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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왕이란 어떤 존재일까? 한 나라의 리더이다
제1대 태조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라 제2대 정종 권리를 포기하면 의무도 포기하게 된다 제3대 태종 오직 결과에만 집중하라 제4대 세종 군주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제5대 문종/제6대 단종 군주의 약함도 죄다 제7대 세조 오직 목적 달성만 중시할 뿐 제8대 예종 리더는 세력 구도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제9대 성종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제10대 연산군 만백성 위에 군림한 군주 제11대 중종 왕은 자신보다 큰사람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제12대 인종/제13대 명종 리더는 결국 홀로 서야 한다 제14대 선조 무책임한 잔머리의 왕 제15대 광해군 앞서가는 왕, 붙잡는 신하 제16대 인조/제17대 효종 목소리만 컸던 비전 선포 제18대 현종 왕은 성과 위주로 이슈를 주도해야 한다 제19대 숙종 전형적 마키아벨리스트 제20대 경종 전략적 사고가 약한 비애미悲哀美의 군주 제21대 영조 양가감정을 지닌 전략적 성군 제22대 정조 새로운 판을 짜라 제23대 순조/제24대 헌종/제25대 철종 영令이 서야 왕이지! 제26대 고종/제27대 순종 함께 꿈꾸는 미래가 있느냐 조선 왕 계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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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이 이성계에게 의탁한 것도 이성계의 사람 보는 눈 때문이다. 정도전은 조선 치국의 지침서로 만든 《조선경국전》에 ‘통치의 열쇠는 오직 용인이다’라고 기록했다. 물론 이 책은 이성계에게 바쳤다. 다행히 이성계는 출신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발굴해 내는 능력이 있었다. 고려가 돌이킬 수 없는 난세라는 것은, 기존 인재 등용 방식의 효용 가치가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런 안목으로 인재를 고르면 전통이 야기한 난국을 돌파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성계는 기존 인재상과 다른 인물을 발탁했고, 그들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다. 정도전, 이지란, 무학대사 등이 그들이다.
--- p.30 목적 달성에 효과적이기만 하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태종은 한마디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았으며 원하는 목적을 확실히 이루었다. 태종 같은 결과 지향적 리더들은 항시 ‘왜’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 다음 그 해답으로 ‘어떻게’를 찾는다. 즉 과정은 목적을 이룰 수 있을 때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 p.46 왕의 진정한 힘은 사회적 신뢰의 크기로 가늠한다. 신뢰받는 왕은 그 자체로 자부심도 있거니와, 백성의 자발적 단합으로 어떤 과제도 해결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왕이 이기적이거나, 측근 몇 명만 야합하는 정치를 할 때 사회적 신뢰는 하락한다. 세종은 신하는 물론 백성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했다. “조선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이것이 세종의 통치철학이었다. --- p.71 조선의 어느 시기인들 왜 인재가 없었겠는가. 그런데도 세종과 정조 때 유달리 많은 인재가 부각된 것은 두 왕의 구심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인재가 인재를 부르는 인력의 법칙이 작동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두 왕 주변에 인재가 많았던 이유는, 우선 본인들이 영민했기 때문이다. 굳이 왕이 최고의 지식과 재주를 겸비할 필요는 없다. 누가 최고의 재주를 가졌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등용하면 된다. 영민하다는 것은 ‘포용력’과 ‘방향 설정력’이 있다는 뜻이다. 인재일수록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이들을 포용하고, 이들의 역량이 긍정적 결과 창출에 집중되도록 방향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p.91 태종과 세조는 여러모로 닮았다. 둘 다 장자가 아니라 왕위 계승에서 밀렸지만 개인의 지략과 집념으로 왕이 되었다. 두 왕 모두 권력욕의 화신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권력 장악과 유지가 욕심만으로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역량이 있어야 한다. 