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어디든 가는 나쁜 여자들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우렁이 각시 소란 떨고 냄새 피우는 여자│방귀쟁이 며느리 불타는 땅, 천 명의 죽음으로 태어난 당신│여우 누이 내 배꼽 밑, 검은 선의 힘│내 복에 산다 수탉이 울어도 선녀는 닭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선녀와 나무꾼 머리 뚜껑이 열리는 여자│밥 많이 먹는 색시 범과 도깨비가 판치는 세상의 진짜 주인공 그 여자의 최후의 만찬│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곰의 불알을 쥐고 마을로 돌아온 소도둑│호랑이와 곶감 영원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과 ‘나 때는 말이야’│범 이야기 두 편 여자를 좋아하는 도깨비와 꽃뱀│과부와 도깨비 남성의 섹슈얼리티가 나아갈 두 갈래 길│도깨비방망이 여자는 어머니로 태어나지 않는다 살해된 작은 몸들을 위한 진혼│아기장수 이야기 ‘아들의 마더’에 관한 서늘한 탄생 신화│꽁지 닷 발주둥이 닷 발 새 말하는 아이, 콩쥐│콩쥐 팥쥐 새로 태어난 어머니는 모성에 갇히지 않는다│손 없는 색시 토끼 같은 내 새끼와 남의 새끼│팥이 영감과 토끼 아버지와 아들은 다르게 이어질 수 있다│아버지의 세 가지 유산 옛이야기는 영웅을 믿지 않는다 인생 역전한 사내의 피 튀기는 입지전│꾀보 막동이 쥐 좆도 모르는 이야기│둔갑한 쥐 걸려 넘어진 돌들로 지은 성│돌 노적 쌀 노적 반쪽 어둠을 찾아 떠나라│복 타러 간 총각 이야기를 가두면 사람을 잡는다│이야기 주머니 |
심조원의 다른 상품
|
어떤 이야기에도 휘둘리거나 잡아먹히지 않고 자유로이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내공을 기르는 것. 그리하여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이 옛이야기의 영원한 결론인 해피엔딩이며, 고전에서 말하는 생생불이(生生不已)의 가르침이다. 하늘은 무심하고, 인생은 공정하지 않지만 삶은 이어져 왔고 나 또한 지금 살아 있다.
--- p.11 색시에게 우렁이 껍질은 ‘자기만의 방’이다. ‘때가 되어’ 서로의 어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사랑조차 벗어날 수 있는 자기만의 안전한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총각은 ‘천하일색’인 겉모습과 밥상을 차리는 손에 안달을 낼 뿐 색시의 내면에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 p.21 냄새는 누구나 나지만 아무나 피울 수 없다. 위계 사회에서는 냄새도 권력이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의 영토는 그의 냄새가 지배한다. 그의 사적 공간인 집 안에서 씨족으로 보나 젠더로 보나 외부자인 며느리가 감히 냄새를 피울 장소는 없다. 억압받는 방귀는 가부장 사회에 포위된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상징한다. --- p.25 더 오싹한 것은 여느 여성 악당들과 달리 그녀에게는 피해자 서사가 없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젠더 폭력에 대해 복수하려는 ‘한 많은’ 여자가 아니며, 꼬집어 응징해야 할 가해자가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 악당에게 앳된 여성의 얼굴은 성능 좋은 가면일 뿐이며, 성 역할은 비장의 공격 무기가 된다. --- p.30 ‘내 복’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가부장의 부와 권력은 그가 훌륭해서 독점할 수 있었던 게 아니며, 돌을 금으로 만드는 복은 공감하고 지지하는 따뜻한 관계에서만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 p.40 아이를 셋이나 낳고 살도록 나무꾼은 아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았으므로 어디로 떠났는지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처음 만났던 그 연못에조차 가 볼 엄두를 못 내고, 자기 연민에 빠져 울고 있다가 또다시 노루 덕에 간신히 아내의 뒤를 좇는다. --- p.46 신랑은 ‘사람’이다. 밥의 주인인 그는 밥을 지어 주는 ‘여자’가 식욕이 왕성하다는 걸 알았을 때 두려움에 휩싸인다. 여자가 감히 분수를 모르고 ‘사람’처럼 먹을 것을 탐하다니! 오늘날까지 여성의 몸은 음식으로 취급되어 왔다. 앵두 같은 입술부터 조개인 성기까지 부위가 나눠진 채 먹을거리로 표현된다. 귀한 딸은 ‘고명’이 되어 음식의 때깔을 보태고, 술 취한 여성은 ‘골뱅이’가 되어 ‘따먹힌다’. 