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정증보판 서문프롤로그 한미관계, 그 뒤편의 진실을 찾는 여정제1장 ─ 준비 안 된 만남, 뜻밖의 동맹6·25전쟁의 진실, 누가 어떻게 시작했나: 스탈린, 김일성, 마오쩌둥 vs 트루먼, 애치슨, 맥아더미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오판의 전쟁: 고지전의 내막미국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마산방어전투가장 추웠던 겨울: 미군 최악의 전사맥아더는 영웅이었나6·25전쟁, 냉전 시대를 열고 전범국가 일본에 면죄부를 주다한국은 미국의 계획 속에 없었다미국에 너무나 불편한 이승만: ‘미국의 남자’ 이승만이 미국을 이용하다제2장 ─ 한국은 버림받을 것을 걱정했고, 미국은 잘못 엮일 것을 염려했다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원치 않았다1948년, 이승만과 아데나워냉전, 남북 체제 경쟁과 미국5·16 쿠데타에 미국은 당황하고 북한은 착각했다미중 수교에 놀란 박정희, 발 빼는 미국: 아시아 독트린과 10월 유신카터 쇼크: 한미 정부 최악의 갈등엄청난 연루 의혹, 보잘것없는 영향력전두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 레이건, 전두환 그리고 김대중제3장 ─ 민족인가 동맹인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진실CIA 출신 미국 대사들미 국무부에서 가장 큰 부서는 한국과1990년대 북핵은 1970년대 남핵의 데자뷰? 결론은 달랐다제네바 협상, 북미 중 누가 배신했나미국의 영변 원자로 폭격 계획, 어디까지 갔나민족인가 동맹인가: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갈등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내막: 주한미군 입장 뒤바뀐 미국의 진보와 보수FTA는 매국인가 애국인가: 한미 쇠고기 협상 내막제4장 ─ 숙명적 선린과 전략적 동맹, 글로벌 코리아와 한미관계의 미래그네 같은 미국의 대외정책, 집중력 떨어지는 한반도 정책한국은 동북아의 일부, 한국만의 미래는 없다친중은 숙명, 친미는 전략: ‘가만히 있어도 한국은 중국으로 움직인다’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으로 탈바꿈한 한국의 위상: 한국의 기적, 한미관계의 미래에필로그 어느 386세대의 미국 대장정을 마무리하며 개정증보판 후기미주
|
최형두의 다른 상품
|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도 없었다!”절박한 현실 속에 추진된 한미동맹과 이승만 외교한미동맹은 미국의 이익, 즉 대소련·대중국 포위전략에 따라 일방적으로 체결되었다는 주장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른바 ‘계획적 동맹론’ 혹은 ‘음모적 지배론’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애초 미국의 구상에 한미동맹은 없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당시 지정학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극동의 약소국과 동맹을 맺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승만의 동맹 요청에 미국은 심지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미국을 집요하게 설득해 인계철선 구축에 성공한 것은 이승만이 거둔 외교적 승리였다. 이승만이 집념을 발휘해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미국과 국제사회에 일깨운 것이다. 이렇듯 한미동맹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절박한 상황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동맹을 맺으면서 군사안보 이상을 얻었다. 군의 현대화 작업과 장기 경제원조를 협정에 담음으로써 빈곤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디딤돌을 놓을 수 있었다. 이후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이 추진되는 데도 한미동맹이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70년 동안 한미동맹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했는가북핵, 전시작전통제권, FTA 체결 등 한미동맹의 주요 쟁점들소극적인 자세로 망설이는 미국을 설득해 동맹을 맺은 대한민국은 미군과 함께 구축한 안전지대 안에서 경제와 정치 발전에 주력할 수 있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물질적 토대는 이런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요컨대, 한미동맹의 경제적 가치는 돈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컸다. 우선 과제인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가운데서도 한미동맹은 다양한 모습의 변천을 거쳤다. 5·16 쿠데타와 박정희의 등장은 미국에 큰 당혹감을 주었다. 또한, 카터 행정부 때 한미 간 최악의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을 어떻게 보고 대응할 것인지도 미국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북한의 군사적 도전이 거세지며, 특히 핵무기 개발에 나서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한미동맹의 가치가 한층 더 커졌다. 미 국무부에서 가장 큰 부서는 ‘한국과’일 정도이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간 갈등도 일어났다. 대한민국은 미국이 북한에 지나치게 안일하고 유화적으로 대응한다며 성토하기도 했으며 이와 반대로 미국이 무력 사용 가능성과 대북 제재에 중점을 둔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민족’과 ‘동맹’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수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주한미군 주둔 규모, 한미 FTA 체결 등도 한미동맹의 주요 쟁점으로 등장했다.우리는 한미동맹 뒤에 웅크리고 있는가, 아니면 혁신하고 있는가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미동맹의 발전 과제한미동맹 70주년을 맞는 현재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고 있었다. 이것은 이른바 ‘신냉전’으로 일컬어지는 국제질서의 격변으로 촉발된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좌고우면하며 머뭇거릴 여유가 허락되지 않으며 냉혹한 선택을 요구받게 되었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냉혹한 세계무대에서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담대한 판단과 실천이 필요하다. 결단의 시대에 눈치나 보고 있으면 순식간에 뒤처진다. 한미동맹의 역사적 진실을 이해하고 혁신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 첫 번째 과제는 70년 전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로 한미관계를 재단하는 낡은 사고를 버리는 것이다. 미국이 전쟁을 부추기고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다는 사고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 과제는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찾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던 빈곤국이 아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다. 한미동맹의 틀 역시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차원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