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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휴가
아는 사람도, 어떤 전제도 없는 시간들의 기록
오성윤
어떤책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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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날 것 그대로의 여행이 고파질 때] 오롯이 여행 자체로만 설렌 채 혼자 떠난 여행은 지금의 나를 살게 하는지도 모른다. 혼자라서 더 풍요로워진다는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 생각이 확신이 됐다. 감각적인 사진들과 함께 읽다 보면 잠시 떠났다 온 것처럼 설레고 마는 오성윤 작가의 여행기. - 에세이 PD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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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1 옥상 담배와 낯선 아침과 이국 도시에서의 달리기에 부쳐
2 선지자들이 모두 떠나간 후에는
3 그 후
4 43일
5 2차와 3차 사이에 이라와디 강변에 다녀올 수 있다면
6 대추야자 숲의 눈
7 먼 곳에서
8 2019년 12월 4일
9 지난 공항 사진이 우리에게 묻는 것들
10 마지막 로드트립
11 서유西遊
12 달과 뉴욕 사이에서
13 도시와 여행자 사이의 일
14 한 점
15 〈도라지 타령〉과 〈원더월〉
16 카운트다운
17 델로니어스 몽크 플레이즈 온 솅헤이
18 현실보다 탁월한
19 바올리 아래서
20 (로딩 중)
21 아무것도 하질 않네
22 그 섬에서는 무엇이 보이나요
23 젊은 날의 우리가 여전히 카오산 로드에 남아
24 두바이라는 농담
25 아스타나라는 신탁
26 지난날의 홍콩
27 재회
28 걸어서 ( ) 속으로
29 Last Scene
30 뒤
31 외로운 바와 외로운 방
32 남쪽으로 간다
33 묘지의 러너
34 기다린 이들과 초대한 자들
35 러시아인 이야기
36 지구 끝의 구루와 안방의 신
37 다음에 또 만나요
38 언젠가는 모든 곳이 여행지가 될 것이다

저자 소개 1

연필로 여행수첩을 쓰는 사람. 필름카메라로 낯선 도시를 찍는 사람.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상 아래로 기어 들어가 눈을 꼭 감았다. 그러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세상의 고요가 그렇게 달콤했다. 자라서는 멀리 떠나는 사람이 되었다. 이국의 도시에서 익명의 존재가 되어 어떤 전제에도 속하지 않은 채 세상을 마주했다. 그런 여행을 자주 하고 싶어서 여행 잡지 <론리 플래닛>에서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에스콰이어>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멀리 떠나면 그 도시의 재즈클럽과 바에 들르고, 공동묘지에서 달리기를 한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524g | 135*205*27mm
ISBN13
9791189385385

책 속으로

나는 내가 삶 그 자체라 혼동하는 내 일상, 내 직업, 내 관계들에서 벗어나 보려 시시때때로 멀리 떠나곤 했으나, 모르는 동네에서 며칠 보낸다고 그런 게 가능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몇몇 순간에는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까지 어떤 전제에도 속하지 않은 채 세상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을 떠올릴 때면 마치 그 순간 내가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 존재했던 듯한 느낌이 드니까.
--- p.27

“모를 리야 있나. 그렇게 어두운 방에 기대어 있는 동안 사람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집도 산다는 걸. 그런데 그 사실이 그냥 너무나 아무렇지가 않은 거야. 아무래야 하는 일이라는 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는데, 글쎄. 한 번도 스스로와 사람들을 동일선에 놓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렇다고 딱히 저항감 같은 것도 없고, 그냥 오빠는 멀리서 그 사람들을 구경해. 그들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둘 사이에 태어난 생명에 감격하며, 부단한 노력으로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과정을. 마치 신처럼 말야. 나는 있잖아, 그런 건 대단한 능력이기도 하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따로 떼어서 생각하는 것. 그런 건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은 아니거든. 하지만 정말로는 걱정이 되기도 해. 결국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 음악 하나를, 영화 한 편을 가슴 절절히 아름다워할 수 있을 때까지만 신인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더 이상 춤을 근사하게 추지 못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신일 수가 있겠어.”
--- p.50

나도 혼자 여행하며 아름다운 것을 마주하는 순간에 으레 누군가를 떠올리곤 한다. ‘아무개가 이걸 봤으면 좋아했을 텐데’ 하고. 다만 그렇다고 지금 혼자인 순간을 불완전하게 여긴다거나 ‘다음번에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자’고 생각하는 식으로 자라지 않았을 뿐이다. 그 순간을 먼 곳에서 누군가를 절절히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편지를 쓸 수 있었던 시간으로, 혼자임이 아쉬워서 더 완벽한 시간으로 여기는 사람이 되었지.
--- p.91

