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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
최준식
효형출판 2000.04.30.
베스트
미학/예술철학 top2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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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왜 지금 여기서 한국미인가
우리 예술을 너무 모르는 우리 - 문화 예술정책이 없는 나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할 시기
문화적 열등감에 젖은 한국인들
갈팡질팡하는 전통 예술계

2. 왜 조선 후기인가
현재의 예술품들은 대부분 조선 후기의 것
생활 문화 속에 나타난 조선 후기적 모습
가장 한국적이라는 예술들은 언제 형성되었을까? - 음악과 무용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는 과연 어떤 시기일까?
가속화된 신분제도의 파괴
농업 기술의 빠른 발전
더불어 발전하는 상업
기층문화와 상층문화의 만남
소결

3. 조선 후기의 예술정신 : 샤머니즘적 자유분방성 - 한국인들의 무질서에 대한 동경
왜 무교인가?
무교는 어떤 종교일까?
무교적 예술 정신에 배어 있는 자유분방성

4. 조선 후기 예술에 나타나는 자유분방한 모습
자유분방한 조선 후기 음악
빨라지고 다양해지는 정악
즉흥과 개성을 중시하는 한국의 속악 : 시나위와 산조
세상에서 제일 화끈한 노래 : 판소리
조선의 멋스러움이 가장 잘 나타나는 조선 후기의 춤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있는 궁중 무용
세계적인 우리 민속춤 : 살풀이춤과 승무
자유분방함의 극치인 민중의 춤 : 탈춤
조선적인 미가 흠뻑 나타나는 조선 후기의 미술
겸재와 단원이 그림에서 보이는 조선미
극도로 자유분방한 한국의 민화
또 다른 해학과 파격의 민중 예술 : 장승
자유분방한 미가 일찍 나타나는 조선의 도자기
수더분하고 자유분방한 분청사기
인간이 만든 것 같지 않다는 막사발
조선적인, 너무나 조선적인 백자
우리와 친숙하고 가장 조선적인 조선 후기 건축
법도적이지만은 않은 조선의 궁궐 건축
지금 남아있는 사찰 건물은 대부분 조선 후기 건축
자유분방한 조선의 유교 건축
전통 정원의 한국적인 미는

저자 소개 1

비교종교학자로서 그동안 수많은 저서와 강연을 통해 종교와 인간, 윤회와 환생 등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특별한 분야에서 학문적 업적과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약력 1979년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1988년 미국 템플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졸업 1989년 종교문화연구원 설립 1992년~2021년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역임 2005년 한국죽음학회 설립 202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 2024년 UFO 협력단 창설 저서 『UFO-세계가 주목한 두 접촉자의 이야기』(2025), 『죽은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 사후생을 증명하는 다섯 가지 근거』(2
비교종교학자로서 그동안 수많은 저서와 강연을 통해 종교와 인간, 윤회와 환생 등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특별한 분야에서 학문적 업적과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약력
1979년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1988년 미국 템플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졸업
1989년 종교문화연구원 설립
1992년~2021년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역임
2005년 한국죽음학회 설립
202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
2024년 UFO 협력단 창설

저서
『UFO-세계가 주목한 두 접촉자의 이야기』(2025), 『죽은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 사후생을 증명하는 다섯 가지 근거』(2025), 『Beyond UFOs?UFO, 그 너머의 이야기』 (2024),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 종말의 문제에 관하여』(공저)(2015), 『최준식의 메타 종교로 가는 마지막 춤 1, 2, 3』(2023), 『인간은 분명 환생한다』(2017), 『한국 사자의 서』(2017),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죽음학 강의』 (2014)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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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준식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국제한국학회 회장과 한국문화표현단 단장을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1,2』『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6361353

책 속으로

왜 조선 후기인가? 신석기시대까지 7천년의 유구한 우리 역사에서 왜 얼마 안되는 조선 후기만을 보겠다는 걸까? 예술적으로 보아도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라든가 울주 만구대의 암각화부터 해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고려,조선전기 등과 같은 시기의 휘황찬란한 예술작품들이 즐비한데 왜 조선 후기의 예술만을 거론하는 것일까? 조선후기 이전의 예술품들이 가치가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앞에서 본 것처럼 조선 후기의 예술이 우리에게 있어 상대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대를 연이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한국적인 미는 대부분 조선 후기의 예술품이 지니고 있는 미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 p. 46

아! 못 말리는 한국인이여! 이렇게 자유분방하니 나라가 항상 시끄러울 수밖에. 저 자유분방한 에너지만 잘 추스릴 수 있다면 엄청난 저력이 나올 텐데.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개발도 저 에너지 덕이겠지....... 이런 여러 상념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을 금할 수가 없다. 어떻든 이렇듯 우리 음악인들은 자신의 해석 없이 배운 대로만 연주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그런 음악을 무시했다.