세조는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지만, 창조적 상상력과 위기관리 능력이 있었고, 특히 인재 식별력과 기회 포착력이 탁월했다. 리더에게 절호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지만, 설령 왔다고 해도 자기 몫으로 만들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세조는 작은 기회(small opportunity)를 도약의 기회(big chance)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 p.123 연산군은 고립을 자초했다. 왕은 솔로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기본적으로 세력 관계를 잘 형성해야 한다. 연산군은 이를 간과했다. 무오사화로 사림을 제거하고, 갑자사화로 훈구 세력을 제거했다. 이로써 조선 초기 양반 관료를 구성한 훈구파와 사림파 모두를 적으로 돌렸다. 두 세력을 적절히 이용하거나 한 세력이라도 우군으로 삼았어야 했다. 게다가 백모까지 겁탈해 왕실 세력까지 적으로 만들었다. 12년 집권 동안 연산군은 주변 세력을 다 쫓아냈을 뿐 아니라 여염집 아낙네를 빼앗고, 사냥에 방해된다고 민가를 허무는 등 폭군 노릇을 해 백성들의 환멸을 샀다. ━ p.194~195 광해는 아무리 바빠도 명나라와 여진족의 동향 보고만큼은 지체 없이 받으며, 명나라가 수명을 다했다고 보았다. 더욱이 여진족이 조선을 수탈하며 오만하게 대한 것과 비교해 여진족을 훨씬 관대하고 개방적으로 대했다. 하지만 성리학이 신앙이었던 조선 사대부들에게 성리학의 본고장인 명나라는 영원한 조선의 종주국이어야 했으며 청나라는 오랑캐였다. 이들의 친명 사상이 광해의 실리외교를 저지한다. 이를 억누르며 광해는 조선이라는 배의 선장이 되어 15년간 방향을 제대로 잡고 항해했다. 그동안 이 배의 주인으로 행세하던 사대부들은 광해가 계모 인목대비를 유폐한 것을 빌미로 선상 반란을 일으켜 조선호의 항로를 돌려놓는다. --- p.249 리더의 미래란 현재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끊임없이 추구하고 달성하려는 그 무엇이다. 왕이 초점을 미래 성과에 맞출 때, 타이밍에 맞는 이슈를 선별하고 주도해 낼 수 있다. 현종 당시 세계는 기초과학과 통상무역이 발전하고 있었고 이에 앞선 나라들이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었다. 현종이 조선의 방향을 이런 흐름에 맞추었다면 예송 논쟁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모인 조직에서 이슈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성과와 크게 관계없는 논쟁은 가능하면 짧게 끝내야 한다. 격화하면 할수록 리더의 정통성에 흠집만 나기 때문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도 하지만, 진정한 영웅은 이슈를 만들어 시대를 개척한다. --- p.295 경종 독살의 의혹 속에 즉위한 영조는 의혹설을 이용해 주도권을 행사하려던 노론에 맞서 네 당파를 고루 등용해 제어했지만, 노쇠해진 말년에 이르러서는 제어력이 약해졌다. 결국 사도세자를 죽게 하는 조선 왕실 초유의 비극이 발생한 가운데, 손자 정조를 두고 여든셋에 승하했다. --- p.354 사대부들은 북학파가 신분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더니, 양반들더러 천한 장사까지 하라고 하니 더는 참기 어려웠다. 마침 1790년이 청나라 건륭제의 팔순이라, 정조가 북학파를 북경에 다녀오게 했다. 사대부의 공격을 일시 피하라는 뜻이었다. 그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1792년 정조가 ‘문체반정’이라는 사상 정화 카드를 꺼냈다. 유행하는 문장이 규범에 어긋나므로, 정통고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 p.385 고종은 집권 초 10년은 흥선대원군에게, 친정 후에는 민비에게 휘둘렸으며, 헤이그 특사 파견 후 일본에 의해 퇴위되었다. 순종은 일본이 강제로 씌워준 왕관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변화의 시기에 주도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외력에 의해 강제로 변질되게 되어 있다. 똑같은 시기 일본은 국제 변동에 적극적으로 부응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앞설 수 있었다. 그다음이 청나라였고, 조선이 가장 뒤처졌다. 그래서 주권까지 강탈당한 것이다. --- p.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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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어떤 리더가 필요한가? 이 시대 진정한 리더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모두 과인의 책임’을 외친 조선 왕들의 리더십에서 한 수 배운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조차 살아생전에 보지 못했으며, 조선이 망한 뒤에야 공개되었을 정도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록물이다. 