어떤 시절의 여행에서 당신은 끝없이 걷는 수밖에 없다. 도망치듯 타지로 떠나왔으나 근사하고 아름다운 여행 명소들에서 당신은 스스로가 투명인간이 된 듯 느낀다. 그렇다고 호텔방에 틀어박혀 있자면 당신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당신 자신이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사람이 걷기 시작하는 것은 거의 자연적인 인과관계라, 대도시에는 언제나 곳곳의 골목을 기웃거리는 이방인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이따금 눈을 감고 그들의 잠행을 지도 위 빛나는 점들로 상상해 보곤 한다. 찾아 헤매듯 걷는 사람들. 떨치듯 걷는 사람들.
--- p.121

그때, 7번 출구 끝에 이르러,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출구 옆에 서 있던 한 여인이 뒤를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활짝 웃어 보인 것이다. 꼭 기다리던 남자친구나 남편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정말로 내 뒤에 그녀의 지인이 서 있었다면 안타깝기라도 할 것 같은 미소였다. 아무 맥락 없이도 질투를 만드는 미소가 있다는 것, 꼭 그것과 연결된 게 내 존재였으면 하는 미소가 있다는 것. 그건 나도 그때 처음 알았다. 당황해 눈을 피하지도 못한 찰나 그녀는 입을 뗐다. “비 소식을 못 들었어요. 우산 좀 씌워 줄 수 있어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답했다. “저는 중국어를 못 합니다.” 그녀는 잠깐 당황했다가 다시 영어로 말했다. “비 소식을 못 들었어요. 우산 좀 씌워 줄 수 있어요?” 그런 종류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나는 단번에 승낙했다. 내심은 인류애만이 아니었겠지만. 나는 우산을 펴면서 그녀의 첫마디가 내 마음에 퍼뜨린 파장을 곱씹었다. 중국어의 성조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리 멜로디컬하게 말을 걸게끔 되어 있구나. 아니면 그건 성조의 문제라기보다 중국인의 성정이려나? 혹은 상하이 사람의, 혹은 이 사람의 성정.
--- p.191

나는 때때로 은둔의 욕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후미지고 조용한 어느 구석에 가서 속세를 잊고 살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은둔의 욕망이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내가 차지해 온 세계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에 가깝다. 그리고 그건 우울이나 도피와도 성격이 다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초등학생 때부터 아무 이유 없이 종종 그런 상상을 하는 아이였다. 부모님은 맞벌이셨고, 우리 집은 해 질 녘이면 창으로 새어 들어온 빛에 부유하는 먼지까지 다 보일 정도로 낡고 큰 집이었다. 그리고 나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곧장 내 방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있곤 했다. 그러면 꼭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고, 내가 꼭 그 무無에 속한 것 같았다. 의자를 슬쩍 당긴 후 눈을 감고 집 안 곳곳을 떠올리면, 그리고 귀를 기울이면 그게 그렇게 달콤했었다는 게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 p.282

혼자 여행할 때의 나는 새벽에 숙소로 돌아가며 맥주 몇 캔을 산다. 숙소에 도착할 즈음이면 십중팔구는 만취 상태지만, 뻗어 눕기 전에는 내가 무엇을 아쉬워하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으므로. 지금껏 내가 까 놓고 마시지 못한 채 곯아떨어져 침대 사이드 테이블에 방치됐던 맥주들, 그것만 다 모아도 드럼통 한 개는 족히 채울 것이다. 아깝긴 하지만 그것은 말하자면 하루의 끝을 받아들이는 의식 차원의 공물이다. 침대에 풀썩 누워 TV를 틀고 맥주 한 캔을 따는 일련의 의식을 위한 공물. 물론 이국의 TV 방송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에 둘러싸여서도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만으로 얼마나 위안인지 모른다. 하루 종일 그런 것들에 쫓기고 나서는 말이다.
--- p.326

장례식과 결혼식.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당신이 납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결혼식장보다 장례식장에 있을 때 더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때 소속감이란 ‘있어야 할 곳에 내가 존재한다’는 감각이다. 지인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2인 공동체를 맺을 때, 그것을 축하해야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사회성과 당위의 힘을 필요로 한다. 어느 정도는 축하해야 하는 일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축하한다는 뜻이다. 그에 비하자면 상실과 부재에 유대하는 건 그저 인간으로서 자연스레 작동하는 기능과 같다.