--- p.117

단원이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주로 그렸다면, 풍속화에 있어서 그와 쌍벽을 이루는 혜원은 서민들의 드러나지 않은 색태(色態)적인, 다시 말해 에로틱한 광경을 그렸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혜원도 서민생활의 일상적인 모습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적인 그림은 냇가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남정네들이 몰래 보고 있는 것을 그린 그림이나 밤에 남녀가 몰래 만나는 그림, 또는 한량과 기녀들이 중심이 된 에로틱한 그림들이다. 이런 그림들만 그리는 혜원을 도화원(궁중의 화원들이 속한 부서)에서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그러나 혜원은 도화원에서 쫓겨났지만 당당했던 모양이다. 당시로서는 포르노그래피에 해당될 자신의 그림에 관지(款識) 와 도인(圖印)하는 것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혜원 자신의 자유분방한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러한 대담 솔직한 표현이 어느 정도는 먹혀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이 될 것이다. 당시는 이미 유교가 사회를 엄격하게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 시기였기에 인간의 감정을 옹호하는 반유교적인 그림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연당야유도」와 같은 그림은 당시로서는 실로 대담한 그림이었다. 연꽃이 핀 연못 옆에서 한량들이 기생을 뒤로 껴안고 가야금 연주를 듣고 있는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아무리 유교가 쇠퇴한 시기라 해도 당시 사회가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혜원이 살던 시대는 전시대와 비교해 볼 때 훨씬 사치와 유흥을 즐기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가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또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우리는 혜원의 이 그림을 통해 한층 더 자유로워진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 pp.183-184

다음은 거문고 산조의 명인 한갑득의 이야기다. 원래는 서편제의스타이자 지금은 국립극장장이 된 김명곤의 '광대열전'에 나오는 이야기 인데, 나는 이성재의 '재미있는 국악길라잡이'(서울미디어, 1994, 94쪽)에서 인용한다.

'요새는 문화재 지정이니 뭐니 해서 선생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하라고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여, 선생한테는 기본 가락을 배우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지 재주껏 편곡도 하고 창작도 해서 타야 좋지. 밤낮 배운 대로만 허면 그건 밥만 먹고 똥만 싸는 꼴이지......

그리고 즉흥적인 멋이 있어야 허니 한 음 켜놓고 그 다음에 동으로 갈지 남으로 갈지 북으로 갈지 서로 갈지 몰라. 그래서 산조가 어려운 거고 그래서 산조가 좋은 거여...... 자유자재허고 신출귀몰허고 구석구석 기묘허고 마음대로 사람을 울리고 웃기고, 그래서 국악이 좋은거여.'

아! 못말리는 한국인이여! 이렇게 자유분방하니 나라가 항상 시끄러울 수밖에, 저 자유분방한 에너지만 잘 추스리면 엄청난 저력이 나올 텐데.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개발도 저 에너지 덕이겠지...... 이런 여러 상념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을 금할 수가 없다. 어떻든 이렇듯 우리 음악인들은 자신의 해석 없이 배운 대로만 연주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그런 음악을 무시했다.

--- p. 117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했던 최순우 선생은 이 달항아리를 두고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후덕함을 지녔다고 칭송했다. 도자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평범하게 보이는 도자기에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항아리는 보면 볼수록 그 깊은 맛이 우러난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으니 이런게 바로 명품인거 같다. 달항아리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 p.231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제목에서 말해주듯 '자유분방함'이라는 개념을 중심축으로 하고 그 익살과 파격의 의미를 조감한 한국미의 탐색과정이다. 한국문화와 한국미의 탐색은 필자의 오랜 과제이거니와, 그 시발점에서 전공인 종교학과 인접 학문인 철학, 미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했던 그는 예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문화'라는 화두에 골몰해 왔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에는 인간의 심성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유분방함'이라는 일관된 키컨셉(key concept)으로 조선 후기의 예술 의식을 관류하려고 노렸했으며, 이 개념으로 조선 후기 예술의 전 장르를 개괄했다. 그가 '조선후기'에 촛점을 맞춘 것은 무엇보다도 '전통의 단절'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또한 단절된 문화의 맥을 바로 조선 후기 예술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유,무형의 전통문화유산은 거의 대부분의 이 시기의 것으로, 그는 이런 유산들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문화, 예술에 대한 기존의 구태의연한 시각과 왜곡된 사고를 바로잡기 위한 디딤돌로 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우선 '조선 후기'의 사회적 변화 속에 기층문화와 상층문화가 어떻게 만나서 교류, 융화되어갔는지를 살피고 있다.

한편 이미 출간된 『한국인에게는 문화는 있는가』에서 천착해본 바 있는 '자유분방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는 한국인의 심성적 본질을 찾고자 했다. 그것은 '무질서에 대한 동경'이라 집약할 수 있는 것으로, 이는 종교로서의 무교에 투영되고 각 장르의 예술(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바로 '무교적 예술정신에 배어 있는 자유분방성'이 이 책을 관류하는 key concept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적 요인을 바탕으로 음악, 예술, 건축을 중심으로 조선 예술의 실체를 재발견하고자 했다.

그는 전통문화의 재발견 및 창조적 계승뿐 아니라 그 바탕을 이루는 오늘날의 문화, 예술계 및 사회의 전반에 만연된 문제점을 사회, 문화사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정책적 차원에서 개개인의 가치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의 포괄적 함의를 담고 있다.

결국 왜, 지금, 여기서 한국미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새로운 천년, 문화의 세기를 맞이한 우리에게 올바른 정체성과 가치관의 확립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작업의 하나라고도 할 것이다. 디지털 혁명의 와중에서 우리 것을 밀쳐 두고 한국미를 경원시하기 쉬운 지금의 세태에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되찾는 계기가 될 이 책은 '국민교양서'로 한층 의미를 둘 만한 역저임에 틀림없다.

리뷰/한줄평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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