식욕과 성욕은 모든 인간의 욕망이라지만, ‘먹히고’ ‘대 주는’ 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 p.51 현실의 호랑이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야기에서는 호랑이가 나쁜 놈임이 처음부터 드러나 있지만, 현실에서는 번듯하고 점잖은 악마가 오히려 많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의 폭력은 좀처럼 드러내기 어렵고, 드러낸다 해도 폭력으로 이름 붙이기가 어렵다. 어처구니없게도 세상에는 팥죽 할머니보다 호랑이를 위해 준비된 말이 훨씬 더 많다. --- p.59 팥죽 할머니는? 당연히 잘 살았을 것이다. 남자인 구세주에게 거룩한 열두 명의 제자가 있었다면, 하늘 아래 몸뚱이 하나만으로도 꿀릴 것 없던 여자에게는 열두 이웃이 있었기 때문이다. --- p.63 소도둑의 성별을 굳이 사내로 못 박을 필요는 없다. 단군 신화에서도 큰곰(환웅)의 정기(불알)를 얻어낸 자는 웅녀였으니 말이다. 다만 웅녀는 아들을 낳아 주고(?) 신화에서 지워졌지만, 소도둑은 옛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영원히 살아남았다. --- p.69 여자는 단호하게 도깨비를 내보낸다. 쫓겨난 도깨비는 ‘여자를 좋아한 죄’밖에 없는 자기가 도리어 피해자라며 소란을 떤다. 이른바 ‘꽃뱀’한테 억울하게 당했다는 소린데, 떠들어 댄들 여자가 대문을 다시 열어 줄 리는 없다. --- p.81 민중이나 영웅과 같이 웅장한 담론으로는 이 작은 몸의 안타까운 죽음을 담아 내기 어렵다. 말이 좋아 ‘아기장수’지, 부모 손에 살해된 핏덩이가 아닌가. 이 이야기에는 오랫동안 광범하게 행해져 온 영아 살해의 공공연한 비밀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 p.92 괴물 새가 간 길은 그동안 엄마가 해 오던 노동으로 이어져 있다. 모 심고, 담배 심고, 까치와 멧돼지를 먹이던 길이다. 이야기하는 사람에 따라 “태산 같은 빨래를 씻어서 삶아서 헹궈 풀 먹여서 농 안에 넣어 줘야” 한다거나, “변소간의 구더기를 다 주워서 아랫물에 씻고 윗물에 헹궈 까마귀 입에 넣어 주는” 행로를 길고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아들은 논일, 밭일, 집안일에 양육과 보살핌 노동을 떠맡으며 살아온 엄마의 고단한 발자취를 따라 새의 집에 이른다. --- p.100 사실 콩쥐는 처음부터 ‘말하는 아이’였다. 엉엉 울면서도 암소와 두꺼비와 참새와 이웃집 할머니에게 왜 서러운지, 얼마나 애쓰며 살고 있는지 말했다. 그 말들은 분노와 서러움을 달래는 노래였으며 세상과 연대하는 무기가 되어 왔다. --- p.111 양반집 안주인인 어머니가 가부장에게 부여받은 책임과 권력은 딸에 대한 단속이다. 계급 사회일수록 하층 계급의 여성은 성적으로 착취되고, 상층 여성은 성적으로 구속되기 마련이다. 새로 태어난 어머니는 모성에 갇히지 않는다. --- p.114 |
|
끝내 살아남은 여자들의 영원한 이야기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옛이야기를 여성 서사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전국의 노인들이 들려준 구술 기록들을 원본으로 삼아 입말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옛이야기는 대부분 여성들의 말이었으며, 남성의 문자로 재해석된 것에 한해 간신히 문학 대접을 받아왔다. 그 과정에서 말한 당사자는 쉽게 지워진다. 더구나 어린이 교육용으로 재구성되면서 주류 사회에 교훈을 담는 수단으로 쓰이곤 했다. 이 책은 밋밋한 훈계가 아니라 상징과 은유와 풍자로 가득한 옛이야기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와 딸 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책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고전과 옛이야기를 탐구해 온 작가 심조원의 구수하면서도 신랄한 입담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웬 늙은이가 밭을 매니까루 산에서 호랭이가 내려왔더랴.” 이렇게 시작하는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는 어린이 그림책으로도 여러 권 출간되어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옛이야기로, 할머니와 알밤, 자라, 개똥 등이 힘을 합쳐 호랑이를 물리친다는 신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버전으로 해석하면, 이른바 ‘정상 가족’을 꾸리지 못하고 궁벽한 산골에 혼자 살고 있는 늙은 여성의 몸을 노리는 작자를 알밤, 자라, 지게 등 누추하고 하찮은 이웃들이 팥죽 한 그릇으로 얼었던 몸을 녹이고는 저마다 할 수 있는 한 가지 몸짓을 보태며 연대하여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분노와 서러움을 달래는 노래이자 세상과 연대하는 무기 안방과 빨래터, 우물가에 삼삼오오 모인 여성들은 자신들의 고된 삶을 때로는 으스스하게 때로는 깔깔대며 끝없이 이야기하였다. 