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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책에서 정리한 종교에 대한 정의는 “인간의 궁극적 문제에 대한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삶의 분야”라는 것이다. 저자에게 종교라는 것은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관계된 것이지 기독교적인 신학이나 불교의 난해한 교학을 어렵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할 때 저자가 항상 인용하는 사람이 있다. 20세기 기독교 신학계의 거성이었던 폴 틸리히(1886~1965)인데 그는 신앙(faith)을 다음과 같이 절묘하게 정의한 적이 있다. ‘신앙이란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궁극적인 관심에 사로잡힌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문구는 기독교 전통에서는 나오기 힘든 정의인데 그는 이 같은 참신한 주장을 해서 주목을 받았다. 종교는 바로 이 같은 궁극적 관심을 다룬다. 가령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내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가장 옳은 것인가’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관심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더 살가운 예를 들어보면, 한국 근대의 위대한 선승이었던 경허(1849~1912)는 원래 화엄경을 주로 강의하던 학승이었다. 그러던 그가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마을을 방문했다가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곤 자신이 가르치던 경전은 죽음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참선 같은 수행만이 자신에게 답을 줄 수 있다는 강한 확신에 휩싸인다. 그 뒤 그는 모든 경전과 결별하고 엄청나게 강도 높은 참선 수행에 돌입한다. 그리고 그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인간의 죽음을 목도하고 궁극적 관심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 앞에서 삶의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도대체 나는 왜 사는 것인가?’와 같은 궁극적 관심에 눈뜬 것이다. 이 같은 궁극적 관심은 한번 갖게 되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질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무리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마음의 저류에는 이 관심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풀지 않는 한 삶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사정은 같은 일을 당해본 사람은 곧 알아채고 동감할 것이다. 내가 이에 대해 다소 길게 이야기하는 까닭은 종교 공부를 잠시 떠나 한국 문화 연구에 몰두할 때도 종교에 대한 생각은 한번도 저버린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