--- p.342

출판사 리뷰

낯선 도시에 가면 재즈클럽을 꼭 찾는,
공동묘지에서 달리기를 하는


나는 내가 삶 그 자체라 혼동하는 내 일상, 내 직업, 내 관계들에서 벗어나 보려 시시때때로 멀리 떠나곤 했으나, 모르는 동네에서 며칠 보낸다고 그런 게 가능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몇몇 순간에는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까지 어떤 전제에도 속하지 않은 채 세상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을 떠올릴 때면 마치 그 순간 내가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 존재했던 듯한 느낌이 드니까. (27쪽)

그에게 여행은 아는 사람 없는 낯선 곳에서 어떤 전제에도 속하지 않은 채 세상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책 『짧은 휴가』는 여행 에세이라기보다 강렬하고 순전하게 감지되는 어떤 심상들에 가깝다. 그의 글 안에서 사진과 문장과 분위기는 구분 없이 끈끈하게 한 덩어리로 엉겨 있다. 그렇게 해서 오성윤 작가가 빚어낸 아스타나(도시명이 바뀌어 지금은 ‘누르술탄’이라 불린다) 여행은 우리는 무엇으로 여행지를 결정짓는가와 관련한 짓궂은 농담이 되고(256쪽),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자의 집’ 방문은 거짓말로 이뤄 낸 비밀스러운 호사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역설이 되며(154쪽), 밀라노 바의 어느 싱어송라이터 공연은 현실과 비현실이 명확히 경계지지 않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신비로운 작용이 된다.

오성윤 작가는 여행지에서 공동묘지를 찾아 달리기를 한다. 그는 도쿄의 야나카레이엔, 교토의 오오타니 혼뵤, 밀라노의 시미테로 모누멘탈레, 카파도키아의 위르기프, 뉴델리의 인디언 크리스천 묘지, 괌의 피고 가톨릭 묘지를 달렸다. 공동묘지와 달리기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그의 글 안에서 꽤 설득력 있는 여행의 행위이자 어떤 심상을 향한 꾸준한 추구가 된다.

장례식과 결혼식.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당신이 납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결혼식장보다 장례식장에 있을 때 더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때 소속감이란 ‘있어야 할 곳에 내가 존재한다’는 감각이다. 지인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2인 공동체를 맺을 때, 그것을 축하해야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사회성과 당위의 힘을 필요로 한다. 어느 정도는 축하해야 하는 일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축하한다는 뜻이다. 그에 비하자면 상실과 부재에 유대하는 건 그저 인간으로서 자연스레 작동하는 기능과 같다. (342쪽)

일상과 직업, 관계들에서 벗어난 나와 일상의 나는 멀고도 다르다. 그 때문에 아는 사람도, 어떤 전제도 없는 시간들에 쓰여진 오성윤 작가의 글은 자주 소설 같다. 낯선 도시, 호텔, 재즈클럽, 칵테일바, 공동묘지가 배경인 소설을, 혼자 있음으로써 더 풍요로워진다는, 이해하고 싶은 아이러니를 지닌 한 사람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는 듯하다. 『짧은 휴가』에 언급되는 지역에 가게 된다면 여러분은 여행지를 찾는 기분보다는 소설 속 등장인물을 만나게 되리라는 예감을 갖게 될 것이다.

나도 혼자 여행하며 아름다운 것을 마주하는 순간에 으레 누군가를 떠올리곤 한다. ‘아무개가 이걸 봤으면 좋아했을 텐데’ 하고. 다만 그렇다고 지금 혼자인 순간을 불완전하게 여긴다거나 ‘다음번에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자’고 생각하는 식으로 자라지 않았을 뿐이다. 그 순간을 먼 곳에서 누군가를 절절히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편지를 쓸 수 있었던 시간으로, 혼자임이 아쉬워서 더 완벽한 시간으로 여기는 사람이 되었지. (91쪽)

한편 『짧은 휴가』는 여행 에세이가 분명하다. 다만 『짧은 휴가』는 여행을 계획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바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놓인, 정말로 일어난다면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 적막에 가까운 몰입의 시간과 적확하고 세심한 언어를 담보해야 하는, 그런 여행의 장면들로 이루어진 여행 에세이다. 앞으로도 오성윤 작가는 글을 쓸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글은 책이 될 것이다. 『짧은 휴가』는 여러분이 그를 처음 만나는 책이자, 자신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자신의 한 순간을 다시 만나게 해 줄 책이다. 어떤 전제에도 속하지 않던, 한 순간의 여러분을.

추천평

“항공권을 사면 환불 규정을 살핀다. 숙소 잡기 어려워서, 지하철이 끔찍해서, 좋아 봐야 얼마나일까 싶어서. 오성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는 마음이 좀 달라졌다. 경로를 일부러 벗어나 보는 재미를 원한 거였는데. 개구진 상태가 되면 모르는 사람과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헤이데이 재즈클럽이든 중저가 호텔에서든. 그걸 원한 거라면 가야지. 봐야지. 만나야지. 불만족 속에서 흡족하게 웃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 서한나 (『사랑의 은어』작가·<보슈> 공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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