들의 세상 묘지에서 하는 운동회 3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 앞에서 연쇄 지각마의 지각을 위한 변명 우리 몸의 구멍이 굴욕이 되지 않도록 때로 망치더라도 아주 망친 것은 아닌 그렇게까지는 원하지 않는 삶에 대하여 한 사람이 다음 사람을 이 세계에 데리고 오는 일 아픈 게 자랑입니다 제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추천의 말 책의 말이 허물어지는 자리에서 김애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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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은 비가 지독했다. 장맛비가 자주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축축한 등이 먼저 알았다. 그럴 때면 책상 위로 올라가 쪼그려 앉곤 했다. 물이 차오르는 모양을, 빨간 쓰레받기를 들고 물을 걷어 내는 엄마를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언제나 물이 이겼고, 나 대신 책이 울었다. 비가 그치면 물에 불어 망가진 책을 추려 쓸모를 구분했다. 이제는 다시 구할 수 없는 유년의 책들은 그런 식으로 수장되었다
--- p.47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난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다. 이 멀미 나는 격차들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다. 기자라는 직업은 그 숙제를 얼마간 해결해 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 ‘지식인’ 세계에 진입했을 때 나는 그들과 되도록 최대한 비슷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게 가난을 이해하고 싶은 게 아니라 벗어나고 싶은 것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 pp.68~69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라니 감격스러웠다. 내가 경험한 폭력을 입 밖으로 꺼내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어느 것도 사소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를 둘러싼 풍경도 달라졌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내가 당한 일은 내 잘못이 아니며, 나는 이 고통을 ‘자원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 p.91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를 기르는 일은 전전긍긍을 동반한다. 그것이 고양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나는 약하고 작은 존재인 아니와 함께 살면서 어린 사람과 함께 사는 타인의 기쁨과 보람과 고단함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사랑은 피곤을 동반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감당하는 일임을 배웠다. --- p.109 다만 내가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시간’이다. 우리의 일이 불행한 이유는 내가 그랬듯이 일의 과정에서 내 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는 데 기인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회사에 단지 노동력을 파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노동에 대한 통제권과 자율성도 저당 잡힌다. 대부분 9시까지는 출근해야 하지만 퇴근 시간은 기약할 수 없는 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다. --- p.181 생명은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 강력한 프레임이다. 이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얼마간의 망설임 앞에 반드시 서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 각자가 구성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전제를 끌어안고 산다. --- p.223 병은 내 삶을 흔들어 대고 일정 부분 바꿨지만,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병의 원인을 내가 살아온 삶을 반성하는 일로 갈음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온 삶을 바꾸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아픈 몸을 대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 p.240 선배들은 선배가 베푼 것은 선배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후배에게 갚으라고 당부하곤 했다. 나는 선배들을 통해 마음은 정확하게 셈해 갚는 게 아니라 흐르는 것임을 배웠다. 고마워하되 미안해하지 않고, 받은 마음을 아직 서툰 타인을 위해 내어 주는 법도 함께 익혔다. --- p.246 |
“‘지나간다’는 말 안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웅크리고 있는지”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책 속에서 찾아나간 여정 “아버지는 자살했다.” 이 책은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장일호는 아버지의 죽음을 삼십 년 가까이 교통사고로 알고 살았다. 고작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청산가리를 구해 스스로 세상을 등진 아버지.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그는 배신감과 고통으로 울부짖는 대신, 아버지는 본인이 그토록 바라던 “멋진 글 대신 멋진 나를 남겼으니까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 버린 건 아닐까”라고 유쾌하게 정리한다. “살면서 가끔 필요하고 때로 간절했던 ‘부정’의 결핍”을 극복하게 해준 것은 책이었다. 소설가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의 문장과 행간에서 “일종의 연대”를 느끼면서 그는 아버지의 “없음”은 물론, 어머니의 “있음”까지 극복한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부터 기자로 살아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슬픔들이 “구체적인 얼굴”을 띠고 그의 삶을 찾아왔다. 어느 날은 지하 방에 차오르던 장맛비의 모습으로, 어느 날은 중환자실에 누운 할머니 발의 버석거리는 촉감으로, 또 어느 날은 “무성의하게 몸에 붙여지는” 환자 식별 스티커의 모양으로. 장일호는 “‘지나간다’는 말 안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웅크리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단어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다. ‘자살 유가족’, ‘성폭력 피해자’, ‘암 환자’ 같은 세상이 명명한 단어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그는 책 속에서 구한다. 책은 그에게 닥친 사건들이 그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도록 두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에게 남긴 “사랑”으로 치환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를 “피해자”의 자리에서 “생존자”의 자리로 이동시켜 주었다. 아직 오지 않은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슬픔의 방문》은 슬픔이 찾아온 날들에 관한 기록이면서, 슬픔을 곁에 둔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책 속에서 찾아가는 눈부신 여정이기도 하다. “고통으로 부서진 자리마다 열리는 가능성을 책 속에서 찾았다. 죽고, 아프고, 다치고, 미친 사람들이 즐비한 책 사이를 헤매며 내 삶의 마디들을 만들어 갔다.”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상처받는 마음을 돌보는 슬픔의 상상력에 기대어” 장일호의 사수는 ‘단독 기사’의 의미를 이렇게 짚어주었다고 한다. “제일 처음 쓰는 것도 의미 있지만, 마지막까지 쓰는 것도 단독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그 말은 “시대의 안과 밖을 잘 쓸고 닦다가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심어 주었다. ‘저자’로서의 첫 책에도 그 간절함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들을 우리 사회의 가장 예민한 주제들에 부단히 접속시킨다. 그가 겪은 가난은 “자신이 빠져나온 세계”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로,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은 “존엄한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로, 투병 경험은 “아픈 몸을 대하는 세상”에 대한 사유로 나아간다. ‘나’의 이야기로 발을 뗀 글들은 예외 없이 세상 한복판에 착지한다. 《슬픔의 방문》의 마지막 두 문장은 이렇다. “상처받는 마음을 돌보는 슬픔의 상상력에 기대어 나의 마음에 타인의 자리를 만들곤 했다.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기꺼이 슬픔과 나란히 앉는다.” 내가 모르는 삶을 있는 힘껏 상상하게 함으로써 상처받는 마음을 돌보는 것, 나의 마음에 타인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 슬픔의 쓸모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살아갈수록 ‘살아남았다’는 감각만 자꾸 선명해”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슬픔과 나란히 앉아 보게 되길 바란다. 슬픔이 지닌 가능성을 가만히 느껴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