가부장제의 굴레에 갇혀 온전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그들은 끝내 살아남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고명이 되기를 거부하고 남성 가부장인 아버지를 미러링하고 있는 ‘빌런’ 여우 누이와 여우가 재현하는 폭력으로부터 세상을 구한 ‘슈퍼히어로’인 용왕의 딸 거북(〈여우 누이〉), 시아버지의 냄새가 지배하는 영토에서 소리 내고 냄새 피우기를 포기하지 않은 며느리(〈방귀쟁이 며느리〉), 엉엉 울면서도 암소와 두꺼비와 참새와 이웃집 할머니에게 왜 서러운지, 얼마나 애쓰며 살고 있는지 말하는 아이, 콩쥐(〈콩쥐 팥쥐〉), 폭력적인 가부장 앞에서 자의식을 드러내어 쫓겨났지만 세상의 이목에 개의치 않고 발언을 계속 이어가는 막내딸(〈내 복에 산다〉), 부정당한 욕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차곡차곡 머릿속에 저장한 색시(〈밥 많이 먹는 색시〉) 등은 이야기판 여성 당사자들의 이야기라고 이 책은 말한다. 여자는 어머니로 태어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어머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야기에서 악역을 맡는 계모. 작가는 계모가 어머니의 다른 얼굴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남편의 존재는 사라지고 전처소생과 본인의 딸, 그리고 끝없는 집안일을 떠맡아야 했던 팥쥐 엄마이자 콩쥐의 의붓어미, 의붓딸을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모함하여 아비로 하여금 딸의 손목을 자르게 하는 계모. 모성이라는 구실로 양육과 돌봄 노동을 떠맡은 약자이자 모성을 앞세워 모진 폭력을 휘두르는 괴물이 될 때도 있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어머니를 옛이야기에서는 계모라고 한다는 것이다. 환대받지 못한 아이를 낳고 살해한 산모, 아들의 어머니이자 며느리의 시어머니라는 두 얼굴, 죽을 고비에서 새로 태어난 어머니를 통해 이야기는 인간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도깨비는 아침을 맞을 수 없다 이 책은 온갖 망가지는 배역을 맡아 오히려 친근해진 호랑이와 도깨비 이야기에도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호랑이는 사실 가족 제도나 국가 권력 등의 힘을 상징하지만, 범을 캐스팅하는 주체는 이야기 자리에 모인 여성, 아이, 머슴, 소금 장수, 짚신 장수 등이다. 범을 모시고 섬겨야 할 이들은 이야기 속에서 범의 껍데기를 벗기고, 수수깡으로 찌르고, 동아줄에 줄줄이 꿰며 함께 웃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도깨비는 가부장제에서 대접받는 ‘남성성’을 풍자하기도 한다. 여자들은 도깨비에게 덜미가 잡혀도 자신이 긴 밤을 버티고 살아남은 주인공임을 잊지 않는다. 도깨비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아침을 맞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마지막 이야기를 〈이야기 주머니〉로 배치했다.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풀어놓지 않으면 이야기가 굶어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얘길 해요. 오늘 저녁에 들은 거 아무 데라도 댕기면서 얘기를 해야 얘기가 얻어먹구 살잖아.” |
|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이 제목은 선언이다. 설화 혹은 옛이야기들은 흔히 푸근하고 정감 있는, 우리 전통을 담아낸 신성불가침의 서사로 생각되곤 한다. 그런데 구전되던 옛이야기들은 한반도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담아낸 기록통이기도 하다.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에서 혼자 사는 가난한 여자는 영화 〈나홀로 집에〉의 주인공처럼 기발하게 산중의 왕을 물리친다. 여성의 생존기로 읽는 〈콩쥐 팥쥐〉는 ‘여성의 적은 여자’같은 단순한 해석을 거부한다. 옛이야기는 한층 더 풍성해지고, 우리는 그 속 여성들을 새롭게 만난다. 섣불리 넘겨짚을 삶은 하나도 없다. - 이다혜 (작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