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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뭔가 새로운 것이 그득한 그림책이다. 평범한 어른들의 눈으로 이 이상한 그림들을 한 번에 알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렇게나 그어댄 듯한 먹선들 사이에 볼펜으로 낙서한 듯한 선으로 뭉쳐진 물체가 보인다. 마구 그어진 먹선들은 거대하고 신비로운 우주의 어느 별의 미래도시를 연상시키고, 마이크로 로봇 같기도 하고 외계인 같기도 하고 미생물 같기도 한 것들이 보인다.
걔네들이 글자벌레다. 여러 종류의 글자벌레들과 더 미세한 먼지벌레들, 글자부스러기 벌레들이 일종의 진화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먹을 것도 먹으며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별 같던 배경이 바로 인간들의 서재 책장이고, 나란히 꽂혀 있는 책들이 글자벌레들에게는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피'자와 별자리의 '자'자를 모아 피자를 만들어 꿀꺽 먹고, 사랑의 '사'자와 탕약의 '탕'자를 모아 사탕을 만들어 꿀꺽 먹고,... 이 책 『씹지않고꿀꺽벌레는 정말 안 씹어』에 나오는 주인공 씹지않고꿀꺽벌레(이하 줄여서 꿀꺽벌레)는 이름 자체가 자신의 성격과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 글자벌레들은 책 속의 글자를 뽑아서 단어로 만들어 먹고사는데 꿀꺽벌레는 정말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피라미드의 '피'자와 별자리의 '자'자를 모아 피자를 만들어 꿀꺽 먹고, 사랑의 '사'자와 탕약의 '탕'자를 모아 사탕을 만들어 꿀꺽 먹고, ... 하지만 꿀꺽벌레는 음식들마다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맛을 알지 못해 머리 속이 엉망진창이 된다. 그러다가 친구 아낀다고야금벌레의 도움으로 맛의 비밀을 알고 즐길 수 있게 된다.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고, 포켓몬스터를 줄줄 외고 모으는 2000년의 아이들과 만나기 위해 그들의 언어와 놀이를 빌어왔다. 이 그림책은 <만희네 집>과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두 권의 서정적인 그림책을 낸 작가 권윤덕이 요즘 아이들과 만나고 싶어서 만든 책이다.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고, 포켓몬스터를 줄줄 외고 모으는 2000년의 아이들과 만나기 위해 그들의 언어와 놀이를 빌어왔다. 글자벌레들이 글자를 먹을 때 광선을 쏘아서 먹기 좋은 형태의 구슬로 만들어 먹는 것, 글자 구슬을 먹을 때 이리 저리 미로를 돌다가 튀어서 먹기도 하고 밀기도 하면서 먹는 모습, 사각형의 칸에서 글자 구슬을 먹는 모습 등은 게임의 형식이며, 그 자체로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어 있다. 어른들에게는 수학 도형보다 복잡해 보이기만 하는 이 모든 이미지들이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쉽고 재미난 놀이일 따름이다. 아이들은 이 놀이를 즐기면서 시금털털, 알짝지근, 새콤달콤 등 맛에 관한 말도 몇 개 알게 된다. 어쨌든 이 재미나고 시끌벅적한 그림책을 보면 아이들에게 친근한 그 무엇을 만들기 위해 어른 권윤덕이 얼마나 치열하게 머리와 손을 풀려고 애썼는지 느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