기록으로 사회를 통제했던 조선이 낳은 기형적인 유산이다. 사생활 노출을 꺼린 왕과 부딪쳐 자칫 목숨마저 위태로웠던 사관의 투철한 직업관 덕에 우리는 날것의 역사를 접할 수 있다. 오늘 상상의 연료로 언제든 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500년 역사의 주인공들을 다시 만난다. 『심리학으로 읽는 손자병법』 『고구려에서 배우는 경영전략』 등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역사를 재해석 온 저자가 이 책에서는 500년 조선 역사의 주역들을 불러낸다. 키워드는 리더십이다. 혼란의 용광로 속에서 융합을 이끌어내야 했던 통치자에게 어리광은 통하지 않았다. 이성계와 더불어 고려 말 최고의 실세로 국정을 운영했던 최영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반대하다가 회군 세력에게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 인조는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워 돌아온 장남 소현세자를 질투해 두 달 만에 독살했다는 강한 의심을 받는다. 패륜의 군주라며 쫓아낸 광해보다 더 중대한 패륜을 저지른 것이다. 숙종은 인조, 효종, 현종도 무시 못 한 50년 정치 거물 송시열이 세자 책봉에 반대하자 과감히 제거했다. 선조는 임진왜란 동안 리더십을 발휘한 광해에게 마지못해 선위했다. 저자의 분류에 따르면 27명 왕 중 세종과 정조 정도가 백성을 위하는 위민의 리더다. 태종과 세조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했다. 그런가 하면 조선 최악의 폭군 연산군을 비롯해 중종, 숙종은 지시만 있을 뿐 리드는 없는 군림형 리더였다. 정종을 포함해 인조, 순조, 문종, 단종, 예종, 인종, 명종, 현종, 경종 등 10명은 천성은 착했으나 권력의지와 냉혹한 정치 현실을 간파할 지략이 부족했다. “권력은 스스로 노력해 쟁취하고 지켜나가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이에게 넘어간다”라는 교훈을 준다. 지금 한 조직의 리더라면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조선왕조 500년 왕들의 위대한 리더십으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통찰하여 미래를 꿈꾼다! 왕조 사회에서는 누가 왕이 되느냐에 따라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왕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느냐에 따라 신하들의 의식과 행동이 변하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리더가 구성원을 이끌고 나가는 행위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욕망에 근거한다. 어진 신하의 나라로 설계한 정도전의 조선은 태종 이방원의 강력한 리더십 앞에서 좌초했다. 그러나 장자 계승의 원칙을 깨고 셋째 충녕(세종)을 보위에 앉힌 태종의 리더십은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리더는 사랑받기보다 사랑을 주어야 하며, 위로받기보다 구성원의 고뇌를 위로해 주고 해결해 주어야 한다. 리더는 강해야 한다. 체력적 강함과 신념적 강함을 겸비해야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자명한 사실을 문종과 단종은 반면교사가 된다. 세조는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지만, 창조적 상상력과 위기관리 능력이 있었고, 특히 인재 식별력과 기회 포착력이 탁월했다. 조선 최고의 인재라 일컫는 조광조를 수용하지 못한 중종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조직원의 능력을 파악하고 그것에 집중하도록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리더는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한 나라의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 설정과 포용력이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아니다. 오늘날 조직의 리더들에게도 전문가들을 코디네이션할 줄 아는 지략이 필요하다. 조직은 리더의 능력이 아니라 그릇만큼 큰다. 준비되지 못한 왕, 질투심에 사로잡힌 왕, 자식과도 권력을 나누지 못한 왕, 외세의 무력 앞에 자신의 보위에만 급급했던 왕…. 이 책에서 조선의 왕 27명이 보여준 리더십의 서사는 실패하지 않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금과옥조의 덕목들을 다시 일깨운다. 이 책은 왕과 리더십에 관한 책이지만 결국 이 질문으로 수렴한다. “우리는 어떤 리더를 원하는가?” 과거와 현재를 잇고자 하는 저자의 친절한 안내가 역사서라는 부담감을 내려놓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